첫매화
도종환
밤에는 부엉이 우는 소리 산 가득 하더니 아침에는 딱따구리가 요란하게 나무 둥치를 쪼아댑니다.숲의 새들이 점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엊그제는 지리산에 사는 후배의 편지를 받았습니다.섬진강 하류를 따라 곡성 쪽으로 내려가다가 첫매화를 보고는 생각이 나서 소식을 전한다고 했습니다.
편지와 함께 보낸 사진에는 열일곱 시골 소녀처럼 보얀 매화꽃이 다소곳하게 나뭇가지에 앉아 있었습니다.아직 피지 않은 채 맺혀 있는 꽃봉오리들은 아기를 가진 여자의 젖꼭지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습니다. 그런데 후배의 편지에 의하면 이 매화나무는 큰 상처를 입은 나무라는 것입니다
굵은 가지가 여러 군데나 잘려나간 채 덜덜 떨며 겨울을 보낸 나무라 했습니다. 상처받은 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일찍 꽃을 피웠다는 것입니다.후배의 편지는 이렇게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상처없이 어찌 봄이 오고, 상처 없이 어찌 깊은 사랑이 움트겠는지요.태풍에 크게 꺾인 경상도 벚나무들이 때 아닌 가을에 우르르 꽃을 피우더니 섬진강 매화나무들도 중상을 입은 나무들이 한 열흘씩 먼저 꽃을 피웁니다
전쟁의 폐허 뒤에 집집마다 힘닿는 데까지 아이들을 낳던 때처럼 그렇게 매화는 피어나고 있습니다
처음인 저꽃이 아프게 아름답고 상처가 되었던 세상의 모든 첫사랑이 애틋하게 그리운 아침 꽃 한 송이 처절하게 피는 걸 바라봅니다 .... 문득 꽃 보러 오시길 바랍니다.
저는 "상처 없이 어찌 봄이 오고 상처 없이 어찌 깊은 사랑이 움트겠는지요"하는 대목을 읽다가 고개를 들어 산줄기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꽃 한 송이도 상처를 딛고 피고,상처 속에 핀 꽃들로 하여 봄이 오는 지리산을 생각했습니다.설해를 입은 우리 집 마당가 소나무들이 빼곡하게 솔방울을 매달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사람도 쇠약해질 때 사랑의 욕구를 더 강하게 느낀다고 하는데 무릇 생명을 가진 것들의 생존 본능이 그렇게 몸에 작용을 하는 거겠지요.그러나 이 매화꽃에는 본능을 넘어서는 깊은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저는 답장을 쓰며 후배에게 편지를 옮겨 한 편의 시로 만들고 싶은데 허락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상처 입은 나무에서 첫매화 피는 걸 바라보며 보낸 편지 한 구절 한 구절이 저에게는 .시처럼 다가왔습니다
오죽헌 율곡매
오죽헌이 들어설 당시인 1400년경에 이 매화나무도 같이 심어졌다 하며,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과 율곡(栗谷)이 직접 가꾸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므로 이이(李珥, 1536∼1584)의 호인 율곡을 따서 율곡매라고 불렀다.신사임당은 태어날 당시부터 이미 상당히 굵었을 고목 매화에 대한 추억을 살려 고매도(古梅圖), 묵매도(墨梅圖) 등 여러 매화 그림을 그렸고, 맏딸의 이름도 매창(梅窓)으로 지을 만큼 매화를 사랑하였다. 율곡매는 신사임당과 이이가 아끼고 가꾸던 나무일뿐만 아니라 문화자원인 오죽헌과 함께 600여 년 동안 보호되어 온 귀중한 자연유산이라는 점에서 역사성이 깊은 나무이다.
심 산
오죽▲
오죽헌▼
▲ 수령 600년된 오죽헌의 율곡매 , 국내 4대 매화나무
[이 나무는 1400년경 이조참판을 지낸 최치운이 오죽헌을 건립하고 별당 후원에 심었다고 하며 신사임당과 율곡이 직접 가꾸었다고 합니다. 사임당은 고매도, 묵매도 등 여러 매화 그림응 그렸고 맏딸의 이름을 매창이라고 지을 만큼 매화를 사랑하였다. 사임당 당시 율곡매는상당히 굵었을 것으로 보이며, 본 줄기는 고사하고 곁가지가 자란 아들나무로 보인다. 율곡매는 꽃 색갈이 연문홍인 홍매 종류이며 열매는 다른 나무에 비해 훨씬 알이 굵은 것이 특징이다.]
수령 600년의 율곡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