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단상 95/복사골 내 고향]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
서울서 나흘을 묵다 지난 월요일 오후 돌아와보니, 내 고향 ‘찬샘마을’이 온통 복사꽃으로 뒤덮여 있다. 아하, 내 고향이 ‘복사골(도화동桃花洞)이었구나. 지난해에도 이렇게 실감하지 않았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마을을 둘러싼 야산과 들판 곳곳에 분홍색 복숭아꽃이 만발했더란 말이냐? 허허허허, 감탄이 절로 나왔다. 무릉도원이 뭐 별 곳이겠는가? 우리 도화촌도 무릉도원이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아니다. 석가모니가 일찌기 말씀하셨다. '일체유심조 一切惟心造'
우리 어릴 적에는 복숭아도, 대봉시도 참으로 귀했었다. 감나무 한 그루만 있어도 부자인 듯했다. 하지 때쯤이면 익어가는 복숭아에 입이 침이 고였다. 머리에 복숭아를 이고 다니며 동네를 돌며 팔러 다니는 행상 아주머니가 있었다. 잔정 많은 할머니가 손자들의 먹고 싶어 애타는 눈빛을 어찌 외면할 수 있으랴. 겉보리 한 말을 내주면 몇 알이나 주었을까. 그 맛을 잊지 못해 지금도 나는 복숭아를 과일 중에 가장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물렁물렁한 것보다 초기에 나오는 “딴딴한 것”을 입을 가득 벌려 이빨로 물어뜯어먹는 맛이라니.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애들에게 주념부리(주전버리, 군것질)를 자꾸 시켜주면 어떻게 하냐”며 시어머니인 할머니에게 눈을 흘리셨다. 한 푼이라도 아껴 일곱 총생들의 등록금을 마련해야 했으니 그 심정이 이해는 되어도 그런 어머니가 야속하기도 했다.
허나, 이제 복숭아든 감이든 세상 모든 과일이 흔전만전, 우리 곁에 지천이다. 아프리카 열대과일인들 없으랴? 어쩌면 이런 세상이 왔을까? 돈이 없어서 못먹을 배가 아니다. 좋아하면 물리도록 먹을 수 있는 세상을 살면서도, 배 고프고 먹고 싶어도 못 먹었던 <그때 그 시절>이 은근히 아련해지곤 한다. 오죽하면 과일 속에 든 벌레도 몸에 좋다며 캄캄한 원두막에서 터진 복숭아를 아구아구 입에 밀어넣었을 것인가? 나이가 들었다는 얘기일 터.
복숭아농원 몇 군데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내 꾀복쟁이 친구는 600그루가 넘는다고 했다. ‘고향지킴이 50년’에 나름 ‘성공한 농사꾼’이 되었다. 하지만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복숭아농사만큼 힘든 일이 없는 것같다. 하나의 복숭아가 탄생되기까지 공정이 무려 10여개가 넘는다고 한다. 농한기라고 쉴 틈이 없다. 거름(퇴비)도 줘야 하고, 가지도 치고, 꽃도 따고, 봉지를 씌워야 하고, 따서 크기별로 골라 상자마다 포장을 하여 가락시장에 실려보내기까지, 서너 달은 완전히 일에 파묻혀 살아야 한다. 그중에 가장 고역은 시도때도 없이 쳐야 하는 농약. 이날 평생, 그 일을 천직처럼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친구가 어느 때에는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복숭아 한 알 한 알이 돈이라고 생각하며 힘든 줄을 몰랐다는 친구. 유일하고 가장 막강한 소득원(1년 매출액이 1.5억, 납품하는 박스만도 1만2천여개가 넘는다던가)이니 어찌 ‘효자상품’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죽을둥살둥 하여 5남매(아들 둘, 딸 셋)를 잘 가르쳤으리라. 존경한다. 친구야!
아무튼, 그건 그것이고, 나는 복사골 우리동네를 바라보며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저 중국의 ‘시선詩仙’이자 ‘영원한 자유인’인 이백(이태백)의 유명한 글을 떠올렸다. 꽃들로 무르익어가는 봄밤, 고향에서 나 홀로 그가 지은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를 『고문진보古文眞寶』후집에서 찾아 느긋이 감상을 해본다. 복숭아꽃과 오얏나무꽃이 피는 농원에서 일가친척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갖는 어느 봄날의 야경, 흥에 겨운 이태백이 읊어댄 모음시집의 서문이다.
첫마디부터 심상치 않다. 딱 잘라서“무릇 천지는 만물의 여관이요, 일촌광음은 백대의 지나가는 나그네(夫天地者萬物之逆旅/光陰者百代之過客)”라고 단정하며 시작한다. 점입가경, 갈수록 이어지는 명문名文들을 보자. “부평초같은 인생이 꿈과 같으니 기쁨을 즐기는 날이 얼마나 되겠는가? 옛 사람이 촛불을 손에 쥐고 이 봄밤에 노니는 까닭이 진실로 여기에 있었구나(而浮生若夢 爲歡幾何/古人秉燭夜遊 良有以也”“게다가 화창한 봄이 나를 아지랑이처럼 부르고 천지(대괴大塊)가 나에게 아름다운 문장을 빌려주었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況陽春召我以煙景/大塊 假我以文章)” “복사꽃과 오얏꽃이 활짝 핀 아름다운 동산에 모여 천륜(天倫, 피붙이)끼리 흥겨운 시간을 가지면서 훌륭한 여러 동생들은 모두 ‘사혜연謝惠連’이 되었는데 내가 읊고 노래하는 것이 ‘사령운謝靈運’에 비해 부끄럽다(會桃李之芳園/序天倫之樂事/群季俊秀 皆爲惠連/吾人詠歌 獨慚康樂)” 그윽한 감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고상한 얘기들로 마음이 더욱 맑아진다(幽賞未已 高談轉淸)” “아름다운 자리를 펴 꽃 앞에 앉고 우상羽觴(두 개의 귀가 달린 참새 모양의 술잔)을 날려 달 아래 취하니 아름다운 문장이 있지 않다면 어찌 고상한 회포를 펼치겠는가?(開瓊筵以坐花/飛羽觴而醉月/不有佳作 何伸雅懷)” “만일 시를 짓지 못하면 벌주는 금곡의 술잔 수를 따르겠노라(如詩不成, 罰依金谷酒數)”
특별히 어려운 한자는 없지만, 중국의 두 가지 고사故事는 알아야 한다. 첫 번째 고사는 동진東晉시대 사령운(강락)과 사혜연은 집안형제인데, 동생이 특히 형보다 문재文才가 뛰어났다고 한다. 두 번째 고사는 금곡金谷은 진나라 석숭의 동산인데, 이곳에서 잔치를 베풀며 시를 짓지 못하는 자에게는 벌주罰酒로 술 세 말을 먹였다고 한다.
逆旅: 역은 손님을 맞다는 뜻으로 여관을 의미한다. 光陰: 광은 일 日, 음은 월月, 세월을 말한다. 浮生은 뜬구름같은 인생. 爲歡: 즐겁게 노님. 秉燭夜遊: 촛불을 쥐고 밤에 노님. 良有以: 양은 진실로 양, 이는 원인이나 근거. 煙景: 아지랑이 낀 봄날의 경관. 大塊: 천지, 대자연. 假: 借와 같이 ‘빌려주다’는 뜻. 文章: 아름다운 색깔 혹은 무늬이나, 여기에서는 봄날의 아름다운 경치를 가리킴. 芳園: 꽃이 핀 정원. 群季: 여러 뛰어난 동생. 瓊筵: 구슬방석. 화려한 연회 자리. 坐花: 사방이 꽃으로 둘러싸인 곳에 앉음. 醉月 : 달 아래에서 술에 취참. 伸: 토로하다.
헷갈리니, 전문에 현토懸吐를 달아 옮기니, 소리내어 읽어보시라. 그 흐뭇한 광경을 실제 눈으로 보는 듯하지 않은가.
夫天地者는 萬物之逆旅요 光陰者는 百代之過客이라 而浮生若夢하니 爲歡幾何호. 古人秉燭夜遊는 良有以也로다 況陽春召我以煙景하고 大塊假我以文章이라 會桃李之芳園하여 序天倫之樂事하니 群季俊秀하여 皆爲惠連이어늘 吾人詠歌 獨慚康樂이로다 幽賞未已에 高談轉淸이라 開瓊筵以坐花하고 飛羽觴而醉月하니 不有佳作이면 何伸雅懷리오 如詩不成인댄 罰依金谷酒數하리라
나도 이런 봄날을 갖고 싶다.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나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문문구 ‘열친척지정화悅親戚之靜話 낙금서이소우樂琴書以消憂(피붙이들과 정담을 나누며 즐거워하고, 거문고를 타고 책을 읽으며 시름을 달래다)‘가 바로 이를 이름한 것이 아니겠는가. 거문고는커녕 기타도 못치니 돼지 멱따는 소리로 나훈아의 <테스형>이나 불러야겠다. 흐흐.
첫댓글 우천의 글중에 ^흔전만전^이 나오는구료, 대충 겐또를 때려보니 흥청망청과 유사어라는 생각은 드는데, 흔전만전이 격이 높은 것 같소이다.
어데서, 이런 단어들을 끄집워내는 것 보면, 우천은 발굴의 달인일시다.
* 혼자도 즐겁게 잘보내고, 같이도 더더욱 즐겁게 보내는 복합형 우천님께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