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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blog.naver.com/feiloveu/40209619559
혜원이 선재의 집을 찾아왔을 때 그동안 연주곡중 자신의 녹음했던 곡 중 한 곡을 들려줍니다. 바로 '리스트의 스페인 랩소디'인데요. 연주를 마친 후 눈물을 흘릴 정도로 혜원은 이 곡에 흠뻑 빠져 선재를 안아주겠다고 이리오라고 하죠. 앞으로 선재가 나갈 콩쿠르에서 이 곡을 연주하라고 권합니다.
선재는 차이코프스키 콩쿨 2라운드에서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반해 다 외워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드라마에서 우리 시대에 사랑받는 한국인 연주가 이름이 거론되니 음악 애호가로서도 아, 감독이나 작가분이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분들임을 알게 되니 고마워졌습니다.
밀회 7회 유아인(선재)의 대학 입시 오디션 - 리스트 스페인 광시곡 Liszt spanish rhapsody s.254
리스트라는 작곡가의 연애사를 보면 이 곡을 드라마에 넣게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파리에서 유명한 아이돌 스타급의 피아니스트가 된 리스트는 파리 사교에서 유명한 7살 연상인 백작부인을 만나 사랑을 하게되죠. 자유로운 사랑의 갈망을 1800년대 스캔들을 밀회로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합니다.
손열음
피아니스트 손열음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원주에서 평범하게 학원에서부터 피아노를 배웁니다. 네 살에 배우겠다고 갔다 너무 어려 다섯살에 다시가서 시작을 했습니다. 손열음은 15살에 한예종 입학하면서 '김선욱, 손열음을 키워낸 스승'으로 유명한 김대진 교수를 사사하며 이탈리아 비오티 콩쿠르 최연소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유학 하지않은 토종 피아니스트로 우승하게 되었습니다.
김교수가 손열음을 제자로 맞이했을 때 "절대 남이 흉내 내지 못할 개성과 독창성이 있었어요. 똑같이 치는 법이 없었거든요. 후천적 습득이라기보다 본인의 재주죠." 즉흥 연주를 기반으로 한 재즈라면 이해하겠지만 클래식 교수인 김씨는 신기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궁합이 맞는 학생임을 직감하고 큰 틀을 만들어주자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일정한 틀, 객관성 안의 개성"이 필요함을 스승은 알아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2011년 14회 차이코프스티 공쿠르에서 손열음은 자신의 개성을 한껏 살려 2위를 차지했습니다. 2009년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준우승 등으로 너무 알려져 잘 하면 본전, 못 하면 쌓은 것을 다 잃게 되는 상황이었는데 그런 부담을 잘 알고도 준우승이라는 결과를 냈으니 대단한 성과입니다. 이 해 우승자는 러시가 피아니스트가 우승했습니다. 마치 소치 올림픽 홈어드밴티지나 심판 주관적 견해가 결과에 영향을 미치듯 콩쿠르도 공정할 수 없는 면이 있다고 합니다.
2011년 제14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제2라운드 손열음 '리스트의 스페인 광시곡' 연주실황을 보겠습니다.
Liszt: Spanish Rhapsody - Yeol Eum Son / From Tjajkovsky competition 2011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4년마다 열리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는 벨기에 퀸엘리자베스 콩쿠르ㆍ폴란드 쇼팽 콩쿠르와 함께 '세계 3대 콩쿠르'로 불립니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남녀 성악 부문을 동시에 개최하고 우승자에게는 상금과 함께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와 런던 심포니오케스트라 협연 기회도 주어집니다. 2011년 피아노부문에서 손열음이 2위, 조성진이 3위를 해 한국연주가의 실력을 다시 한번 알려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명훈 예술감독이 미국 국적으로 1974년 피아노 부문에서 2위, 94년 백혜선 교수가 3위를 차지한 바 있는데요. 2011년에는 피아노 부문외에 박종민과 서선영 씨가 각각 남녀 성악 부문 1위, 이지혜 씨가 바이올린 부문 3위를 수상해 한국인 5명이 한꺼번에 입상하는 쾌거를 올렸습니다.
손열음은 준우승과 함께 모차르트 협주곡 최고연주상, 콩쿠르 위촉작품 최고연주상까지 휩쓸었습니다. 손열음은 초등학교 5학년이던 1997년 영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 2위 입상한 것을 계기로 1998년 7월, 금호문화재단의 금호영재콘서트 첫 주자로 발탁되면서 음악계에 데뷔한 뒤 뉴욕필하모닉 등 수많은 세계 정상급의 오케스트라와 협연 무대를 가졌습니다. 또 2007년 뉴욕 UN 총회장에서 열린 반기문 UN 사무총장 취임축하 연주회와 2012년 한국-오스트리아 수교 120주년 오스트리아 대통령궁 음악회 등 다양한 무대에 서는 등 대한민국의 문화사절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습니다.
예술가 손열음의 철학
독일 하노버 대학에서 석박사 과정을 하고 있는 미국의 오푸스, 유럽의 인터뮤지카, 러시아의 모스크바필하모닉 소사이어티가 3년간의 연주 기회를 보장받고 활동합니다. 문화적 콧대가 높은 만큼 청중의 음악 사랑이 순수한 유럽시장을 선택한 것이죠.
손열음은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실내악입니다. "1년에 두 차례 열리는 실내악 축제인 '금호아시아나솔로이스츠' 무대는 외국에 있더라도 꼭 와요. 가장 중독성 있는 장르죠. 그래서 그런지 역대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서 수상한 피아니스트 중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정명훈씨가 2위 했을 때 3위에 머무른 러시아의 유리 에고로프하고 해요, 그가 연주한 슈만의 실내악은 최고로 칩니다.
클래식도 피해갈 수 없는 시장주의에 대해 "클래식 음악이 시장화돼 대중에 팔 수 있는 사람만 취급 받는 때죠." 또박또박 말하며 팔리기 위해 연주하지 않을것이며 예술가로서 타협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예술은 놀라게 하려, 성적 내려 하는 게 아니죠. 평생 하는 것, 그게 예술이잖아요." 예술가 손열음의 철학을 잘 보여줍니다.
리스트
요제프 단하우저 작(1840)
앞줄 왼쪽부터 : 뒤마, 상드, 리스트, 다구백작부인 뒷줄 왼쪽부터 : 위고, 파가니니, 롯시니
피아노 앞의 리스트
화가 요제프 단하우저가 그린 ‘파리의 살롱에서 피아노를 치는 리스트’라는 그림을 보면 리스트가 누구인지 잘 알 수 있기에 먼저 그림으로 리스트를 만나봅니다. 그림 속의 등장인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당시 파리 예술계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작곡가 로시니와 파가니니,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와 빅토르 위고, 조르쥬 상드, 그리고 그와 격하게 사랑을 한 마리 다구 백작 부인이 그림 속에 등장합니다. 사교계의 여왕이 아니랄까 마리 다구 부인은 피아노 치는 리스트의 바로 옆에 등을 살짝 드러낸 섹시한 뒷모습으로 앉아 있습니다. 리스트가 피아노를 연주하며 시선은 흉상을 바라보고 있죠. 바로 베에토벤의 흉상이랍니다.
거장과의 만남
체르니는 스승에게 어린 소년을 이렇게 극찬했습니다. '슈베르트 이후 이런 재능을 가진 천재는 처음이다.' 라고요. 베에토벤은 신동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하다면 짜증을 냈다고 합니다. 그 때가 프란츠 리스트(1811~1886) 12살 때죠. 리스트는 베토벤 앞에서 피아노를 칩니다. 베토벤은 소년의 연주에 완전히 감탄해 연주가 끝나자 소년을 꼭 끌어안고 이마에 입을 맞춥니다. 어린 리스트가 열성적인 아버지를 따라 오스트리아 빈에 와 베토벤의 제자인 체르니(1791~1857)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베토벤은 제자의 청을 받아 신동의 연주회에 참석했던 것이지요.
리스트의 스승 체르니는 제자에 대한 첫인상을 “창백하고 병약하다”거나 “피아노를 술 취한 듯 두들겨대던, 손 모양에도 문제가 있는 아이” 등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늘이 내린 천부적인 재능, 그중에서도 특히 “엄청난 즉흥연주”에 대해서는 스승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나 봅니다.
체르니는 리스트를 2년 동안 가르친 다음, 1822년 12월에 빈에서 데뷔 연주회를 치르게 합니다. 이 때 스승인 베토벤에게 이 소년을 봐줄 것을 부탁합니다. 그 이듬해에 리스트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프랑스 파리로 건너갑니다. 이른바 리스트의 ‘파리 시절’이 그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클래식계의 아이돌 스타 '리스트'
리스트 아버지는 헝가리에서 기세등등한 에스테르하지 가문에서 고위 집사역할을 하는 하인이었기에 풍족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첼리스트의 꿈이 좌절된 아버지는 리스트를 유명한 음악가로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집안에서 조차 헝가리어를 쓰지 못하게 엄명을 내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리스트를 데리고 훌륭한 선생들(체르니, 살리에리 등)을 찾아다녔고, 곳곳에서 순회연주를 펼쳤습니다. 하지만 1827년 리스트가 열여섯 살이던 해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이제, 리스트 PD이자 로드매니져로 음악 교육, 일상생활 그리고 연주와 관련해 오던 아버지가 사라지면서 리스트는 과연 어떻게 됐을까요?
예상대로입니다. 거의 ‘파파 보이’로 살다시피 했던 그는 ‘파리’라는 화려한 도시에서 방황의 시기를 보냅니다. 파리는 모든 예술가들에게 방황을 서물하는 곳 인가봅니다. 물론, 연주자로서의 인기는 아이돌 스타급이었죠. 채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신들린 비르투오소’의 소문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가고 리스트는 파리의 사교계에서도 점점 유명 인사가 됩니다. 스무 살 무렵에는 베를리오즈, 쇼팽, 파가니니 등과 만나 교류를 시작하면서 일급 음악가의 반열에 올라섭니다.
그의 인기몰이는 연주회에서 다른 연주가와 달리 악보를 보지않고 외워치며 팔을 들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등 쇼맨십이 좋아 여인들의 마음을 흔들어 놨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여인들이 그가 연주하며 목걸이, 반지 등을 어찌나 수없이 던졌다고 합니다. 덕분에 그런 모습이 삽화로도 남아있을 정도입니다. 그러하니 그의 주변에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있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세기의 스캔들
파리에서 그는 운명의 여인을 만납니다. 리스트의 ‘파리 시절’을 상징이 된 연애 스캔들이 터졌던 것이지요. 리스트는 스물세 살 때 7년 연상의 유부녀로 두 아이의 엄마인 마리 다구 백작 부인을 만납니다. 당시 파리 사교계에서 쇼팽의 연인이었던 조르쥬 상드와 쌍벽을 이루던 여인이었습니다.
그의 사랑은 씨끌벅쩍했습니다. 스위스, 이탈리아 등지를 떠돌며 사랑의 도피행각을 펼치며 세 명의 아이까지 낳습니다. 두 아이는 불행하게도 일찍이 세상을 떠났지만, 둘째딸 코지마는 리스트를 열렬한 존경했던 지휘자 한스 폰 뷜로(1830~1894)의 아내가 됩니다. 하지만 코지마는 훗날 남편 뷜로의 곁을 떠나 자신의 아버지보다 두 살 많은 유부남 바그너와 함께 삽니다. 바그너를 딸의 부부에게 소개해주었던 리스트는 이 계기로 배신감을 느껴 딸을 10년동안 보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예측 불가한 예술가들의 열애는 당대 유럽 사회의 풍속도 가운데 하나였던 것처럼 보입니다. 이성의 힘을 믿는 계몽주의를 바탕으로한 근대사회가 열렸지만, 그 이면에는 자유를 향한 갈망과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이 표출되었던 거죠.
하지만 사랑이 영원하리라고 믿지 않듯 리스트와 마리 다구 백작 부인은 1844년에 결별합니다. 파리 예술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두 사람의 열애는 세 아이를 낳고 10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끝이 난것이지요. 이후 리스트는 많은 여자들과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하다 두번째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게 됩니다.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귀족이었던 카롤리네 자인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으로 그녀는 키예프를 찾아온 리스트의 연주를 듣고 한눈에 반했다고 합니다. 남편과 별거 중이던 그녀는 리스트가 있는 독일 바이마르까지, 그 머나먼 길을 딸까지 데리고 달려옵니다. 그 용감한 여인은 ‘파리 사교계의 꽃’이었던 마리 다구 백작 부인과는 달리 지성과 교양이 넘치는 차분한 여인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녀는 리스트의 재능을 간파하고 작곡을 권합니다. 그 영향으로 본격적으로 작곡가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그녀와 결혼을 하고 싶었지만 교황청이 남편과의 이혼을 허락하지 않아 결혼을 하지 못하고 결국 후에 둘은 헤어집니다. 공작부인과 헤어진 다음 리스트는 54세에 성작자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스페인 광시곡
헝가리 랩소디에 준한 작품으로 스페인의 민족적인 바탕을 둔 스페인 랩소디를 작곡합니다. 리스트가 로마에서 머물 때 작곡한 곡으로, 그가 이베리아 반도 여행을 한 1844년 가을부터 다음해 봄에 걸쳐 수집되었습니다. 스페인 랩소디 부제는 <폴리아 데스파뉴와 호타 아라고네사>라고 이름 붙인 것처럼 헝가리의<차르다시>와 같이 대조적인 2개의 부분으로 되어있습니다. 각각이 스페인의 전통적인 소재입니다.
곡의 전개는 lento,c#단조, 4/3 박자의 카덴짜 풍으로 시작해 이어서 안단테의 (Folies d'Espagne)는 주제가 처음으로 나타납니다. 자유로운 악상을 덧붙여서 llegro animato의 (jota aragonesa)로 고조된 후 Non troppo allegro, 4/3 박자로 (Folies d'Espagne)가 당당하게 재현되고 전후를 4/4 박자로 힘차게 끝맺습니다.
첫댓글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