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때문에 눈이 부셨던 주인공 뫼르소 정상 참작 못 받고 죽음 앞에 선 그에게 부조리란 무엇이었을까
무심한 남자가 빠진 함정
‘실존주의’와 ‘부조리’라는 단어가 늘 따라 다니는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 ‘실존’은 근대철학에서 매우 다양하게 쓰이기 때문에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까뮈의 실존주의는 철저한 인간 중심주의 문학을 가리킨다. 실존주의는 유신론과 무신론으로 나뉘는데 카뮈가 주장하는 것은 무신론적 실존주의이다.
부조리는 ‘조리에 맞지 않는다’는 단순한 뜻이지만 완전한 철학적 용어로 탈바꿈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에서 인간 존재를 부조리의 산물로 보려는 견해가 나타났고 이를 문학적으로, 철학적으로 구현한 작가가 바로 알베르 카뮈이다.
195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까뮈의 작품 《이방인》을 읽을 때 실존주의니 부조리니 하는 것은 잊고 한 인간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며 생각에 잠겨보길 권한다. 너무 유명한 작품이어서 자칫 평자들의 쏟아지는 규정이 오히려 독서를 방해할 수 있다.
《이방인》은 1913년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에 태어난 카뮈가 29세에 집필한 작품이다. 주인공 뫼르소는 혼자 지내는 걸 좋아하고, 감정 변화가 크지 않고, 뭘 해야 할지 잘 모르는 요즘 청년들과 닮았다. 성실하게 회사에 다니지만 매사 무관심한 뫼르소에게 양로원에서 지내던 어머니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날아온다. 딱히 나눌 대화도 없고 더 이상 보살필 수도 없어 양로원에 보낸 어머니의 나이도 잘 모르고 슬픔을 표하지도 않은 뫼르소는 장례식을 무덤덤하게 치른다. 집으로 돌아와 해수욕장에 갔고 거기서 회사 동료였던 마리를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낸다.
고골마리가 “나를 사랑하나? 결혼하고 싶다”고 하자 뫼르소는 “사랑하진 않지만 결혼하자”고 답한다. ‘자신의 감정을 지나치게 솔직하게 드러내는’ 뫼르소는 몇몇 사람들과 만남을 갖지만 대개의 경우 무관심하고 무덤덤하게 대한다. 그러면서도 도움을 주고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주인공의 성격처럼 무덤덤하게 흘러가던 《이방인》은 이른바 ‘태양 살인’에서 급반전한다. 함께 놀러간 바닷가에서 옆집 레이몽의 권총을 보관하고 있던 뫼르소가 다툼이 있었던 사람과 다시 마주치게 되고, 그 사람이 칼을 빼드는 바람에 총을 뽑았고, 마침 태양 때문에 눈이 부셨던 것이 소설 상의 ‘팩트’이다.
치우친 재판, 억울한 뫼르소
뫼르소가 재판을 받는 과정이 매우 흥미롭다. 그간 뫼르소가 무덤덤하게 행동한 것이 일부 무심한 증인들과 악착같은 검사에 의해 모두 악(惡)으로 치부되고, 솔직하게 드러낸 자신의 심경은 모두 유죄의 근거가 된다. 뫼르소에게 도움을 주려는 친구들의 증언이 채 펼쳐지기도 전에 싹둑 잘리는 재판 과정은 요즘 정국을 연상케 한다.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음으로 불려갈 ‘새벽’을 두렵게 기다리는 뫼르소에게 신부가 찾아온다. 이 장면에서 카뮈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독자에게 격렬하게 표현한다. 신부가 “인간의 심판은 아무 것도 아니고 하느님의 심판이 전부이니 죄의 짐을 씻어버려야 한다”고 말하자 뫼르소는 “나는 범인으로 형벌을 받는 것이니 그 이상 더 나에게 요구할 수는 없다”고 답한다. 신부는 천국을 생각하라며 기도해 주려하지만 뫼르소는 “나의 인생과 닥쳐올 이 죽음에 대한 명확한 의식, 나에게 이것 밖에 없다. 이 진리를 굳게 붙들고 있는 내 생각은 옳다”고 말한다.
독자들은 뫼르소가 신부를 향해 퍼붓는 말을 들으며 결정해야 한다. ‘정상 참작’을 받지 못한 남자 앞에 열린 명징한 새 세계에 동참할 것인지, 신부의 마지막 제안을 거절한 남자를 어리석다며 동정할 것인지.
매사 무관심했던 뫼르소가 사형을 목전에 두고 새 세계에 눈뜬 것을 행복해하는 이야기 《이방인》. 수많은 작품의 모티브가 되고, 다른 장르로 각색 되는 등 문학사에서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평범한 남자가 불행으로 어이없이 떠밀려 들어가는 과정과 그 속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통해 삶을 깊이 성찰해볼 수 있을 것이다. 부조리한 세상을 냉철한 인간의 의식으로 맞서야 한다고 주장한 카뮈. 삶이 그다지도 명징한 것인지, 신부가 말한 내세는 과연 공허한 것인지 각자 생각해볼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