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잘 못하셨던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노래를 참 잘하셨다.
특히 배뱅이굿이나 양산도 같은 서도소리를 잘하셨는데
고향분들 모임에서 노래는 의례히 아버지 차례였고 인기가 매우 좋으셨다 한다.
하지만 집에선 노래를 부르시는 일이 거의 없었고 가요무대같은 TV프로에서
옛노래가 나오면 나지막히 따라부르시곤 했는데 참 음성이 좋으셨다.
아버지의 18번지는 "불효자는 웁니다" 였다.
이는 어릴때 고향을 떠나와 부모님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이신 것 같고
나는 왠지 남인수의 낙화유수가 아버지의 18번지 일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만큼 음성이나 창법이 비슷하기도 하지만
어느 봄날 아직은 젊으셨던 아버지가 TV를 보시며 낙화유수를 따라
부르시던 모습이 내겐 깊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23년전 오월 나에게 통일되면 고향에 찾아가서
할아버지묘소에 대신 술한잔 올리라는 유언을 남기시고 돌아가셨다
아래 루루님의 글을 보고 아버지의 노래를 올려 봅니다
낙화유수 - 남인수
첫댓글 저희 아버지도
이북이 고향이지요
그산님의 글을 보니 제가 15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나네요..
자식 사랑 지극했던 아버지라
더 그립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아마 우리세대는 부모님 고향이
이북인 분들이 많은것 같습니다
제 아버지도 말씀은 적으셨지만
자식사랑이 지극하셨고
그중 저를 제일 사랑하셨습니다
저의 장인께서 북한에서 혼자 넘어오신 분이었는데, 대금을 막걸리에 담그었다가 구슬피 불던 기억이 납니다.
막걸리에 담궜다가 부는 대금소리는 얼마나 구슬펐을까요
차마 말씀은 못하시고 대금에 한을 담아서 부신게 아닌가 합니다
이버지가 14 살 때에는 어느 군대 소속 이셨는지 궁금합니다
625 때 국군 소속 이었던 거 같은데?
훌륭합니당
충성
아버지는 1951년에는 국군 상병이었고
1941년에는 선린상업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일제말기라 교복이 군복같습니다
저도 충성 !!
수필방에서 뵈니 반갑습니다.
자주 놀려 오시고 글 많이 올려주세요. ㅎ
남인수 님 목소리는
옛 정취가 듬뿍 담긴 목소리 같더군요.
그 분의 산유화도 좋아하는데
노래가 왜 이리 구슬픈지 .
글 잘 읽었습니다. 건강하세요.
넵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소리사랑의 낙화유수를 좋아하지만
아버지가 남인수님의 노래를 좋아하셔서 올려봤습니다
글은 많이 못올려도 자주 오겠습니다 ^^
그산님 반갑습니다.
설은 잘 쇠셨는지요.
아버님의 귀한 옛 사진과
아버님이 좋아하시던 노래를 올려 주시니
설날에
부모님 생각이 간절하셨나 봅니다.
41년도에 선린상고를 다녀쎴다면,
굉장하시네요.
지금의 학생들에겐 대선배님일 것입니다.
설날에 올려주신 글, 감사합니다.
자주 오시면 좋겠습니다.
방장님 감사합니다
서울에서 방금 딸이 내려와 딸랑 세식구
잡채와 빈대떡 먹었습니다
윗사진은 2학년 진급기념으로 학교정문앞에서
찍으신건데 지금도 저건물은 남아 있을겁니다
글실력은 딸리지만 가능하면
자주 글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설이라서 부모님 생각이 나셨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사진을 용케도 가지고 계시네요.
다행입니다.
선배님 반갑습니다
6.25당시 서울에서 피난나올때 미처 아버지(제겐 할아버지)의 사진을
가지고 나오지 못했고 위사진만 가지고 나오시다 대전에서 입대하셨다 합니다
큰딸 돌 지난 어느 해 추석
용산 중대병원 뒤 시외버스 터미널
당진가는 버스 겨우 자리잡고..
백열등 컴컴한 정지에서~
며느리가 막걸리 술상 봐 드리니
젓가락 장단
남인수 던가 고복수 던가...
너거 아부지 노래하는거 첨이다
저더러 여기 농사 이어받으라길래,
머라 카심니까
반갑습니다. 당시 아버지들은 집에서 노래 잘안부르셨던것 같습니다
제아버지도 향우회에선 사회도 보고 노래도 잘하셨다는데
집에선 거의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그산님 반갑습니다
아버님이 실향민 이셨군요
젊으실적 사진보니 호남형 이시네요
귀한 사진을 간직하고 계십니다
저의 아버지는 두만강~ 푸른물에~가
유일하게 아시는 노래 였어요
술도 안즐기셨는데 어쩌다 한잔 하시면
그 노래를 흥얼 거리셨지요
그산님 글 잘보고 갑니다 ^^
해솔정님 반갑습니다
아버지는 1940년 서울로 중학교에 유학오셨다가
분단되어 못가셨지요
평안도분이라 에헤이에로 시작하는
양산도를 집에서도 가끔 흥얼거리시고
모임에선 자주 부르셨다 합니다
명절이면
부모님 향한 그리움이 더 간절해지는 것 같습니다.
아버님의 귀한 사진을 간직하고 계시네요.
아직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아버지 사진을 보관하시지만
저도 잘 챙겨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플로라님 반갑습니다
우리집에서 가장 오래된 사진입니다
23년전 아버지 돌아가신후 서울 형네집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기회되시면 부모님 사진을 스캔해두시는것도 좋을듯 합니다
큰형 장가 갈 때 산 녹음기를 앞에 두고
처음으로 아버지가 부르시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참 잘 부르셨는데,
아버지 노래를 처음 들어서 놀라고
너무 잘 부르셔서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마음자리님 반갑습니딘
예전엔 아버님들이 가족앞에서 노래부를
기회가 많지 않았을겁니다
즐거운 연휴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란 단어만 생각해도
불효자식으로 정말 얼마나 후회하였는지 모릅니다,
참으로 자식 사랑이 남달라신 분이셨는데
자식으로서 정말 불효을 용서받지 못하는
참으로 되돌릴수 없는 불효에 정말 많이 슬픕니다,
선배님 반갑습니다
아마 스스로 불효자식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은 별로 없을것 같습니다
음력 정월초 자손들과 행복한 날들 보내시기 바랍니다
불효자는 웁니다.
불러 봐도
울어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
가사가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가 즐겨 부르셨던 노래속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몽글몽글 피어나네요.
그산님
연휴 행복하게 보내세요.
제라님 반갑습니다
1940년 14살에 서울로 유학오신 아버지는 그전 아주 어린나이에 친어머니를
여의셨고 계모님아래 크셨다는데 두분 어머니 모두 차례때 제사를 지내셨습니다
TV보실때 불효자는 웁니다가 나오면 항상 나지막히 따라 부르셨지요
진방남 불효자는 웁니다 올려드립니다
즐거운 설연휴되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a5oLROMTNLI?si=oXA2NgeTOZMdZ2D0
PLAY
저희도 아버지는
시국 잘 못 만나 못 풀어 잡수신
고을 가수 쯤은 되시는데
저의 어머님은 가사도 정확하지 않는
베틀가 설움 풀이 흥얼거리시는 것 외엔
노래 노짜도 못 부르셨는데ㅎ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잘 읽고 갑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예지원님 반갑습니다
저희부모님세대는 일제와 한국동란을
겪으며 살아오신 분들입니다
오늘의 풍요는 그분들의 헌신과 희생속에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연휴마지막날도 행복하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