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 ("육식,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에서 발췌, 편집한 글입니다 - 멋진 닭)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도 세상에서 불필요한 고통을 최소화하고 싶었다. 나는 필요 없는 폭력과 고통을 제거하고 싶었고, 그래서 긍정적인 방식으로 이 목표에 접근하는 일이라면 가능한 한 최대한 지원하고 싶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내 식습관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하지 못했다. 고기를 만들기 위해 동물들이 살해된다는 건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그게 자연의 섭리고, 먹이사슬의 원칙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날 미국 음식에 쓰이는 동물들은 그냥 살해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들에게는 그 이상의 뭔가가 자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뭔지를 알게 되면서 나는 영원히 바뀌었다.
닭에서 시작해보자. 이 동물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이해하려면, 우선 그것이 어떤 존재인지를 느끼는 게 도움이 된다. 수탉은 그 자부심과 사나움, 그리고 그 불굴의 의지로 유명하다. 그래서 여러 문화권에서는 이 점을 닭싸움이라는 일종의 “스포츠”에 활용해왔다. 또 전세계의 다양하고 폭넓은 문화들이 수탉의 이름을 남성의 성기와 동의어로 씀으로써 사실상 수탉의 정력을 인정해왔다. 그래서인지 세계 도처의 언어들에서 수탉이라는 말은 남성의 성적 능력을 상징하는 말로도 쓰이고 있다. 암탉도 마찬가지다. 이 역시 우리가 고정관념으로 받아들여온 것 같은 그런 겁 많은 동물이 아니다. 암탉은 제 새끼들을 지킬 때에는 힘이 월등하게 센 상대나 몸집이 훨씬 큰 육식 새들한테까지도 맹렬하게 맞선다고 한다. 오랫동안 닭을 연구한 과학자, E. L. 왓슨도 어미 닭이 사나운 갈가마귀의 무시무시한 공격에 맞서 병아리를 지키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다. 닭은 우리의 고정관념처럼 그렇게 겁 많은 동물이 아니다. 그리고 닭이 멍청하다는 통념 역시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한번은 한 박물학자가 암탉에게 그가 찾은 21개의 뿔닭 알을 주었다. 암탉이 어떻게 하는지 보고 싶어서였다. 껍데기가 단단한 이 작은 알은 그 겉모습에서 이미 달걀과는 전혀 달랐다. 그러나 암탉은 이 알을 품는 과제를 선뜻 떠맡고는, 싫은 내색 하나 없이 21개의 알을 잘 돌보았다. 나도 처음에는 닭에 대한 오랜 고정관념에 따라, 닭이 너무 멍청해서 제 알이 아닌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이려니 했다. 그런데 암탉은 알을 깨고 나온 것이 병아리가 아니라는 사실에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작고 메추라기 같은 생김새와 이상한 행동들이 암탉에게는 아무 문제가 아니었던 게 분명했다. 나는 다시 한번, 암탉이 너무 멍청해서 새끼들이 병아리가 아니라는 것도 모르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틀렸다. 암탉은 내가 아는 것 이상으로 현실에 잘 조율되어 있었다. 뿔닭 새끼들이 부화한 지 며칠 뒤, 암탉은 그들을 데리고 덤불 속으로 들어갔다. 암탉은 보통 병아리들에게 주는 밀기울을 그들에게 먹게 하는 대신, 개미집을 파헤쳐 흰 번데기들을 찾아냈다. 닭은 그런 음식을 먹지 않지만, 뿔닭은 먹는다! 뿔닭 새끼들은 본능적인 식성에 따라 그것을 쪼았다. 암탉은 어떻게 그걸 알 수 있었을까? 암탉이 발휘한 지능은 도대체 어떤 형태의 지능일까? 어쩌면 암탉은 그들의 집단 영혼으로부터 모종의 메시지를 받을 수 있도록 충분히 조율돼 있었던 게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는 것이다!
또다른 사례에서는, 박물학자가 암탉에게 오리알을 몇 개 주었다. 암탉은 그것이 마치 달걀인 양 품어 부화시켰으나, 그런 노력의 결과로 병아리 대신 오리새끼가 나온 것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암탉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자기는 물론 그 지역의 어떤 암탉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을 실행했다. 암탉은 개울에 걸쳐놓은 널판지 위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꼬꼬꼬꼬 하며 오리새끼들을 물 속으로 끌어들였다. 이 어미 암탉들이 알에서 깨어난 다른 종의 새끼들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할지를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수수께끼다. 그러나 어쨌든 그들은 해냈다. 우리가 “누군가의 날개 밑에 있었다”고 말할 때 그 의미가 지극한 관심과 자상함이 동반된 양육이란 건 정말 맞는 말인 것 같다.
기록 역사 전반을 통틀어 살펴보면, 극진한 양육을 가리키는 지고의 상징이 바로 암탉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로마인들은 암탉의 모성을 매우 높이 평가하여, “암탉의 아들”이라는 어구를 “운이 좋아 보살핌을 잘 받은 남자”를 뜻하는 말로 자주 썼다.
잔해 한가운데에서 알몸으로
갓 깬 병아리, 어미 닭의 깃을 살짝 밀고 나오는 그 조그만 노란 머리, 쪼기를 막 시작한 그 조그만 노란 부리를 본 느낌을 잊기는 쉽지 않다. 우리들 다수에게 갓 깬 병아리는 순진무구함과 사랑스러움, 그 자체로 비친다. 하지만 그들은 또한 더 깊은 뭔가를, 영감을 주는 뭔가를 말하고 있기도 하다. 달걀 껍질을 쪼며 밖으로 나오는 병아리들은 낡은 테두리 밖으로 떨치고 나가려는 우리의 전진 욕구, 지금까지는 필요한 목적에 잘 봉사해왔으나 이제는 버릴 때가 된 울타리를 밀어젖히고 그 너머로 뻗어나가려는 우리의 깊은 욕구를 상징하는 듯이 보인다.
닭의 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늘날 미국의 양계 실태는 닭에 대한 연민이 넘쳐흐르는 그런 현실이 아니며, 우리가 닭의 삶을 생각할 때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농가 앞마당과도 아무 상관이 없다. 지난 30년 동안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예전의 닭은 흙 속을 긁고 뒤져 애벌레와 지렁이, 풀 따위를 알아서 찾아 먹는, 놓아먹이는 새였다. 그들은 해와 바람과 별을 알았다. 먼동이 틀 때 새벽을 알리며 우는 수탉은 그들이 빛과 어둠의 자연 순환에 깊이 조율돼 있음을 보여주는 여러 징후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오늘날의 닭과 달걀 뒤에는, 현대식 슈퍼마켓의 밝은 조명 아래 진열된 깨끗한 소형 판매용 포장에서는 추측조차 하기 힘든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슈퍼마켓에서 보는 닭은 하나같이 조심스럽게 포장된 채 상표까지 붙어 있어, 매우 깨끗하고 만족스럽고 믿음직해보일 것이다. 그 모든 게 잘못되었다는 상상을 하기는 정말 어렵다. 미국 최대의 식용 양계업체 가운데 하나인 퍼듀 사의 광고에서 그 회사의 사장, 프랭크 퍼듀는 자기네 닭이 “정말 천국 같은 닭의 집”에서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닭 수용 시설을 “닭의 천국”으로 묘사한 것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 점점 드러나고 있다.
오늘날의 닭 공장은 우리들 대부분이 생각하는 식의 그런 농가부업이 아니라, 짐승이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소비할 수 있는 물건이요, 원료라는 태도의 살아 있는 표현이다. 나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말이 과장이었으면, 관리를 게을리하는 몇몇 사례를 묘사하고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아니다. 나는 지금 오늘날의 달걀과 닭 산업의 표준적인 운영방식을 묘사하고 있다. 내가 지금 묘사하는 방식이 우리가 소비하는 달걀과 닭의 98%를 생산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가금의 세계>, <가금 트리뷴>, <가금 다이제스트>, <농부와 축산업자>, <농장저널> 같은 전문지에서 매일같이 소개되고 논의되는 기술과 실천 사례들을 묘사하고 있다.
오늘날의 닭 공장 조립 라인 세계에서, 닭은 더 이상 “닭(chicken)”이라 불리지 않는다. 고기를 먹기 위해 기르는 닭은 “브로일러(broiler)”로, 알을 얻기 위해 기르는 닭은 “레이어(layer)”로 불린다. 보다시피 동물을 본래의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사람이 먹는 식품 가치에 따라 새 이름을 부여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 모두로 하여금 고유한 존엄성을 가진 살아 있는 존재로서 그 동물을 잊게 만드는 데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양계업계는 닭을 동물로 보지 않도록 철저히 계산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오늘날의 레이어(산란 닭)는 무엇보다도 원료인 사료를 최종 생산물인 달걀로 바꾸어내는 매우 효율적인 기계일 뿐이다. 물론 유지보수도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농부와 축산업자>
공장 스타일의 생일 축하
여러분도 알겠지만, 달걀 제조창에서는 수평아리가 별 쓸모가 없다.
“우리는 한 부화장에서 병아리 감별사들이 각각의 쟁반에서 수컷만을 추려내어 튼튼한 플라스틱 통 속에 떨어뜨리는 것을 보았다. 안내원이 설명했다. ‘우린 그것들을 통 속에 넣어 질식사시킵니다.’”
미국에서는 매일같이 50만 마리가 넘는 병아리가 이런 식으로 “버려진다.” 여러분이 이 단락을 읽는 몇초 동안에도 2천 마리 이상의 갓 깨어난 수평아리가 사람 손에 의해 쓰레기통으로 던져진다.
닭들이 빛과 어둠의 자연적인 리듬에 얼마나 민감한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현대식 공장 속에서 사는 닭들은 햇빛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한다. 브로일러(구이용 닭) 병아리들은 기계화된 부화장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몇만 마리 단위로 양계업자한테로 온다. 이 작은 병아리들은 신으로부터 15∼20년의 기대수명을 부여받고 태어난다. 그러나 오늘날의 공장식 사육법으로 키워지는 “브로일러”들은 두 달이면 성숙한 나이가 된다. 그러나 “레이어”들은 2년까지도 가능하다. 닭장들이 바닥에서 천장까지 선적용 나무상자처럼 켜켜이 쌓인 창문 없는 창고들로 이루어진 이 곳의 환경은 그 창고와 닭의 소유자인 양계업체의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창문 없는 창고 안에서 이루어지는 닭들의 환경을 좌지우지하는 모든 측면은 전적으로 그 시설을 소유한 기업의 경비 지출을 최소화하면서, 닭들이 최대한 빨리 자라거나 최대한 많은 달걀을 낳도록 조절된다.
암탉의 사회 생활
영국의 유명한 생태학자로 「벌거벗은 원숭이」의 저자인 데스먼드 모리스는 닭장에서, 일명 “배터리(battery)”라고 불리는 닭을 기르는 오늘날의 양계 방식에 관해서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닭은 자연상태에서는 고도로 사회적인 동물이다. 농장 마당이나 야생지를 불문하고, 모든 종류의 자연상태에서, 그들은 흔히 “쪼기 서열”로 알려진 사회적 위계질서를 발전시킨다. 모이통을 비롯한 모든 곳에서, 모든 새가 자기보다 서열이 위인 새에게는 복종하고, 아래인 새는 거느리는 것이다. 이들 새에게 사회적 위계는 극히 중요하다. <새로운 과학자>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닭은 개개 닭들이 자기 외의 모든 닭을 구별할 수 있고, 그들 속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위치를 아는 한, 안정적인 쪼기 서열을 유지하는데, 많게는 90마리의 무리에서도 그 서열이 유지된다고 한다. 그러나 90마리가 넘으면 질서가 흐트러진다. 그러나 오늘날 전형적인 달걀공장의 무리 크기는 창고당 8만 마리라고 전한다.
꼭 어미 닭처럼?
그런 상황에 처한 닭들은 사회적 위계와 그 속에서의 자기 위치 감각을 발전시킨다는, 그들 세계에서 보면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하며 우선적인 사안 하나를 전혀 충족시킬 수가 없다. 결과는 매우 불행하다. 자기들 간의 집단 정체성을 전혀 확인할 수 없게 된, 닭장에 갇힌 닭들은 끊임없이 서로 싸운다. 비좁은 공간과 사회적 위계라는 기본 욕구에 대한 좌절이 그들의 심성을 사납게 바꾸는 것이다. 좌절감에 사로잡힌 그들은 서로의 깃을 사납게 쪼거나, 자주 서로를 죽이려 들거나, 심지어는 산 채로 서로의 몸을 뜯어먹으려고까지 한다. 업계는 이런 변화에 주목한다. 물론 이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관점에서다.
“조밀한 상태에 놓인 닭들 사이에서는 깃을 쪼아대고 종족을 뜯어먹는 행위가 중대한 악행으로 부각되기 쉽다. 그것은 곧 낮은 생산성과 이윤 감소를 뜻하기 때문이다.” <농업 익스프레스>
이윤을 위협하는 닭들의 모든 행동은 업계에서 “악행”으로 표현되는데. 그러면 공장 관리자들은 어떤 조치를 취할까? 오늘날 업계에서 선호하는 방법은 닭 부리의 일부를 잘라내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부리없애기”라는 절차이다. 닭들이 서로를 사납게 공격하는 상황 자체는 여전하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닭들은 이제 회사의 이윤에 큰 해를 끼칠 수는 없게 된다. 오늘날 닭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닭 부리의 일부를 잘라내는 것이 사람 손톱 밑의 부드럽고 예민한 생살처럼 매우 민감하고 섬세한 조직이 잘려나가는 것이어서, 닭들이 심한 고통을 겪게 된다는 사실에는 관심이 없다. 오늘날의 업계에서 거의 보편적으로 이 방법을 채택하는 이유는 물론, 닭들이 그들의 부자연스런 공격성과 종족 잡아먹기의 1차 원인인, 강압적이고 비인도적이며 과밀한 환경하에서도 어쨌든 살아 있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방법에는 순전히 돈의 관점에서만 보아도, 한 농업 출판물이 지적하고 있듯이, 몇 가지 결함이 있다.
“부리를 자른 닭에게서 가끔씩 새로운 부리가 울퉁불퉁하게 자라나, 정상적인 닭이라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상태에서도 물을 마시는 데 어려움을 느끼거나 전혀 마시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기껏 부리를 잘라준 어린 닭들이 배은망덕하게도 젖꼭지 모양의 물 공급장치에서 물을 받아먹지 못해 목말라 죽거나, 아니면 모이 공급장치를 눈 앞에 두고도 먹지를 못해 굶어죽는다. 그러나 오늘날의 양계업자들은 부리 잘린 닭들의 죽음과 빈약함에 좌절하지 않고, 광고를 통해 그런 손실을 벌충하고 이윤을 높일 다른 방법을 찾아왔다.
불을 밝힌다고?
여러분도 아마 동틀녘의 우렁찬 수탉 울음소리, 목청을 한껏 돋우어 새벽이 왔음을 알리는 그 환희의 울음소리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새 날을 환영하는 그 소리는 그들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정열적인 영혼을 지녔느냐만이 아니라, 닭이 얼마나 빛에 민감한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양계업자들은 닭의 이런 타고난 재능을 절대 놓치지 않고 최대한 활용한다. 우리가 “닭의 천국”으로 믿도록 요구받는 창문 없는 창고 안에서 이윤을 극대화하고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장 부자연스런 방법으로 인공 조명을 조작하는 방법이 시행되는 것이다. 브로일러는 흔히 첫 2주 동안은 24시간 내내 밝은 빛 아래 놓인다. 그런 다음 조명을 조금 낮추고, 2시간마다 켰다 껐다를 반복한다. 6주쯤 지나면 닭들은 거의 완전히 미쳐버리므로, 조명을 완전히 꺼서 닭들을 진정시켜야 한다. 그러나 이때쯤에 이르면 닭들은 자연적인 에너지와 욕구를 분출할 출구가 전혀 없는 상황에 폭발하기 시작한다. 결국 어떤 해결책도 시도할 수 없는 그 상황은 그들 간의 대판 싸움을 불러와, 부리 잘린 닭들이 어둠 속에서 서로를 고통스럽게 쪼아대게 만든다. 때로는 부리 병신임에도 서로를 죽이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농장주들이 이따금 자기가 돌보는 닭들에게 어느 정도의 연민을 갖는지를 드러낼 때가 이런 때다.
“닭들이 서로를 죽일 때는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그것은 그 빌어먹을 것한테 들어간 모든 사료가 낭비되었다는 뜻이다.” (허버트 리드, 양계업자)
어린 레이어 암탉―“풀릿(pullet)”으로 불린다―에게 비추는 조명 역시 자연상태와는 거리가 멀지만, 브로일러와는 조금 다른 형태다. 이 어린 것들은 모이 주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개 칠흑 같은 어둠이 계속되는 “양육용” 건물에서 자란다. 그러다 어린 암탉이 알 낳을 시기가 되면, 완전히 상황이 급변한다. 모이 때를 빼고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전생애를 살아온 암탉들에게 이제는 눈부신 빛이 쉼 없이 내리쬐는 것이다.
“한 농장에서는 하루 23시간씩 조명을 비추는 실험이 행해졌다.”
최후의 순간까지 높은 생산성을
레이어 암탉의 알 낳는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하면, 업자들은 그냥 가만히 앉아서 소출이 줄도록 구경만 하지 않는다. “강제 털갈이”란 방법으로 산란을 증진시킬 수 있음을 발견한 업계는 이미 놀라고 탈진한 암탉을 갑자기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던져버린다. 이제까지 하루 17시간 이상 비춰지던 인공 조명이 갑자기 꺼지고, 동시에 모이와 물도 사라진다. 어둠 속에서 물도 없이 이틀을 굶고 나면, 모이와 조명은 여전히 없이 물만 다시 주어지다가, 마침내 조명과 모이도 “정상” 상태로 돌아온다. 이 기발한 과정을 거치고 살아남은 암탉들은 충격을 받아, 자연상태에서는 철이 바뀌면서 일어나는 털갈이 현상과 유사한 생리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이 강제 털갈이 후, 시련을 이기고 살아남은 닭들은 두 달 동안 더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다가, 마침내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고 닭국 속에 먼저 들어간 동료들의 대열에 합류한다.
암탉은 죽기 전 30시간 동안 다시 모이를 받지 못한다. <가금 트리뷴> 이 잡지는 죽기 전 마지막 30시간 동안에 암탉에게 준 모이는 시간상 살로 가지 않는다는 것을 현란하게 계산해놓고 있다. 전문가의 자문에 따르면, 그것은 소화기관에 그대로 남기 때문에 모이의 낭비일 뿐이라는 것이다.
공포의 단추
그 괴팍한 상태의 생활환경으로 말미암아 거의 미쳐버린 힘센 닭들의 손아귀에서 도망칠 방도가 없다. 그 결과, 이 사랑스런 생물은 끊임없는 공포 상태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들은 조금만 신경이 거슬려도 야단법석을 떨고, 정신이 완전히 나간 것 같은 온갖 행동들을 보인다. 한 박물학자는 이렇게 지적했다.
“내가 관찰해온 배터리 닭들은 그들이 메뚜기를 쫓던 풀숲에서 떨어져나와 어미한테서 떼어놓아질 때부터 이미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그렇다. 배터리는 글자 그대로 닭 정신병원이다.”
닭들이 공포에 질려 이따금 서로의 몸 위에 겹겹이 올라타는 바람에, 그중 일부는 질식해 죽기도 한다. 양계업자들은 소위 말하는 감정적인 사람들이 절대 아니지만, 닭의 질식사란 곧 “모이의 낭비”를 뜻한다고 여기기에, 나름대로 단호한 조치를 취한다. 기발함이란 면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그들은 닭들을 거의 움직일 수 없는 철망으로 된 닭장 속에다 빽빽하게 처넣는 것으로 그 문제를 만회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렇게 하면 닭들이 놀랐을 때 서로의 몸에 쉽게 올라탈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닭의 천국”이라고 부르는 철망 닭장을 훨씬 더 큰 사기극으로 만드는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 그들의 발톱이 그칠 줄 모르고 자라는 일이 발생한다. 발톱을 닳게 해줄 굳은 땅이 없는 상황에서, 발톱은 자랄대로 자라 철망과 뒤엉켜버린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런 닭들은 닭장 뒷켠에 콕 처박혀서 모이나 물에는 접근도 못하다가 굶어죽고 만다.
그러나 다시 한번, 이 모든 상황을 만들어낸 머리가 그런 가슴 아픈 “모이의 낭비”를 막을 수 있는 기발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병아리의 나이가 하루나 이틀 정도 되었을 때, 병아리의 발톱을 뽑아버리는 것이다.
“…… 이런 닭들은 대개 닭장 안의 비스듬한 바닥 맨 아래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동료들이 모이나 물통을 찾아 내려올 때마다 짓밟힘을 당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붐비는 엘리베이터와 닭장
뉴욕 마운트모리스의 헤인스워스 농장에서는 가로 세로 30센티미터의 닭장 안에, 암탉을 심지어 5마리까지도 쑤셔넣는다는 사실을 박물학자 로이 베디첵이 알아냈다. 이런 상태의 닭들은 한쪽 날개조차 들어올릴 수 없다. 이 정도면 닭들이 제자리에서 돌아앉기도 힘들 정도로 빽빽이 쑤셔넣어진 것이다. 하지만 공장 경영자한테는 이것이 나쁜 일로 보이지 않는다. 닭의 몸통이 어쩔 수 없이 다른 닭들의 몸에 닿아 있어 동료들한테서 열을 흡수하므로, 난방비가 줄기 때문이다.
헤인스워스 농장은 극단적인 예다. 그러나 업계의 표준치도 별반 다르지 않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소비되는 달걀 중 놀랄 만큼 많은 양이 캘리포니아 무어파크의 약 42만2천 평의 “달걀 도시”에서 생산된다. 여기서 날마다 약 220만 개의 달걀을 낳는 300만 마리의 암탉들은 40㎝×45㎝의 닭장에 5마리씩 넣어져 있다.
업계에서 말하는 “닭의 천국”이란 게 바로 이런 것이다. 바로 이것이 미국인들이 먹는 고기와 달걀을 제공하는 닭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적나라한 상황이다.
“더 좋은” 닭 기르기
양계업자들은 “더 좋은” 닭, 그들의 사고 방식으로는 가장 무게가 많이 나가는 닭을 개발하기 위해 힘써왔다(무게에 따라 이윤이 달라진다는 걸 기억하라). 그리고 그 결과물로 나온 것이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몸무게를 그 뼈대가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는 닭이다. 오늘날의 “브로일러” 고깃살은 그 뼈와 관절이 보조를 맞출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빨리 자란다. 양계 잡지인 <브로일러 산업>은 오늘날 식육용으로 기르는 닭들은 몸무게를 지탱하고 서 있기가 힘들어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웅크린 채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고 전한다. 뼈가 부러지는 일 따위는 자주있는 일이다.
다리를 저는 건 살아 있는 동물한테나 문제가 될 뿐이지, 고기로 팔릴 때의 값에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절룩거리건 멀쩡하건 동물들은 고기로 팔릴 수 있다.
우리에게 이 엄청나게 무거운 닭들을 가져다준 양계업자들은 유전공학의 또다른 놀라운 업적들을 이루기 위해 열심이다. 캐나다 사육동물 연구소 연구소장 R. S. 고위는 1978년 오타와 회의에서 연설한 “가축의 집약적 생산방법”이라는 강연에서 내 눈을 번쩍 띄게 하는 발표를 했다. 고위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지금 동물연구소에서는 다리 없는 짐승들과 깃털 없는 닭을 개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에 있는 최소 6개 이상의 대학에서 지금 왜 그런 연구를 시도하고 있는가. 그것은 닭에게 깃털이 없으면, 닭들을 “꼭 어미 닭처럼” 돌보는 사람들이 깃털을 뽑아내는 번거로움을 겪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간질발작
닭들이 자신을 돌보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방식에는 깃털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다. <가금 다이제스트>에서는 점점 늘어나는 “간질발작 증후군”을 문제로 다룬 적이 있다.
“…… (이 증후군의) 증상은 닭들이 가끔씩 꽥 소리를 내지르며 공중으로 펄쩍 뛰어올랐다가 뒤집혀 죽어버리는 것이다.”
죽은 닭의 시체를 해부해보면 닭의 심장이 굳은 피로 가득하지만, 그것이 죽음의 결과인지 원인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닭 천국의 멋진 요리
우리가 그들을 먹기 전에, 오늘날 닭 천국의 운 좋은 입주자들은 어떤 식사를 할까?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닭 생산”이라는 제목의 글을 쓴 연구자들은 오늘날 닭이 먹는 식단에 대해 조사하면서 그 먹이의 질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 양계업자는 그것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사실, 오늘날 미국에서 기르는 모든 닭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는 날까지 항생제가 섞인 모이를 먹는다. 항생제 없이는 양계업이 집약축산법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항생제가 없다면, 우리가 거기서 이윤을 얻어내기도 전에 엄청난 수의 닭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죽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지난날의 후진 농법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 지난날에는 닭들이 술파제와 호르몬, 항생제, 니트로푸란을 꾸준히 공급받지 못했다. 이 가녀린 닭들이 살충제도 없이 살았다니! 오늘날의 닭들은 90% 이상이 비소화합물을 먹는데 말이다.
<가금 다이제스트>에 따르면, 오늘날에는 갈수록 많은 닭들이 “닭장 속 레이어 피로증”으로 고통을 겪는다. 이 닭들은 뼈와 근육에서 광물질이 빠져나가 결국엔 서 있을 수가 없게 된다. 오늘날의 가축 사육에 관한 고전적인 저술인 「동물 공장」에서 피터 싱어와 짐 메이슨은 이렇게 전하고 있다.
“닭 공장에 흔한 비타민 결핍은…… 성장 지체와, 눈의 손상, 시력 상실, 무기력증, 콩팥 손상, 성 기능 교란, 뼈와 근육 약화, 뇌 손상, 마비 증세, 내출혈, 빈혈, 부리와 관절의 기형화 등 온갖 증상을 초래한다. 또한 영양소 결핍과 여타의 공장 환경이 몸의 각 부분을 다양한 형태의 불구로 만들곤 한다. 닭들의 약해진 뼈, 이완된 힘줄, 비틀린 뒷다리, 부풀어오른 관절 등은 광물질 부족으로 인한 현상들이다…… 또 닭의 척추가 기형화되고 목이 뒤틀리며 관절에 염증이 생기게 만드는 질병도 있다.”
이 불쌍한 동물은 병으로 만신창이가 된다. 이 때문에 닭한테서 전염병이 옮을 위험성도 높아서 노동국에서는 닭 가공 산업을 모든 업종 중에서 가장 위험한 업종의 하나로 등재했다.
오늘날에는 철망 속에 갇힌 닭들의 깃털이 빠지는 것쯤은 예사로운 일이다. 그 이유가 닭들이 철망에 깃털을 끊임없이 비벼대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닭들에게 깃털을 쪼이거나 자연상태와는 전혀 다른 먹이와 햇빛 부족 때문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나 원인이 그 무엇이든, 결과는 깃털이 없어지고 나서도 닭은 철망에 맨살을 계속 부벼댄다는 것이다. 이런 닭들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 광경에 너무나 놀라서, 심지어 그게 닭인지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닭은 살갗이 온통 벗겨져 시뻘건 채였다. 닭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걸어다니는 살덩어리 같았던 것이다. 전국의 대다수 양계장에 있는 닭들의 90% 이상이 닭암(레우코시스)에 걸려 있다!
그러나 22만 5천 마리의 암탉을 기르는 조지아 양계사의 사장 프레드 C. 헤일리는 이렇게 말한다.
“달걀 생산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다. 이 목적을 잊는 건 전부를 잊는 것과 마찬가지다.”
헤일리 씨가 이야기하는 돈은 동물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농부들이 버는 돈이 아니다. 돈을 쥐는 쪽은 양계업 분야의 몇몇 독과점기업에 불과하다. 닭을 관리하는 농부는 실은 대규모로 “통합된 닭 가공업체”와 “합병된 가금 생산업체”를 위해 일하는 일개 피고용인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일상적으로 닭과 접촉하는 사람이다. 그는 그들을 보살피고 그들과 함께 사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그들에게 가해지는 일들에 연민의 감정을 가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그가 항의하면, 아하, 그 자리는 언제든지 그 일에 “더 적합한” 사람으로 교체될 수 있다. 그는 오늘날의 양계업계에 지배적인 생산전략을 고안해낸 사람이 아니며, 그러면서도 그 전략을 이행할 수밖에 없지만, 그럼으로써 이윤을 얻는 사람은 아니다. 농업 회계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짐 하이타워의 연구는 1974년 슈퍼마켓에서 닭 값이 파운드당 80∼90센트일 때 닭을 관리하는 농부한테는 파운드당 2센트밖에 돌아가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속속들이 조립 라인 닭
우리는 속속들이 조립 라인 닭을 가진 국민이다. 우리는 고문받는 생물의 몸통과 달걀을 먹는다는 걸 모른다. 우리는 닭들에게 호르몬과 항생제가 늘상 주입, 투약되어왔고, 또 고기와 노른자가 “건강해 보이는” 노란색을 띠도록 염료가 첨가되어왔다는 사실도 모른다. 또 우리는 동물들은 물론 우리 자신의 자연스런 미뢰(혀에 분포돼 있는 세포 모임으로, 맛을 느끼는 기능을 함─옮긴이)와도 너무 멀어진 나머지, 쉽게 속아 넘어가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는 것도 모른다. 코미디언 조지 번스는 자신이 케첩을 넣지 않고 풀어 익힌 달걀을 처음 먹어본 경험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그게 그런 맛일 줄 전혀 몰랐다. 돈을 주고는 절대 사지 않을 그런 맛이었다.”
돈이 걸린 문제인데, 업계가 이 맛없는 닭 문제를 그대로 내버려둘 리 만무하다. 업계의 전문잡지 <브로일러 산업>은 이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아이디어를 고안해냈다.
“우리는 ‘옛날’ 닭보다 맛이 떨어지는 닭을 팔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래서 주입법으로 이 문제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행해지고 있다.”
“닭에 ‘옛 맛’을 줄 수 있는 원료나 물질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이런 계책이 먹혀들지 않을 경우, 양계 전문가들이 패배를 인정할 거란 생각 따위는 잠시 접어두는 게 좋다. 오늘날 달걀 생산에 점점 더 많은 화학약품과 의약품을 쓰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는데도, 한 기업가는 그런 상황을 문제 삼는 움직임에 단호히 대처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판매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달걀 포장에 ‘달걀은 건강 식품입니다. 인간을 위한 자연 식품입니다. 첨가물도 방부제도 일절 없습니다’란 광고 문구를 반드시 끼워 넣을 것.”
자연의 새를 찾아서
혹시 칠면조를 먹는 건 좀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닭과 달걀에 적용되는 공장식 생산 방법은 칠면조와 거위, 오리 같은 다른 새들에게도 똑같이 쓰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새들 역시 그들의 자연스런 욕구와 욕망을 전적으로 무시하면서, 이윤을 위해서만 그들을 써먹으려는, 똑같은 집착에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칠면조 역시 닭과 마찬가지로 부리를 잘리고 철망 속에 가득 처넣어진 채로, 화학약품과 의약품, 항생제가 첨가된 똑같은 종류의 인공적인 먹이를 먹고 산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양계업자들은 자신들이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우리가 저렴한 비용으로 달걀과 닭을 살 수 있도록 자신들이 할 바를 다 하고 있으며, 자신들은 이를 위해 가능한 가장 적은 경비를 들여 닭고기를 얻는 “브로일러”와 알을 얻는 “레이어” 암탉을 기르는, 뚜렷한 목적 의식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 과정에서 설사 몇십억 마리의 순진무구한 동물들이 잔인하게 취급당하는 일이 일어난다 해도, 그건 자신들로서도 어쩔 수가 없다고.
“우리를 형제로 만드는 운명이 있으니, 아무도 홀로 자신의 길을 가지는 못한다네. 우리가 다른 이들의 삶에 보내는 모든 것이 우리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네.” (작자 미상)
오늘날의 동물 공장에 책임 있는 사람들의 운명이 어떤 것일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의 미래가 어떻든지 간에, 그들이 지금 이 순간 비정한 세계에 살고 있다는 현실은 슬프게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들은 가축들을 기계처럼 다루면서, 자연과 생명에게서 멀리 떨어진, 소외된 관계 한가운데 서 있다. 그들이 서 있는 지금 이 자리가 일종의 지옥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런 식품생산 체계에서 나온 소출들을 사 먹는 것은 그들과 결탁하여 그 지옥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게 아닐까? 이런 게 우리가 꾸려가려던 삶의 방식이었을까?
원불사한국불교개혁源佛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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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미국 양계업자들의 너무도 끔찍한 행태에 소름이 끼칩니다. 정상인이라도 돈만을 생각할 때는 이렇게 되는가 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똑같은데요,,,넓은 곳에 키워서 비싸게 받으면 소비자는 등돌립니다,,,,사육자만 탓할일이 아니죠
우리나라도 똑같은데요,,,넓은 곳에 키워서 비싸게 받으면 소비자는 등돌립니다,,,,사육자만 탓할일이 아니죠
우리나라도 똑같은데요,,,넓은 곳에 키워서 비싸게 받으면 소비자는 등돌립니다,,,,사육자만 탓할일이 아니죠
자연양계해야죠. 닭이 닭처럼 살수 있는 환경이 좋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