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18일 주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 경축 이동
우리나라는 18세기 말 이벽을 중심으로 한 몇몇 실학자들의 학문적 연구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이들 가운데 이승훈이 1784년 북경에서 ‘베드로’로 세례를 받고 돌아와 신앙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마침내 한국 천주교회가 탄생한 것이다. 선교사의 선교로 시작된 다른 나라들의 교회에 비하면 매우 특이한 일이다. 그러나 당시 한국 사회는 전통을 중시하던 유교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어, 그리스도교와 크게 충돌하였다. 결국 조상 제사에 대한 교회의 반대 등으로 천주교는 박해의 시대를 맞이하였다. 신해박해(1791년)를 시작으로 병인박해(1866년)에 이르기까지 일만여 명이 순교하였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의 해인 1984년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이들 순교자들 가운데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와 평신도인 정하상 바오로를 비롯한 103위를 시성하였다. 이에 따라 9월 26일의 ‘한국 순교 복자 대축일’을 9월 20일로 옮겨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 현재 한국 교회는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를 중심으로 아직 시성되지 못한 순교자들의 시복 시성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입니다. 자랑스러운 신앙 선조들을 기리며, 순교자들의 피로 우리를 복음의 빛 안으로 불러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시다. 그리고 신앙 선조들의 순교 신앙을 본받아, 저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기로 다짐합시다.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23-26
그때에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순교자들의 그 장한 뜻을 새기며
순교자(殉敎者)란 라틴어의 'martyr'(마르띠르)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는데 이는 <믿음과 가르침을 받들기 위해, 종교 때문에 죽은 사람>을 말하고 martyr는 ‘증인’ 또는 ‘증거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순교자’란 말은 ‘자기가 믿고 있는 신앙의 진리를 증거 하기 위하여 자기 생명을 기꺼이 바친 사람’이라는 뜻으로 새길 수 있습니다.
순교자의 순(殉)자는 ‘따라죽을 순’이라고 훈을 달고, <죽은 이를 따라 죽다. 목숨을 바치다. 구하다. 경영하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순(殉)자는 다시 알(歹, 歺 죽을사변)자와 순(旬)자의 합성어입니다. 알(歹)자는 <머리뼈 부서진 알>로 죽음과 관계되는 글자의 부수로 쓰이는 글자이고 순(旬)자는 ‘열흘 순’이라고 훈을 달지만 <열흘 동안 혹은 십년 동안>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순(殉)자는 무덤에 최소한 열흘은 같이 묻히거나 십년동안은 같이 따라 죽어야 하는 글자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따라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죽어야 순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순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구비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실제로 죽음을 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치명’(致命)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목숨을 버린다.’라는 의미의 글자입니다. 하느님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바로 순교의 첫 번째 요건입니다. 둘째는, 그 죽음의 원인이 신앙에 의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진리를 반대하는 사람에 의해서 죽음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순교하는 사람이 그 죽음을 신앙과 진리를 옹호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그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교자의 죽음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실제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며, 순교자가 생명을 빼앗는 폭력에 반항하지 않고, 그리스도처럼 자기 자신을 천주 성부께 봉헌한다는 지향을 두고 믿음에 확신을 가지고 죽음에 임했기 때문에 거룩하고 성스러운 것입니다.
나는 어려서 김대건 신부님을 동경했습니다. 그렇게 되고 싶었고, 김대건 신부님처럼 살아서 하느님을 드러내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지금 반성해보면, 나는 순교자의 삶을 살지 못했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몇 가지 반성하는 것에서 나는 정말 순교자의 삶을 살지 못했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1. 순교자들의 영성을 공부하지도 못하고 그들처럼 확고한 믿음을 갖지 못하고 순교의 기회를 피하기만 하고 살았습니다.
2. 하느님께 흠숭을 드리며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중에 나 스스로 참 순교의 뜻을 찾고, 순교정신을 찾아내어 실생활에서 실천해야 하는데도 나는 언제나 등한히 하였습니다.
3. 희생과 인내로 내 모든 욕망을 절제하고 고심극기 하면서 순교자들의 삶을 닮으려는 노력을 하지도 못했습니다.
4. 순교자들의 삶을 거울삼아 자신을 비추어 보면서 참회와 보속을 하지 못하고 반성하는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5. 후손들이나 후학들에게 모범이 되지 못하고 잘못된 삶을 보여주었습니다.
6. 순교자들의 삶을 드러내는 일에 충실하지 못하고, 시복 시성 운동과 성지 개발에 아주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순교는 구원의 은총을 받는 행위이며 사랑의 강렬한 표현일 것입니다. 또한 신앙의 정점에 있는 것으로 은총이 아니면 순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아무리 내가 순교하고 싶어도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은총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은총으로 내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 이제는 현대의 순교에 마음을 쏟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그리고 순교할 수 있도록 주님의 은총을 기도합니다.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순교자들의 삶을 조명해 보면서 이시대의 순교자의 삶을 살기위해서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당신의 십자가를 지고 열심히 이 세상에 봉사해야 함을 다시 각오하고 결심합니다. 이 시대의 순교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스스로 연구하고 노력하여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새겨야 함을 느낍니다.
<죽음도, 삶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8,31ㄴ-39
형제 여러분,
31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2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33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34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35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36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39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축일9월 18일 성녀 리카르다 (Richardis)
신분 : 황후
활동 연도 : +895년경
같은 이름 : 리까르다, 리카르디스
성녀 리카르다는 840년경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Alsace) 지방 노르트가우(Nordgau)의 백작인 에르찬가르(Erchanger)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22세 때인 862년에 독일왕 루트비히(Ludwig der Deutsche)의 아들인 카를 3세(Karl III)와 결혼했다. 그들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다. 결혼한 지 19년이 지난 881년 성녀 리카르다는 남편과 함께 로마로 가서 교황 요한 8세(Joannes VIII)로부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황후로 대관식을 올렸다. 카를 황제의 통치 기간에 노르만인들이 프랑스 북부 해안을 지속해서 침략해 약탈하고 강을 따라 도시까지 내려왔지만, 황제는 효과적으로 이런 위협에 대처하지 못했다. 887년 무능한 황제는 광기에 휩싸였고 위기를 극복하려 남편 대신 노력하는 아내를 시기한 나머지 자신의 욕심을 위해 성녀 리카르다를 대신과의 간통 혐의로 위험에 빠뜨렸다.
성녀 리카르다는 남편 앞에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타오르는 불길 위를 지나가는 시험을 받게 되었다. 그녀는 맨발로 맹렬한 불길 위를 걸어갔으나 조금도 해를 입지 않아 누명을 벗었다. 하지만 남편의 불신에 낙담한 그녀는 남편과 별거하기로 하고 친정의 보호를 받으며 황궁을 나와 알자스의 앙들로(Andlau) 수녀원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그녀는 수녀들의 생활을 그대로 실천하며 보속의 삶을 살다가 평화롭게 선종해 그곳에 묻혔다. 카를 황제는 887년 11월 조카 아르눌프(Arnulf)의 반란으로 퇴위당하고 다음 해 1월 사망했다. 성녀 리카르다는 후에 가톨릭교회에서 성인이 되었고, 1049년 교황 레오 9세(Leo IX)는 그녀의 유해를 새로 건립한 수도원 성당으로 옮겨 모셨다.
교회 미술에서 성녀 리카르다는 그녀의 생애에 근거해서 황후 복장 또는 수녀복을 입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성녀 곁에 곰과 쟁기와 함께 그려지곤 한다. 곰은 그녀와 관련된 전설에 따른 것으로, 성녀 리카르다가 황궁을 나와 숲속을 방황할 때 천사가 나타나 수녀원을 세우라고 하며 곰이 그 장소를 알려줄 것이라 했는데, 강변에는 땅을 파고 있는 곰을 보고 그곳에 앙들로 수녀원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앙들로 수녀원은 이미 그 이전부터 있었다. 또 다른 전설은 그녀가 숲속에서 이미 죽은 새끼 곰을 안고 있는 곰을 발견하고 그 곰을 만지자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그 기적 이후로 어미 곰과 새끼 곰은 줄곧 그녀 곁에 머물렀다고 한다. 성녀 리카르다는 앙들로와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의 수호성인이며 화재 예방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오늘 축일을 맞은 리카르다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