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소박한 대통령' 별세,
호세 무히카의 삶과 철학
'가장 소박한 대통령' 별세,
호세 무히카의 삶과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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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불렸던 호세 무히카.
향년 89세로, 전(前) 우루과이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별세했다.
그는 2010년 우루과이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제40대 대통령으로 2015년까지 재임했다.
임기 동안 그는 국가의 사회 구조를 뒤흔들 만큼
혁신적인 개혁들을 추진했지만,
권력자의 전형적인 삶을 거부했다.
대부분의 급여를 기부하고 대통령궁 대신
시골 농장에서 생활하며 검소한 삶을 택했다.
그러나 그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혁명 정신으로 가득 찬 그의 과거였다.
한때 무장 게릴라로 지명 수배를 받았고,
군사 독재 정권 하에서는 수감 생활까지
겪었던 인물이 바로 무히카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한 정치범이
국민에게 사랑받는 대통령이 되었을까?
이 갤러리를 통해 호세 무히카의
삶과 시대를 따라가 보자.
우루과이 대통령으로 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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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무히카는 2010년 3월 1일
우루과이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라틴아메리카 좌파의 상징으로 불리는
그의 놀라운 삶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의 정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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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히카는 이미 1995년부터
2000년까지 하원의원으로,
2000년부터 상원의원으로 활동했으며,
2004년 상원의원에 재선되면서
2005년 2월 상원 의장직을 맡았다.
그의 정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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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바레 바스케스 대통령 재임 기간 중
무히카는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축산, 농업, 수산부 장관직을 맡기도 했다.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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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25일, 우루과이에서 대통령 선거가 열렸다.
높은 인기를 등에 업은 무히카는 1990년부터 1995년까지
제36대 대통령을 지낸 루이스 알베르토 라카예와 맞붙었다.
무히카, 대통령 선출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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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투표에서는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했지만,
11월 29일 결선 투표에서 55%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몬테비데오에서 승리가 확정된 무히카의 성공은
그의 과거를 고려할 때 더욱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과거 게릴라 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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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중반, 그는 막 설립된
민족해방운동 투파마로스(MLN-T)에 합류했다.
MLN-T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따르는
도시 게릴라 조직으로, 우루과이의 억압적
정권을 약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한때는 국가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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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곧 폭력적인 방법에 의존하게 되었고,
방화, 정치적 납치, 경찰 및 기타 인물에 대한
암살 등으로 비난받았다. 무히카 역시
여러 공격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총에 맞고 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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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3월, 몬테비데오의 한 술집에서
체포에 저항하다가 경찰 두 명을 부상시키고
총을 여섯 발 맞아 생사를 오가는 위기를 겪었다.
이후 그는 감옥에 수감되었으나
두 차례 탈옥에 성공했다.
결국 그는 14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는
고난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석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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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3월 우루과이의 입헌 민주주의가 회복된 후
무히카와 다른 MLN-T 출신 정치범들이 당국에 의해
석방되었을 때, 텔레비전 뉴스 제작진이
그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사진 맨 왼쪽이 당시 무히카의 모습이다.
사면에 따른 석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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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히카는 1962년 이후 저지른 정치 및 관련
군사 범죄를 다루는 사면법에 따라 석방되었다
광역 전선 연합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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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방 후, 무히카와 투파마로스 동료들은다른 좌익
단체들과 연합해 대중 참여 운동(MPP)을 창립했으며,
이는 광역전선(Frente Amplio) 연합 내에서
인정받는정당이 되었다. 무히카는 광역전선의
일원으로 정치 경력을 쌓았다.
우루과이의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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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페”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무히카는 대통령 재임 중
우루과이 경제를 지속적으로 성장시켰다.
국내총생산(GDP)과 1인당 GDP가 꾸준히 증가했으며,
실업률도 낮게 유지되었다. 무엇보다도, 우루과이는
이웃 국가들이 꿈꿀 만한 사회적 안정을 이룩했다.
소박한 라이프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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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으로서 무히카는 매우 검소한 삶을 살았다.
그는 월 한화 약 1,600만 원의 월급 중 90%를
자선단체에 기부하며, 몬테비데오 외곽에 있는
아내 루시아 토폴란스키 소유의
허름한 농가에서 거주했다.
아내, 루시아 토폴란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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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페'는 2005년에 투파마로스 멤버였던
루시아 토폴란스키와 결혼했다.
우루과이의 영부인인 그녀 역시
대통령궁에 살거나 대통령궁 직원을
부리는 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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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고위 공직자로서 보여준
검소한 삶은 눈길을 끌었다.
특히 무히카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불리기도 했다.
심플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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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국가원수로 재직하며 대통령 전용 리무진 대신
직접 소유한 1987년식 폭스바겐 비틀을 운전했다.
이 차는 현재도 무히카가 소유하고 있으며,
2023년 브라질 대통령 룰라 다 시우바가
그의 농장을 방문했을 때 함께
드라이브를 즐기며 눈길을 끌었다
자본주의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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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정치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자랑스러워하는 무히카는
자본주의가 물질적 소유와 축적에 집착한다고 비판하며,
그것이 인간의 행복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주장해 왔다.
그의 철학적 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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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철학적 이념은 재임 중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진보적 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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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히카 대통령의 임기 초반, 그의 행정부는
우루과이 사회를 급진적으로 변화시키는
진보적이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는 법안을 도입했다.
정부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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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하원은 대마초의 생산, 판매, 소비를
정부가 규제하는 틀을 제시한 법안을 발의했다.
이는 대통령 무히카가 마약 밀매업자들의 수익을
차단하기 위해 정부가 대마초를 합법화하고
배급하자는 제안을 한 이후였다.
같은 달, 이 법안은 법률로 채택되었다.
새로운 법안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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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앞선 2012년 10월, 우루과이는
임신 12주 이내의 낙태를 허용한
최초의 남미 국가가 되었다. 또한,
2013년 5월에는 무히카 대통령이
우루과이를 아르헨티나(2010년)에 이어
라틴아메리카에서 두 번째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국가로 만들었다.
세계 무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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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으로서 무히카는 세계 무대에서
목소리를 낼 기회를 얻었다. 2013년 9월,
그는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며
국제 사회에 미래 세대를 위해 지구를
보존할 노력을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
백악관 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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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에는 백악관 집무실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회담을 가지며
양국 간 경제 협력 확대와 과학, 기술,
보건 분야 협력 강화를 논의했다.
셀럽들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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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히카 대통령의 소박한 태도와 자선적인
삶의 철학은 국제적 명사들의 관심을 끌었다.
2012년에는 할리우드 배우 숀 펜과 만났고,
2013년에는 에어로스미스 멤버 스티븐 타일러,
조 페리, 브래드 휘트포드가 몬테비데오에서 열린
콘서트에 앞서 사인이 담긴 기타를(사진) 선물 받았다.
명예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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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 중 무히카는 여러 상과 훈장을 받았다.
2014년 1월 28일, 멕시코 대통령 엔리케 페냐 니에토로부터
외국인에게 수여되는 최고 훈장인 아스텍 독수리 훈장을 받았다.
퇴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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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여전히
라틴아메리카 지도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2024년 12월에도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이
그의 집을 다시 찾아와, 오랜 친구인 무히카에게
브라질 최고 훈장 중 하나인 ‘남십자 국가훈장’을 수여했다.
그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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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 법률에 따라 무히카는 2014년 재선에 도전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아내 루시아는 타바레 바스케스의 두 번째 임기 동안
2017년 9월부터 2020년 3월까지 제17대 우루과이 부통령을 역임했다.
식도암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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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무히카는
식도암 진단을 받았다고 발표했으며,
암이 이미 전이되었고 말기 상태임을 밝혔다.
향년 8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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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히카는 2025년 5월 13일에 사망했다.
그의 사망 소식은 우루과이 대통령
야만두르 오르시가 발표했다.
오르시 대통령은 “대통령, 활동가,
지도자이자 길잡이였던 분.
우리는 당신이 정말 그리울 것이다,
사랑하는 노인.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과
국민에 대한 깊은 사랑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출처
(Reuters)
(Britannica) (BBC)
(Vice) (United N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