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한번 다녀온 후에 용암사지가 자꾸 나를 부릅니다. 작정하고 다시 찾습니다. 경남 진주시 이반성면 용암리. 이반성 면소재지의 우체국 앞에 난 길을 따라 조금 들어가면 용암리 마을이 나옵니다. 내가 본 바로는, 임진란 관련 사당 중에는 이충무공의 현충사 다음으로 가장 큰 사당 충의사가 나옵니다. 가까운 의령의 홍의장군 곽재우 공의 충익사 보다도 더 큽니다.
충의사 원경. 오른 편으로 용암사지 안내판이 보입니다
일단 규모에 이끌려 용암사지 보다 먼저 충의사로 가봅니다 나중에 현장 사진이 나오겠지만, 용암사지 재실과 경판고 등을 여기도 새로 잘 만들어 놓았습니다. 굳이 남의 절터를 점유하며, 재실이 버티고 있을 당위성도 옅어 보입니다.
충의사 바로 옆의 큰 회화나무 고목. 뒤에 원불교 교당이 보입니다. 이 마을 전체는 해주 정씨의 세거지이고, 대부분 원불교 신자들이라고 합니다.
충의사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중앙의 사당구역입니다 규모나 면적이 장난이 아닙니다
담장으로 구분된 왼쪽은 '가호서원' 구역입니다
오른쪽 구역. 담장 너머는 관리기능의 건물들인 듯 앞쪽 기념비 옆의 건물은 바로 농포 정문부 공의 경판을 절터에서 옮겨 보관한 시설입니다
농포 정문부 공의 사적비
노산 이은상 선생께서 지은 글
가호서원 구역의 부속 건물들
관리구역의 건물들 . . . 이제 용암사지를 찾아갑니다
경남수목원 가는 길목부터 여기까지는 비교적 안내판이 잘 안내합니다.
차 한 대 지나는 마을 시멘트 길을 따라가면 마을 끝에서부터 산길이 나옵니다
산길은 점점 가팔라지고, 길을 잘못 들었나 슬슬 걱정이 되는 지점입니다
막다른 길에 절은 커녕 왠 농가가 나타납니다. 대문은 솟을삼문으로 의외의 모습입니다
앞은 축사(소 우리)와 사료더미 지난 번에 진주시청에 시정을 요구했더니 다소 정리한 모습입니다
소의 오물이 쌓여 있던 곳은 한쪽으로 치우고 비닐로 덮었습니다
축사 뒤의 모습이 해주 정씨 재실인 장덕재와 부속 건물 원래 복주머니 형세의 이 터가 용암사 절이 있던 자리이나, 지금은 재실이 주인이 되었고 절터는 이 건물 뒤에 더부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자기 집을 뺏기고 뒷방 신세가 돼버린 용암사
대문의 현판은 '비연문' 공자님의 글에 나오던가? 뒤에 재실이 보이고, 대문 좌측은 관리인이 거주하는 농가입니다
옛 주인이나 현 주인께도 예의는 아닌듯 해주 정씨 문중에서도 지적 때문인지 축사 등은 철거를 권유하고는 있다는 답변이 있습니다만... 외진 곳이라 이 농가의 할머니에게 유적 보호 관리인 명목으로 년 약 30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고 합니다
관리사를 지나면 재실로 오르는 계단이 계단석은 사찰건축 부재들이 분명해 보입니다
장덕재. 1945년도 이전 건축물로 등재되었음을 이반성면사무소에서 확인하였습니다. 전면의 알미늄 샤시는 최근에 덧단 것이겠지요 자세히 살펴보면 군데군데 사찰 석재가 활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장덕재 현판
재실 왼편 모습
오른쪽 모습. 뒤편에 절터와 유물이 보일듯 말듯
홍자국통의 비석. 귀부와 이수는 있으나 비신은 없습니다. 弘慈國統은 고려 천태종의 스님으로 어떤 분인지 확실치는 않답니다
뒤로 보이는 그나마 남은 사찰흔적. 눈에 보이는 부분이 전부 다입니다. 사랑방 안방 다 뺏기고 뒷마당에 겨우...
절터를 살피기 전에 재실을 다시 살펴 봅니다
재실에서 대문 방향을 본 모습
재실의 뒷모습 탑재가 주춧돌로, 주칠의 기둥도 사찰기둥으로 보입니다
이 속에 있던 경판은 아래 마을의 충의사로 모두 옮겨 놓았답니다
여기도 석재가 군데군데 대형기와가 쌓여 있고 깔려 있습니다 현재 생산되는 수키와의 배 크기는 돼보이는 옛기와 당시의 전각 규모를 유추해 봅니다
절터에 있는 너럭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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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분타리카 원문보기 글쓴이: 교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