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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비가 2015 롯데 챔피언십 1라운드 9번홀에서 뱅커샷을 하고 있다. /롯데그룹
골프는 마음의 운동박인비는 자기 스윙이라고 할 만한 게 하나도 남지 않을 정도로 무너져 있었다. 오른쪽으로 밀리는 샷이 근본적인 문제였는데 그걸 손동작으로 억지로 막으려다 왼쪽으로 급격히 당겨지는 샷도 자주 나왔다. 골프에서 가장 고치기 어렵다는, 일정한 방향 없이 공이 날아가게 치는 스윙이다.
남씨는 클럽이 공을 맞히고 지나가는 ‘임팩트’에 대한 설명을 했고, 박인비도 그 길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알고 보면 처음 골프를 배울 때부터 강조되는 기본적인 스윙 궤도에 대한 내용이었다. 남씨는 “아마 인비가 바닥까지 떨어지지 않았다면 시큰둥하게 받아들였을지 모른다”고 했다. 남씨와 함께 투어 생활을 하며 노력한 지 2년 만에 박인비의 공은 다시 똑바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일정한 수준에 오른 선수가 처음부터 다시 기본기를 다지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두 사람의 믿음과 사랑이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남씨와 박인비가 연습하는 장면을 지켜보면 흥미롭다. 박인비가 좋은 샷을 할 때마다 남씨는 “좋았어, 바로 그거야”라고 칭찬한다. 그 칭찬을 듣고 싶어 박인비는 좋은 샷을 재현한다. 연습 시간은 짧은 편이지만 이 학습법은 엄청난 효과를 발휘했다. 결국 실제 대회에서도 연습 때처럼 칠 수 있게 되면서 박인비는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정리된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하는 요즘의 그는 예전의 안절부절못하던 모습과 대조된다.
박인비는 2008년부터 박태환·양학선·손연재 등의 멘탈 트레이너로 도움을 준 스포츠 심리전문가인 조수경 박사에게 정기적으로 멘탈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 심리적으로 쫓길 땐 주변의 빨간색이나 파란색 등을 바라보며 초조함을 잊는 법부터 배웠다. 대회 때마다 하나의 ‘화두(話頭)’를 받는데, “어깨 턴을 충분히 하자”와 같은 단순한 동작에 집중하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을 잊고 이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그는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완벽한 스윙과 우승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골프를 못 쳐도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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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비가 2014년 KB금융 스타챔피언십 공식 포토콜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념 촬영하고 있다. /KB금융그룹
자신감을 되찾기 위해 2010년부터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에서도 뛴 박인비는 US여자 오픈 우승 이후 4년 만인 2012년 에비앙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그래도 한동안 스폰서가 없었다.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박인비는 “골프가 안 돼서 걱정한 적은 있어도 스폰서가 없어서 걱정해본 적은 없다”고 했다. 박인비는 한 방송에 출연해 “외모 때문에 불이익을 받은 적은 없다. 물론 내가 더 예쁘고, 날씬하면 좋겠지만 내 외모에 80% 정도는 만족한다. 외모가 사람의 다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인비는 슬럼프에 다시 빠질까 봐 두렵지 않을까. 그는 “이겨낸 경험이 앞으로 올 것에 대한 두려움까지 없애줬다”며 ”앞으로 그런 시기가 다시 온다고 해도, 한번 해봤으니까 이젠 쉽게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박인비도 늘 우승하지는 못한다. 얼마 전 대회에선 1년여 만에 컷을 통과하지 못해 2라운드 만에 짐을 싼 적도 있다. 하지만 박인비가 코스에 서면 믿음이 생긴다. 그는 언제 끝날지, 바닥이 어디인지 모르던 4년간의 슬럼프를 사랑과 믿음으로 기본기부터 다시 다지며 이겨낸 사람이다. 그리고 우승하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갖추었다. 결과에 대한 두려움 없이 지금 이 순간에 자신을 온전히 집중할 수 있어서 그는 세계 최고의 골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