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환회장님의 카톡에서]
천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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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의 천재들 ᆢ - '
목포의 3대 천재'라는 말이 있다.
그 세사람이 누구누구인지는 두 부류로 나뉜다.
한 부류는 김대중 천정배 조훈현!
다른 부류는 천정배 조훈현 김지하!
김대중이 김지하로 바뀌는 차이다.
나도 후자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김대중이 그 중 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생각을 해봤다.
천재란 선천적으로 보통 사람보다 아주 뛰어난 정신 능력이나 재주를 가진 사람을 말한다.
그렇다면 김대중은 당연히 목포의 3대 천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독보적인 천재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분이다.
그래서 워낙 출중한 김대중은 빼고, 천정배 조훈현 김지하의 이야기를 하면서 굥과 똥 스트레스를 풀어보자.
천정배는
54년 신안군 암태면 출신이다.
부친이 목포시 공무원이라 초등학교 까지 암태의 조부모 슬하에서 자랐다.
그 후 목포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목포에서 부모와 산다.
목중 재학때 전남 학술 경시 대회에서 1등, 일찍부터 공부에 소질을 보인다.
목포고등학교(21회)에 수석 입학, 수석 졸업, 예비고사에서 인문계 전국 수석, 서울법대를 수석으로 입학한다.
이때부터 목포 3대 천재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서울 법대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 3등 수료, 공군 군법무관으로 대위로 전역한다.
판검사를 받을 수 있는 성적이었지만, 군 복무 중 5.18 민주화운동 소식을 듣고 전두환 정권에서 법관 임용을 거부하고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는다.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공신 중 한 사람이고, 세 사람 중 가장 젊고, 뚜렷한 변절은 없기 때문에 아직 진정한 평가는 못하겠다.
조훈현은
전매청 사보에도 실렸던 지독한 골초, 당시 가장 길던 담배 장미 애호가, 전매청이 생산 중단을 한다고 하자 조훈현과 바둑 동호인들의 엄청난 항의가 있었다.
바둑을 두면서 가장 오래 피울 수 있는 담배가 장미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보통 한 명의 애호가를 위한 담배가 재생산되기 쉽지 않은데, 전매청은 다시 생산을 한다.
프로 바둑기사는 모두 골초라는 말은 그처럼 조훈현이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천정배보다 1년 빠른 53년 영암에서 출생, 목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목포 3대 천재로 불린다.
조훈현의 말은 깃털처럼 가볍다.
담배 애찬을 하던 사람이 훗날 하루 서너갑씩 피우던 담배를 끊고 금연 홍보대사를 한다.
취미가 등산인데, 예전에는 어차피 내려올 산을 왜 올라가냐고 하던 사람이 제자인 이창호에게 내리 밀리자 체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금연과 광적인 등산광으로 변신하며 등산 애찬론자가 된다.
몸에 해롭다는 담배 끊었지, 건강에 좋다는 등산도 하지 당연히 성적도 좋아져 LG배, 후지쯔배, 삼성화재배, 춘란배 등 국제 바둑 기전을 휩쓴다.
바둑과 담배 등산은 여기까지!
징역 1년 6월, 추징금 5천만 원을 선고 받고 현재 평택교도소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원유철 때문에 조훈현은 느닷없는 금뱃지를 단다.
친박시다바리 원유철과 그토록 친분이 많았는지, 20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똥통에 빠진 것이다.
21대는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가지 않아야 할 길을 가버린 조훈현!
이제 그를 목포 3대 천재로 부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 유명한 시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의 김지하가 어제 타계했다.
뜬금없이 박근혜를 지지한다고 하여 하루아침에 dog가 된 사람이다.
서울대 미학과 다닐때, 선배가 사준 낮술을 실컷 먹고 잔뜩 취해 종로 음악다방을 가는데, 술이 오를 대로 올라 갈지자로 걷다보니 길가에 주욱 늘어선 입간판이 보였고, 저것이 내 필명이라며 정한 것이 '지하'이고, 본명은 김영일이다
다방, 이발소, 이용실, 뭐 그런 것들의 입간판인데 위쪽에 다 똑같은 검은 가로로 모두 '지하'라고 써 있었다.
여기도 '지하' 저기도 '지하' 저기만큼 가서도 또 '지하', '지하', '지하!' 곳곳에 '지하'가 있었다고 한다.
'지하에서 활동한다'는 뜻의 필명 지하(地下)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한자를 다시 바꿨는데, 우리 강산을 담아낸다고 지초 지자에 하천 하를 써서 지하(芝河)로 바꾼다.
41년 생으로 목포 출신이다.
소설가 '토지'의 박경리 딸과 결혼하여 사위가 된다.
지하에서 활동한다는 필명처럼 김지하는 과거 군사 독재정권에 맹렬하게 저항했던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4ㆍ19의거 참여, 한일 국교 정상화에 반대한 ‘서울대 6·3 한일 굴욕회담 반대 학생총연합회’에서 활동하다 체포돼 수감,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수배를 피해 항만 인부나 광부로
일하며 도피 생활을 했다.
70년 월간지 사상계에 풍자시 ‘오적’을 발표해 구속되는데, 오적은 300줄 정도 풍자시로 독재시대 부정한 부를 축적한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 등을 을사오적에 빗대 판소리 가락을 도입 난해한 한문을 차용해 풍자했다.
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체포된후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무기징역 감형, 80년 형 집행정지로 석방됐다.
민주화 이후 법원은 오적 필화, 민청학련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며
15억 원의 국가배상을 판결했다.
...
그렇지만 위의 쓰레기들은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면 되지만, 김지하의 상징성은 너무 컸고, 그래서 그의 변절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많았다.
자신의 변절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민주화 이후에는 생명과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생명사상가로서의 행보를 보였지만, 이미 김지하는 버려진 사람이자 잊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고인의 명복을 빌고, 고인이 타계한 만큼 조훈현과 함께 목포 3대 천재라는 말은 삭제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천정배만 남게 되고 두 사람이 다시 필요하다.
김대중을 넣어도 한 사람이 부족하다.
연구좀 해봐야겠다.
어제 부처님 오신 날 굥가 모습!
저녁내내 술만 빨아대니 무슨 행사장에 가기만 하면 잠 퍼자는 것,
정말 창피해서 못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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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위로 바람이 부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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