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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골프 세계 랭킹 1위 박인비(27). /롯데·KB금융그룹
3개 메이저 대회 연속 우승2013년 3개 메이저 대회 연속 우승(나비스코 챔피언십·LPGA 챔피언십·US여자오픈)은 1950년 베이브 자하리아스(미국) 이후 63년 만에 나온 대기록이고, 올해 시즌 두 번째 메이저 대회인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지난해까지는 LPGA챔피언십) 3연패(連覇) 기록은 LPGA 투어 사상 세 번째로 나온 기록이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40·미국)도,‘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45·은퇴·스웨덴)도 메이저 대회를 박인비처럼 종(縱)과 횡(橫)으로 각각 3연승하는 진기록을 세우지는 못했다.
골프 담당 기자를 하면서 박세리의 1998년 US여자오픈 우승을 보며 꿈을 키운 세리 키즈들인 박인비·최나연·신지애·김인경, 또 리틀 세리 키즈라 불리는 김세영·김효주·장하나의 성장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이들을 만나면서 골프는 결국 마음의 운동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스윙이 아무리 뛰어나도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는 골퍼는 성장하지 못했다. 큰 생각, 단단한 생각이 있는 골퍼들이 결국 고비를 넘기고 우승컵과 키스했다.
박인비가 3개 메이저 대회 연속 우승을 하던 당시 타이거 우즈의 스윙 코치였던 션 폴리는 “박인비의 미소는 달라이 라마(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를 떠올리게 한다”며 “그녀는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 같다”는 찬사를 보냈다. 그녀의 미소에서 깨달음을 얻은 고승(高僧)의 이미지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폴리는 박인비의 미소를 “아름다운 자신감”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세계적 스포츠 심리학자인 밥 로텔라 박사는 “그녀는 결정적인 순간에도 별일 아닌 것처럼 해내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며 “박인비의 미소와 템포는 그녀가 지닌 균형감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미국 언론은 필드에서 무표정하게 한 홀 한 홀을 점령해가는 박인비에게 ‘침묵의 암살자’라는 별명을 붙였다.
이런 칭찬을 들을 때마다 2008년 싱가포르 국제 대회에서 만난 박인비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골퍼들이 호환마마보다도 무섭다고 하는 드라이버 입스(yips·샷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불안 증세)에 빠져 있었다. 박인비의 목소리는 가까이 다가가야 들을 수 있을 만큼 작았다. “공이 어디로 날아갈지 정말 자신이 없어요”라고 했다. 플레이를 시작하는 단계인 드라이버샷이 똑바로 날아가지 않으니 나머지 다른 샷이 뛰어나도 좋은 성적을 내기 힘들었다.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 문제였다. 세계 최고대회인 US 여자오픈에서 어린 나이에 우승한 뒤 그에 걸맞은 실력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녀를 괴롭혔다. 초등학교를 마친 딸의 골프 유학을 위해 영어를 잘하지 못하면서도 미국 땅을 밟은 어머니와, 국내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다가도 딸의 시합이 있으면 미국으로 건너가 캐디를 맡던 아버지의 헌신에 보답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미움도 컸다. 이런 심리적 강박에서 오는 슬럼프는 어린 시절부터 골프에 모든 것을 건 한국 골퍼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슬럼프 유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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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비는 남편 남기협씨를 만난 뒤 공을 치는 능력이 크게 향상됐다. /롯데·KB금융그룹
지금 생각해보면 박인비의 인생 역전은 극적 반전으로 보이지만 골프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던 2008년부터 지금까지 서서히 조금씩 자신의 힘을 키운 결과였다. 주변의 많은 도움이 있었지만, 스스로 노력하는 자세가 없었다면 그는 잠시 반짝한 골퍼로 팬들의 기억 속에 희미한 존재가 됐을 것이다. 박인비가 다시 일어서는 데 결정적인 힘을 준 사람은 스윙의 기본을 다시 가르쳐준 스윙코치이자 지금은 남편이 된 남기협(34)씨다. 박인비는 “남편을 만난 뒤 공을 치는 능력이 300% 이상 향상됐다”고 했다.
남씨는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선수 출신인데 국내 대회서 8등을 한 게 최고 성적이었다. 국내 골프장의 경기 운영과장도 하고, 골프 아카데미에서 일을 거들기도 했다. 현역 시절 드라이버는 300야드 가까이 나갔는데 퍼팅이 영 안 됐다고 했다.
세계 최고 골프 교습가들이 운영하는 아카데미를 다닌 박인비가 이렇다 할 레슨 경력이 없던 남씨에게 배우게 된 것은 인연이 아니면 이뤄지기 힘든 일이었다. 2010년 스윙도 마음도 무너져 있던 박인비는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오빠’인 남씨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남씨는 “‘정말 나한테 배워도 되겠느냐’고 했다”고 한다.
<②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