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벌구》
‘말하기 좋다 하고 남의 말을 하는 것이
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짧은 시조 안에 ‘말’이라는 단어가 몇 개나 들어가 있나 싶은 이 시조는 조선시대 김천택의 <청구영언>에 실린 작자 미상의 시조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림잡아도 500년 이전에 쓴 시조지만 오늘 이 시대를 노래하고 있다 여겨지는 것은 저만의 생각일지요.
말이 많기 때문이겠지요, 말의 종류도 참으로 많습니다.
실속이 없는 헛된 빈말,
사실과 다른 거짓말,
일이 끝난 뒤에 쓸데없이 이러니저러니 다시 하는 뒷말,
하지 않아도 좋을 때에 쓸데없이 하는 군말,
손아랫사람에게 하듯 낮추어 하는 반말,
나오는 대로 함부로 속되게 하는 막말,
실질적인 의미를 담지 않거나 공연히 그냥 한번 해 보는 헛말 등이 있습니다.
말과 관련하여 생겨난 말들도 많습니다.
말을 꺼내는 실마리인 말문,
말을 계속 이어 갈 수 있는 재료인 말밑천,
말로 씨름을 하듯 다투는 말씨름,
실속이 없이 겉만 꾸미는 말치레,
말하는 속에 은연히 뜻이 드러나는 말눈치,
말을 이리저리 척척 둘러대는 말주변,
말하는 태도나 모양새인 말본새 등이 그렇습니다.
말이 되지 않는 말,
말 같지도 않은 말,
격이 떨어지는 말은 ‘말’보다는 ‘소리’를 씁니다.
성이 나거나 서운해서 퉁명스럽게 하는 볼멘소리,
하지 않아도 좋을 쓸데없는 군소리,
아주 작게나마 남에게 들리게 내는 찍소리,
자기의 지위나 능력을 믿고 지나치게 장담하는 입찬소리,
터무니없이 자랑으로 떠벌리는 흰소리,
상대편의 말을 엉뚱한 다른 말로 재치 있게 슬쩍 받아넘기는 신소리,
답답하고 아쉬울 때 남에게 동정을 얻으려고 굽실거리거나 애걸하는 다리아랫소리,
이치에 맞지 않는 엉뚱한 생소리,
쓸데없이 함부로 지껄이는 허튼소리 등이 있습니다.
말에 관한 경험이 쌓이고 쌓인 결과겠지요,
말에 관한 속담도 많습니다.
군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
관 속에 들어가도 막말은 말라,
길이 아니거든 가지 말고 말이 아니거든 듣지 말라,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 말이란 아해 다르고 어해 다르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 갚는다,
세치 혀가 사람 잡는다,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랬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
말이 씨가 된다 등이 있습니다.
말에 대한 관심은 나이와 상관이 없지 싶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무슨 말인지 짐작하기가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말을 줄여서 하는 줄임말을 들으면 뜻을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아이들은 말로서 성을 쌓아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어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의 줄임말 중에는 말에 관한 것이 있습니다.
‘할말하않’은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안물안궁’은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다’,
‘솔까말’은 ‘솔직하게 까놓고 말해서’,
‘갑분싸’는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진다’는 뜻이었습니다.
말에 관한 줄임말 중에는 ‘입벌구’가 있습니다.
‘입만 벌리면 구라(거짓말)’라는 뜻으로,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사회가 병들면 말도 병이 듭니다.
아이들 눈에 어른들이 ‘입벌구’라면 우리는 가장 나쁜 유산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셈이 될 것입니다.
[글쓴이 : 한희철목사/정릉감리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