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께서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떠하였는지를 경전을 통해서 한번 조명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대신사께서는 「교훈가」에서 ‘입도한 세상사람 그날부터 군자되어 무위이화 될 것이니 지상신선 네 아니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 들은 후에 심독희(心獨喜) 자부(自負)로다’라고 하시며 우리 인간을 세 종류로 나누어 보셨습니다.
즉 세상사람, 군자사람, 지상신선사람으로 보신 것입니다.
첫째로, ‘
세상사람’에 대해서는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으로 보셨습니다.
대신사께서는 『용담유사』에서 ‘무지한 세상사람’,
‘그 모르는 세상사람’,
‘슬프다 세상사람’, ‘칙칙한 세상사람’ 등으로 표현하셨고,
또한 ‘요악(妖惡)한 고 인물’이라고 하시며 원망도 하셨고,
개탄도 하셨습니다.
곧 「도덕가」에 보면 “무지한 세상사람 아는 바 천지라도 경외지심(敬畏之心) 없었으니 아는 것이 무엇이며”라고 하셨고,
「교훈가」에서는 “그 모르는 세상사람 승기자(勝己者) 싫어할 줄 무근설화(無根說話) 지어내어 듣지 못한 그 말이며, 보지 못한 그 소리를 어찌 그리 자아내서 향안설화(向顔說話) 분분한고.”라고 하셨고,
또한 “슬프다 세상사람 내 운수 좋자하니 네 운수 가련할 줄 네가 어찌 알잔 말고”라고 하셨습니다.
「안심가」에서는 “그 모르는 세상사람 그걸로사 말이라고,
추켜들고 하는 말이 용담에는 명인나서 범도 되고, 용도 되고
서학에는 용터라고 종종걸음치는 말을
역력히 못할러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칙칙한 세상사람 승기자 싫어할 줄 어찌 그리 알았던고. 답답해도 할 길 없다”,
“요악한 고 인물이 할말이 바이없어 서학이라 이름하고 온 동네 외는 말이”
“요악한 세상사람 눌로 대해 이말 하노 우리 선조(先祖) 험천(險川) 땅에 공덕비를 높이 세워 만고유전 하여보세.
송백같은 이내 절개(節槪) 금석으로 세울줄을 세상사람 뉘가 알고”라는 말씀으로 원망도 하셨고 개탄도 하셨습니다.
여기서 세상사람이란 각자위심(各自爲心)하는 사람이며,
불순천리(不順天理)하는 사람이며,
불고천명(不顧天命)하는 사람이며, 시운시변(時運時變)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며, 도덕을 순종치 않는 사람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포덕문」에 살펴보면
“또 이 근래에 오면서 온세상 사람이 각자위심하여 천리를 순종치 아니하고, 천명을 돌아보지 아니하므로 마음이 항상 두려워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하셨고,
또 말미에는 “애석하도다. 지금 세상사람은 시운을 알지 못하여 나의 이 말을 들으면 들어가서는 마음으로 그르게 여기고, 나와서는 모여서 수군거리며 도덕을 순종치 아니하니 심히 두려운 일”이라고 한탄하셨습니다.
결국 ‘세상사람’은 소인배(小人輩)를 두고 하신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상사람 중에도 어진 사람이 없지 아니하니
어진 사람은 바로 ‘군자사람’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둘째로, 군자사람입니다.
군자사람이란 앞서 말한 세상사람과는 달리
현숙(賢淑)한 사람이며,
경천명 순천리(敬天命 順天理)하는 사람이며,
각자위심(各自爲心)하지 아니하고
동귀일체(同歸一體)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군자(君子)란 어원을 살펴보면 유교에서 나온 것으로
공자는 “군자의 도(道)에 세 가지가 있으니, 그 첫째가 지(知)요, 그 둘째가 인(仁)이요, 그 셋째가 용(勇)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군자는 지자(知者)가 되어야 하고,
인자(仁者)가 되어야 하며,
용자(勇者)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앎(知)이란 배워서 사리에 통달하는 것이며,
어짐(仁)이란 측은(惻隱)하고 자비(慈悲)스러운 착한 마음이며,
용맹(勇)이란 의리(義理)가 깊고, 절조(節操)가 굳센 것을 말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최남선(崔南善) 은 『고사통(古事通)』에서 ‘중국사람들이 우리 나라를 군자지국’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우리 나라가 군자의 기풍(氣風)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군자의 기풍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대신사께서는 「도덕가」에서 지적하시기를
“아동방 현인군자 도덕군자 이름하나
무지한 세상사람 아는바 천지라도
경외지심 없었으니 아는 것이 무엇이며...”라고 하셨고,
또한 “천지 역시 귀신이요,
귀신 역시 음양인줄 이같이 몰랐으니 경전 살펴 무엇하며,
도와 덕을 몰랐으니 현인군자 어찌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현인군자라면
우선 천지부모에 대한 경외지심(敬畏之心)이 있어야 하며,
도와 덕을 알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약간 어찌 수신(修身)하면 지벌(地閥)보고
가세(家勢)보아 추세해서 하는 말이
아무는 지벌도 좋거니와 문필(文筆)이 유여(裕餘)하니
도덕군자 분명타고 모몰염치 추존하니
우습다 저 사람은 지벌이 무엇이기에 군자를 비유(比喩)하며
문필이 무엇이기에 도덕을 의논하노”라고 하시어
도덕과 군자의 가치가 전도되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대신사 재세시에 제자 중에는
김천일(金千鎰)과 같은 지벌이 높은 사람도 있었고,
박문한(朴文澣)과 같은 문장이 높은 사람도 있었지만,
대신사께서는 항상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높고 낮은 것과 군자사람이 되고 못되는 것은
도덕이 높고 낮은데 있는 것이요,
결코 지벌이나 문필이 높고 낮은데 있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선천종교에서는 한울님과 사람을 따로 떼어 보았으며,
한울님은 높고 사람은 낮고 천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신의 예속물로 보았고,
사람은 신의 영광을 이 세상에 실현시켜주는 한갓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왔습니다.
그러나 천도교의 시천주사상은
선천종교의 신본위(神本位), 신중심(神中心)의 사상에서
시천주적 사람 본위, 인간중심의 사상으로 전환한 후천개벽의 사상입니다.
천도교의 이와 같은 시천주사상은
서구의 인간중심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서구의 인간주의는
유심론이나 유물론적인 극단으로 치닫거나
아니면 신에 대한 절대적인 귀의로 귀착되는 경향을
벗어날 수 가 없습니다.
이에 반해 천도교의 시천주사상에 입각한 인간주의는
사람이 곧 한울님이라는
인내천의 절대적인 진리에 도달함으로써
사람의 존엄성을 극대화한 것입니다.
곧 사람마다 한울님을 모신 시천주의 인간격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도한 세상사람
그날부터 군자되어 무위이화(無爲而化) 될 것이니
지상신선 네 아니냐?”라고 하신 것입니다.
셋째로 ‘지상신선사람’입니다.
신선설(神仙說)의 유래를 살펴보면
중국 고대의 도교사상으로부터 기인(起因)된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특히 진시황(秦始皇)의 학정(虐政)을 기피하여
무릉도원(武陵桃源)에서 은거생활을 하였다는 전설(도연명의 ‘도화원기’)과,
이밖에 신선이 구름을 타고 공중에 소요(逍遙)한다든지,
혹은 신선이 학(鶴)을 타고 명산(名山)에 하강하여
바둑을 두고 있는 것을 보았다느니 하는 전설이
예로부터 전해왔습니다.
그러나 수운대신사의 신선사상은 비현실적인 신선이 아니요,
바로 실존적 지상신선(地上神仙)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 천도교에서 추구하는 인간상은
유교적인 군자사람의 인간상도 아니요, 도교적 신선의 인간상도 아닌 것입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현인군자(賢人君子)가 될 수 있고
지상신선이 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상신선이란,
인간으로써 인간격의 완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철(鐵)에 비하면, 광석(鑛石)에서 순철(純鐵)로,
순철에서 강철(鋼鐵)로 되는 것과 같이
세상사람에서 군자사람으로, 군자사람에서 다시 지상신선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세상사람에서 군자사람으로, 군자사람에서
다시 지상신선사람이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지극한 정성(誠)과 지극한 공경(敬)과 지극한 믿음(信)으로써 수도하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인이 성인 되는 것도 자기의 마음이며,
범인이 범인 되는 것도 자기의 마음작용에 의한 것입니다.
천도교 신앙의 목적은 개인적으로 도성덕립이 되어
장생불사(長生不死)의 원리를 깨닫게 하는 것이요,
사회적으로는 인류로 하여금
지상신선(地上神仙)이 되게 하여 이 땅 위에 천국을 건설하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속히 습관에서 온 물정심을 버리고
지공무사(至公無私)한 한울님의 마음을 회복함으로써
한울님의 지혜와 능력을 받아 세상사람에서 군자사람으로,
군자사람에서 지상신선사람이 되어
이 땅 위에 천국을 건설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