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춤의움직임 원리”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춤사위 명칭이 정리되어 있는 <박금슬류 춤동작 기본>을 교재로 하여 이론설명과 실기수업을 병행합니다.
“우리춤 움직임의 원리이해”
박금슬류 춤동작 기본 용어해설
춤동작 용어
[가] 하체동작 1) 원자세 = 준비자세를 말한다. 2) 드딤세(딛음세) = 딛는 모양을 말한다. 3) 도듬세(돋음세) = 솟는 동작을 말한다. 4) 도듬세 중심 옮기기= 중심을 옮기면서 다음 동작을 위한 연결 동작이다. 5) 장전(長傳)드딤세 = 길게 나아가는 동작을 말한다. 6) 중전(中傳)드딤세 = 한 장단을 반으로 나누어 두 박자 동안에 마친다. 7) 세전(細傳)드딤세 = 한 박자에 한 발씩 나아가는 것이다. 8) 퇴세전(退細傳) = 박자마다 짚으면서 뒤로 빨리 걸어가는 춤동작이다. 9) 장전도듬세 = 딛음세보다 큰 호흡을 사용하니 발끝으로 딛어지며 앞으로 나아간다. 10) 중전도듬세 = 중전드딤세와 같은 동작인데 호흡이 크니 발끝으로 걷게 된다. 11) 세전도듬세 = 큰 호흡으로 박자마다 한 발씩 맞추어 걸어간다. 12) 퇴중전 = 뒷걸음으로 2박에 맞추어 걸어간다.
[나] 중체의 동작 1) 지슴(짓슴) = <지슴>에는 애교스럽다는 뜻이 있어 애교스럽게 무릎을 굽히는 동작을 말한다. 2) 발바치 = 발을 들어올린다는 뜻이다. 3) 황새체 = 황새가 나는 모습을 동작으로 나타낸 데서 연유된 이름이다. 4) 장굽힘 = 깊이 굽힌다는 뜻이다. 5) 중굽힘 = 반만 굽힌다는 뜻이다. 6) 세굽힘 = 자주 자주 굽히는 것이다. 7) 험신굽힘 = <험신은 절한다는 뜻이고> 절 하듯이 몸을 굽히는 동작이다. 8) 외전굽힘 = <외>란 튼다는 뜻도 있고 오른쪽이라는 뜻도 있으므로 외전굽힘은 오른쪽으로 틀어서 굽혀 내딛는 동작을 말한다. 9) 내좌전굽힘 = 왼쪽으로 향하여 굽혀 내딛는 동작을 말한다. 10) 엇굽힘 = 비스듬히 굽히는 동작이다. 11) 지슴굽힘 = 앞의 지슴과 같이 하면서 마지막에 굽히는 동작이다. 12) 학(鶴)체굽힘 = 학이 움직이는 모습을 본뜬 춤동작이다. 13) 엇장전도듬세 = 장전도듬세를 옆으로 딛는 것이다.
[다] 중․하체의 동작 1) 까치체 = 까치가 걸어하는 동작이다. 외국어로 투스텝으로 말하고 있다. 2) 맴체 = 돌면서 발을 움직이는 동작이다. 3) 깡깡체 = 절룩거리며 걷는 모양을 나타낸 동작이다. 4) 돌담체 = 돌다가 막혀서 다시 돌아오는 동작이다. 5) 좨금 = 절룩거리며 밀어내는 모습의 동작이다. 장전좨금은 한 장단이다. 6) 중전좨금 = 장전좨금과 같은 동작이나 반 장단에 끝내는 것이다. 7) 세전좨금 = 한 박자에 한 번씩 좨금을 하는 것이다. 한 박자에 두 번을 하면 쌍좨금 이라고 한다. 8) 까치맴체 = 까치체로 맴체 하는 것이다.
[라]상체의 동작 1) 좌수선거(左手宣擧) = 왼팔을 들어 올리는 동작이다. 2) 우수선거(右手宣擧) = 오른팔을 들어 올리는 동작이다. 3) 수제하(手提下) = 양팔을 천천히 겸손한 자세로 내리는 동작이다. 4) 좌우수선거 = 양팔을 일직선이 되도록 들어올리는 동작이다. 5) 사수 = 양팔을 약간 옆으로 드는 동작인데 직선도 사선도 아닌 약간 안을 향해 팔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6) 홀팔사수 = 한 팔은 머리위로 한 팔은 앞으로 드는 동작이다. 7) 팔수 = 양팔을 모두 머리위로 들어올린 동작이며 팔을 부드럽게 굴려서 여덟팔자를 만들어 올린다. 8) 서수 = 양팔을 앞으로 나란히 하는 동작이다. 수하 = 호흡을 들어 손끝이 떨어지는 동작이다. 9) 홀서수 = 한 팔만 앞으로 들고 있고 다른 쪽 팔은 뒷짐을 진다. 10) 암천 = <암>이란 오그린다는 뜻이 있다. 11) 인체(人體) = 팔로 몸을 앞뒤로 감은 동작이다. 12) 여닫이 = 모았던 팔을 벌려서 여는 동작이다. 13) 으름(어름) = <으름>이란 얼린다는 뜻이다. 앞뒤로 몸을 밀고 당기는 <얼리는>동작이다. 14) 퇴머리사위 = 한쪽 팔을 뒤로 해서 머리를 감아올리는 동작이다. 15) 겹머리사위 = 양손을 함께 머리위에서 돌리는 동작이다. 16) 건드리체 = <건드리>란 건들건들 흔든다는 뜻으로 앞뒤로 팔을 흔든다. 17) 성주 = <성주>란 위한다, 고인다는 뜻에서 유래된 말이다. 18) 멜체 = 팔을 어깨위로 메는 동작이다. 19) 멜수건드리 = 한쪽 팔은 메고 한쪽 팔은 들었다 내렸다 건드리를 한다. 20) 춤의 가락 = <가락>이란 춤을 나눈다는 뜻이 되어 춤의 가락은 춤을 갈라내는 동작을 말한다. 21) 장께끼 = <께끼>란 꺾는다는 뜻으로 팔뚝을 꺾으면서 동작하는 춤이다. 22) 중께끼 = 장께끼에 비해 반만 꺾는 동작이다. 23) 세께끼 = 한 박자에 한 팔씩 꺾는 동작으로 살랑 살랑 흔드는 모습이다. 24) 나래체 = 날듯이 팔을 훨훨 날리는 동작이다. 25) 거수 수제거, 수제하 험신 = <거수>란 손을 든다는 뜻이고 <수제거> 란 손을 내려든다는 뜻이며 <수제하>란 손을 아래로 내린다는 뜻이니 양팔을 조용히 아래로 완전히 내려 양팔을 몸에 감아 붙이면서 조용히 앉아 머리와 허리를 숙여 절한다.
[마] 전체동작(굿거리 박자에 한 함) 1) 을거리 =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한다는 뜻으로 반 장단에 한쪽씩 양쪽을 하는 동작이다. 2) 험수신 = 예법에서 설명했듯이 손을 올려<거수>절하는 동작이다. 3) 족외향외전세(足外向外轉勢) = 발을 오른쪽으로 보이게 해서 오른쪽으로 내딛는 동작이다. 4) 활맴체 = 활을 쏘는 모습으로 맴체를 한다. 5) 헤엄체(휘엄체) = 헤엄을 치는 모습을 나타낸 동작이다. 6) 족두치기(뒷발치기) = 발뒤축으로 땅을 치는 동작이다. 7) 흘거리(헐거리) = 이리저리 흘깃흘깃 보는 모습을 나타낸 동작으로 옛 사람들이 <흘거리>라 부르므로 그대로 따르기로 한다. 8) 학쪼개체 = 학이 모이를 쪼아 먹는 모습을 나타낸 동작으로 승무나 학춤에 이 춤사위가 많이 필요하다. 9) 건넌발 = 건너가는 모습을 나타낸 동작이다. 10) 씨뿌리체 = 씨를 뿌리는 모습을 나타내는 동작이다. 11) 멍석말이 = 멍석을 말듯이 감아 들어가는 동작이다. 12) 여닫이 = 팔을 들어서 열어젖히는 동작이다. 13) 여닫이께끼 = 팔, 몸, 다리 전체를 열면서 꺾는 동작이다. 14) 썰매치기 = 얼음판에서 미끄럼 타듯 미끄러지듯이 밀며 틀고 나가는 동작이다. 15) 기러기맴체 = 기러기는 맨 앞의 기러기를 따라 대열을 짓고 행동을 같이 하는 새인데 그러한 모습을 나타낸 동작이다. 16) 황새체 좌 = 황새가 껑충 하고 날듯이 뛰는 모습을 하고 앉는 동작이다. 17) 배밀띠기 = 배를 땅에 대듯이 엎드려서 이리저리 밀면서 비비는 동작이다. 18) 암지슴(암중지슴) = 팔을 반대쪽 어깨에 걸친 채 앉아서 곱게 살랑살랑 흔드는 동작이다. 19) 암세지슴 = 암중지슴을 2박에 하고 암세지슴은 1박으로 자주 자주 하는 동작이다. 20) 길노래비(질나래비) = 나는 동작을 나타내는데 뛰기도 하고 뛰지 않기 도 한다. 21) 옆실이 = 옆쪽 사선으로 어깨를 밀어 몸을 끌고 가는 것을 말한다. 22) 곱사위연풍 = 겹사위 연풍이라고도 하는데 한꺼번에 사위를 하면서 돌아가는 동작을 말한다. 연풍이란 뛰거나 또는 뛰지 않으면서 원 또는 직선으로 돌면서 제자리를 벗어나가 버리는 것을 말한다. 23) 쌍곱사위연풍 = 곱사위연풍과 같으나 네 박자에 한 바퀴 돌아나갈 것을 두 박자에 한바퀴 돌아나가는 것이므로 좀 빠른 동작이다. 24) 도리깨연풍 = 뛰면서 돌아가는 것을 연풍대라 하고 가을에 곡식을 거두 어 들일 때 낱알을 두드려 터는 기구를 도리깨라 하므로 도리깨질 하는 형용을 하는 동작이다. 25) 학기지개 = 학이 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켜듯이 온몸을 늘여 가며 쭉 펴 올리는 모습을 나타낸 동작이다. 26) 문막이(엉신) = 문을 막듯이 양팔을 벌리고 어깨로 밀어내는 동작인데 흔히 쓰이는 동작은 아니다. 27) 기러기 세전 = 기러기 모양으로 앉아 있는 상태에서 옆으로 비스듬히 걸어가는 동작이다. 28) 양반멜체 = 양반의 점잖은 동작을 서민들이 풍자 하려는 뜻에서 흉내 낸 것으로 주로 가면무에서 많이 사용된다.
[바] 굿거리춤 1) 원자세 = 하체동작에서 설명한 원자세와 같다. 2) 엇장전드딤세, 좌․우수 선거해서 사수 = <엇>이란 몸은 앞으로 향한 채 옆으로 나가는 것이고 <장전>이란 한 박자에 한발을 내딛는 것이다. 양팔을 옆으로 들어올리는 것을 선거 사수라 한다. 3) 엇장전드딤세 반대로 하며 사수 = 4) 중전드딤세 사수, 퇴중전 사수 = 5) 세전드딤세 사수, 퇴세전 사수 = 6) 중전드딤세 홀서사수 발바치 홀팔사수 = 7) 엇장전도듬세 홀팔서수 인체 = 8) 퇴세전 세인체 = 9) 외전세굽힘, 활횡체 = 10) 지슴(짓음) = 11) 퇴우수선거 수환, 선좌수선거 수환 = 수환이라 함은 손을 제낀다는 뜻으로 손바닥이 위로 보이게 제끼는 것이다. 12) 엇사세전 춤의 가락 = <엇사>라 함은 옆 사선을 뜻한다. 13) 발바치 엇겹장굽힘 드딤세 홀사수 수환 = 엇겹은 옆으로 발이 꼬아진 상태를 뜻한다. 14) 모듬하고 제자리 춤의 가락 = 15) 팔수 선거 도듬 = 16) 수제하 인체 = 17) 멍석말이 돌인체 = 멍석말이 하며 돌담으로 인체하는 동작이다. 18) 장굽힘 = 19) 학체 기지개(학기지개) = 20) 엇세전 성주 = 21) 돌담(돌인체) = 22) 홀팔사수로 거수하고 발바치 = 23) 수제하 족제하 = 손을 내리는 것은 수제하라 하고 발을 내리는 것은 족제하라 한다. 24) 여닫이 = 25) 으름(어름) = 26) 황새체 = 27) 좌식배밀띠기 = 28) 암중지슴과 암세지슴 = 29) 도듬 = 30) 연결되는 동작의 명칭 = 엇장전 돋음세 홀팔사수 인체 31) 건드리 퇴세전 32) 흘거리(헐거리) = 흘거리는 사투리이다. 흘낏거린다는 뜻이다. 33) 연결되는 동작의 명칭 = 엇장전 돋음세 홀팔사수 인체 34) 뒷발치기(족두치기)퇴우수 선거 선좌수 선거 = 35) 세전맴체 장께끼 모듬 = 36 )여닫이 성주 지슴 = 37) 성주 돌담 홀팔사수 발바치해서 멜체 = 38) 멜수건드리 퇴세전 = 39) 막음 = 춤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매듭짓는 것을 막음이라고 한다.
[사] 입춤 1) 인지슴 = <인>이란 인체를 말하므로 인체를 하면서 지슴을 하는 것을 뜻한다. 2) 우수선거, 세전드딤세 = 오른손을 들어올리면서 박자마다 앞으로 걸어 나가는 동작이다.<퇴진>이란 뒤로 발을 딛는다는 뜻이다. 3) 우향장전, 좌수선거 사수 = 4) 퇴진으로 좌향장전, 홀팔사수 = 5) 맴체하며 활체 후 사수 = 6) 퇴중전 세께끼, 퇴세전 세께끼 = 7) 발바치 사수 = 8) 족외향 나래체 = 발을 오른쪽으로 돌리는 동작이다. 9) 맴활체 = 10) 퇴장전 인체 = 11) 까치 장께끼 = 까치체를 하면서 동시에 장께끼를 하는 것이다. 12) 장께끼 세전맴체하고 멜체 = 13) 퇴까치 나래체 = 뒤로 까치체를 하면서 나래체를 하는 동작이다. 14) 퇴세전 우수 장께끼 = 뒤로 들어가면서 오른팔만 장께끼로 꺾는 동작이다. 15) 홀 퇴머리사위 맴체해서 인체 = 뒤로 머리를 한 팔로 감으며 맴체를 하고난 후 인체를 한다. 16) 우향장전하며 멜체 = 하체는 오른쪽으로 장전을 하면서 팔은 멜체를 한다. 17) 멜수건드리로 맴체 = 팔을 메고 흔들면서 돌아가는 동작이다. 18) 멜수건드리 세전, 발바치해서 엇장굽힘 = 19) 발바치 사수해서 인체 = 20) 좌전세하고 활맴체 = 21) 엇중전도듬세, 홀팔사수해서 인체 = 22) 우수선거, 좌수제거하여 엇세전 까치나래체 = 23) 맴활체해서 인체 = 24) 퇴중전하면서 여닫이께끼 = 25) 썰매치기 쌍썰매 = 26) 발바치 성주 도듬맴체 = 27) 엇까치 휘엄체 = 28) 활맴체 앙수 = 29) 문막이(엉신) = 두 가지 말이 다 사투리로 둘을 다 사용한다. 30) 길노래비 좌 = 길노래비 하면서 앉는 동작이다. 31) 길노래비 좌 기러기체 선 = 길노래비 하면서 앉았다가 기러기체로 일어나는 동작이다. 32) 기러기체로 맴체, 거수 세전해서 험신
※ 설명을 붙이지 않은 곳은 설명이 필요 없어도 알 수 있는 것이라 생략했습니다.
[아] 살풀이춤
춤동작 기본의 이해
첫째) 하체동작은 자음이고 둘째) 상체동작은 모음이며 셋째) 전체동작은 자음과 모음이 합하여 글자가 만들어졌으며 넷째) 굿거리는 그 글자가 숙달이 되기 시작하며 다섯째) 입춤은 그 글자가 멋을 내기 시작하고 여섯째) 살풀이춤은 드디어 그 글자에 사상과 감정이 실리기 시작한다.
우리춤의 미래를 본다. “우리춤 움직임의 원리 이해”
우리춤의 미래를 본다.
筆者 김은희 <우리춤 움직임 원리연구회 회장>
2006년 12월 23일 씀
“우리춤 움직임의 원리 이해”
우리춤 원리를 이해 하기위해서는 우리춤 자체를 놓고 생각 하는 것도 좋겠으나 서양의 것과 무엇이 다른지 파악해 보고 접근 해봄도 좋을 듯하다.
나는 여기서 ‘우리춤’이라는 표현대신 ‘우리 움직임’이란 표현을 쓰겠다.
춤이라 함은 일상 모든 움직임의 형이상학적인 발현인 것이기에 그것의 모태가 되는 "움직임의 원리는 어떻게 되는가?"하는 것이 먼저 언급 되어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무용, 발레, 현대무용은 장르구별을 떠나 모두 몸을 움직임으로써 표현되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움직임의 원리는 같은 맥락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하고는 한다.
"발레에서 기둥을 세우고, 현대무용을 통해 자유를 느끼고, 한국무용을 통해 내공을 쌓아라!"
발레 움직임은 축을 곧추 세워서 해부학적으로 근육과 뼈의 작용이 공간 속에서 최대한 미학적으로 표현되어지는 움직임 표현의 한 방법이다.
현대무용의 창조적 이념은 춤과 움직임을 다루는 분들도 아시겠지만 인간의 자유의지와 해방에 있다.
발레의 움직임이 고전적 세계관과 기초 과학에 그 틀을 둔다면 현대춤 움직임은 철학적 이슈와 더욱 면밀히 관계 되어져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기능과 구조만큼 복잡 다양하고 그 틀 속에서 내면적 자유가 어떻게 신체적 자유로 전이하느냐는 것이다.
그럼 우리 움직임은 어떠한가?
우리 춤은 춤의 성격에 따라 매우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왔다.
궁중무인 정재부터 민속무, 신무용, 창작무용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형태로 보이지만 모두 우리 춤 이라는 합집합 안에서 발전해왔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것들을 우리춤 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우리춤의 기본적인 움직임 원리가 담겨있고 그 원리에 의해 춤을 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단 그 움직임의 원리라는 것이 우리 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서양 춤, 즉 발레, 현대무용 등에서도 공통적인 원리가 적용된다.
움직임을 일으키는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힘의 발생이다.
힘은 어디에서부터 발생되며 그 힘을 어떻게 작용시킬 것인가?
이 같은 물음이 움직임의 원리에 대한 해답을 찾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필자는 한평생 춤을 추면서 이 같은 물음에 늘 해답을 찾고자 하였으며 제자를 가르쳐왔다.
춤을 배우고 춘다고 하였을 때 단순히 순서만 익혀서 추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동작을 수행할 때 몸에서 나타나는 힘의 진행 방향, 근육의 작용 등을 자연의 이치에 맞게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몸으로 움직여야 한다.
"우리춤을 통해 내공을 쌓아라." 라는 말은 무릇 한그루 나무가 자라기위해서 수십 번 잎사귀를 떨어뜨리듯,
자연이 쉼 없이 숨 쉬고 변화해 가듯 내면적 성찰이 자연의 이치와 그것이 주는 메시지가 몸으로 감지되는 것이다.
곧 움직임이 자연의 모습과 흡사하다고 하겠다. 우리 자연은 늘 숨을 쉬고 움직인다.
때로는 고요한 호수나 강처럼 쉽게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지만 분명 숨 쉬고 있다.
때로는 태풍이나 재난으로 그 호흡과 움직임을 거침없이 드러내기도 하는데, 이도 역시 자연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 일 것이다.
이렇듯 자연은 그 모습을 통해 인간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호흡으로 전달해 준다.
이러한 것처럼 우리 춤은 자연의 형상과 호흡과 같은 맥락에서 움직여지는데, 인간의 자아는 사실 반자연적 성향으로 달려간다.
이러한 이유로 내면적 성찰과 내적 공력이 없이는 그 평정심과 호흡을 잃고 만다.
결국 움직임의 해부학적 기하학적 이해나 자아의식과 자유의지도 내면적 성찰과 내공의 세월이 없으면 자연과 같은 호흡과 변화를 일구어 낼 수 없다.
우리춤의 특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자연의 형상과 원리를 고스란히 담는 것 말이다.
앞서 언급한 발레나 현대 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가만히 이것들을 짚어 가보면 그 이해의 흐름이 하나로 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해부학이나 기하학이나 물리적 이해나 자아의식 이러한 것들은 이미 자연의 섭리를 과학적으로 풀어낸 현상이고 결국 서구의 움직임이나 우리춤 원리의 모체인 자연이나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자연의 법칙은 = 발생하여=진행하고=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오듯이,
우리 인간 역시 하나의 자연이다.
예술 또한 인간의 내면과 사상을 바탕으로 자연과 더불어 진행되기에 모든 예술의 창조는 자연의 섭리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으며 거기에는 과학이 뒷받침해준다.
때문에 우리 춤의 움직임 원리를 설명하는데 있어서도 자연과 과학을 빼 놓을 수가 없다. 모든 건 자연의 이치이다.
자연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고 증명한 것이 과학이라고 볼 때 과학은 자연이 있을 때 존재하는 것이지 과학만 존재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괴테는 “꽃을 주는 것은 자연이고 그 꽃을 엮어 화환을 만드는 것은 예술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예술 또한 자연을 통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한 것이다.
비단 춤 뿐 만 아니라 그림이든 음악이든 모든 예술은 자연의 이치를 따라야 수명이 길다고 생각 한다
한편으로 흔히 우리춤에는 음양의 원리가 내재되어 있다고 한다.
이는 곧 태극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는데 과연 춤을 출 때 무엇이 태극인지 알고 추었을 때 내공이 쌓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공은 연륜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춤에서 세월이 묻어나오게 된다.
우리춤에서 나타나는 태극은 우리춤의 춤 선이 곡선으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태극선을 이룬다고 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몸 안에 흐르는 기운에서 음양의 기운을 느끼는 것이 우리 춤의 움직임 원리를 터득했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춤을 건축에 비유해 본다면 기본 원리를 터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새삼 확인할 수 있다.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둥이다.
기둥을 가장 먼저 세워야 그 다음 단계를 진행할 수 있다.
춤에서의 기둥은 원리터득이다.
그러나 춤을 배우는 사람들이 기둥도 세우지 않고 집 만들어 색칠하고 시계 걸고 액자 걸고 꽃병 놓는 것부터 먼저 하려고 한다.
이쁘게 하는 것부터 먼저 한다는 것이다.
건축을 할 때 위에 올라가는 것보다 지하실 파는 게 훨씬 더 중요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듯이 춤도 순서 외우거나 이쁘게 하는 것 보다 기둥을 튼튼히 세워져야 어떤 동작도 마음껏 소화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다양한 우리 춤의 류파를 배우고 출 때 발생하는 혼란을 최소화하고 본인의 스타일도 창조해 낼 수 있다.
어린 학생들에게 다양한 류파의 춤을 전수하다보면 학생들이 매우 혼란을 일으킬 때가 있다.
그것은 움직임의 원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류파가 다르다는 것은 춤의 특징적인 부분이 각기 다른 것이지 우리춤이 아닌 것은 없기 때문이다.
어떤 한 학습지에서 “원리를 알면 시험이 쉬워진다.”는 광고 문구를 내걸듯이 원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움직임에도 원리가 있으며, 춤을 춘다면 움직임의 원리를 가장 먼저 터득해야한다.
춤을 출 때의 움직임의 원리가 아닌 실 상활에서, 자연 속에서 움직임의 원리를 깨닫고 그것을 춤에 적용하면 된다.
해가 거듭 할수록 나 자신이 춤을 추며 제자들을 가르치고 수많은 강습회를 통해 내가 옛 선생님들께 듣거나 혹은 지금 춤을 추는 사람의 입장에서, 제자를 키워가는 입장에서도 여전히 움직임 원리를 설명해가는 방법들은 변해가지만 세월과 함께 더욱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 되어지는 것은 움직임의 원리는 동과 서가 다르지 않으며 그 표현의 기법과 해석의 차이라는 것과 우리의 몸이 자연으로부터 낳고 돌아가는 것처럼 춤과 움직임의 원리도 그와 같다는 것이다.
본인은 50년 이상 우리 춤을 추어오고 제자들에게 전수함에 있어 원리터득을 가장 중요시한다.
때문에 원리만 제대로 파악하고 춘다면 전통춤에서 창작춤에 이르기까지 우리춤이 매우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춤으로써 인식될 수 있으며
이는 오랜 역사와 함께 끊임없이 변화, 발전한 우리 춤이 전통성을 잃지 않고 하나의 원리로써 더욱 발전하리라 믿는다.
이전부터 내려오던 민속춤에서 일제시기 이후의 신무용에서 그것을 탈피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한 한국 창작 춤에 이르기까지 우리 춤 계는 쉬지 않고 변화를 꾀하였다.
그래서 우리 춤의 다양한 레퍼토리를 가질 수 있게 되었는데 그것들이 오래도록 지속되려면 형식미보다는 내적인 원리를 견고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앞으로 만들어질 우리 춤의 기법으로 만들어지는 작품들에 담긴 다양한 실험정신 속에서도 근본원리를 잃지 않는다면
일회적인 작품이 아닌 오랜 수명을 지니게 될 것이다.
최근 많은 창작 작품에서 한국무용, 발레, 현대무용의 장르구별이 모호해지고 각 전공자들이 서로 섞여서 공연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모든 움직임의 원리가 같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움직임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
그것이 춤을 추기에 앞서 가장 먼저 익혀야할 과제이다.
筆者 김은희 <우리춤 움직임 원리연구회 회장>
2006년 12월 23일 씀
박금슬 션생님 생애
1967년 부터 1983년 까지 김은희가 사사받은 고 박금슬 선생님의 생애
책 머리에
나의 무용생활 어언 40여 년, 이 머리글을 쓰는 나에게는 온갖 감회가 서린다.
아직 무용이 예술로서 이 땅에 발 디디지 못했던 시절에 예술에 대한 열망 하나만으로 뛰어들었던 나 자신의 모습에도 이제는 반백이 서렸다.
참으로 힘겹고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다.
그러나 그 어려움 속에서도 내가 의지할 수 있었던 하나의 희망이 있었다면
그것은 예술에 대한 순수한 열정 그것이었다.
그것이 나의 인생에 얼마나 많은 결실을 가져 다 주었는지는 아직 나는 모른다.
그러나 여기 이 조그만 책이 일부나마 나의 일념의 결실 이였으며,
30여 년간 손수 모아온 고지식한 결산이었음을 숨길 수 없다.
아직 우리의 전통무용이 그 자리를 튼튼히 굳히지 못한 상태이며 그에 따라 발전이나 창작도 많이 부족한 상태이지만, 나는 여기서 위의 아끼는 후배들을 위하여 나의 예술, 나의 작품만이 아닌,우리의 예술, 우리의 작품을 위한 하나의 길을 제시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우리고유의 무용을 정말 순수한 예술로 끌어올려 모든 사람에게 공감과 아름다움을 줄 수 있는 삶의 청량제 역할 로 남기고 싶었다.
그것이 나의 개인적인 욕심이나 만족에 끝나지 않고 우리 후배들에게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기 나의 30여 년간의 작업을 부분적으로 엮어본다.
이것은 타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직접적인 수집 이였으며, 우리 고유의 맛을 손상시키지 않으려는 노력 속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이해하였으면 싶다.
내 열정의 작은 결산인 이 책 앞에서 나는 더욱 마음이 무거워짐을 느낀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수고하고 힘써 주신 김성재 사장님과 나의 동료들,
그리고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시심한 감사를 드리며 우리 무용 예술의 발전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끝맺는다.
박금슬 선생님께서 82년 펴내신 저서 <춤 동 작>책머리에 쓰신 글입니다.
"오늘날 김은희 라는 한 무용가를 낳게 해주신 나의 선생님 박금슬
존경하는 선생님을 기리는 자료이기에 제가 직접 쓰겠습니다."
박금슬(1922~1983)의 본명의 김길남 이었다.
예명인 박금슬은 소설가인 공초 오상순(1894~1963)씨가 지어준 이름이다.
거문고와 비파를 연상케 하는 이름이다.
선생님은 경기도 이천 소거리 에서 태어나셨으며 유복한 집안의 무남독녀로 태어나 풍족한 환경의 어린 시절을 보내셨다.
강원도 백담사 근처에 별장을 소유했던 부친이 곽서순 이라는 스님을 알게 되어 사위로 맞았고, 이후 선생님 부부는 일본에 유학했었다.
학승 이였던 곽서순 스님은 일본 유학을 다녀온 후 동국대 교수를 지냈으며, 한국전쟁 때
납북 되셨다고 한다.
선생님께서는 1942년 일본 청수 고등학교를 마치고 , 그 이듬해인 1943년에 일본 여자전문학교 상과를 졸업하셨다.
유학당시 일본 근대무용의 여명을 열고 활동하든 이시이 바쿠 문하에서 춤을 사사받으셨다.
이시이 바쿠 의 문하생으로 한국에서 알려진 무용가는 최승희. 조택원. 등이다.
박금슬 선생님께서 처음 만났던 춤은 이시이 바쿠의 현대무용 이였다.
1944년 귀국하신 선생님께서는 백담사 오세암의 천월 스님에게 범패를 배웠으며
그 이후 불교는 선생님의 예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해방 후 서울 와룡동에서 무용연구소를 개설하시고 제자들을 가르쳤어나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대구로 피난하셨다.
대구에서 선생님은 한말 여령을 지낸 관기 정소산 선생에게 궁중정재를 비롯 입춤, 즉흥무, 무고, 검무, 승무, 등등을 배웠다.
정소산 선생님 께서는 살풀이 라는 말 대신에 즉흥무, 혹은 수건 춤, 이라고 하셨다.
정소산 선생님은 필자<김은희>가 경북예고 재학 시절에 스승이셨던 대구의 백년욱 선생님의 선생님 이셨으므로 김은희도 잠시 백년욱 선생님 덕택에 정소산 선생님께도 직접 춤을 배운 적이 있다.
부산 피난시절에는 성남여고를 비롯 문교부와 해병대 정춤감실 후원으로 문화극장에서
고전무용 발표회를 가졌다.
이때 공연된 작품은 관등무,구운몽,연화대,호접,낙화승천,사친,추억,편시춘,청춘시절,
봄놀이, 국민무장, 시조, 춘몽, 등이 있었다.
작품 제목으로 볼 때 불교적이고 서정적인 소재들로 이루어 진 걸로 보인다.
전쟁이 끝난 후 서울로 돌아오신 선생님은 안암동, 용두동, 종암동에서 무용연구소를 운영하셨다.
1954년 시공간에서 신작 무용공연을 가졌고,1959년 공연에서 선보인 승무에서는 경기승무의 독특한 운치를 잘 표현했다고 한다.
1961년 인천 신흥강당에서의 동인무용발표회 등 꾸준이 신작을 발표했다.
1963년 한국무용협회 이사로 선임되기도 했어나 박금슬의 관심은 오로지 민속예능의 현장에 산재해 있는 토속적이고 고유한 우리 춤에 쏠려있었다.
특히 불교무용에 대한 관심은 지대했다.
범패와 작법의 명인 권수근 문하에서 나비춤, 바라춤, 법고 ,등 불교무용을 섭렵한다.
당시에는 권수근 스님이 범패의 전승자로 유일한 사람 이였다.
박금슬 역시 불교무용의 맥을 이은 전승자중의 한 사람 이였다고 말 할 수 있다.
드디어 선생님께서는 1967년 경남 밀양으로 초빙되어 오셨다.
선생님께서는 경남 밀양의 전설인 밀양아리랑을 원형 발굴 하시어 무용극을 만드셨다.
필자<김은희>가 밀양여자중학교 2학년에 재학중이였다.
현재 무용계에 나와 있는 선생님의 약력에는 밀양아리랑 원형발굴로 밀양에 오신게 1964년으로 잘못 기재되어있어 이는 정정 되어야 한다.
그때 만난 선생님은 매우 검소하고 소박하시며 인정이 많은 분이셨다.
1967년 선생님이 만드신 밀양아리랑 원형발굴의 작품에는 젊은이와 여인, 그리고 아랑, 사명대사, 사또, 동네사람, 거북이, 등등 40여명이 출연하였다.
대전에서 열린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작품배역 젊은이 역에는 국수호 선생님이 20세 때이며, 여자 주인공은 서울에서 내려온 제자가 맡았다.
현재 의상계의 대부이신 그레타리 선생님이 분장을 맡아 주셨다.
다음해인 필자<김은희>가 중학교 3학년 때는 당시 콩쿨 중에 아주 유명했던 진주 계천예술제 에서 대상을 받았었다.
그 무렵에 박금슬 선생님은 고성오광대에서 춤을 배우기도 하고 가르치시기도 하시면서 춤동작 용어를 수집하셨다.
지금 고성오광대 춤사위를 가만히 들여 다 보면 박금슬 선생님의 기본에 들어있는 춤동작을 찾아 낼 수 있다.
그리고 선생께서 배우신 고성오광대의 문둥 춤을 토대로 안무하신 작품이 오늘날 박금슬 "번뇌"로 전해지면서 김자은 스님에게 안무해 주신 작품이다.
김자은 스님은 67년 "번뇌"라는 작품으로 신인 콩쿨에 입상 하였다.
나중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김자은 스님의 신체 조건에 꼭 맞는 작품을 일부러 만드신 것 이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들었을 당시는 필자가 다시 서울에서 선생님께 공부하던 1981 년 이였다.
그리고 선생님은 1982년 서울시립무용단에서 개최한 명무전 에서 "번뇌"를 추셨다.
필자가 직접 무대뒤 분장실에서 선생님을 뵈올때 선생님께서는 도저히 춤을 추실 수 없는
지경에 계셨다.교통사고로 한쪽 팔에 쇠막대기가 박힌 상태였다.
그래도 무대에서는 전혀 관객이 눈치 챌 수 없을 정도로 열연을 하셨다.
필자가 좀 더 많이 선생님께 춤을 배울 수 없었던 기막힌 사건이 발생한다.
1969년 홍콩, 싱가포르,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미얀마,등 국위선양 차원의 동남아 순회공연을 하던 중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귀국할 비행기 표가 없을 정도가 되어서 태국에서 체류하게 된다.
태국에서 체류하는 동안 선생님은 그곳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태국 국립예술학교 무용학과에서 주최한 강습회에 6개월간 참가하기도 했고 1974년에는 UN Womens Group 주최 아시아 민속축제에 참가했으며, 1975년 국제민속경연대회에서 부채춤으로 우승하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나타난 자료에서는 기획사에 사기를 당했다고 기록이 되어 있어나, 필자가 직접 박금슬 선생님과 함께 공연에 참가 하셨던 김광숙 선생님과 인터뷰를 한 결과 그것은 잘못된 기록으로 확인하였다.
당시 선생님 제자로 함께 태국에 발이 묶였던 김광숙 선생님은 먼저 귀국을 하시고 선생님께서는 9년의 세월을 태국에서 보내다 건강의 악화로 1977년 고국에 돌아 오셨다.
한국에 돌아오신 선생님께서는 몸이 회복되면서 중곡동 사위집에 머물면서 제자 서희주가 운영하는 면목동 무용학원에서 우리 춤을 지도 하셨고 청주사범대 교수인 제자 박태조 교수의 도움으로 청주 사범대학 무용교육과 강사로 나가시기도 하셨다.
내가 다시 선생님께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때였다.
선생님이 안 계신 9년 동안 나는 경북예고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서 계속 공부를 하고 있던 중에 다시 선생님을 만날 수가 있었다.
선생님은 80 년 제2회 대한민국무용제 에서 김자은 스님이 주축인 자비무용단 에 "태초"라는 작품을 안무 하셨고 이 작품으로 김영동 선생님이 작곡하신 음악상과 김광숙 선생님께서 신인상을 받기도 하였다.
작품 "태초"는 86년 제3회 박금슬 선생님 추모공연에서 필자(김은희)가 김광숙 선생님 역할 을 대신하여 주역을 맡았었다.
선생님께서는 경제적 여건으로 하여 작품 활동을 많이 하시지는 않았지만 우리 춤의 기본동작을 과학적으로 체계화 시키시는 일에 전념을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