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레임(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
* 세상을 바라보는 창, 프레임
(첫 번째 이야기) 'Britain's got Talent'라는 영국판 '전국노래자랑' 무대에 선 한 젊은이가 있었다. 긴장한 표정, 어눌한 말투, 흔들리는 눈빛, 그리고 어색하게 기울인 고개... 무대에 선 36세의 휴대폰 외판원 폴 포츠(Paul Potts)는 누가 보더라도 사회 속에서 자신감을 상실한 소심한 남자였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힘겹게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았으리라. 첫인상에 이미 흥미를 잃은 심사위원들이 시큰둥하게 묻는다. "뭐를 보여줄래요?" "......오페라요." 순간 심사위원들의 얼굴에 냉소가 스쳐 지나간다. 음악이 흐르고 폴 포츠는 노래를 부른다.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순간 정적이 흐르고 이내 관객은 무대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소심한 남자는 사라졌다. 대신 푸치니 오페라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믿을 수 없는 수준으로 열창하는 한 젊은이가 무대를 가득 채운다.
쩌렁쩌렁 울렸던 노래가 잦아들자 냉소 섞인 질문을 던졌던 여성 심사위원의 눈에는 눈물이 맺히고 심드렁했던 관객들도 열광하며 박수를 쳐댄다. 이 감동적인 영상은 작년 유투브에서 폭발적인 히트 수를 기록했고 폴 포츠를 세계적인 유명인사로 만들어 주었다. 심사위원과 관객들은 ‘저런 외모와 분위기를 가진 사람은 어떻다.‘라는 틀 안에서 폴 포츠를 바라보았다. 폴 포츠 자신도 노래 부르는 순간까지 '평소처럼' 사람들 앞에 무너지면 어쩌지 하는 불안 속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두 번째 이야기) 얼마 전부터 살을 좀 빼기로 마음먹었다. 수많은 다이어트 카페와 블로그를 전전하다 보니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은 네티즌들에게는 몇 개의 방법이 불문율처럼 퍼져 있다. 그 중 하나가 "식사는 하되 양은 반공기로 줄이세요." 라는 말이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자. 밥 그룻이 크고 작건 상관없는 것인가? 우리는 밥공기의 크기에 대해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곰곰이 따져보면 우리는 밥공기의 크기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먹는 적정 양’이라는 근거 없는 생각을 가져왔다. 식당에 따라 나오는 음식의 양은 천차만별이다. 한 끼 식사의 양은 식당주인의 관점이지 일반적인 관점은 아니다. 그러나 푸짐한 저녁식사의 1/2을 먹고 우리는 식욕을 참은 자신을 대견해 한다.
이처럼 우리는 스스로 만들고 또 만들어진 틀 속에 매여 산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우물 밖 하늘이 세상의 전부라 믿듯이 우리가 경험하고 판단한 것이 지극히 객관적이라 착각하며 산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왜곡된 창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저자는 이것을 ‘프레임(Frame)'이라 부른다. 프레임이란 개념 자체는 사실 우리도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 내지 철학, 사람들의 고정관념, 자신을 규정하는 마음의 틀 등의 이름으로 불려 왔으며 저자는 프레임이라는 개념 속에는 이 모든 것이 녹아 있다고 설명한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지금까지 우리 마음이 얼마나 많은 착각과 오류,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 차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이것들이 프레임이라고 하는 마음의 창에 의해서 생겨났음을 그간 연구를 통해 얻은 수많은 흥미로운 실증사례를 통해 증명하고 있다. 그럼 과연 우리가 어떤 프레임 속에서 갇혀 살아 왔었을까? 책 속으로 조금 더 들어가 보자.
*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코넬대학교의 길로비치 교수는 대학원생들과 함께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왕년의 가수인 배리 매닐로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한 학생에게 입게 하고는 (젊은 대학생들에게 옛날 가수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는 입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20대 대학생이 나훈아 티셔츠를 입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이 학생을 4~6명의 대학생들이 모여 있는 실험실에 들여보냈다.
이후 실험실에 있었던 학생들에게 그 학생이 입었던 티셔츠가 어떤 것이었냐고 물었다. 티셔츠를 입은 학생은 실험실에 있었던 사람들 중 절반가량이 자신의 그 민망한 티셔츠를 알아차렸을 것이라고 예상하였으나 실제로는 23%만이 그 학생의 매닐로 티셔츠를 입고 있었음을 알아 차렸다.
코메디언인 제리 세인필드와 마틴루터 킹 목사가 그려진 티셔츠로 동일한 실험을 반복 수행했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50% 정도는 알아 차렸을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8%만이 티셔츠 그림을 인식하고 있었다. 살면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이 때문에 수많은 착각을 만들게 된다.
이를 전문용어로 '조명효과(Spotlight effect)'라고 부른다.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듯이 주변 시야를 잃고 자신을 중심에 두는 현상을 뜻한다. 스타일링이 마음대로 되지 않은 머리, 잘 먹지 않은 화장, 와이셔츠의 커피 얼룩, 어쩐지 어색한 코디 등으로 우리는 바쁜 아침시간에 마음이 곤두서 집을 나서는 경우가 많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사무실에서 노심초사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어떻게 생각할까 마음을 쓴다.
그러나 이 같은 걱정은 이제 무시하자.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마음속에 CCTV를 설치해 놓고 자신을 감시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이 자신을 주목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이제 마음의 CCTV를 끄고 자신을 조금 내려놓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자기중심의 프레임에 관한 사례는 무척 다양하다. 퀴즈 프로그램에서 화면에 이미 나온 답을 이미 알고 있는 우리는 그것도 못 맞추는 출연자가 답답하고 바보처럼 보인다. 그러나 화면에 답이 나와 있지 않으면 사실 우리도 그 출연자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자신이 알고 있는 노래를 손가락으로 책상을 치면서 들려줄 때 과연 다른 사람들이 그 것을 알아들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책에 언급된 실제 실험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저자는 "'자기'에 대한 지나친 생각이 남들과 자기 자신의 잦은 비교를 야기함으로써 오히려 행복을 저하시킨다."는 그간의 심리학자들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자기중심성이 만들어 내는 허상을 이해하고 겸손해질 것을 주문한다.
* 현재가 왜곡한 과거와 미래
이미 일어난 결과 속에서 편안하게 돌이키는 과거는 사실 현재라는 프레임 속에서 왜곡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보자. 어른들이 "요즘 사람들은 너무 예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고금을 막론하고 여전하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을 곰곰이 따져보면 근거를 찾아보기 어렵다. 여기에 현재 프레임이 작동된다.
절제와 책임을 갖춘 어른의 현재모습이 마치 원래부터 자신의 모습으로 포장되는 것이다. 실제로 미시간 대학교 마커스 교수는 특정 이슈에 대한 현재의 태도가 과거에도 그랬을 것이라 여기는 사람들의 현재 프레임을 10년에 걸친 실험을 통해 밝혀 낸 바 있다.
조곤조곤 따져 보면 오류가 많은 자서전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고의는 없지만 자신도 모르게 왜곡된 과거를 기술하는 것이다. 저자는 서재필의 자서전을 예를 들어 설명한다. 서재필은 13~14세 나이로 최연소 과거 장원급제를 했다고 적었지만 실제로는 별시문과 3등이었다. 최연소자는 맞지만 장원급제는 아닌 셈이다.
현재 프레임은 과거를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왜곡하기도 하지만 현재와 반대의 모습으로 왜곡하는 경우도 있다. 종교에 귀의한 사람은 자신의 과거가 형편없었으며 종교를 통해 새사람이 되었다고 말한다. 현재의 '나아진'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의 과거를 애써 폄하하는 것이다. 정반대로 영광스러웠던 과거를 과장스럽게 부풀려 강조함으로써 초라한 현재를 감추려는 심리도 존재한다.
예전에 공부를 곧 잘 했던 학생이 대학입시에 실패하여 목표에 미달하는 학교에 입학할 경우 이 학생은 과거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는 시간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내가 왕년에는 잘 나갔는데.." 그러나 회상과정에서 '실제'는 늘 부풀려지게 된다. 주위를 둘러봐도 초등학교 때 공부 못했던 사람은 없다.
이 같은 현재프레임은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도 왜곡한다. 저자는 우리가 어릴 적에 많이 짰었던 방학 시간계획표를 예로 든다. 방학시간계획표는 언제나 빡빡하다. 한참 뛰어 놀 나이에 6시에 일어나서 운동도 하고 아침을 먹고 아침공부를 시작한다고 짜 놓는다. 솔직히 지키기 힘들기 때문에 보통 하루 이틀 지나면 흐지부지 되게 되어 있다.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도 현재 프레임이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모든 상황이 의지의 부족이라기보다는 애초부터 미래에 대한 우리의 계획이 현재의 의지에 의해 지나치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즉, 현재의 생각과 불타는 각오 등이 미래에도 꾸준히 지속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지 않다. 예상치 못한 사건 등으로 인해 현재의 의지는 금방 변화하기 마련이나 우리는 늘 이를 간과하게 된다.
긍정적인 눈으로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렇게 현재가 만들어 내는 과거의 수많은 착각들, 그리고 근거 없는 장밋빛 미래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주문한다.
* '이름'이 만들어 낸 수많은 착각
이름을 어떻게 붙이느냐에 따라, 소위 '이름 프레임'에 따라 사람들은 생각과 행동이 바뀐다. 이름은 중요한 프레임으로 작용한다. '미국과 이라크 전쟁'이냐, ‘미국의 이라크 점령’이냐에 따라 야기되는 결과는 크다. 전쟁은 이겨야 하지만 점령은 철수해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재미있는 사례를 풍부하게 담아내었다.
100만 원짜리 TV를 1시간 거리에 3만원 싸게 해주는 곳이 있다. 또한, 5만 원짜리 계산기를 사는데 3만원 싸게 해주는 곳이 역시 1시간 거리에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TV의 경우에는 1시간씩 운전을 하면서 TV를 사지는 않지만 계산기의 경우에는 상당수가 기꺼이 차를 운전해서 가겠다고 응답했다. TV는 100만원 중에 3만원이지만 계산기는 5만원 중에 3만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하면 어쨌든 절약할 수 있는 돈은 3만원이다.
공돈과 푼돈의 이야기도 들어보자. 우리는 돈에 붙이는 이름에 따라 돈을 다르게 해석한다. 책 정리 하다 우연히 발견한 비자금은 말 그대로 공돈이 된다. 어쩌다 발견된 돈이기 때문에 그냥 써버려도 큰 피해가 없다는 프레임이 작동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우리는 그 공돈을 소비한 것이다.
그 만큼 재산을 늘릴 수 있는 기회를 애써 차버린 것이다. 푼돈도 마찬가지이다. 일 년 간의 잡지나 학습지 구독료도 하루로 나누면 그 가치는 소소하게 느껴진다. 거금이 자잘한 푼돈으로 바뀌게 된다. 하버드 대학교의 존 구어빌 교수는 참여자들에게 회사에서 한 구호단체에 기부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사원들에게 1년간 기부할 의사를 묻는 실험을 수행했다.
한 쪽에서는 30만원에 해당하는 연간 기부액을 제시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일일 기부액 850원을 제시했다. 분석결과 연간 조건을 제시했을 경우 30%만이 기부의사를 밝혔지만, 일일 조건을 제시했을 경우 52%가 기부의사를 밝혔다.
이 같은 이름 프레임은 판매자에게는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이런 이름 프레임을 직시함으로써 보다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소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를 가두고 있는 프레임을 이해하자
저자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다양한 프레임을 서울대 최고 명강사답게 조목조목 친절히 일러 준다. 저자가 던지는 메시지는 모든 프레임을 벗어나서 온전한 객관성을 확보하자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경험하고 학습하는 존재이며 사실 우리가 가진 프레임은 그런 학습의 결과로써 얻어진 것이다.
뚜렷한 삶의 가치관을 가지고 거기에 맞추어 사는 것은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훌륭한 지침이다. 자신만의 철학이 없이 산다면 늘 휘둘리게 되고 자신감이 결여된 채 불안하게 살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우리가 가져왔던 생각이나 행동이 나도 모르게 어리석은 프레임 속에서 매몰되어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한번 쯤 자문해 볼 필요는 있다.
이해해야 비로소 벗어날 수 있다. 자신을 가두어 놓았던 틀의 정체를 이해하고 벗어나서 그 자각을 기반으로 스스로 멋지고 맘에 드는 창을 다시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저자의 표현처럼 스스로의 마음의 틀을 깨닫는 것이 지혜의 시작인 셈이다.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고픈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좋은 책이다.
- 리 뷰 / 정태수 연구원(삼성경제연구소)
- 저 자 / 최인철 / 발행일 2007 / 213P / 가 격 ₩ 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