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지리산 봄 하늘에 가득한 청화큰스님의 향훈
날씨는 따뜻한데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하다. 여행 다니기에 정말 백점 날씨다. 막힘없는 고속도로를 시원스럽게 달리는데, 오성거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디십니까? 산청 톨게이트에서 빠지세요. 나와서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길을 알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지도책에 나와 있는 길은 간단했다. 그래서 지도와 이정표를 보고 충분히 찾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톨게이트를 나와 선두 차량과 합류하여 벽송사로 가는 길은 간단하지 않았다. 이리 돌고 저리 돌고, 이리 들어가서 저리 나오고. 이정표도 별로 없는 시골 길을 계속 달려야 했다. 지도책을 보고 충분히 찾아갈 수 있다던 나의 자신감은 여지없이 무너져버렸다.
성지순례의 장소를 정하기 위해 회의를 할 때, 선우선방 회장님께서 말씀하시길, “쌍계사 근처는 개인적으로 찾아갈 수 있지만, 벽송사는 이런 기회가 아니면 찾기 어렵지요.”
그 말씀이 장소 선정에 큰 영향을 주긴 했으나, 나는 왜 개별적으로 찾아가기 어렵다는 것인지 그때는 잘 이해가 안되었다. 장소가 선정되자 오성거사님께서 사전답사도 다녀오시고 월암 스님과의 차담 시간도 마련해두셨다. 만약 벽송사를 우리끼리 왔으면 온종일 헤매다가 돌아갈 뻔 했다.
산입구에 도착하고도 차로 제법 많이 올라가야 했다. 그러나 올라간 만큼 속세와 멀어지고 지리산의 맑은 정기는 증장된다.
“지리산 최고봉이 천왕봉天王峰인데, 천왕일맥天王一脈이 동북방향으로 돌아 범천梵天의 기상으로 중봉中峰과 하봉下峰을 거느리고, 힘차게 뻗어 또한 두류봉頭流峰을 이룬다. 두류봉이 북으로 뻗어 내려 다시 정서正西 방향으로 조산祖山을 휘감아 흘러내려 마치 청학이 알을 품는 형국으로 역류하는 산세를 이루고 있는 산이 바로 벽송산碧松山이다. 벽송산 정봉正峰은 예로부터 주위의 만학천봉萬壑千峰의 형세가 마치 연꽃이 만개한 것과 흡사하다하여 부용봉芙蓉峰이라 전해진다. 벽송산 부용봉 아래에 청학포란靑鶴抱卵, 혹은 부용만개芙蓉滿開의 정점頂點에 자리한 곳이 벽송사碧松寺이다.
-월암月庵스님의 ‘벽송사 사적기’ 중에서-
그래서일까? 마치 어머니 품에 안긴 듯, 온화한 기운이 가득한 것 같다.
도반들과 경내를 다니며 사진도 찍고, 월암스님과의 차담 시간도 가졌다. 어제 마침 “간화정로看話正路”라는 책의 출판 법회를 가졌다는 월암스님께서는 직접 쓰신 그 책을 우리 모두에게 한권씩 주셨다. ‘간화선을 말한다’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을 쓰신 스님이시지만 간화선만이 최고라는 주장을 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염불선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시고는 경주님의 설명을 진지하게 들으셨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나는, 한국불교는 법집이 심하다는 우려가 줄어들고 가슴속에 상큼한 기운이 퍼지는 것 같았다.
월암스님과 함께 절마당에 나와 단체 사진도 찍은 후, 스님과 경주님께서 이야기를 나누시는 동안 나는 산을, 절을 다시금 천천히 바라보며 마치 지금 여기 청화큰스님께서 계신 듯 상상하면서 큰스님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우아한 학처럼 절 마당을 걸어가시는 모습, 천년의 바위산처럼 가부좌를 틀고 선정에 드신 모습.
봄햇살 보다 따뜻한 큰스님의 미소, 가을바람 보다 시원한 큰스님의 음성.
나는 머리를 들어 산 위쪽을 바라보았다.
불도 땔 수 없는 차가운 바위에 앉아 겨우 바람만 듬성듬성 막아놓고 그 추운 지리산정의 한겨울 동안 수행하신 곳은 어디쯤일까? 육신의 한계를 초월한 그 엄청난 수행력은 얼마나 오랜 생을 닦아오신 것일까?
그런 큰스님께서 해제 후 찾아오신 속가 보살님이 무사히 잘 내려가시도록, 수북이 쌓인 눈을 밤새 치워놓으신 그 길은 어디쯤일까? 깊이를 측정할 수 없는 수행력만큼이나 따뜻한 그 마음으로 얼마나 많은 중생들을 제도해 오셨을까?
그런 큰스님께서 그런 수행정진을 거쳐 우리에게 전해주시는 큰스님의 실상에 닿아있는 법문을 듣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잠재의식이 열려 수행이 된다고 한다. 아, 청화큰스님!
큰스님을 한번도 뵙지 못하고, 지금 벽송사를 포근히 안고 있는 푸르디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나는 전생에 어떤 인연으로 그분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일까?
도반들과 함께 산을 내려오는 동안에도 내 마음은 벽송사의 하늘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
산을 내려와 근처 식당을 찾았으나, 식사를 하려면 한 시간을 기다리라 한다. 다들 그다지 허기를 느끼지 않는 터라 준비해간 떡과 과일로 간단히 공양하기로 했다. 지리산 계속 옆 평상에 앉아 도반들과 음식을 나누며 휴식을 취했다. 맑은 시냇물 소리를 듣고 있자니, 저절로 삼매에 들 것처럼 편안한 기운이 몸을 감싼다.
여기까지 함께 하셨던 진주 선우선방의 오성거사님, 대자월보살님, 도진거사님, 수일거사님께서는 이제 돌아가시고자 한다. 이번 법회를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신 분들인가. 그러나 무사히 잘 치루었다는 안도감보다 지금의 이별을 더 아쉬워하심이 얼굴에 가득하다. 아름다운 사람들, 따뜻한 도반들. 우리는 그 분들과 헤어져 다음 순례지로 향했다.
백장암으로 가는 도중에 우리는 계획에 없던 실상사에 잠시 들렀다.
실상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사적기寺蹟記에 따르면 창건은 통일신라시대인 828년(흥덕왕 3) 홍척洪陟이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로 자리를 잡은 데서 비롯된다. 선종禪宗이 처음 전래된 것은 신라 제36대 혜공왕惠恭王 때인데, 발전을 못하다가 도의(道義:道儀)와 함께 입당入唐, 수학하고 귀국한 증각대사證覺大師 홍척이 흥덕왕의 초청으로 법을 강론함으로써 구산선문 중 으뜸 사찰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신라의 천년 고찰 실상사는 세월의 무게가 무겁게 깔려 있었다. 경내로 들어서니 마치 가을인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기와며 기둥은 세월이 지나간 흔적이 진하게 묻어 있었다. 마치 색 바랜 사진을 보는 듯, 제행무상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천천히 경내를 둘러보고 다시 백장암으로 향했다.
백장암 올라가는 길은 콘크리트로 포장을 했으나 좁고 가팔랐다. 중형버스로 왔다면, 급히 꺾이는 부분에서 더 올라가지 못하고, 온 길을 후진으로 내려갈 뻔 했다. 승용차도 몇 번의 전후진을 반복해서 겨우 돌아 올라갔다.
백장암에서는 지리산의 전경이 훤하게 보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청화큰스님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큰스님께서 한철을 나셨다는 백장선원은 삼 년전 산사태로 무너져, 지금은 새로 지어져 있었다. 위치도 전과 조금 다르다 한다. 현판도 큰스님 글씨가 아니라 한다.
우리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백장암 마당에 모여 이번 진주 대법회에 대한 간단한 감회를 나누고는 산을 내려왔다.
아쉬운 이별의 시간이다. 다들 헤어지기 아쉬워 차에 탔다가 내리고 이 차 갔다가 저 차 갔다가 한다. 목적지 별로 차를 나누어 타고, 본정거사님의 안내로 88고속도로의 지리산 톨게이트까지 갔다. 차창으로 손을 흔들고 고속도로에 진입한다.
대구를 거쳐 밀양으로 돌아갈 내 차에는 대구에 사시는 은비은비님과, 독일에서 오신 마누엘라님과 동생 choi님 그리고 부산으로 가실 홀연히님이 타셨다. 운전을 계속하니 조금 피곤하기는 했지만, 비몽과 사몽을 오가며 한번씩 던지는 은비은비님의 개그와 뒤에서 어깨를 주물러 주시는 choi님 덕분에 무사히 대구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고 가라는 도반들의 권유에 그리할까 생각했지만, 왠지 자꾸 가족들이 걸렸다.
사실 오늘 처가댁은 나락을 모판에 넣는 일을 하는 날이다. 이날은 타향에 사는 형제들이 모두 모여 일을 도와 드리는 날이다. 일년에 두세 차례 농사일 도와드리는 날 중 하나인 것이다. 며칠 전 처가댁에 갔을 때 모판일 한다는 말씀을 듣고는 토요일 법회만 하고 밤에 밀양에 올라오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토요일 아침, 아내는 장인장모님께서 어디 가신다고 내일 일을 안하니, 일요일 일정까지 다 보고 오라고 했다.
다행이다 생각하고 아무런 의심없이 성지순례까지 마쳤는데, 점심 때 집으로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는 것을 이제야 아차 싶었다. 아내는 내가 이번 법회에 끝까지 참석하도록 거짓말을 한 것이다. 저녁 권유를 사양하고 다들 내려드린 다음, 처가댁에 전화를 하니, 역시 처남들과 처형까지 모두 와 있었다.
처가댁에 도착하니, 장모님께서 왜 이리 늦었는지 물으신다. 죄송한 마음에 법회 마치고 오늘은 절을 세군데 들렀다가 오느라 늦었다고 말씀드렸다. 장모님께서는 큰 미소를 지으시며 사위의 미안한 마음을 덮어주신다.
다음 법회 때는 아이들을 부모님께 맡기고 아내와 함께 갔으면 좋겠다. 아직 불교를 연세 드신 분들의 기복 종교 정도로만 생각하는 아내에게 부처님의 따뜻한 가르침을 전하고 싶다. 좋은 도반들과 좋은 시간을 함께 하면, 아내도 불교를 바라보는 눈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처가댁 식구들과 모처럼 모두 모여 늦은 저녁을 감사히 먹었다.
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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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안거를 시작하는 날 따뜻한 음악과 정겨운 그림과 함께 아름다운 여정을 듣습니다. 잊고 지내고 있었던 '나'를 찾아 길을 떠나는 듯합니다. 독수리의 날카로운 눈매 뒤에 감춰진 윤거사님의 깊은 인간적 면모를 뵙습니다. 늘 수고 많이 해 주시는 윤거사님. 모든 신장님께서 님을 수호하시리라 믿습니다.
밝은 부처님의 자비 광명이 님의 가정에 충만하기를 두 손 모읍니다. '진리를 향한 열정'은 이렇게 가슴 뭉클하게 하나 봅니다. 님의 공덕에 찬탄의 합장 올립니다. _()_
목소리만 듣었던 명경지수님을 직접 뵙게 되어 무척 반가웠습니다. 처음 뵈었을 때, 아, 참 맑다 는 느낌을 받았지요. 또 뵈어요.._()_
그랬군요. 마음씨 고운 영성어머니... 다음 법회 땐 꼭 함께 오셔요. 윤거사님! 무척 수고하셨어요. 감사합니다. _()_
그래요. 다음 번에는 꼭 부부가 함께 오세요. 그 좋은 법을 혼자서만 알고 간직하기에는 너무 억울하잖아요. 나중에 부인한테 혼나지 말고...
진주 오프라인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것같네요. 이렇듯 자세하고 ,사진으로 생동감까지 곁들여 기록해주신 우리의 윤거사님!건강하시고 가정에 만복이 깃드시길 바랍니다. 나무아미타불 _()_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님의 행보를 말없이 지지해주는 아내와 함께하시니..... 금강의 수호신장 윤거사님 화이팅!!!
그 날 찻 속 풍경이 사모치게 그립네요 지난 밤을 날로 꼴깍 지새우시고도 거뜬하신 체력은 윤거사님의 특별한 보살심이겠지요 다음 오프라인 모임에는 윤거사님 그리고 주소를 함께 하시는... 그런 소개가 꼭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멋진 편집하고 글하고 단연 "윤거사표 만능 압력가마솥"!! _()_
수고 많으셨습니다. 큰스님 문하에는 부부도반이 많습니다. 다음 모임에는 영성어머님도 꼭 함께 참여하세요. _()_
_()_ 역시 윤거사님, 다음에는 식구들 모두 동참하시면 참 좋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나중에 금강도반가족정진법회도~ ^^ 다음에 세 아이의 엄마인 영성이 어머니, 꼭 뵈요~ 저도 요즘 흔치 않는 세 아이 엄마랍니다. ^^_()_
다음 다음에는 광륜사에서도 오프라인수행정진을 할수 있었으면 하고 청화큰스님 영정앞에 발원드려봅니다. 나무아미타불!!_______()_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