빔 벤더스의 영화에는 모두, 별 네 개 이상 주고 싶어진다. 영화와 간음하던 시절부터 난, 그의 영화를 빼놓지 않고 보았었다. 대학시절, 독일문화원에서 개최했던 빔 벤더스 감독 주간에 상영한 그의 초기 영화들, 페터 한트게의 소설을 영화화 한 [패널티킥 선상에서의 골기퍼의 불안]이라든가, 괴테의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현대판으로 개작한 영화들을 보면서, 이 낯선 감독에게 한없이 끌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었다.
대중적으로 그의 영화가 처음 국내 상영된 것은 1984년 칸느 그랑프리 수상작 [파리, 텍사스]였다. 영화가 상영되던 첫 토요일 오후, 명보극장 매표소를 빙 돌아가며 길게 늘어섰던 관객들을 기억한다. 그러나 우리 관객에게는 한없이 길고 지루하게 느껴졌던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더이상 관객들은 줄을 서지 않았다.
[파리, 텍사스] 역시 짐 자무시의 [천국보다 낯선]이나 레오 카락스의 [나쁜 피], 마티유 카쇼비츠의 [증오] 등과 마찬가지로 내 인생의 영화 목록에 들어간다. 지금 이렇게 직업적으로 영화평론을 쓰게 된 계기도 사실은 빔 벤더스의 [파리, 텍사스] 때문이다.
90년 내 두번째 시집인 [비디오/천국]을 출간한 후, 한 영화잡지에서 영화에세이 청탁이 왔었다. 그때 고심하다가 고른 영화가 [파리, 텍사스]였다. 그리고 한 달 뒤, 나는 다시 잡지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편집부에서 회의를 했는데, 나보고 연재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영화평 연재는 무려 5년동안 계속되었다. 그리고 나 역시 처음에는 영화애호가로서 칼럼을 쓰다가, 나중에는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비평을 쓰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었다. 내 영화칼럼을 눈여겨 보던 일간지 기자들로부터 신문의 영화평 청탁이 들어오고, 다른 잡지들로부터도 영화평 청탁이 이어지면서 이제는 그것이 밥벌이가 되었지만,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었다. 이 모든 것이 빔 벤더스의 [파리, 텍사스]로부터 비롯되었으니, 내가 그의 영화를 대하는 남다른 감회를 독자 여러분들은 충분히 이해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빔 벤더스 감독의 [밀리언 달러 호텔]은, 빛나는 재기를 화면 안으로 감춘 노회한 영화감독의 시선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수작 필름이다. [브에나베스타 소셜 클럽]에서 다큐멘타리와 픽션 드라마의 경계를 뒤흔드는 방법론으로서의 시네마베리떼의 정수를 보여준 빔 벤더스 감독은, 할리우드 상업 자본으로 만들어진 [밀리언 달러 호텔]에서도, 물 흐르듯 인간의 내면과 외면을 넘나드는 특유의 몽환적인 카메라와, 삶의 깊이를 드러내는 독창적 시선으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밀리언 달러 호텔]은 여러모로 특이한 영화이다. 우선, 이 영화의 각본을 쓴 사람이 락 그룹 [U2]의 멤버인 보노 복스이다. 또 할리우드 스타시스템의 대표적 배우인 멜 깁슨이 주연으로 참여하고 있고, 거기에 [제 5원소]를 찍었던 뤽 베송의 파트너 밀라 요보비치가 가세한다. 이런 기묘한 조합은, 흥행면에서는 불확실한 명장 빔 벤더스를 할리우드가 기용하면서 선택한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려했던대로 이런 조합은 환상의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지 못하고 곳곳에서 불협화음을 노출시키지만, 이미 [파리, 텍사스]를 찍으며 할리우드 상업정신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던 경험을 갖고 있는 빔 벤더스 감독은, 이번에도 노련하게 상업자본의 압력을 피해가면서 자신의 영화적 스타일을 고수하는데 성공한다. [세상을 보는 눈이 너무 상식적이야] 등장인물 중의 한 사람이 내뱉은 이런 대사는, 아마도 할리우드에 대한 빔 벤더스의 불편한 심기를 대신하는 것이리라.
L.A에 실재로 존재하는 밀리언 달러 호텔의 옥상은, [U2]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이미 대중들에게 그 기묘한 모습을 선보였었다. 옥상 위에 세워진 거대한 기하학적인 철골구조, 그 위에 붙어있는 [MILLION DOLLAR HOTEL]이라는 네온사인 문자는 마치 SF 영화의 그것처럼 초현실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밀리언 달러 호텔]은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L.A 시내에서도 가장 싸구려 호텔급에 속한다. 지금도 밤에는 매춘부들이 득실거리고 복장도착자들이 다른 성의 옷을 입고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이곳의 공식 이름은 [프론티어 호텔]. 다만 옥상에는 예전의 이름이었던 밀리언 달러 호텔 네온간판이 그대로 자리잡고 있다.
사회의 하층민들인 부랑자 무리들이 이 호텔에서 장기 투숙하고 있다. 아무도 알아 주지 않는 무명 화가인 이지가 옥상에서 떨어져 죽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마약중독자였던 이지는 사실은 언론재벌의 아들이었다. FBI의 스키너 요원(멜 깁슨 분)은 이지의 아버지인 언론재벌의 압력으로 사건을 조사한다. [진실이란 사람들이 돈주고 사는 것]이며 [일정 수의 사람들이 똑같은 것을 믿으면 그것은 진실이 된다]라는 대사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삶에 있어서 집단의 다수가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에 대한 감독의 회의는 계속된다. 그렇다. 어떤 의미에서 예술은 소수자의 생존을 위한 버둥거림이다.
호텔에 장기투숙하는 사람들 중에서 용의선상에 떠오른 인물들은 바보 톰톰(제레미 데이비스 분), 인디언의 피를 이어받은 제로니모, 자신이 비틀즈의 모든 곡을 작곡했다고 믿고 있으며 다섯번째 멤버라고 주장하는 딕시(피터 스토메어 분) 등등이다. 호텔 내의 잔심부름을 하며 살아가는 톰톰은 죽은 이지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는 호텔에 거주하는 엘루이즈(밀라 요보비치 분)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난 존재하지 않아. 난 허구니까].
엘루이즈는 톰톰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녀는 자주, 헌책들과 낡은 비디오 테이프가 쌓여 있는 고물상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 짧은 컷트 머리, 적색과 녹색과 청색의 세 가지 색깔이 가로무늬로 되어 있는 티셔츠를 입고, 트레이닝 바지만 걸치고 있어도 여전히 그녀는 매력적이다.
처음에 스키너의 계략으로 톰톰의 방을 방문해서 하룻밤을 같이 보냈던 엘루이즈는,톰톰의 진실된 모습을 발견하고 그를 마음 깊숙이 받아들인다. [사랑은 결코 설명될 수 없어. 나무나 바다같은 수수께끼처럼.]
페터 한트게가 각본을 썼던 한 편의 영상철학시 [베를린 천사의 시](이 작품의 원제는 [나뉘어진 하늘], 미국판 제목은 [욕망의 날개]였다. 한국판 제목도 썩 훌륭하다) 이후, 빔 벤더스의 영화는 시에 가깝다. [밀리언 달러 호텔]도 산문적으로 풀어서 이야기하면 중층적인 내러티브가 전개되는 추리적 구조를 갖고 있지만, 대가의 카메라는 가볍게 그것들을 반죽하면서 독창적 시공간으로 관객들을 끌고 간다. 당연히 멜 깁슨의 캐릭터는 부조화를 연출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관객들을 즐겁게 하는 것은 밀라 요보비치가 맡은 엘루이즈와, 약간 모자란 톰톰 역의 제레미 데이비스의 호연이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수미쌍관법으로 연결되어 있다. L.A 시가지에 높이 솟아 있는 빌딩들 사이로 수평이동하는 카메라는 밀리언 달러 호텔의 거대한 입간판 아래로 내려오고, 그 밑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달릴 준비를 하고 있는 톰톰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는 질주한다. 다양한 각도에서 롱샷과 미디엄 샷으로 잡은 카메라는, 그의 질주를 한없이 길고 긴 삶의 고뇌로 연장하는데 기여한다. 그리고 톰톰의 나레이션이 시작된다.
[삶은 완벽하다. 삶은 최고다. 그러나 뛰어내리기 전에는 이 사실을 몰랐었다]
옥상 밑으로 추락하는 한 남자의 이 마지막 나레이션은, 영화의 마지막에 다시 반복된다. 결국 영화는 누가 살인자인가라는 대한 추리적 구조를 빌리고 있지만, 감독은 추리적 구조물을 튼튼하게 하는데는 별로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는 삶의 본질적인 모순들, 결국 우리는 망상을 쫒으며 사는 것은 아닌가, 라는 화두를 관객들에게 던진다. 전쟁같은 극한 상황보다도 더 절망적인 망상, [그들은 사실도 아닌걸 믿고 싶어했다]. 왜 그럴까? 왜 사실도 아닌 것을 믿고 싶어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