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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와 눈 OST : Tom Waits - You Can Never Hold Back Spring (봄이 오는걸 막을 수 없어).
인생은 아름다워 OST : La Vita E B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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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영화 <호랑이와 눈>에서는
톰 웨이츠의 노래 You Can Never Hold Back Spring이 매우 특별하게 사용된다.
그저 특별하게 사용될 뿐만 아니라
톰 웨이츠가 직접 특별출연해서 직접 피아노치며 연주.
오랜만에 보고 듣는 톰 웨이츠의 모습과 그의 노래.
참 좋은 영화와 더불어 더욱 특별한 빛을 내던.
맥주 한 잔 앞에 놓고 노래를 청해 그저 조용히 그가 직접 연주하는 음악을 듣고싶은 건.
곡이 거의 끝나갈 때쯤...
====== 호랑이와 눈. 톰 웨이츠의 노래 즐감하시길.ㅋ ========
====== 여기는 '인생은 아름다워' 기억 더듬어 보시길 =======

[인생은 아름다워 (Life Is Beautiful, La Vita E Bella, 1997)]
누군가 희망은 그것이 유예되어 있기에 스스로 희망이 된다고 했던가..
달은, 자신을 완전히 비운 후에야 비로소 만월(滿月)을 꿈꾼다고 했다.
요즘 들려오는 한국 사회의 일련의 소식들은 우리를 우울하게 하고
자칫하면 좀더 심하게 절망에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어쩌면 이것은 희망을 채워나가기 위한 비우기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즉, 여기서 역설적이게도 내가 희망을 본다면 지나친 과장이고 허세가 될까?
오늘 어둠처럼 깊은 우리 현실의 심연에 나 자신을 슬며시 밀어넣고
그 내면 속에 침잠해 있다가 나는 문득 아득히 빛 바랜 기억 한쪽에서
아주 오래 전에 본 영화 한편을 떠올리고는 이렇게 몇자 적어 본다.
‘나치의 유태인 대학살’이란 역사상 인류 최악의 비극적 소제를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은 생뚱맞게도 코메디란 희극형식으로 포장함으로써
그것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더 극심한 최악의 슬픔이 되어 버렸던 영화..
그러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며
애써 희망의 멧세지를 끝까지 놓치지 않았던 영화...
이것이 바로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Life Is Beautiful, La Vita E Bella)’이다.
그 대략적 줄거리를 살펴보면,
1930년대 말경,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의 광기가 극에 달했던 시기에
주인공 귀도(Guido Orefice: 로베르토 베니니 분)는 운명처럼 한 초등학교
교사인 도라(Dora: 니콜렛타 브라스키 분: 베니니의 실제 부인)를 만난다.
순수하고 맑은 인생관과 꾸밈없는 유머를 가진 귀도.
비록 도라에게는
이미 약혼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라는 이런 그에게 한없이 끌리게 되고...
그로 인해 두 사람은 거역할 수 없는 운명적 사랑에 빠져서
마침내 그들은 함께 마을을 도망쳐서 멀리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게 된다.
어느덧 그들 사이엔 아들 조슈아가 태어나게 되고 평화롭고 단란하기만 했던
그들 가족 앞에 어느날 불현듯 닥쳐온 엄청난 불행, ‘독일의 유태인 말살 정책.
유태인이었던 귀도와 그의 아들 조슈아는 강제로 수용소에 끌려가게 된다.
이렇게 되자 도라는 비록 유태인은 아니지만 남편과 아들을 너무도 사랑하는
마음에 그 둘을 쫓아서 나치 수용소에 자발적으로 들어가는 선택을 하게 된다..
미친 역사의 광기에 휩싸인 어른들의 잘못으로 인한 비극적 현실을
어린 아들 조슈아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를 놓고 고민하던 귀도는
수용소에 도착한 순간, 문득 한가지 꾀를 내어 아들 조슈아에게
지금 자신들이 처한 현실이 실은 하나의 신나는 놀이이자 게임이라고 속인다.
귀도는 자신들은 아주 특별히 선발된 사람이며, 여기서 1,000점을 제일 먼저
따는 사람이 1등이 되어 그 부상으로 진짜 탱크를 받게 된다고 어쩔 수 없는
하얀 거짓말(White Lie)을 혼신의 힘으로 다하게 되고 여기에 어릴 때부터
장난감 탱크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조슈아는 귀가 솔깃하여 귀도의 이야기를
어린아이 특유의 순수함으로 인하여 사실로 믿게 된다.
이때부터 두 부자는 셀 수 없이 많은 위기를 넘기면서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게 되고
그러던 어느날 마침내 독일의 패망소식이 들려온다. 그러자 이런 혼란의 와중에서
귀도는 탈출을 시도하게 되고, 비극적이게도 독일군에 발각되어 사살당하게 된다.
이런 사실조차 모르고 아직도 게임이 계속되고 있는 줄로만 아는 조슈아는
여전히 1,000점을 채우기 위해서 아버지 말대로(사실은 귀도가 아들의 안전을
위해서 한말로 기억된다.)
마지막 숨바꼭질 게임에서 독일군에게 들키지 않으려
하루를 꼬박 나무궤짝 속에 숨어서 날을 새운다.
마침내 날이 밝고, 누가 과연 1등상을 받게 될지 몹시 궁금해 하며 궤짝 속에서
나와 정적만이 가득한 포로수용소 광장을 두리번거리며 걸어가는 죠수아.
그 앞으로 요란하게 달여오는 탱크가 오버랩 되면서 실제적 영화의 의미로는 막을 내린다.
극명한 현실적 비극을 코믹한 웃음으로 애써 극복하려는 안쓰러운 귀도의 몸짓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려 더욱더 짙은 슬픔을 자극하는 저녁.
무자비한 아픔에 대한 반발적 승리인양 유일하게 희망으로 살아남은 조슈아.
한떼의, 미친 바람처럼 정신없이 휩쓸고 지나간 광기의 역사 뒤에
그 순간의 역사가. 조슈아를,
마지막 희망이란 상징으로 살아 남게 하여 보여주려던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반세기 이상을 우리가 아직도 질질 끌려 다니고 있는 그런 역사적 진실.
기어이 살아 남아 그것들을 제대로 증언해주고 바로잡아 달라고 했던 것과
혹시 일맥상통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마침내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 보라고 했던 것은 아닐까?
투철한 역사의식 없는 자들에게 섣불리 들려준 일시적 통제불능의 권력으로 인해서
자꾸만 역사의 이마에 한없이 깊은 골만 더해가는 요즈음.
누군가 여명이 오기 전의 어둠이 가장 칠흑처럼 짙디 짙다고 했던가?
그것은 이제 곧 새벽이 가까웠다는 것이니 그 유예된 희망에게 손을 내민다.
레온 트로츠키의 말대로 죽는 그 순간까지도 어쩌면 살아 남았다는 것은.
“인생은 아름다워라!” 이고 그것은 곧 ‘희망’의 다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