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과 수필 / 윤 재 천
운명적 만남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 - 살아가면서 접하게 되는 사물이나 책 한 권으로도 사람의 운명은 변할 수 있고, 바뀌기도 한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쓴 니체는 초인(超人)이었다. 초인은 뛰어난 사람을 일컫지만, 자신을 뛰어넘는 사람 - 극복하는 사람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단어에 대한 해석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전 생애(全 生涯)에 걸쳐 염세와 우울증에 시달리던 니체는, 루 살로메라는 여인을 만나 지적 교제를 이루면서 운명이 바뀔 뻔한 계기를 만나게 된다.
니체는, 참사랑은 육적인 관계가 아니라 길게 나눌 수 있는 대화라고 했다. 사랑도 육체적인 것은 영원하지 않다. 영감을 교류할 수 있는, 공감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와의 교감이 더욱 은근한 사랑이 될 수 있다.
니체는 음악가인 바그너와 친분관계를 유지했지만, 훗날 바그너가 상류사회에 대한 동경과 현실적 실리에 눈을 돌리자 그와의 교류를 끊었다. 한편 살로메와의 사랑도 이루어지지 않자, 우울증이 더욱 깊어지고 여성기피증 증상을 보인다.
예술가는 금기를 깨고 어떤 시도든 할 수 있어야 한다. 전통을 고수하면서 새로운 시도에 끊임없이 천착하는 것이 새로운 세대가 할 일이다. 전통과 새로움은 상호보완하면서 공존하는 것이지, 이전의 것을 모두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 연하의 남자와 사귀는 여성을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고정관념의 벽을 넘어선 시도는 이전에도 있어 왔다. 세기(世紀)의 로맨스로 기억되는 뒤라스의 사랑도 고정관념의 벽을 허물어야 이해될 수 있다.
세상은 여러 형태의 만남이 공존하고, 우리는 그 중의 하나를 선택해 자신의 삶을 산다. 누구의 기준이 옳다고 할 수 없는 다양한 형태의 삶이 어깨를 마주해야 한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 ‘그녀와 아홉 달 정도 사귀면 불후의 명작을 쓰게 된다’는 말을 낳았던 루 살로메는 세기의 철학자 니체와는 거리가 먼 인연이었다. 그녀도 구속 자체를 힘겨워했고, 니체 역시 평생 길들여진 눈과 귀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거부했고 철학이 뇌를 갉아먹는 것에 대해서도 저항했다.
매사를 수용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면 병도 저절로 낫는다.
억눌리고 상처받게 되면 수명까지도 단축하게 된다. 참된 사랑은 사람을 활기차게 유도하고 기분을 살찌게 하며 마음도 부자가 된다.
긴 대화가 이루어져도 지루하지 않은 사람과의 교분은 진정한 사랑이다.
니체의 철학은 삶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인간과 사물 - 대하는 모든 것을 수용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것만이 진정한 철학이다. 예술은 그러한 사랑을 그리는 작업이고, 완전한 사랑을 향해 달려가는 기나긴 노정이다.
모든 것은 제한된 범위 안에서 안주하지 말고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 건강한 생명력 - 펄떡이는 심장으로 뛰어야 한다. 애플컴퓨터를 이끄는 스티브 잡스는 ‘늘 배고프고, 늘 어리석어지라’고 했다. 절대고독 속으로 자신을 깊이 침잠시키고 거칠고 바람 부는 황야에 심장을 내맡길 때, 비로소 삶 전체를 관통하는 생명력을 지닌 사유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다.
한 편의 수필이 컨버전스화한 융합적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다방면을 섭렵해야 한다. 잡다한 지식들의 융합, 절묘한 조합으로 글의 내용이 더욱 풍부해지고 깊어져야 한다.
경제학 용어인 ‘컨버전스’는 서로 다른 상상력이 충돌할 때 발전적인 방안이 모색된다는 의미다. 현대는 하나만 가지고 고집하는 일방통행의 시대가 아니다. 전통적 사유와 새로움의 만남에서 의도하지 않은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이 발명이다.
이제 수필은 기존의 것을 바탕에 두고 끊임없이 시도하며 장르의 벽을 뛰어넘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디지털 시대에는 ‘융합’이 세계적인 흐름이다. 인문학도 기본적인 과학지식과 함께 기술 변화의 흐름을 이해해야 세상을 살아갈 수 있으며, 경제도 문화를 외면해서는 홀로 설 수 없다. 모든 것은 함께 합쳐져 이루어내는 하모니처럼, 섬세한 디테일과 종합적인 조직력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한 편의 뮤지컬에는 모든 장르의 예술이 응집되어 있다.
한 분야만 돋보이고 나머지는 흐지부지한다면 뮤지컬의 완성도나 예술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글도 종합적이고 혼연일체적인 면모를 보여야 한다.
옛날 명화(名畵)를 요즘 다시 보게 되면 그때의 감동이 반감되는 것처럼, 글도 시대에 따라 패턴이 다르다. 모두가 뛰는 시대에 혼자서만 외로이 꼿꼿한 자세를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작가는 시대를 선도할 책무가 있고 예지력을 갖춰야 한다. 디지털시대로 변화된 점에서 혼란스러운 독자의 가슴 한가운데 작가의 저변적인 사유가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한다. 큰 나무일수록 잔가지를 많이 뻗지만, 키만큼의 뿌리가 지탱하기 때문에 쉽게 뽑히지 않는다. 잔가지 하나하나에도 뿌리의 수액이 전달되고 하나의 나무로 불리는 것처럼, 많은 것을 폭넓게 아우를 수 있는 열린 사고를 지닌 작가정신이 요구된다.
디젤기관차가 기적을 울리며 한가롭게 지나던 때의 기차역과, 시속 300km를 넘는 고속열차가 관통하는 역 주변의 풍경이 같을 수 없다. 빠른 속도가 미덕은 아니지만, 빠름에 합류하지 못하고 느린 속도만 고집하는 -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면 더 이상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기업도 일찌감치 밖으로 눈을 돌리고 흐름을 읽고 대처해야 살아남는다. 나라 경제도 규제만이 능사가 아니고 자율에 맡기고 경쟁에서의 윈-윈 효과를 기대하듯 글도 마찬가지다.
수필도 발전하려면 풀어야 한다.
홀대받지 않으려면 과감하게 내가 먼저 풀고 열린 마음으로 껴안을 줄 알아야 한다. 앞서가는 대기업 하나가 문을 닫으면 거기에 딸린 식구들이 겪을 고통의 도미노 현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나를 생각하기에 앞서 우리를, 전체를 먼저 생각하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수출만이 살 길이라고 허리띠 졸라매며 은행잎을 주워 모으고 머리카락까지 잘라 팔아야 했던 시절에서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기까지는 국민들의 노력과 발전적인 개혁에 대한 열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차 산업에 의존하지 않고 자동차와 선박, 반도체 같은 경쟁력 있는 분야에 눈을 돌린 결과다. 경제 논리를 글에 도입하지 않더라도, 한복도 변화 과정을 거쳐 개량되고 양복이나 넥타이도 유행이 달라지고 패턴이 바뀐다. 치마 길이도 시대에 따라 짧아지고 길어지기도 하는 것처럼, 세상 모든 것은 긴밀한 유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수필 문장도 고루한 옛 문장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와 감각에 맞는 문장과 문체를 계발하고 실험 정신으로 도전해야 한다.
다른 것과 비슷해서는 발전할 수 없다. 생김새가 각각이듯 저마다의 특성을 살려 자기만의 독특한 것을 지니고 발전시켜야 한다.
우리나라에 처음 뮤지컬이 소개된 것은 1962년 서울 드라마센터에 오른 ‘포기와 베스’였다. 뮤지컬이 도입된 지 50년이 되지 않았지만, 서울은 뉴욕?런던과 함께 세계 3대 뮤지컬 시장의 하나로 꼽힌다. 에세이스트가 사유하는 시대의 지성으로 존경받고 사회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것도, 안주하지 않으려는 각고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염세와 허무주의에 빠졌던 니체가 스승 리출 교수에 의해 실존주의를 정립한 선구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도 소중한 인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서로를 상생(相生)하게 하는 것과, 멸망에 이르게 하는 안타까운 만남이 있다. 첫눈에 반하여 즉각적이고 감정적인 교감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성실함과 신뢰성에 있다. 상대를 믿어주고, 그의 눈빛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때 가슴 밑바닥에 있는 잠재력을 발휘하게 된다.
접붙인 감이 더 달고, 퓨전음식이 더 구미를 당긴다.
풍부한 내용과 풍성한 상상력의 분출이 교묘하고 조직적인 글 솜씨로 녹아날 때 감칠맛 나는 한 편의 수필이 탄생한다. 그런 글만이 독자를 감동시키고 오랜 생명력으로 살아 있는 글이 된다. 그러기 위해 생각과 힘을 모으고 온 정신의 기(氣)를 모아야 한다.
총체적인 것의 만남 - 한 편의 수필 창작은 건강한 상상력의 응집이다.
연기와 노래와 춤이 어우러진 종합 공연 같은 완성도 높은 작품을 위해, 끊임없이 사유하고 사색하며 완전한 만남을 위해 도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