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구한말과 일제시대 한국 교회는 사회의 구심점이었다. 민족운동의 중심지였고 신교육을 주도했다. 교회에서는 각종 강습회가 열렸다. 심지어 1904년 장로회 공의회에서 아래아 사용을 비롯한 한글 문법체계 연구에 대한 의견이 나와 이를 1년간 연구한 후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기독인은 단지 수만 명에 불과했다.
최근 한국 교회는 지역사회와 함께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예배당을 개조,열린 공간을 만들어 지역주민들의 쉼터로 개방하고 있다. 노인학교를 열고 유치원을 운영하며 여전히 지역교육의 중심 역할을 자임한다. 각종 문화행사를 개최,풍요로운 생활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 한국 교회는 사회에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도 종종 들리고 있다. 온갖 비리에 연루되고 각종 송사에 휘말린다. 현재 기독인은 우리나라 전체 인구 4분의 1에 해당하는 1200만명이다.
“미국 성인들 가운데 3분의 1 정도가 스스로 거듭난 자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만큼 사회에 영향을 주지 못할 뿐 아니라 도리어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병들어가고 부패해가고 있다. 이는 아주 당혹스런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신앙은 상승하나 도덕은 하강한다.”
미국 기독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문필가이며 연설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찰스 콜슨의 말이다. 많은 기독인이 사회문제에 손을 놓고 허공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다. 각 분야에서 사회의 병폐들과 맞서 싸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찰스 콜슨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미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교회사가 존 우드브리지는 ‘세속에 물들지 않는 영성’(생명의말씀사·02-737-2288)에서 기독교 신앙의 가르침에 대한 반항 의식의 확산과 기독인 스스로 성경대로 살려는 일상적이고 의식적인 노력 회피 등을 그 이유로 들었다. 그리고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개역개정 롬 12:2)는 사도 바울의 선포에 따를 것을 권유한다. 그리고 마음을 새롭게 하기 위해 성령께 의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존 우드브리지 교수는 폴 메이어와 윌터 카이저,그랜트 오스본,데이비드 라슨,더글라스 무 등의 글을 엮어 현대 사회의 도전을 이기기 위해 성경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고 제안한다. 또 교회생활과 경건훈련,신앙생활 등에서 새로워진 마음을 생활에 적용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구원 받은 이들의 삶은 이미 자기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맡은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생활한다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다. 많은 인내를 요구한다. 그러나 한 가지 약속이 우리를 위로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개역개정 요 8:32)는 말씀이다. 그리고 어렵지만 자유로운 여정의 친구로 성령을 약속하셨다.
조지 폭스대 명예 객원교수인 레너드 스위트는 모든 삶을 춤으로 만들기 위해 오셨다고 역설한다. 실제로 ‘기쁨’이라는 뜻의 아람어는 ‘춤’이라는 단어와 같다고 한다. 그리고 신학과 신앙 위에서 ‘Soul Salsa’를 추자고 권한다. ‘세상을 호흡하며 춤추는 영성’(좋은씨앗·02-521-3052)은 세상속에서 역동적인 기독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담고 있다.
레너드 스위트는 기독인을 영혼의 예술가로 부른다. 그리고 영혼의 예술가는 생활과 인생의 설계,배움,신앙생활 등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제안하고 있다.
특히 삶은 정적인 것과 역동적인 것의 균형이라면서 멀리 있는 하나님 나라와 가까이 있는 하나님 나라가 뒤섞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정적인 것과 역동적인 것,내면과 외면 등의 조화를 강조한다. 내적인 움직임(준비)만 있고 외적인 표현(파티)이 없다면 탈진한다는 점을 레너드 스위트는 환기시킨다.
“준비의 언어는 철학이다. 파티의 언어는 시다. 철학은 그 길을 준비하고 그것을 비평이라고 한다. 시가 있는 파티는 축제라고 부른다. 춤춰라. 나의 친구들이여,춤춰라.”
전재우기자 jwjeon@kmib.co.kr
|
세계적인 기독교미래학자인 레너드 스윗(사진) 박사가 다음달 8∼10일 ‘미래교회 컨퍼런스’를 인도할 예정이어서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스윗 박사는 ‘미래교회와 선교’라는 주제로 8일 세신월드미션센터,‘미래교회와 교육’이라는 주제로 9일 연동교회,‘미래교회와 목회’라는 주제로 10일 기독교TV에서 강의한다. 이번 컨퍼런스는 스피릿벤처미니스트리스 한시미션 넥스트처치 한국기독교교육학회 기독교TV 등이 공동 주최한다(02-522-2449).
스윗 박사는 ‘도발적인 사상가’ ‘엄청난 상상력과 균형감각,매력을 지닌 작가’ 등으로 불린다. 미국에서는 그의 책을 한권이라도 읽지 않았다면 교회 지도자가 아니라는 말을 나돌 정도다. 그는 새들백교회 윌로크릭교회 수정교회 갈보리채플 등에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했다. 현재 미국 뉴저지주 드루신학대 전도학 석좌교수,조지폭스대 명예교수로 재직하면서 자신이 설립한 국제적 미래교회 연구기구 스피릿벤처미니스트리스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스윗 박사는 포스트모던 문화가 위기의 문화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히브리어로 위기는 출산용 의자 즉,고대에 산모가 출산시 앉았던 의자를 뜻한다. 생명을 탄생시키는 창조의 순간이 있다면 지금이 바로 그때”라면서 “이 시대 교회 리더가 갖춰야 할 능력은 창조성과 상상력”이라고 강조한다.
스윗 박사의 저서 중 ‘영성과 감성을 하나로 묶는 미래교회’ ‘모던 시대의 교회는 가라’(좋은 씨앗) ‘나를 미치게 하는 예수’ ‘귀 없는 리더? 귀 있는 리더!’(IVP) 등이 번역 출판된 바 있다.
함태경기자 zhuanjja@kmib.co.kr
연합뉴스 보도자료|기사입력 2005-05-06 09:35 |최종수정2005-05-06 09:35
|
세계적인 교회미래학자 레너드 스위트 교수가 5월 8일부터 5월12일까지 방한하여 세 차례의 강연을 통해 "미래교회"에 관한 비전과 견해를 제시하게 된다.
스위트 교수의 방한은 스피릿벤처미니스트리 USA, 넥스트처치, 한시미션, 한국기독교교육학회 등 국내외 선교-학술단체들이 공동으로 초청하여 이루어지게 되었다.
스위트 교수는 현재 미국 뉴저지주 드루신학대학의 전도학 석좌교수이며 조지 폭스 대학의 명예교수로 재직하면서, 자신이 설립한 국제적 미래교회연구기구 SpiritVenture Ministries의 대표이다. 새들백교회, 윌로우클릭교회, 수정교회, 갈보리채플 등 미래형 교회에 지속적으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는 학자로서 그의 저서들은 전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의 순위에 올라가 있다.
한국에서도 「영성과 감성을 하나로 묶는 미래교회 Postmodern Pligrims」(좋은씨앗),「나를 미치게 하는 예수 Jesus Drives Me Crazy」(IVP),「모던 시대의 교회는 가라 Aqua Church」(좋은씨앗) 등으로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다수의 저서가 번역 출판 될 예정으로 있다.
|
세계적인 기독교 미래학자인 레너드 스위트 박사가 내한,지난 8∼10일 '미래 교회와 선교,교육,목회'라는 주제로 '미래교회 컨퍼런스'를 인도해 큰 관심을 끌었다. 이에 본보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선교적 교회 모델을 제시한 스위트 박사,스피릿벤처미니스트리스 이사인 감리교신학대학교 김영래 교수와의 대담을 통해 교회의 참된 역할과 성경적인 전도?선교 리더십에 대해 들어보았다.
-과거의 교회와 오늘의 교회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레너드 스위트 박사=오늘날은 정반대의 것들이 동시에 일어난다. 대형교회는 더욱 비대해지고 소형교회는 더욱 작아지고 있다. 이제 교회는 계속 성장하든지 아니면 소멸하든지 양자간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아마 미래 교회는 동방정교회 오순절교회와 같은 교회들이 압도해나갈 것이다. 교회언어는 스페인어가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유색인종이 교회의 지배적 구성원이 되고 있다.
△김영래 교수=모더니즘 시대는 중간 보통 평범을 가치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교회는 전통적 방식과 혁신적 변화를 동시에 요구 받는다. 이 때문에 교회는 살아움직이는 유기체가 돼야 한다.
-포스트모던 세계 속에서 요청되는 교회 리더십은 무엇인가?
△김 교수=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 우리의 변화는 하나님의 음성을 좇아 따라가는 변화가 되어야 한다. 포스트모던 세계의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믿음으로 변화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스위트 박사=미식축구에서 전진하기 위해 공을 던질 때 받을 사람이 서 있는 곳에 던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이동해야 할 곳으로 공을 던진다. 포스트모던 세계의 교회 지도자들은 사람들의 움직임과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원하시는 곳이 어디인지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포스트모던 시대에 복음 전파가 어렵다고 하지만 오히려 기회가 더 많은 것이 않은가?
△스위트 박사=맞다. 예를 들면 우리 몸은 각기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손은 음식을 집어 입에 넣어주고 위는 그것을 소화시킨다. 오히려 모든 부분이 한 가지 일을 한다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다양한 일을 제대로 감당하면 세상은 복음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김 교수=열정이 더해져야 한다. 열정이 그리스도인들의 상표가 돼야 한다. 스타벅스의 회장 하워드 슐츠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최고 경영자(Chief Executive Officer)가 아니라 최고 전도자(Chief Evangelic Officer)다. 나는 어디를 가든지 스타벅스 커피와 회사를 전도한다." 비기독인인 그도 이같은 열정으로 세계 어디에서나 스타벅스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만들었다.
-성경적 전도와 개혁의 길이 무엇인가?
△김 교수=성경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성경은 요점을 제시하는 요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야기들로 엮어져 있다. 요점은 고정된 사실을 제시하지만 이야기는 생동하는 관계를 맺게 해준다. 이야기로서 성경을 읽으면서 계속되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스위트 박사=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첫번째 계명은 동산을 돌보라는 것이었다. '돌본다'는 말에는 보존하라는 의미와 더불어 더 낫게 만들라는 뜻이 내포돼있다. 이를 '전통'과 '혁신'이라고 부를 수 있다. 기독인은 전통과 혁신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정보화 지구촌화 다문화와 다종교화로 묘사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교회는 생존전략보다는 적극적인 선교전략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한 견해는?
△스위트 박사=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교회가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전력하려면 '문화적 소통 방식'에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 지금까지 중요한 전달 시스템은 책이었다. 그러나 미래의 교육을 위한 핵심 매체는 인터넷이다. 인터넷을 통해 팀워크와 협동학습을 배우고 여러 가지를 동시에 수행하는 방식에 익숙해진다는 것을 교회는 깨달아야 한다.
△김 교수=미래 교회를 이야기할 때 방법론이란 말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방법론보다 본질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형태가 본질로 오해되지 않고 우상이 되지 않는 한 변함없는 본질(예수 그리스도)을 전하기 위해 과감한 형태적 변형은 불가피하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한국 교회 선교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김 교수=포스트모던 시대의 사람들은 그 어느 시대의 사람들보다 영적 세계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영적인 것들을 교회가 아닌 다른 곳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교회는 영적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갖고 전방위적인 선교에 힘써야 한다.
△스위트 박사=그동안 교회는 서방이라는 한쪽 폐만 갖고 숨을 쉬고 있었다. 이제는 서방과 동방이라는 양쪽 폐를 갖고 호흡해야 한다. 한국 교회는 서구 기독교가 온전한 영적 호흡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서구 교회와 교류?협력을 강화,선교지에 희망을 심어주기 바란다.
사회·진행=함태경기자 zhuanjia@kmib.co.kr
21세기형 목회 비전 제시… 기독교미래학자 스위트 박사 방한
|
세계적인 기독교 미래학자 레너드 스위트(사진) 박사가 오는 5월 내한, ‘동·서양의 21세기 동반자적 만남’이라는 주제로 동·서 동행을 위한 미래교회 콘퍼런스를 인도한다.
조병호 한시미션 대표는 15일 “한시미션 창립 20주년을 맞아 미국 드루대 석좌교수인 스위트 박사를 초청, 5월22일 한국교회 미래지도자 ‘20·40(20∼40대)’ 1만여명 앞에서 21세기형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을 제시할 예정”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조 대표는 “스위트 박사는 탈현대화, 포스트 모던 문화의 파고에 대해 속수무책인 한국교회를 향해 복음의 확산을 위한 시대적 안목을 제시하고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는 비책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스위트 박사는 콘퍼런스 외에도 각계 각층 지도자들을 위한 강연, 30대 미래 지도자들과의 만남 등도 가질 예정이다. 한국 기독교 120여년의 역사를 계승하고 21세기에 맞게 기독교 상황을 재해석,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인문·사회과학적 방안도 언급하게 된다.
매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독교 지도자 50명을 발표하고 있는 미국 월간 ‘처치 리포트’ 에 따르면 스위트 박사는 올해 8위에 오른 저명한 미래학자다. 그는 새들백교회 릭 워런, 윌로크릭커뮤니티교회 빌 하이벨스 목사 등을 위한 미래 교회의 모습을 예상, 미국 교회가 성경적 복음주의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수많은 목회적 아이디어를 제공해왔다. 최근에는 동양문화권에 속한 한국이 서구 기독교를 적극 수용해 계약 중심의 서구문화와 관계중심의 동양문화 특징을 접목, 발전해왔음을 주시하고 동·서 융합만이 21세기를 견인해 나갈 수 있는 열쇠라고 주장하고 있다.
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
[해외석학 칼럼―레너드 스위트 교수] ‘APC 교회’ 서 ‘MRI 교회’ 로 변화
|
하나님의 세계경영이라는 측면에서 한국 교회도 세계의 흐름을 이해하는 안목을 갖춰야 한다. 이에 미국 드루대 레너드 스위트 석좌교수와 영국 버밍엄대 버너 우스토프 교수가 국민일보 독자들을 위해 보내온 칼럼을 매주 금요일 싣는다.
아스피린 페나세틴 카페인은 오랫동안 해열진통제로 사용돼왔다. 그러나 1980년대에 이르러 신장에 해를 주고 암을 유발한다고 해서 이들의 사용이 자제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들 약물의 영문 첫 글자는 교회의 낡은 세 가지 성향,즉 유인적(Attractional) 명제적(Propositional) 식민지적(Colonial)을 나타내는 단어의 머리글자와 일치한다.
유인적이란 하나님보다 사람의 눈길 끌기에 급급하고, 명제적이란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교리나 신조에 매달리며, 식민지적이란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신앙을 강요하는 교회를 의미한다.
이미 ‘APC 교회’가 되어버린 서구 교회는 자신의 몸의 열을 낮추기 위해 몸의 기관들을 해치는 약물을 계속 복용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교회는 능력보다는 프로그램, 사랑의 관계보다는 전통의 규범에 사활을 건다. 믿음의 실천보다는 믿음의 선전에 만족하고 있는 형국이다.
교회는 더 이상 생존에 목숨을 걸지 말고 부흥의 푯대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 이를 위해 나는 ‘APC 교회’가 ‘MRI 교회’로 거듭나기를 소망한다. MRI란 자기공명영상(Magnetic Resonance Imaging)이라는 의료장비를 뜻한다. 환자의 상태를 검진하기 위한 첨단의 장비인 MRI가 신체 상태를 컴퓨터 영상으로 보여주듯이 교회도 자신의 상황을 점검하고 미래를 향해 전진할 수 있도록 MRI 검사를 통해 진단받아야 한다.
교회를 위한 MRI는 선교적(Missional) 관계적(Relational) 성육신적(Incarnational) 모델을 말한다. 다시 말해 사랑의 선교로 ‘보내지고’, 사랑의 사역으로 ‘부름 받으며’, 사랑의 삶으로 ‘부름 받아 보내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성경에서는 200회 이상 ‘가라’는 말이 나온다. 성경 어디에도 ‘숨으라’는 말이 없다. 물론 성경에 ‘머무르라’는 말은 13번 등장한다. 하지만 머무르라는 지시는 예수님 곁에 있으라는 것을 의미한다. 머무르라는 것은 가라는 말씀을 기다리라는 것을 뜻한다. 교회는 나아가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가서 과실을 맺는”(요 15:17) 것이 교회의 본분이다.
교회가 복음을 행하는 것은 최우선 과제다. 복음에 대해 말하는 것은 차선의 사명이다. 하지만 많은 교회들이 차선에 더 골몰하고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첫 명령인 ‘떠나가라’는 말을 기억해야 한다. 교회여, 사랑의 선교, 사랑의 사역, 사랑의 삶을 실천하는 MRI 교회가 되라.
◇레너드 스위트 교수
‘도발적인 사상가’ ‘엄청난 상상력과 균형감각, 매력을 지닌 작가’ 등으로 불린다. 미국에서 그의 책을 한 권이라도 읽지 않았다면 교회 지도자가 아니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는 스피릿 벤처 미니스트리스 국제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해외석학 칼럼―레너드 스위트 미국 드루대 석좌교수] 동·서양교회 동행
![]() |
하나님은 교회에 서양과 동양이라는 두 개의 폐를 주셨다. 그러나 지난 500년 동안 특별히 서구 중심의 교회는 서양이라는 한 쪽의 폐만 갖고 호흡을 해왔다. 그리고 교회는 마침내 이제 동양의 폐를 발견하고 있다. 우리는 비로소 교회의 동양적 뿌리를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동양적 뿌리에서 영적 직관과 영적 상상력의 역할을 발견하고 있다. 이는 교회가 희랍적인 생각 속에 히브리적인 사고를 결합시키는 것과 같다.
사람들은 전통적 기독교를 생각할 때 진정 기독교적인 것보다 이성 논리 원칙 명제 따위를 앞세우는 근대적인 모습의 기독교를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오늘날 목회에서의 감동은 보다 더 참된 기독교의 목소리와 자세를 발견하도록 돕는 데에서 온다. 어떤 면에서 기독교가 하고 있는 가장 안타까운 일은 근대 세계가 해오던 것처럼 기독교를 철학적 시도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세계관을 이야기할 때 기독인들은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기독교적인 관점이 아니라 기독교적인 삶이다. 이 말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신앙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을 때, 이는 말씀하신 그대로 개념으로서의 진리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서의 진리가 되심을 언명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길과 진리와 생명에 대해 가르치시려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길과 진리, 그리고 생명 그 자체로 우리와 관계를 맺어 우리를 구원하시려 오셨다는 뜻이다.
서양적인 기독교가 ‘계약’에 기반을 세울 때 동양적인 기독교는 ‘관계’에 기초를 세웠다. 우리가 오랫동안 한 쪽 폐로만 숨쉬어 온 기독교에 의존해 왔다면 이제는 두 쪽의 폐로 숨을 쉬어야 할 때가 왔다. 즉 계약과 관계는 동행을 해야 할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가 가장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곳이 어디인가 보라. 서양이 아니다. 동양이다. 바로 동양에 기독교의 미래가 있는 것이다. 현재 아시아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흥의 물결은 상상을 초월한다. 현실이 말해주듯이 서구의 기독교는 죽어가고 동양의 기독교는 번성하고 있다. 여기서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서구 교회들이 과거에 기독교가 마치 최대한 희랍적인 것이 되려고 했던 것처럼 지금도 여전히 서구적인 것으로만 남으려고 한다는 점이다. 서구인들 또는 서구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계몽주의 문화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깨닫지 못한다.
우리가 잊고 있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께서는 매우 동양적이셨다는 점이다. 히브리문화 역시 동양적 문화이다. 서구 교회가 동양 교회를 향해 방향을 돌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회복이며 미래를 향한 소망의 여정이 될 것이다.
교회의 동서동행, 이것이 21세기 세계 교회가 꿈꾸는 가장 아름다운 동행이 되길 기대한다.
해외석학 칼럼―레너드 스위트 교수] ‘통(通)’ 하는 교회
지난해 4월 미래 교회 연구의 오랜 동반자인 김영래 감신대 교수를 통해 한국의 성경통독 전문가 조병호 목사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동서 교회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나누면서 나는 한국어의 ‘통(通)’이라는 말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말이 ‘전체·조화·연결·궁극적 관계 형성’을 뜻한다는 것과 바로 이 통이 21세기 교회의 키워드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왜 통이어야 하는가. 오래 전 일이다. 한 청소년의 어머니가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내 아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나는 “질문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올바른 질문이 되려면 “어떻게 하면 내 아들이 그리스도를 만나 그 분을 체험(경험)하게 할 수 있을까요”가 되어야 한다고 말해줬다.
이제껏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생각)로 믿는 데 집중해왔다. 만일 이 말에 동의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용어인 ‘깨달음’이라는 말을 생각해보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든, 이를 선포하는 목회자의 설교든 이성적 깨달음이 우리를 구원과 영적 성숙으로 이끈다고 믿어왔다. 이런 표현이 전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 믿음은 말씀을 들음으로써, 그리고 들음에서 깨달음으로 연결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깨달은 말씀은 삶을 변화시키는 근거와 동기를 제공해왔다. 그러나 이와 함께 와야 할 체험, 즉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심정적 영적 관계의 형성 없이 과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시인할 수 있을까.
이제 머리와 가슴은 통해야 한다. 이성은 감성과 통해야 한다. 서양과 동양은 통해야 한다. 화자(話者)와 청자(聽者)는 통해야 한다. 목회자와 성도는 통해야 한다. 나는 이것을 이중고리 또는 이중종소리라고 불렀다. 이 말은 서로 다른 것들이 서로 상반되지 않으면서 동시에 일어난다는 뜻이다. 이는 소위 포스트모던이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시대상을 잘 묘사해주고 있다. 사회와 문화 전반에 걸쳐 과거의 위계적 질서는 다양성이라는 수평적 관계로 변화하고, 어제와 오늘이 공존하는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이는 교회 안에서도 예외일 수 없다.
예를 들어보자. 많은 사람이 대형교회를 선호한다. 그래서 대형교회가 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소집단을 원한다. 사람들은 대중 속에 묻혀 사생활을 보장받길 원한다. 하지만 동시에 직접적 참여와 기여를 원한다. 젊은이들은 열린 예배의 친밀감을 원하지만 동시에 전통적 예배의 성스러움을 갈망한다.
서로 상반돼 보이는 것이 동시에 일어나는 이중고리, 이중종소리의 상황과 현실은 바로 통을 필요로 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돼 하늘과 땅 사이의 장막을 찢어놓았듯 우리도 서로 다른 것에 대한 반목이나 배척이 아니라 통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이 통을 통해 한 개체로는 작고 보잘것 없어 보이지만 거대한 영향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통하는 교회가 21세기의 희망이 되길 바란다
(번역=스피릿벤처미니스트리스코리아 대표 김영래).
[옴부즈맨 칼럼―강영안] 미션 면을 위한 제언
![]() |
국민일보 미션 면은 신문 안의 신문처럼 종합적 성격을 띠고 있다. 교계 소식이 있는가 하면 서평도 있고 설교가 있는가 하면 간증도 있다. 얼마나 많은 인력이 투입되어 미션 면을 만들어가는지 나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많은 기사와 칼럼, 간증들이 감동을 준다. 미션 면에 관해서 의견을 내기가 매우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신문을 읽으면서 계속 눈에 띄는 부분이 있기에 이번에는 미션 면에 한정해서 몇 가지 의견을 쓸까 한다.
미션 면에 실린 글들은 대부분 감동을 준다. 지난 2주간 실린 글 가운데 전주 깡통교회의 근황이나 ‘북한 선교의 빛과 그늘’, ‘아이들 손잡아 주세요’ 등의 기획 기사가 개인적으로는 특별히 좋았다. 이 가운데 최근 두 외국 신학자의 칼럼은 현재 세계 교회의 상황에 비추어서 한국 교회가 서 있는 지점과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을 다시 한번 점검해볼 수 있는 글이 아니었는가 생각한다. 특히 “하나님은 교회에 서양과 동양이라는 두 개의 폐를 주셨다”고 시작하는 레너드 스위트의 3월23일자 칼럼은 한국 교회를 위해 깊이 생각해볼 내용을 담고 있는 통찰력이 번쩍이는 글이었다고 생각한다. 장기려 장로의 평전 소개 글도 재미있게 읽은 기사였다.
미션 면은 정치나 사회면보다 고정란이 많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목사님들이 글을 쓰고 있다. 설교에 가까운 글이고 그러므로 대체로 교훈적이다. 평신도들이 쓴 글이나 관련된 글은 대체로 간증 형식의 글이다. 이와 관련해 두 가지 제안을 할까 한다. 시간을 두고 좀 생각하고 검토해보았으면 한다.
고정란 가운데 예컨대 설교 성격의 글이 매일 나가야 하는지, 아니면 가정예배를 위한 설교문으로 충분한지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평신도의 글도 간증에만 집중하지 말고 전문 분야와 관련한 기독교적 관점과 시각을 핵심적으로 논의하는 글도 고려해볼 만할 것이다. 교훈을 주고 행동을 부추기는 글도 필요하지만 정보를 얻고 지식을 얻는 글도 필요하다.
미션 8개면 가운데 광고가 차지하는 분량도 만만치 않다. 광고 지면 할애가 불가피한 점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내용면이나 디자인 측면의 검토가 있으면 좋겠다.
특정 목사의 연간 집회 스케줄은 누구를 위한 광고인지 알 수 없다. 비슷한 광고가 여러 차례 실렸다. 사각형의 사진으로 지면을 가득 채우는 집회 광고도 시각적으로 좋지 않다. 기독교계 신문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이다. 어떤 직위를 좋아하고 사진 내기를 좋아하는 교역자들의 문화가 반영되어 있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제는 광고 형식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끝으로 하나 더 제안하자면 미션 면도 다른 면 못지 않게 보도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민일보를 읽는 크리스천들은 한국 교회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어 한다. 홍보 성격의 기사나 세미나 기사뿐 아니라 사건, 사고, 그리고 뉴스 가치가 있는 이벤트에 대한 기사가 지금보다는 많이 실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재 인력으로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각 교단 신문과 초교파 주간 신문과 연계할 때 좀더 폭넓은 보도 기사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강영안 교수(서강대·철학)
[해외석학 칼럼―레너드 스위트 미국 드루대 석좌교수] 성경이 이끄는 교회
21세기 포스트 모던 시대, 고도의 기술문명과 반기독교 문화라는 거대한 해일이 교회를 덮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회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셨다. 거센 파도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교회라는 방주를 지켜주셨다. 그리고 앞뒤를 분간할 수 없는 엄청난 파고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항해자들을 위해 영적 나침반인 성경을 주셨다.
항해자들에게 나침반은 문자 그대로 생명줄이다. 그래서 항해 중 기후변화로 인한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선원들은 나침반을 목에 걸었다. 영적 항해자들에게 성경은 칠흑같은 영적 어둠 속에서도 교회의 항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가장 중요한 영적 나침반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워드 핸드릭스는 영적 리더는 ‘가슴에는 자석을 머리에는 나침반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마음 속의 자석은 그리스도요, 머리에 가진 나침반은 성경인 것이다.
사실 교회가 성경을 말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때로는 기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특히 위기의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프로 미식 축구팀 그린베이 패커스의 감독인 빈스 롬바르디는 기본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이었다. 한 번은 무적의 패커스가 실력이 형편없는 팀에게 패하자 선수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소리쳤다고 한다. “기본으로 돌아가자.” 그리고 미식축구공을 높이 들고서는 “자, 여러분. 이것이 축구공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교회는 이제 성경을 다시 높이 들고 “이것이 성경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라고 외쳐야 한다.
교회는 때로 성공·목적·정의와 같은 것들을 목표를 향한 방향표지판으로 삼고 달려왔다. 그러나 누구를 위한 성공이며 누구를 위한 목적이며 누구를 위한 정의였는가? 혹시 지금 이 순간 방향감각에 이상을 느끼는 교회가 있다면, 지금이 바로 영적 나침반인 성경을 바라볼 때이다.
성경은 말해줄 것이다. 성공이든, 목적이든, 정의든 그것은 “하나님의 성공이요 하나님의 목적이요 하나님의 정의가 되어야 한다”고.
성경을 통해 우리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를 알고 체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볼 때마다 “내게 하나님의 숨을 불어넣어 주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를 만난다는 것은 성령의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하나님의 숨을 들이쉬고 삶으로 변화된 성경적 삶을 내쉬게 되는 것이다.
성경이 이끄는 교회는 곧 예수 그리스도가 이끄는 교회가 된다. 원리나 교훈으로서의 성경이 아니라 우리와 인격적 관계를 맺기 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끄는 교회가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인 것이다.
교회여, 기본으로 돌아가자. 성경으로 돌아가자.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자.
(번역=스피릿벤처미니스트리스 코리아 대표 김영래)
첫댓글 http://cafe.naver.com/ma77/7372 관련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