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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 0시 | 3시 | 6시 | 9시 | 12시 | 15시 | 18시 | 21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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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 | 맑음-9℃ | 맑음-12℃ | 맑음-14℃ | 맑음-13℃ | 구름조금-5℃ | 구름많음-2℃ | 구름많음-4℃ | 흐림-5℃ |
강수확률 | 0% | 0% | 0% | 0% | 10% | 20% | 20% | 30% |
풍속 | 남서풍1m/s | 남풍1m/s | 남풍1m/s | 남풍1m/s | 남서풍2m/s | 서풍4m/s | 남서풍4m/s | 남서풍4m/s |
습도 | 75% | 80% | 75% | 75% | 35% | 35% | 50% |
방한복, 스패츠, 아이젠 등 철저한 준비에 대하여 재 공지를 총무님께 요청 후 당일 서울을 출발하였습니다. 예상대로
서울의 겨울, 새벽도 찬 기운이 감돌고 예정된 인원 중 4명이 변동이 생긴 가운데 서울에서 출발하였습니다. schedule에 따라도착한 첫 성지 신남 성당,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피정은 완성되어 갑니다. 화려하지 않고 단순함에서 묻어나는
거룩함은 강요가 아닌, 자각의 시간으로 이끌어 주고 결국에는 화려한 모순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이런저런 궁리에 얻는
것은 대부분 진리에서 벗어난 생각이 많습니다. 인성도 맑고 흐림에 따라 중요한 사실을 꿰뚫어 보고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지만 단순히 일궈낸 자연 체험은 직관의 능력으로 단순으로서 작은 길을 갈 수 있고 작음은 결국 평등한
배려로 평등의 가치를 완성 하게 합니다. 자연 안에서 배우고 경험하는 직관은 자유로움입니다. 인간만의 사고의
중심의 사회가 아니라 성현들에 말씀과 더 나아가 복음 중심의 사회의 중요성을 깨달으며 제대를 향해 인사를 올렸습니다
정적에서 오는 고요함, 정숙이라 함축해서 표현하고 싶은 분위기와 어울리는 성전, 옛날에는 신남 지방 공소였습니다.
하느님의 강원도에 첫걸음은 물이 풍부하다 붙여진 풍수원이었습니다. 선교사도 없는 상태에서 하느님이 좋아 온갖
박해에 시달리면서도 믿음을 놓기 싫어하였던 조선의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풍수원으로 숨어들어 80여 년을 성직자 없는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다 한불조약으로 박해가 사라지자 파리 외방전교회와 바티칸은 조선 천주교회를 제대로 세우기
위하여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1888년 파리 외방전교회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르메르 이(Le Merry) 신부님께서
부임하셔서 정식 교회로 출범하게 됩니다. 풍수원 관할 구역은 춘천, 화천, 양구, 홍천, 원주, 양평 등 12개 구역을
담당하였으며 12개 군을 통틀어 신자 수는 약 2,000명이었고 성전은 초가집을 스무 칸을 사용하였습니다. 이후 세월이
흘러 공소들은 본당으로 바뀌고 춘천교구와 원주교구로 분할 발전되어 신남의 공소는 춘천교구로 소속 유지되어 오다
다시 또 변화의 길을 걷게 됩니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가장 피해를 본 교구는 강원도 교구였습니다. 파리 외방 전교회 이후 강원도 지역에 뿌리를 내린
성 골롬바 외방전교회에 선교사들은 강원도 깊은 오지까지 선교의 영역을 넓혀 괄목할만한 선교의 역사를 남기게 됩니다.
특히 호주 맬버른에서 출생하여 아일랜드 성골롬바 신학교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후 26살의 나이로 한국 춘천 지목구 홍천
성당 보좌신부로 부임하신 필립보 크로스비 신부가 계셨습니다. 한국명은 조선희 필립보로서 재임 시 대동아전쟁 당시 일본군에
의해 연금당하는 고초를 겪었으며 6.25동란 당시는 인민군에 체포되어 포로로서 별의별 고초를 겪어야 했던 신부님이셨지만
한국의 사목을 단 한번도 포기하지 않으셨던 분이십니다. 당시 고초에 대하여 담담한 필체로 고통 중에 이야기들을 1955년 고국
맬버른에서 영문으로 출판하였고 2003년에는 한국판으로 기나긴 겨울이란 제호로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재 출판 시 김운희
교구장께서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서문에서 “주저앉고 싶었던 고난의 시절을, 이방인이었던 조 신부님은
철저하게 십자가를 지고 사셨다”면서 “그분의 삶이 우리 모두의 부족한 믿음을 깨우치고 북돋우는 내면의 종소리가 되기를
기원한다”
고 말했습니다 신부님은 2005년 3월 24일 고국에서 선종 하십니다. 당시 공소였던 신남 공소에서 머물고 계셨던 조 신부님은
부근에 게세마니아 동산을 만드십니다. 그리고 동산 지기를 자처하시며 머무셨습니다. 이후 본국으로 귀국 하신 후 여러 명의
후원인의 도움으로 지금의 게세마니아 동산으로 거듭나 수많은 신자들의 영혼을 맑음으로 이끄는 현장이 되었습니다.
- 게세마니아의 집 종탑 -
- 게세마니아의 집 앞 소양강 -
주님의 자녀로 철저하게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사셨던 조선희 필립보 신부님을 생각하며 묵상 끝에 작은 마음 하나를 성전에
내려 놓았다. 당신께서 심어 놓으신 사랑의 나무가 성목이 되어 우리를 반기고 있습니다. 그 모습 그대로 사랑과 평화의 묘목을
심겠나이다. 아멘~ 알렐루야,
작은 공소에서 본당으로 그리고 다시 부근 소양 강변에 게세마니아 동산을 세우시고 일대 동산 지기를
자처하셨던 조선희 필립보 신부님의 한국식 이름에서도 한국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기도로서 늘 기억해야 겠습니다.
순례를 통하여 얻어진 은총과 기쁨은 나눔을 통하여 평화의 초석으로 거듭나게 하여야 한다! 라는 결심으로 내려서는 걸음일까?
무척 경쾌하게 느껴졌습니다. 다시 차로 20분을 달려 도착한 인제 성당
전쟁에 참여하였던 미군들의 도움으로 1955년 건립된 인제성당 주보 성인은 묵주의 기도 모후, 주임 신부님은 현재 작년 9월에
부임하신 김명식 가브리엘 신부님이십니다. 반갑게 맞아주시는 수녀님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날이 너무 차, 잠시 미리 피워 놓은 난로 부근에 서서 몸을 녹였다. 여러 대의 난로가 가동 중이었지만 적정 온도에 익숙하게
지내온 도시 사람으로서는 다소 부족한 열기였다. 너무나 높은 열에 집착하는 에너지 낭비는 아닌지 자신을 잠시 자신에
대한 에너지 효율적 사용과 관련하여 반성하는 시간을 갖어 보았습니다.
시작 성가와 함께 입장하신 가브리엘 신부님께서는 재속회원인 우리들에게 각별한 배려의 인사를 해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신부님께서는 마라톤 매니아셨고요 지금은 걷기를 주저하지 않는 신부님이십니다. 지금도 진부령까지 걸어서
다녀오시는 건각이십니다.
묵주 기도의 성모는 가돌릭에서 묵주(로사리오)와 관련된 마리아의 호칭으로서 묵주 기도의 모후, 로사리오 성모, 거룩한
묵주 기도의 모후 등으로도 불립니다. 로마 가돌릭 교회에서는 10월 7 일을 묵주 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날은 1571년 오스만 터어키 제국의 그리스 서부함대를 상대로 유럽의 그리스도교 연합 함대가 대승을 거둔
레판토 해전을 기념하기 위하여 제정되었습니다. 이 날은 승리의 성모 기념일이라고도 합니다.
성찬의 전례를 통하여 작은 기도를 묶어서 성모님께 놓아드렸습니다. 점점 사람의 귀중함을 잃어버리는 현대인들에게
각성의 시간을 주시옵소서 또한 언어의 아름다움과 그 진정을 통하여 깨달아 난무하는 모멸, 모함이 짙은 댓글에서
벗어나 평화가 가득한 소통의 길을 열어주옵소서 아멘~~
퇴장 성가와 함께 퇴장하신 신부님께서 제의를 갈아 입으신 후 다시 제대 후면에 서서 함께 성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신 후
퇴장하시다 안드레아 형제님과 인사를 나누셨습니다.
카메라를 모니카 자매님께 맡긴 후 severino 형제도 오랜만에 단체 화보 제작에 참여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모니카 자매님 감사!
자작나무 그늘에서 예수님과 마르티나 자매님을 함께 촬영을~~
잠시 주임 신부님과 사무실, 수녀관, 사제관 양로원 본당 사이에 있는 등나무 아래에서 환담이 있었습니다.
주임 신부님을 모시고 단체 사진을... 신부님! 감사합니다.
신부님께서 들려 주시는 창조적 질서 보호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식사의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아주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오색의 케이블카 설치, 원대리의 무리한 시설확장 등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신부님과 인사로서 헤여진 후 걸음여행 일정을 소화하기 위하여 원대리로 이동하였습니다.
인제군 인제읍 원대리 자작나무 숲의 정확한 주소는 강원도 인제읍 원대리 763번지 4호입니다.
숲이 만들어진 배경은 소나무 조림으로 단지를 조성하고 있던 소나무가 솔잎흑파리 번식으로 소나무 개체수가 줄게 되었으며
그 자리에 대신 1989년부터 자작나무가 자연적으로 들어와 자라는 모습을 보고 산림청에서 8년 동안 집중적으로 70 여만 그루를
심으면서 지금의 자작나무 숲으로 변신하게 된 것입니다. 숲 유치원이라는 이름 아래 아이들에게 개방하면서 전국에 소문이 나자
해마다 방문 인원이 늘어나 진입로, 탕방로를 확장한 후 이어서 주차장, 화장실 시설까지 완비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탐방인원을 정식으로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13년 55,230명이 다녀 갔으며 2014년은 115.000명, 2015년 212,400명, 작년은
224,00명이 다녀간 곳입니다.
입산 가능 시간은 하절기와 동절기로 구분하여 다른데
5월 16일 - 10.31일 까지를 하절기로 09:00 18:00까지 운영하며, 입산 가능시간은 09:00 - 15:00 까지 입니다.
12월16일- 1월31일 까지는 동절기로 09:00 17:00까지 운영하며, 입산 가능 시간은 09:00-14:00 까지 입니다.
입산 금지 시기는 별도로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봄철: 2월1일 - 5월 15일 / 가을시기 : 11월1일 부터 12월 15일 (산불조심 기간)
오를수록 쌓인 눈이 달라지는 자작나무 숲으로 가는 길
입구에 들어 섰습니다.
선두는 수산나, 실비아 자매님, 그 뒤로 노병금 바울로 자매님이 따르고 저 멀리 데레사님께서 보이십니다.
순백의 나무 한 그루씩 갖은 후, 수산나, 모니카, 카타리나,마틸다, 프란치스카, 데레사와 함께 ~~~
말가릿다 마리아 자매님과 안드레아 형제님 부부께서도 눈부신 자작나무 숲에서 망중한을 즐기고 계십니다.
모니카 자매님도 숲을 응시하며 순백의 영원한 어머니 성모님을 생각하고 계시는 듯합니다.
그림자 같은 형제 요셉형제님을 숲 사이를 통하여 발견한 후 살짝 샷다를....
헬레나 자매님도 자작나무 숲으로 침잠해 가시는 것 같습니다.
스마트 폰 카메라로 서로 서로 챙기며 즐기는 시간.
바올로 자매님 역시 자작나무가 되어 숲 언덕에 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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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앗! 인사 드립니다.
강원도의 역사와 천주교의 박해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올려주신
세베리노 리더님께
감사다는 인사 드립니다.
복습 열심해서
다음기회에 100점 만점~ ㅎ
이만 총총 물러 나겠습니다-^^
은총이 충만된 하루가 되시기를 기원하며 총총~~~ 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