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소리가 시끄러워지면서 화개사람들은 모두 다시 바빠졌다.
내가 군청으로 도청으로 싸다니는 새에 허씨는 혼자서 산에 다녔다.
주말을 맞아 모처럼 숙소에서 쉬고 있을 때 식당을 하는 박씨가 놀러 와서
어처구니없는 무용담을 늘어놓느라고 바쁘다.
박씨는 숙소 앞에서 은어 회를 곁들여 참게 매운탕 집을 한다.
아담한 식당이지만 박씨의 아내 구례 댁의 솜씨가 좋아서 단골손님이 꽤 많이 몰려들었다.
회는 칼질에서 맛이 나온다고 했다.
어떤 칼로 어떻게 회를 쳐내느냐에 따라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그 맛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여름에 먹는 은어회는 비린내 대신 수박향이 은은해서 맛이 일품이었다.
박 씨네 식당에 아침부터 단골손님이 들었는데,
일에 짜증이 난 박씨는 비싼 은어를 가로로 회쳤고
참게 다리를 댕강 잘라 재료를 일부러 망쳐놓았다는 것이다.
구례 댁은 그런 박씨를 탓하는 대신 놀다 오라고 용돈을 쥐여주며 집에서 쫓아냈으며
목적을 달성한 박씨는 우리의 숙소로 냅다 달려와서는 저 야단을 하고 있다.
화개사람들은 모두 다 어떤 식으로든지 지리산에 기대어 덕을 보며 산다.
우전차만 만들고 쉬는 윗마을 정씨도 와 있고,
땅꾼 양씨도 오는 중이니 점심내기 화투를 한판 하자고
내 턱밑에서 졸라 대는 박씨의 모습이 밉지 않았다.
더구나 놀이판의 신사로 정평이 난 정씨와 양씨 하고서라면
즐거운 한 판이 될 수 있어서 판을 벌였다.
양씨와 박씨의 경상도 사투리가 시끄럽지만 그 새새로 한마디씩 툭툭 양념을 치는
정씨의 추임새는 잘 짠 한 편의 코미디였다.
웃고 즐기느라고 비가 오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천둥 번개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예삿비가 아니었다.
태풍의 예보는 있었지만 예보보다 하루 먼저 비를 퍼붓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 아침에 산으로 간 허씨를 걱정하며 우리는 놀이판을 접었다.
잠시 후 흠뻑 비를 맞은 허씨가 무사히 돌아왔다.
토박이 셋은 비 단속하러 각자 집으로 돌아가고 허씨하고 나만 남았다.
허씨는 지금 당장 대성 골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대성 골 물가에서 야영을 하던 피서객들이 불어난 물에 쓸려갈 것 같다면서 서둘렀다.
나도 허씨를 따라나섰다.
불어난 흙탕물은 노도가 된 채 둑을 넘실대며 사납게 내리치고 있었다.
삼실 동아줄을 걸쳐 메고 우리는 단숨에 의신으로 내달았다.
의신다리는 곧 넘칠 것 같았다.
다리 바로 앞에서 산 등을 바라보고 비탈을 올랐다.
비에 젖은 바닥은 매우 미끄러웠다.
나는 몇 번이나 미끌어 졌지만, 이를 악물고 허씨를 바짝 뒤쫓았다.
점점 더 굵어지는 빗줄기가 눈앞을 가렸어도 허씨는 거침없이 비를 뚫고 나아갔다.
이윽고 조난지점이 내려다보이는 산마루에 닿았다.
마루에서 물골로 내려가는 길은 벼랑이었다.
젖은 이끼와 바위는 기름칠을 해놓은 것 같았다.
바위 사이에 자라는 잡목과 소나무 가지를 의지해서 미끄럼을 타면서 물골로 다가갔다.
골은 허씨의 짐작대로였다.
미처 물을 건너지 못한 몇 쌍의 야영객들이 불어나는 흙탕물에 쫓겨
벼랑에 위태롭게 매달려 도움을 기다리고 있었다.
발아래는 십여 미터쯤 되는 밋밋한 벼랑이고,
바위틈에 자라난 소나무 가지에 그들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이제 곧 불어나 몰아칠 급류가 이들을 쓸고 지날 것이 틀림없었다.
허씨는 소나무 밑둥에 밧줄을 단단하게 걸어 매더니 그 줄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의 구조 동작은 재빨랐다.
아홉 명이나 되는 그들을 하나씩 매달아 끌어올리고 나자마자
불어난 물은 소나무 위를 사납게 넘쳐흘렀다.
빗줄기는 여전히 세찼지만 돌아오는 길은 훈훈하였다.
허씨가 앞서고 내가 꼬리가 되어 그들의 놀란 가슴을 달래주며 숙소로 돌아왔다.
그들 모두는 지쳐서 얼이 빠졌다. 더운물과 라면으로 그들을 진정시켰다.
멍청하던 그들이 하나 둘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그때야 그들은 허씨와 나에게 고마워하면서 민망해 하였다.
그러나 허씨와 부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을 보살피는 일에만 정성을 쏟았다.
비는 다음 날 거센 바람이 지나가고서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멈추었고
햇볕 쨍쨍한 여름날이 되었다.
도시에서 온 그들은 무성한 말들로 인사치레를 하고 돌아갔고
일상으로 돌아온 허 씨 부부는 그저 담담하고 무심하였다.
한두 번 그래 온 것이 아님을 그들의 태도에서 알게 되었지만
나는 그의 침묵을 굳이 건드리지 않았다.
그 비로 화개골만 빼고 지리산 남쪽 물골 안에서 여러 사람이 다치고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