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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냥공장 아가씨 (구전가요) |
< 인천의 성냥공장, 성냥공장 아가씨. 하루에 한갑 두갑 일년이면 3백60갑. 치마밑에 숨겨놓고 정문을 나서다 치마밑에 불이 붙어 빽**가 되었네.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는 빽**!
부천의 설탕공장, 설탕공장 아가씨. 하루에 한포 두포 일년이면 3백60포. 치마밑에 숨겨놓고 정문을 나서다 치마밑에 봉지 터져 돌**가 되었네. 부천의 설탕공장 아가씨는 돌**! >
* 원래 가사가 쫌 외설스럽다. (노래 - 꽃봉오리 예술단)
인천은 성냥의 도시였다. 성냥 제조업은 인천의 산업을 일으킨 불씨였다. 1886년경 인천에서 첫 성냥공장이 생겨났고 1917년 10월에 국내최대 규모의 조선인촌회사가 문을 열었다. '우록표' '쌍원표'등이 이 회사 제품이다. 한때 상시고용인원이 여자 300여명, 남자 100여명이 넘었고 하루 평균 2만7천 타를 생산했다. 성냥공장은 서울이나 지방학생들의 수학여행 코스이기도 했다. 해방후 지포(Zippo)라이터가 유행 하면서 조선인촌회사도 60년대에 문을 닫았고 70년대 중반까지 대한성냥,UN표 팔각성냥, 기린표 통성냥,비사표 갑성냥 등이 그 명맥을 이어갔다. 그러나 일회용 라이터가 생산되면서부터 그나마 성냥의 불꽃은 거의 사그러 들었다. 성냥공장이 모두 없어진 인천에는 이제 첨단산업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 굿모닝 인천 중 발췌 -
프로야구가 지역연고를 바탕으로 태동했기 때문에 초창기부터 팬들은 각자 지역을 대표하는 노래로 응원을 하였는데 '연안부두'가 인천팀의 정식 응원가였다면 '성냥공자 아가씨'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온 구전가요로 특히 군대에서 많이 불리운 노래이다. 9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인천야구장 관중석에서 재미삼아 불리워지곤 했다. 특히 술취한 아저씨가 앞에 나와 선창을 하면 나머지 남자 어른들이 따라부르곤 해 주위 여성들의 얼굴을 붉히게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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