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되게 심한 방황의 시기에 한줄기 광명 - 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의 안정을 되찾게 해준 책이 있다면 바로 도덕경이다. 집착을 버리고 도가적인 삶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나에게 필요한 삶의 태도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물론 내가 "도가적" 사상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그것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스스로를 비우고, 낮추고, 자연 그대로 둔다. 흘러가는 데로 몸을 맏긴다. 자연 그대로 둔다는 것은 '방치' 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데에 있어 필요한 '인위' 를 최소한으로 줄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하게 도가적으로 보면 '인위' 는 그 자체로 다른 종교에서 칭하는 '악' 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비움' 의 의미에서 '버림' 은 달리 보면 모 스님께서 말씀하신 '무소유' 와 비슷하다. 소유하게 되는 것은 집착하게 되고, 그 집착이 온갖 번뇌와 고통을 야기한다.
사랑은 서로를 '소유'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함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하던 누군가가 사라졌을 때 내가 '소유' 하고 있던 무엇이 없어졌다는 생각은 집착으로 이어진다. 집착은 버려야 한다. 나는 당시 그러한 고통들을 버림으로서 극복했다. '버림'은 내 마음을 평정시켰다.
그러나 지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당시의 '버림' 은 집착과 고뇌를 버리면서 희망과 야망까지 함께 버렸다. 패배자의 윤리로서의 도가 사상이 발휘된 것이다. 춘추전국 시대에 수많은 전쟁이 치루어 지면서 강력한 세력이 생기고 그에 따라 쇠약한 세력이 생겼다. 도가 사상은 이러한 쇠약한 세력에게 정신적이고 사상적 위안을 주었다. 현대 사회 역시 인간과 인간간의 보이지 않는 각종 승패가 분명히 존재한다. 상호가 이득을 취하는 win-win 게임이나 상호 이득이 없는 zero-sum 게임도 있지만 수능 시험이라던지, 상품의 선택, 사랑에 까지도 승패는 존재한다. 고로 승자와 패자 역시 존재한다. 이러한 현재의 패배자들을 위해서도 도가적 사상이 과연 긍정적인 위안을 줄 수 있을까.?
버림의 가르침은 나로 하여금 초기에는 모든 것을 버리게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필요하고 챙기는 것들이 생기면서 버리는 대상을 가리게 되었다. 나에게 긍정적인 희망과 용기는 버리지 않고, 집착과 고뇌를 버리자. 스무살의 나이에 모든 것을 버리기에는 인생이 아깝다. 이런 생각들이 문득 들었다.
이런 생각은 생활패턴에까지 이어져서 "언젠가는 쓰겠지" 하면서 쌓아두었던 각종 잡동사니들을 과감히 버리기 시작했다. 아, 물론 나름대로 신중하게 검토를 해 가면서 말이다. 잡동사니들을 치우니 집안이 조금은 넓어졌다. 그리고 애지중지는 아니지만 꽤 길어오던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것도 몇주 전에 미용실에 가서 적당한 돈을 들여 머리를 굽혔었던 파마머리었다. 이 머리카락이 나의 용모향상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1차적인 이유였고, 굳이 지금 시기에 용모향상에 힘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 2차적인 이유였다. 머리카락을 자르면서 생기는 이득은 시간도 절약되고 머리카락이 방에 날리지도 않고 관리하기도 간편한 점 등등 많은 점이 있었다.
소위 '버림' 에 다시한번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내 앞길을 막는 것, 귀찮은 것, 필요 없는 것. 하나 둘 씩 다 버렸다. 결국에는 사이버 공간까지 이어져서 홈페이지도 "버리겠다" 라고 선언을 하고 , 싸이월드도 수많은 일촌들을 "숙청" 했다. 물론, 그러한 과정들은 숨겨진 재법 비중있는 버림을 위한 일종의 연막이기도 했다. 아니, 연막이었다.
한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을 버리기란 쉽지 않다. 그것도 1년 이상 굴려서 제법 커진 그 마음을 버리기란 더욱 어렵다. 어쨌든 제법 잘 해 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마음의 변화는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을 "잊었다" 라고 단정짓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러한 것처럼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 라고 말할 수도 없다. 어쨋건 지금은 제법 평화롭다. 버린다, 잡는다 하는것은 디지털적인 구분이었다.
나는 지금, 아날로그로 간다. 때로는 점점 빠르게(accelerando) , 때로는 점점 느리게(ritardando). 그리고 더이상 잠들어 있지도 않을 것이다.
2004.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