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주디>
1. 어린 시절 흑백 TV로 보았던 <오즈의 마법사(1939)>는 신비로운 마법과 동화의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희망과 꿈을 찾아 떠난 소심하고 부족한 존재들은 역경과 고난을 겪으면서 점차 독립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그 과정의 중심에는 당차고 명랑하며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소녀 도로시가 있었다. 지금도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의 추억에 남아있는 이 영화의 도로시 역을 맡은 배우가 ‘주디 갈랜드(1922-1969)’였다.
2. 영화의 성공은 주디에게 영광과 명성을 선사했지만 또한 비극의 시작이기도 하였다. 영화사의 강요로 주디는 수많은 영화와 노래 공연에 동원되어야 했으며 먹는 것, 자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통제의 삶을 살아야 했다. 자유를 잃어버리고 진정한 사람들과의 관계도 학습하지 못한 주디는 성인에 되었을 때 혹독한 시련과 마주하게 된다. 그녀는 점차 영화의 중심에서 밀려났고 과거의 명성과 견줄 수 있는 현재를 만들어낼 수 없었다. 사랑에 목마른 그녀였지만 그녀에게 접근한 남자들은 그녀의 명성과 인기를 이용하여 한몫 보려는 파렴치한 인간들뿐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서서히 무너져 내렸고 3번의 이혼을 겪었으며 가난 때문에 아이들도 돌볼 수 없는 황폐한 중년의 삶과 직면한다.
3. 영화 <주디>는 돈 때문에 강행했던 그녀의 마지막 공연 <런던 공연>을 배경으로 한다. 미국에서의 인기는 하락했지만 외국에서는 아직도 그녀를 보려고 하는 수요가 충분했다. 런던 공연은 그녀에게 삶의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안겨준 시간이었다. 런던 시민들은 여전히 과거의 도로시에 열광하였으며 특히 그녀를 방문한 한 동성부부의 소박한 애정에 큰 감동을 받기도 한다. 런던은 그녀에게 마지막 사랑의 가능성을 안겨주기도 하였다. 한 젊은 남자의 적극적인 구애를 받고 그녀의 성공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에 네 번째 결혼에 이른다. 어쩔 수 없이 떠난 공연이었지만 런던은 새로운 희망의 등불로 그녀에게 다가온 것이다.
4.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춘몽’이었으며 마지막 희망에 지나지 않았다. 한몫 보려는 욕심으로 시도한 새남편의 공연기획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남자의 욕심을 갈파한 주디는 절망에 빠져버린 것이다. 술과 약물 중독에 빠진 그녀는 공연에서 관객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공연스케줄을 펑크내면서 결국 공연에서 퇴출되게 된다. 진정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이가 아무도 없는 런던 거리에 버려진 그녀는 결국 6개월 후 약물 중독으로 47세의 삶을 마무리하게 된다.
5. 주디 갈랜드의 삶은 누구보다도 불행하고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아역 배우들이 겪는 삶의 가장 비극적인 전형이기도 하였다. 어린 시절에 얻게 된 명성은 결국 그녀의 정상적인 성장을 파괴했으며 주변에는 그녀를 이용하려는 탐욕스런 인간들만 넘쳐 나게 했다. 어린 시절의 성공은 인생 전체를 보았을 때 거대한 늪이 될 가능성이 크다. 어린 시절 아역 배우로 성공한 사람 중에 성인이 되어서도 인기를 유지한 사람은 극히 드물다. 주변의 과도한 시선과 관심은 자유로운 성장을 방해했으며 거대 자본의 도구로 전락하기 십상이었다. 결국 그들은 극심한 성장통에 시달리며 정상적인 삶의 괘도에 오르는 것에 실패하게 되고, 자본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되던 상황도 이윤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 때 버려지는 것이다.
6. 영화 <주디>는 불행했던 주디의 삶이었지만 따뜻한 시선을 던지며 마무리된다. 계약 해지로 무대에서 쫓겨났던 주디였지만 무대가 주었던 매력을 거부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른 가수의 무대 공연을 보러온 그녀는 마지막으로 무대에 서기를 희망한다. 동료 가수의 호의로 무대에 선 주디는 혼신의 힘으로 열창한다. 사람들은 그러한 그녀의 모습에 환호하고 그녀와 함께 영원한 명곡 <Over the rainbow>을 합창한다. 그녀는 벅찬 감동으로 말한다. “날 잊지 않을거죠?” 어쩌면 이 대사는 주디의 말이기보다는 그녀를 안타깝게 떠나보낸 우리들의 슬픈 다짐인지 모른다. 뜨거운 열정의 대상이었지만 어느 순간 잊혀지는 대중의 우상들, 주디 또한 그렇게 사라져갔지만 영화는 마지막까지 그녀에게 진정한 사랑을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그녀의 소멸을 애도하고 있었다. 마지막 합창과 박수는 한때 우리를 위로해주었던 위대했지만 무너져버린 한 예술가의 절망에 대한 진혼곡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흐를 때 흘러나오는 음악은 무겁지만 아름답게, 슬펐지만 감동적이었던 한 인간의 삶을 위로하고 있었다.
7. 주디에 대한 애도는 케잌으로 상징되어 표현되기도 한다. 계약이 해지된 후 동료들은 주디을 위로하기 위해 작은 송별연을 연다. 그때 케잌이 준비되었고 그녀에게 한 조각이 건네진다. 주디는 지극히 바라보다 한 조각을 입에 넣고 감탄한다. “너무 맛있어요.” 어린 시절 너무나도 먹고 싶었지만 결국 먹지 못했던 케잌, 삶은 먹기 위해 사는 것임에도 먹는 것이 금지된 삶은 과거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어쩌면 감독은 그녀에게 작은 케잌을 선사하면서 그녀의 과거에 대한 무지를 사과하고 마지막 순간에 달콤하고 맛있는 케익의 맛을 선사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것은 슬픈 시간이었으며 또한 삶의 진실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8. 어쩌면 영화 <주디>는 삶의 두 가지 태도가 충돌되는 지점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보여주는 작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중간에 주디는 자신있고 생생한 목소리로 노래한다. 그 노래는 가사를 통해서 “인생은 솔로, 홀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것이 진정 주디가 원했던 삶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 자신의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녀의 성장과정과 그 속에서 형성된 성격은 사람들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게 만들었다. 그녀는 끊임없이 사랑과 관심을 갈구했으며 거짓된 유혹에 빠져버렸다. 그것은 그녀의 출세작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대사의 실현이었는지 모른다. “누굴 얼마나 사랑하는 가 보단 얼마나 사랑받는 지가 더 중요한거야.” 두 가지 삶의 태도가 끊임없이 충돌하는 순간순간이 ‘주디 갈랜드’의 생을 지배한 것이다.
첫댓글 Over the rainb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