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을 정복하기 위한 대함대의 파견을 국왕 펠리페 2세에게 건의한 것은, 당시 에스파냐 해군의 최고 사령관이었던 산타크르즈 후작 돈 알바로 드 바쟌으로, 1585년의 일이었다. 당시에는 프로테스탄트 제국, 특히 영국의 사략선 때문에 에스타냐의 신대륙 무역이 오랫동안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었다.
산타크르즈 후작의 계산으로는, 영국에 육군을 상륙시켜 정복하는 데에, 수병 1만 7,000명으로 움직이는 596척의 선박으로, 육군5만 5,000명, 야포 130문, 말 1,600마리, 나귀 1,400마리, 공성포(攻城砲) 1개 부대, 보급창고 및 야전병원을 운송한다면 충분할 것으로 생각했다. 이밖에도 상륙작전에 약 200척의 상륙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 안을 시행하는 데에는 너무 많은 비용이 소요되어, 국왕은 이를 즉각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 산타크르즈 수작은, 갈리 함대 사령관의 아들로서, 젊은 시절 갈리선을 지휘하기도 하였으며, 레판토 해전에 사령관의 한사람으로 참잔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갈리선 전투의 권위자였다고 하겠으나, 그의 구상은 해상에서 영국 함대를 격멸하기 보다는 육군을 영국에 상륙시킨다는 점에 중점을 두었던 것임이 명백하였다. 일단 각하되었던 작전계획이 1586년에 부활되어 준비가 진행되었으나, 1588년 1월 산타크르즈 후작이 병사하자 후임에 군사에 전혀 경험이 없는 메지나 시도니아 공작 돈 아론소 페레스 드 구스만이 사령장관이 되었다. 실제로 1588년에 편성된 함대는 아르마다 페르시씨마(가장 신의 은총을 받는 함대), 또는 아르마다 인벤시블 이라고 불리었는바, 후세의 사가들은 뒤의 명칭인 무적함대로 더 자주 기록하고 있다. 합계 130척의 함선으로 구성되었는 바, 수병 8,000명, 노수(櫓手) 2,000명, 육병 1만 9,000명, 그리고 비전투요원 1,500명이 그에 타고 있었다.
함대의 임무는 이들 육병을 도버 해협에 있는 칼레까지 운반하고, 그 곳에 대기중인 파르마공의 프랑네세가 지휘하는 네델란드 주둔군 중 1만 7,000명을 승선시켜, 영국 상륙작전을 감행하는 것이었다., 선대의 구성은 대형 갈레온선 65척, 보급선 25척, 소형 범선 32척, 갈레아스선 4척, 갈리선 4척으로 되어 있었다. 다시 말하면이 함대는 '무적함대'라는 이름에서 연상되는 바와 같은 해상결전을 목적으로 한 함대가 아니라, 거대한 호송선단으로서 육병을 수송하기 위한 함대였다. 갈레온선이 일반 상선을 임시 전용한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무적함대를 구성하는 각 전대가 다음과 같이 지방별로 나누어져 있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힙스코아 전대각 ,레반토(나폴리)전대(戰隊),본대(本隊) ,중앙전대 ,가스티야 전대 ,포르투갈전대 ,수송선단 ,후위(後衛)부대(部隊) ,안달루시아 전대 ,비스가야전대 로 나뉘어졌다.
각 함선은 각 주나 도시로부터 징발 공출된 것으로서, 각 전대사령관도 메지나 시도니아공을 비롯하여 모두 지방의 귀족들이었다. 당시의 에스파냐는 왕권하에 통일된 절대주의 국가였다고는 하지만, 광범위한 자치권과 병력을 가진 구 봉건 영주와 자치 도시들의 약한 연합국가에 지나지 않았다. 국왕에 대한 그들의 의무는 세금과 병력을 차출하는 것 뿐이었다. 전대가 지방별로 편성되어 있었던 것도, 바로 그러한 정치구조를 반영한 것이었다.

첫댓글 사진은 어느나라 배에요..??? 스페인것 같네요!!!
스페인의 무적 함대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