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누룩, 물로만 만든 우리 술
독일은 5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맥주 순수령’이 있어 홉, 보리(맥아), 효모, 물 네 가지 재료로만 맥주를 만들고 있다. 1300여개 중․소형 독일 맥주회사들은 가격 면에서 불리함에도 재료의 다양한 가공, 새로운 발효공법 개발 등을 통해 순수성을 유지하면서도 깊고 풍부한 맛의 다양한 맥주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러한 독일맥주의 순수성은 오히려 장점이 되어 옥수수 등을 첨가하여 싸게 만드는 미국 등 세계 대형 맥주회사들과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있다.
한국 술은 주세법 상 쌀, 옥수수, 밀 등 여러 가지 곡물뿐 아니라 감미료 향료 색소 등 수많은 첨가제를 넣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첨가제 종류가 하도 많아 우리가 마시는 술에 무엇이 들어 가 있는지 알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술은 기본적으로 효모와 효소 등의 작용에 의해 자연스럽게 좋은 맛이 나와야 한다. 인간은 좋은 재료를 준비하고 온도 등 조건을 잘 만들어 주면, 술은 발효라는 신비한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소주와 막걸리 등 한국에서 팔리는 술 대부분은 아스파탐 MSG 등 여러 첨가물을 잘 섞어 대중의 입맛에 맞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한국 술 공장에서는 첨가물을 잘 다루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양조기술자가 되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게 제대로 만들어진 우리 술이 거의 없다. 막걸리 열풍이 잠깐 반작했다 사라진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우리 민족이 옛 역사서에 기술된 음주가무를 즐겼던 민족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경제적으로도 한국 술 산업은 국내 농업이나 고용확대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만 술값이 싸 국민들이 쉽게 취할 수 있을 뿐이다. 한국도 독일 맥주와 같이 우리의 대표 농산물인 쌀과 전통 발효제인 누룩, 그리고 물로만 만들어야 하는 술 종류를 하나 지정하고, 이를 중점적으로 지원 육성했으면 한다.
술을 빚어 보면 쌀, 누룩, 물만 갖고도 다양한 향과 맛이 있는 술을 만들 수 있다. 기호 식품인 술은 사람에 따라 취향이 다르지만 쌀, 누룩, 물로만 잘 만들어진 우리 술이 고급 프랑스 와인이나 일본 사케 보다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아주 드물지만 쌀, 누룩, 물로만 된 술을 만들어 파는 양조장도 생겨나고 있다. 국민들이 이런 술을 많이 찾아 마셔주면 우리 술중에서도 독일맥주, 프랑스와인 이상으로 세계에서 인정받는 술이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음악과 드라마 뿐 아니라 술과 음식에서도 한류 열풍이 생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