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최현철 기자<chdck@joongang.co.kr>chdck@joongang.co.kr>
사진= 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tskim@joongang.co.kr>
◆ 봄을 맞은 우포늪=4월의 우포늪은 새 생명들의 소리로 가득했다. 아직 물이 많이 차지 않아 밑동만 약간 잠긴 장재마을 앞 왕버들 군락엔 연록의 새순이 햇빛을 퉁기는 소리가 투명하다. 쪽지벌 드넓은 자운영 군락은 초록 잎새 사이로 막 피어나는 자색 꽃잎의 두런거림으로 분주하다. 소목마을의 소나무 위에서는 알을 낳기 위한 왜가리들의 사랑노래로 요란하며 산란기를 맞은 각시붕어들은 수면을 스치며 뽀글뽀글 동심원을 만들어 낸다. 무엇보다 겨우내 황량했던 물에 수생식물들이 만든 초록 융단이 가장자리부터 중심부로 쫘르르 깔리기 시작했다.
생물 다양성의 표본이라는 우포늪은 그 안에 터잡고 사는 다양한 생물이 만개하는 여름이 가장 보기 좋다지만 겨울을 벗어던진 봄의 모습은 생명이 펼쳐지는 과정으로 싱그럽다.
사실 우포늪의 봄은 물안개로 시작한다. 물안개는 일교차가 10도 이상 벌어지는 이른 봄과 늦가을에 자주 생긴다. 수면보다 먼저 식은 차가운 공기 속으로 수분이 증발하면서 응결돼 안개를 만든다. 일거에 와락 생기는 것이 아니라 목욕탕의 김처럼 모락모락 피어난다. 그 속으로 고기를 잡는 쪽배가 뜨면 그대로 한 폭의 수묵화다.
이곳의 고기잡이 방식은 독특하다. 수초가 많아 산소와 먹거리가 풍부한 덕분에 '물 반 고기 반'이란 말이 실감날 정도로 고기가 많다. 어부들이 장대로 배 바닥을 툭툭 치면 놀란 고기가 땅속으로 머리를 처박는데, 그곳에 가래라고 불리는 대나무 통발을 박아 손으로 건져낸다. 물론 아무나 할 수는 없다. 자연생태 보존지역으로 정해진 이곳은 풀 한 포기, 곤충 한 마리도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 어로활동을 허가받은 15가구를 제외하고는 낚시마저도 엄격히 금지된다.
◆ 생명과 만나는 길=수면 둘레 7.5㎞에 수면적 70만 평에 이르는 거대한 우포늪은 우포.목포.사지포.쪽지벌 등 네 개의 늪으로 다시 나뉜다. 물길은 모두 통해 있지만 물이 흐르며 잠시 속도를 늦춘 곳마다 만들어진 제방이 경계선 역할을 한다.
우포늪은 장마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수심이 어른 키를 넘지 않는다. 게다가 부식층이 두껍게 싸여 갯벌처럼 발이 푹푹 빠지지도 않는다. 수심이 얕다 보니 바닥까지 햇볕이 충분히 내리쬔다. 순채.검정말.물수세미 등의 침수식물이 바닥 전면에 무성하다. 수심이 얕아 바람에 의해 물이 교란되기 때문에 여름철에도 물이 정체되는 일이 거의 없다. 산소가 충분히 공급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수면에는 개구리밥과 어리연.네가래 등 부엽식물들이 가득 깔린다. 6월부터는 아예 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이곳에 놀러 온 어린 아이가 수생식물이 깔린 수면을 풀밭으로 알고 덤벼들었다가 물에 빠졌다는 얘기도 있다. 무성한 수생식물들이 숨을 곳과 먹이를 제공하기 때문에 곤충과 물고기가 풍부하고 먹이 피라미드를 따라 조류와 양서류.포유류들이 생명을 유지해 나간다. 이 중에는 가시연이나 남생이.긴꼬리 투구새우.수리부엉이.노랑부리 저어새.수달 등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종들도 수두룩하다.
늪의 생명을 가장 가깝게 느끼려면 약간의 수고가 필요하다. 소목제방부터 시작해 밭두렁과 얕은 산길을 넘어 사지포둑과 대대둑까지 이어지는 길을 두어 시간 정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버들이 이룬 터널을 늪의 물길이 바로 옆으로 스쳐가고 자운영 군락이 꽃길을 만드는가 하면 언덕에서는 사지포와 넓은 우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물따귀나 백로, 살찐 청둥오리는 기본. 가끔 수리부엉이에게 먹힌 왜가리의 깃털이 널브러져 있기도 하고, 운이 좋으면 노랑부리 저어새를 볼 수도 있다. 창녕IC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세진 주차장 부근 전망대가 가장 전망이 좋다지만 늪보다는 저수지 느낌을 준다. 큼지막한 이정표를 보고 그곳까지 갔다가 '애걔' 하며 돌아서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 300년 안과 밖=우포늪은 1억4000만 년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중생대 백악기 초기 이 지역은 거대한 하나의 호수분지였다고 한다. 백악기 말기부터 호수 주변의 화산활동과 육지의 침식 등을 거치면서 퇴적물이 쌓이고 호수 주변부에 수초가 무성하게 나면서 점차 늪으로 변모했다는 추정이 유력하다. 1918년에 만들어진 지도에는 이런 자연 늪이 낙동강 하류에 98개가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논으로 바뀌거나 쓰레기로 메워져 지금은 제 모습을 갖춘 늪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개발과 오염이 아니어도 늪은 변화한다. 호수에서부터 시작한 습지 변화의 마지막 단계가 늪이다. 늪에 무기물과 유기물이 점차 쌓이면서 수심은 얕아지고 결국은 소택지를 거쳐 초원으로 천이한다. 전문가들의 추정으로는 우포늪도 300년 정도면 수명을 다하고 소택지로 바뀔 것이라고 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속도를 조금 늦추거나 아니면 확 당기는 것이다. 이런 우포늪에 지난해 거대한 제방이 만들어졌다. 태풍 매미 때문에 낙동강이 범람하자 이곳 주민과 농지를 보호하기 위해 쌓았다고 한다.
이 거대한 인공건축물이 우리나라 전체 식물의 10%, 수생식물의 50~60%나 볼 수 있는 생태계의 보고인 우포늪의 생명을 연장해 줄지, 단축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 여행정보
지난해 완전 개통된 중부내륙고속도로는 곧바로 구마고속도로로 이어진다. 창녕IC로 나와 바로 우회전해 24번 국도를 타고 가면 전망대로 가는 우포늪 이정표가 보인다. 톨게이트에서 반대쪽으로 좌회전해 창녕읍내를 지난 뒤 1080도로를 타고 이방면 쪽으로 15분쯤 가면 목포늪으로 들어가는 장재마을 초입이다. 왕버들 군락을 지나 5분쯤 가면 (사)푸른우포사람들(055-532-8989) 사무실 건물과 학습용 인공 늪이 있다. 미리 예약하면 생태 가이드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1인당 5000원. 20명 이상 단체로 가면 숙박도 할 수 있다. 유어면 회룡마을의 폐교에 자리한 창녕환경연합(055-532-7856)에서도 늪 생태계에 대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늪 주변에는 숙박할 곳이 별로 없어 민박을 이용하거나 창녕시내로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