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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보리수필문학 원문보기 글쓴이: 갈뫼
보로부두르 순례기
김희준
새벽 3시에 모닝콜이 울렸다. 얼굴만 씻고 꾸려놓은 가방을 들고 로비로 내려갔다. 3시 30분경에 버스에 오르며 도시락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컴컴한 길을 버스는 달리고 사람들은 눈을 감고 말없이 부족한 잠을 보충했다. 눈을 감고 있다가 휴대폰을 켜고 보로부두르의 사진들을 한 장씩 눈여겨보다가 피곤하여 다시 눈을 감았다. 5시쯤에 마노하라 레스토랑 앞에서 내렸다.
섣달 열여드레 달빛을 등불 삼아 사위가 컴컴한 보로부두르(Borobudur) 경내로 들어갔다. 5분 정도 가로수 사이로 걸어 들어가자 사진에서만 보아왔던 보로부두르의 실루엣이 산처럼 내 시야에 나타났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세계사 교과서에 실린 그 보로부두르가 눈앞에 거대한 거인처럼 서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불자로서 언젠가부터 보로부두르를 한번 가보고 싶었던 그 염원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숲속의 요정 마노하라가 깨어나는 시간에 나무 아래의 컴컴한 길을 걸어 들어갔다. 보로부두르의 북서쪽 잔디가 깔린 마당을 서천에 떠있는 달빛을 받으며 지나서 북쪽 계단을 올랐다. 계단 입구 양쪽에는 마카라 소매돌이 있고 한 층을 오를 때마다 카라가 눈을 부릅뜨고 지키는 아치꼴 공문을 지났다. 계단 발길을 관유(觀遊) 회장님이 미리 준비해간 손전등으로 비추었다. 마침내 작은 불탑이 있는 원형의 상층부 테라스에 올라서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나는 서녘 하늘의 둥근 달이 좋아서 서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탑 안에 봉안된 부처님의 얼굴이 푸르스름한 달빛에 드러났다. 초전법륜(初轉法輪) 수인을 하고 사바세계를 내려다보는 부처님을 클로즈업하여 촬영하며 주위에서 맴돌았다. 중앙대탑 밑에 앉은 서양 여자가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비켜 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대탑의 틈새에 숨은 귀뚜라미가 울고 새벽어둠 속의 마을에서는 모스크에서 콧소리가 섞인 아잔 소리가 들어올 때부터 들려왔다. 내 귀에는 그것이 새벽 예불성 같았고, 대탑 주위의 절에서 스님이 독경하는 소리로 들렸다.
구름 덮인 동녘 하늘이 점점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해가 구름 위로 오르고 우주의 어둠은 어느덧 스러지고 사위는 희붐하게 밝아왔다. 백운이 허리에 걸린 므라피와 므라바부 화산이 보로부두르를 지키는 수호신처럼 우뚝 솟아 있다. 서북쪽에는 숨빙 화산이 멀리 보이고 서남쪽에는 므노레 석회암 언덕이 가까이서 둘러싸고 있다. 푸르고 강이 적시고 인도양으로 흐르는 케두 평원을 굽어본다. 코코넛 숲과 벼가 자라는 논이 녹색 바다를 이루고 그 가운데 점점이 떠 있는 마을에는 몽환적인 안개가 피어올랐다. 어디서 닭 울음이 들려온다. 태초의 혼돈에서 깨어나는 풋풋하고 고요한 풍경이 눈 아래 펼쳐졌다. 잃어버린 낙원에 우리가 와 있는 것만 같았다. 산업화의 속도와 불빛과 소음 속에서 영혼이 병들고 번뇌로 들끓던 몸이 어머니의 품속에서 잠든 아기처럼 한없이 평화로워진다.
우주에 가득한 바이로차나불의 지혜와 자비의 빛이 어둠을 물리치고 만상이 점차로 또렷하게 보인다. 나는 다시 일어나 탑 속에 좌정한 부처님의 법열에 찬 얼굴을 뵈러 발걸음을 옮겼다. 카메라를 설치하고 기다리던 서양여자도 없고 훤하게 밝아진 그 자리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와 있었다. 청춘 남녀가 손잡고 앉아 있고 히잡을 쓴 무슬림 여인이 휴대폰을 들고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고요하고 따뜻하고 다정스러운 얼굴의 붓다가 생로병사의 고해에서 허덕이는 사바세계의 중생들을 맞이하며 무언의 설법을 베풀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자카르타) 소장
보로부두르 대탑은 776년 사이렌드라 왕조의 비슈누왕 때 시작하고 824년 사마라퉁가 왕 때 완성했다고 한다. 가까이에 있는 하천 바닥에서 캐낸 100킬로그램 가량의 안산암 200만개를 다듬고 조각하였다. 113미터 네모꼴 기단에 높이 40미터의 대탑에는 5,000미터에 걸쳐 대형 그림이 1,460면의 부조로 새겨져 있다. 보로부두르는 12세기의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11-13세기의 미얀마 바간(Bagan)과 함께 세계 3대 불적에 들어가지만 시기적으로 제일 빠르고 건축이나 미술사적으로도 앙코르와트를 능가한다.
보로부두르에는 굽타 후기 사르나트파 스타일인 504존의 등신대(等身大) 불상이 바깥을 향하여 모셔져 있다. 동면에 항마촉지인의 부동불(不動佛, Akshobhya), 남면에 여원인의 보생불(寶生佛, Ramasambhva), 서면에 선정인의 아미타불(阿彌陀佛, Amitabha), 북면에 시무외인의 불공성취불(不空成就佛, Amoghasiddha)이 각각 92존씩, 5째 방형 테라스에는 설법인의 석가불로 추정되는 64존이 감실에 봉안되어 있다. 대탑의 상단 원형의 세 테라스에 있는 종 모양의 탑 안에는 전법륜인의 비로자나불로 추정되는 72존의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인도에서 5,00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자바섬에 불교가 발생한 지 1,300년이 지난 8~9세기에 세운 보로부두르 대탑은 자바문명의 금자탑이다. 신라에서 불국사와 석굴암을 조성하고 일본에서 화엄 본찰, 도다이지(東大寺)를 세운 시기에 인도네시아에서 인류미술사에 우뚝한 봉우리인 보로부두르 대탑이 조성됐다는 사실을 이번 답사여행에서 알게 된 것만 하여도 나에게는 큰 깨달음이다. 8-9세기에 인도와 스리랑카, 수마트라와 자바, 한중일 3국과 티벹과 베트남을 연결하는 아시아에는 금강승(밀교) 불교문화가 만개하였다.
1층 테라스의 제1 회랑에서 주벽은 상하 2단으로 새겨진 부조가 순례자의 오른쪽으로 펼쳐진다. 상단에는 부처님의 탄생부터 초전법륜까지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주벽 하단과 왼쪽 난간 내벽의 부조 그림들은 자타카와 비유담을 들려주며, 난간 외벽에는 수호신들이 새겨져 있다.
해가 오르고 사람들이 몰려왔다. 수학여행을 온 히잡을 쓴 여학생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시계방향으로 탑돌이를 하며 번뇌를 제거하고 마음을 정화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불보살의 세계로 올라간다.
보로부두르 부조 중에서 내가 가장 사랑한 장면은 전정각산에서 고행을 하던 보살이 네이란자라 강가에서 몸을 씻는 장면이었다. 알맞게 줄을 조율한 거문고처럼 고행도 쾌락도 아닌 중도의 수행으로 깨달음을 이룰 수 있음을 안 보살은 나이란자라 강에 와서 목욕한다. 수자타 아가씨로부터 유미죽(乳米粥) 공양을 받고서 몸을 추스르고 심기일전하여 강변의 핍팔라나무 아래에 길상초를 깔고 앉아 정각을 이룰 때까지 일어나지 않기로 결심한다.
2002년 1월 꼭 이맘때다. 불혹의 나이에 아내와 함께 간 첫 해외여행이 교사불자회원들이 법륜(法輪) 스님 따라 간 인도 성지 순례였다. 아침에 야자수 밑으로 난 흙바닥 길을 걸어서 바위투성이의 전정각산(前正覺山)을 올랐다. 붓다가 뼈만 앙상하도록 고행을 하던 유영굴(留影窟)이 기슭에 있었다. 전정각산 능선을 걸으며 주변의 녹색 융단이 깔린 평원과 은하수처럼 굽이쳐 흐르는 네이란자라강 줄기를 굽어보았다. 붓다가 자셨던 대추가 열린 나무가 자라는 산기슭에서 내려와 붓다가 깔고 앉아 성도를 하였다는 갈대풀, 쿠사가 자라는 네이란자라강으로 갔다. 부처님이 목욕을 한 강은 건기라서 강바닥은 깨끗하고 부드러운 모래알로 가득 차 있었다. 아내와 나는 바지자락을 걷어 올리고 새맑은 물이 모래알 위로 졸졸 흐르는 강을 건너서 마하보디대탑이 하늘 높이 치솟아 있고 우람한 보리수가 그늘을 드리우는 금강보좌 자리로 나아갔다.
보로부두르 부조의 보살 얼굴은 통통하고 두광마저 빛난다. 천상계의 여인이 보살이 몸을 씻는 강물에 꽃과 향을 뿌리고, 강물의 신 나가는 기쁨에 겨워 함박웃음을 머금고 있다. 보살의 머리 위에 새겨진 하늘여인의 비상하는 역동적인 자세와 산호 뿌리 같은 손가락과 발가락, 미소를 머금은 복스러운 얼굴은 여행을 오기 전에 사진을 보고 매혹됐던 장면이다.
연꽃 위에 꿇어 앉아 향로를 들고 영락을 휘날리며 하늘을 나는 성덕대왕신종의 하늘 여인이나 공후를 타고 생황을 불며 구름을 타고 천계를 비상하는 상원사 동종과 동시대에 조성한 보로부두르의 이 비천상은 인체의 아름다움을 너무나도 아름답게 조각해냈다. 안산암 돌에 새긴 부조가 붓으로 종이에 그린 그림보다 더 섬세하여 경탄을 금할 수가 없다. 올림픽에 나가 10점 만점을 얻은 루마니아의 체조 선수 코마네치의 동작이나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의 두루미처럼 우아한 자세를 떠오르게 한다. 하늘여인의 얼굴은 화장한 아내의 복스러운 얼굴을 닮았다.
네이란자라 강에서 보살이 목욕하는 장면 아래에는 몇 개의 돛과 노와 부판(浮板, Outrigger)이 달린 배를 타고 험난한 파도를 헤치고 항해하는 사람들과 꽃이 핀 나무와 야자수 아래에서 사람들에게 보시를 하는 두 명의 귀족과 용마루에 새가 앉아 있는 고상(高床) 가옥이 새겨져 있다. 부판이 달린 무역선은 태평양과 인도양을 누비며 문명 전파의 중요한 매체가 되었다.
법현(法顯, 334-420)은 이런 범본(梵本)을 얻은 다음 (스리랑카에서) 무역상인의 큰 범선에 올랐는데, … 태풍을 만나게 되어 큰 배에 바닷물이 들어차자 상인들은 서로 작은 배로 옮겨 타려고 하였는데, 작은 배에 먼저 탄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옮겨 탈 것을 두려워하여 연결된 밧줄을 끊어 버렸다. … 상인들이 경전 및 불상 등을 바다로 던져 버릴 것을 두려워하여 오직 한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하고 중국의 스님들께도 빌었다. ”나는 멀리 인도에까지 와서 불법을 구하였으니 원하옵건대 위신력으로 배가 잘 흘러가서 목적지로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대해는 어디까지인지 끝이 없이 넓고 넓어 동서를 분간할 수가 없어서 오직 해와 달과 별자리를 보면서 나아갈 뿐이다. … 90일 정도 되어서 야바제(자바)라는 나라에 이르렀다. 이 나라는 외도 브라만이 흥성하여 불법(佛法)은 말할 것이 없다.(김규현 역주, 불국기)
대장경에 들어 있는 의정(義淨, 635-713)의 대당서역구법고승전을 열람하고 인도 나란다 대학에 유학 간 아리나발마 등의 신라 스님들과 고구려의 현유(玄遊) 스님 이름을 삼국유사에 실었다. 일연 스님이 붙인 찬시를 읽자니 오늘을 사는 나의 가슴에도 잔잔한 감동이 밀려온다. 동아시아의 구법승들은 험난한 타클라마칸 사막을 걷고, 파미르 고원을 넘으며, 히말라야의 설산준령을 올랐다. 태평양과 인도양의 구만 리 거친 파도를 폭풍우 속에서 헤쳐 나아갔다. 혜초 스님도 여기 자바섬과 수마트라섬에서 쉬었다가 부처님의 나라, 천축국으로 진리를 찾아 떠났다. 우리 선조들의 신심과 외로움과 열정에 느꺼움을 이길 수가 없다.
天竺天遙萬疊山 하늘 끝 머나먼 천축 가는 길 만 첩 산을
可憐遊士力登攀 애써 오른 가련한 유사(遊士)들이여
幾回月送孤帆去 달은 외로운 배를 몇 번이나 떠나보냈건만
未見雲隨一杖還 구름 따라 한 분도 돌아옴을 보지 못하였구나.
30억년 지구 생명체의 역사에서 탄생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400만년의 장대한 진화의 여정에서 붓다가 처음으로 우주와 인간의 존재법칙을 발견하였다. 생사윤회의 고통에서 해탈하는 완전한 자유와 행복의 길을 부처님이 비로소 설파한다. 케두 평원의 므라피 화산 너머에서 솟아오른 아침 해가 붓다의 얼굴을 비춘다. 그리고 보로부드르의 불전도(佛傳圖) 120면은 여기서 끝났다.
“나는 망루 위에서 별을 보며 관찰하다가 허공중에서 그 여래께서 마치 보배산왕과 같이 한량없고 가없는 천·용 팔부와 여러 보살 대중들에게 함께 둘러싸인 것을 보았는데, 붓다의 몸에서 널리 큰 광명그물을 놓아 시방에 널리 두루 해서 장애되는 바가 없었고, 붓다 몸의 털구멍에서는 다 묘한 향기를 내어서 내가 이 향을 맡았더니 신체가 유연하므로 마음으로 환희를 내어서 곧 망루 위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열 손가락을 모아 붓다께 엎드려 예배하고, … 그 때 선재동자는 바수밀타의 발에 엎드려 예배하고 한량없는 바퀴를 돌고서 은근히 우러러보며 하직하고 떠났다.”(화엄경 입법계품)
수다나(선재동자)가 선지식을 찾아 구도 행각을 하는 화엄경 입법계품과 보현행원품의 내용이 보로부두르의 2층 회랑의 주벽과 3, 4층 회랑의 주벽과 난간에 532면이 부조되어 있다. 수다나가 만나는 26째 선지식은 보장엄성(寶莊嚴城)의 시장 북쪽에 사는 유녀(遊女) 바수밀타이다. 그녀는 이탐욕제(離貪欲除)의 해탈을 얻었기에 자신의 아름다움이라는 ‘방편(方便)’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탐욕을 여읜 경계를 얻도록 한다.
바수밀타는 부처님 당시 바이샬리성에 살던 유녀 암라팔리가 모델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부처님을 초빙하여 공양 올렸던 망고동산은 큰 절이 되었다. 시인 백석이 사랑했던 기생 자야, 김영한 여사가 당대의 권력자들이 드나드는 시가 수천억 원의 요정을 법정 스님께 기증하였고 스님은 그녀에게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과 염주 한 줄을 내린 이야기와 닮았다. 길상화는 죽어 길상사 마당의 한줌 흙이 되었고, 법정 스님은 이 절에 단 하룻밤만 묵고서 비구로 입적하시고 생전에 주무셨던 작은 요사 채 화단의 나무 밑에 한줌의 재로 뿌려졌다.
통도사에서 만난 고려불화, 수월관음도를 본 그 감동에야 비길 수 없었지만, 보로부두르에서 자바 사람들이 1,300년 전에 3장의 부조로 이를 데 없이 섬세하게 새긴 수월관음도를 보니 그 잔잔한 감동이 또한 새로웠고 각별하였다. 케두 평원에 떠오른 다사로운 아침 햇발이 관음보살의 자애로운 얼굴에 스며들었다.
일행은 벌써 보이지를 않고 영자매와 인도네시아의 히잡을 쓴 어린 학생들과 사진을 찍었다. 한정된 시간에 다 볼 수는 없었다. 수다나가 선지식들을 만나는 장면들을 눈으로만 주벽 중심으로 훑고 지나간다.
극락정토의 카라가 새겨진 아치형 문의 궁전에 전법륜인을 맺은 아미타불이 가운데에 있고, 그 오른쪽에 보현보살, 왼쪽에 수다나가 합장하고 꿇어 앉아 설법을 듣고 있다. 보현보살 머리 위에는 보현보살을 상징하는 세 송이 만개한 연꽃과 두 송이 연꽃 봉오리가 있다. 궁궐의 좌우 하늘에는 연꽃 받침의 해와 달이 있고, 좌우에 각 네 명의 천인들이 구름을 타고 난다. 왼쪽 끝에는 반인반조(半人半鳥)의 음악의 신인 킨나라가 울고, 꽃비가 뿌린다. 아미타경에서 묘사한 극락세계의 모습이다. 화엄경 보현행원품의 마지막 대목을 표현한 것이다. 향로를 공양 올리는 수다나가 보인다. 내 발걸음은 앞으로 나아가고 부조 그림들은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제4회랑을 나서며 내가 마지막으로 촬영한 난간의 부조에는 큼지막한 꽃이 활짝 피어 가지마다 가득 피어나 있는 천계수(天界樹) 밑에 보관을 쓴 여덟 명의 보살들이 열 지어 앉아 있는데 그 얼굴 표정이 너무나도 흐뭇하고 정답고 복스럽고 원만하여 그들의 숨소리마저 들릴 듯하다. 천삼백 년 전에 돌에 새긴 보살들이 금방이라도 벽에서 걸어 나올 것만 같다. 꿈꾸는 듯, 미소 짓는 듯, 고요히 명상하는 듯, 생각에 잠긴 듯 한 얼굴 표정이 도무지 인간이 새긴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이토록 아름답고 불가사의한 조각을 남긴 자바의 예술가들은 모두가 마음이 맑고 순수한 청년 수다나의 분신일 것이다. 욕계 중생의 오욕락의 삶을 보여주는 기단부의 부조에서 불보살과 인간과 축생들이 혼재한 색계, 불타와 수다나의 구도행을 표현한 네모난 회랑을 따라 순례한 사람들은 어느새 마음이 맑고 지혜로우며 자비희사(慈悲喜捨) 4무량심으로 충만해진다.
회랑을 돌며 고개를 들고 보니 머리 위의 감실마다 앉아계신 부처님의 얼굴이 아침 햇살에 또렷하게 나타났다. 고요하고 평화롭고 온화하고 청초한 부처님의 자애로운 얼굴이 내 마음의 필름에 찍혔다. 이제 둥글고 원만한 불보살의 세계로 나아간다.
네 번째 마지막 공문을 지나서 5층 원형 테라스로 올라갔다. 아내와 나만 남고 일행은 아무도 보이질 않는다. 같이 다니던 영자매님도 보이지 않고 미영님도 없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했던가. 보이는 사람이라곤 히잡을 쓴 인도네시아 여학생들과 검은 피부의 남학생과 모자를 쓴 남자들뿐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보로부두르 대탑을 다 둘러보지 않을 소냐. 아내는 선재동자가 되어 나를 앞서서 초연히 독보를 한다.
오른쪽 원단에 32기의 종모양의 불탑이 둘러 서 있다. 합장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한 바퀴를 돌고 원단에 올라 두 번 째 원단의 24기의 불탑을 보며 오른쪽으로 또 한 바퀴 돈다. 불탑의 마름모꼴 작은 창들 사이로 전법륜인을 맺은 비로자나불의 얼굴이 언뜻언뜻 보인다. 서북쪽 불탑 속의 상반신을 드러낸 부처님의 평화롭고 고요하고 온화하신 얼굴을 바라본다. 세 번 째 원단으로 올라 오른쪽의 웅장한 상륜부 대탑과 왼쪽의 16기의 작은 불탑 사이로 한 바퀴 돈다.
만월이 서천에 떠 있는 새벽에 와서 동녘 하늘에 떠오른 아침 해가 비추는 부처님과 보살님들의 얼굴을 보았다. 화엄경 입법계품의 게송이 내 가슴에 떠오른다.
비유하면 맑은 달이 허공에 있어/ 세간 중생 늘고 주는 것 보게 하고/ 일체의 강과 못에 영상 나투니/ 모든 별이 광명색 빼앗기듯이/… 비유하면 맑은 해가 천광 놓으면/본처에서 부동하되 시방 비추듯/ 붓다 해의 광명 또한 이와 같아서/ 가고 옴 없이 세상 어둠 없애네.
부처님의 세계에서 아내와 나는 어리석음과 탐욕과 성냄으로 들끓는 욕계 중생이 사는 지상으로 하강하였다. 돌아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을 따라 출구 낮은 비탈길을 바삐 걸어 내려갔다.
누각처럼 사방이 트인 넓은 마노하라 레스토랑의 2층에 올라가니 사람들은 느긋하게 아침밥을 들고 있었다. 목이 말라 오렌지 주스를 두 잔이나 들이켰다. 보로부두르는 하루아침에 자신을 다 보여주지 않았다. 나처럼 비루한 중생은 한 끼 밥을 먹는 동안에 결단코 성불 할 수가 없었다. 보로부두르가 곁에 있어도 보로부두르가 그리웠다. 아침밥을 먹고서 일층으로 내려와 벽에 걸린 보로부두르 사진을 다시 내 카메라에 담았다.(<<불교와문학>>, 2020년 5월)
*1963년 영천 출생. 『포항문학』 등단(1997), 『수필시대』 추천(2014). 수필집 『눈 내리던 밤』(2017). sunya9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