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게잇츠(the gates)와 꿈꾸는 사람들'
조광렬
희망이 출렁였다. 자유가 물결쳤다. 온 사방에 오렌지색 음악이 울려 퍼졌다. 그들의 영혼이 7,503개의 오렌지색 꽃잎이 되어 춘설에 나부꼈다. 바람 따라 시시각각 모양을 달리 하며 날씨와 시간의 변화에 따라 때론 황금빛으로 때론 붉은 색깔로 춤을 추며 죽은 듯 움츠려 숨죽이고 있는 흑백의 여윈 침묵, 수묵화처럼 몽롱히 마천루에 둘러싸여 고요히 누워있는 자연의 전시장, 그 위에 크리스토와 장 클로드 부부는 신(神)보다 먼저 생명을 불어넣어 16년간 그들이 꾸어왔던 꿈들을 16일간 장엄하게 펼쳤다.
우리 부부는 그들이 설치해 놓은 센트랄 팍 전시장에 수없이 많은 문 없는 문들을 지나며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하였다. 일기예보 대로 눈까지 내린 프레지던트 데이, 이 또한 금상첨화가 아닌가. 잡지에서 '더 게이츠'(The Gates Central Park, New York City. 1979-2005)에 관한 기사와 작품의 이미지 스케치를 본 아내는 이 날을 벼르고 기다렸다는 듯 새벽부터 날 깨웠다.” 여보, 그 스케치를 보면서 당신 생각을 했어요. 센트랄 팍에 가야지요, 간밤에 눈이 정말 왔어요. 어서 서둘러요.
나는 며칠 전 센트랄 팍 사우스를 지나면서 공원 입구에 설치된 작품의 일부를 이미 보았던 터라 나의 건축가적 상상력을 동원해 보았었다. 그 거대한 인공의 아름다운 자연공간에 2,100만 달러를 들여 설치된 5m 높이의 7,503개의 오렌지색 나일론 천을 늘어뜨린 디귿자 오렌지색 게이트들이 3m 간격으로 반복해서 23마일에 달하는 공원의 모든 산책로에 설치되었다. 해서 그것들이 자연과 함께 연출해낼 스팩타클한 광경을 상상해 보면서 본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삶의 목적을 함께 하며 아무것에도 구애 받지 않고 작품을 하고 있는 그들 작가 부부의 자유를 부러워하며 늑장을 부리고 있었다.
환경미술가 크리스토는 불가리아에서, 장 클로드는 카사불랑카에서 각각 같은 해, 같은 날 태어난 올해 칠십의 노장들이다. 그들은 프랑스에서 만나 결혼하고 작품생활을 하다가 나보다 7년 일찍 1964년에 뉴욕으로 옮겨 로어 맨하튼 첼시호텔에 짐을 풀었다. 이들 부부가 뉴욕서 처음 시도한 작품은 쇼윈도나 상점 현관문에 천과 나무를 사용해 페인트로 처리한 소형 설치작품이었다. 그들의 초기작품의 오브젝트들은 깡통, 병 같은 것들을 유리나 나무에 락카 칠한 캔버스를 배경으로 끈으로 묶고 페인트칠 해서 만든 입체적 작품으로 역시 소형이었다. 차차 오브젝트의 대상을 키워가서 휘발유 통과 의자, 테이블, 오토바이, 자동차, 소형 건물에 이어 초고층 건물들에 이르기까지 키워갔다. 그 구조물이 환경에 어울리는 색깔의 특수 천으로 싸서 로프나 철 줄로 묶은 작품을 세계 곳곳에 설치하여 전혀 새로운 시각적 작품을 선보이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들이 선택하는 오브젝트는 도시 구조물에서 차츰 자연을 터치하는 방식으로 초대형화를 시도하기에 이른다. 지구상의 자연이 그들의 전시 무대가 되었다. 오스트렐리아의 리틀베이 해안을 흰색 폴리플로페린 천으로 뒤덮기도 하고, 콜로라도 레플 계곡을 적색 나일론 천으로 커튼을 치는가 하면 스위스의 벨로어 공원에는 살아있는 겨울나무들을 폴리에스터 투명 천으로 싸서 아크릴릭 로프로 묶어 마치 거대한 얼음 캔디 바를 연상시키는 환상적 설치를 하기도 했다. 또 캘리포니아의 수노바와 머린 카운티에 '달리는 울타리'설치, 플로리다 마이아미의 비스캐인 베이의 11개 섬을 각각 거대한 분홍색 특수 천으로 에워싸서 띄워 마치 바다 위에 거대한 연꽃이 떠 있는 듯 한 이미지를 창출하기도 했다.
이들 부부의 가장 야심적 작품은 아마도 '일본과 미국의 우산들'이라는 작품 일 게다. 총 2,600만달러가 투입된 작품으로 일본 도쿄인근 이바라키 지역에 1,340개의 청색, 미국 L.A.동북쪽에 1,760개의 황색 대형 우산들을 일본에 12마일, 미국에 18마일 길이에 버섯들 처럼 펼쳐놓아 장관을 이루었다.
이러한 작품들을 떠올리며 43년을 함께 해온 그들의 작품세계의 비범한 비전과 끊임없는 노력, 장애상황의 극복(이를테면 '우산들'이라는 작품의 허가를 받기 위해 일본의 17개 정부기관과 미국의 27개의 지역기관, 일본의 450명에 달하는 개인농부들과 땅 주인을 설득하는 노력)과 1979년에 프로포잘을 냈다가 1981년에 뉴욕 시로부터 거절당했던 이 '더 게이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끈기와 인내력, 그 종교와 같은 믿음으로 일구어낸 꿈의 결과물은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 주었다.
16번째의 문을 눈앞에 두고 15번째의 문에서 포기 한적은 없었느냐고, 마음만 먹으면 세계가 자신의 무대요, 자연이 내 것이 될 수도 있다고, 영원히 소유하거나 존재케 하려는 욕심을 버리라고, 욕심을 내려거든 자연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욕심을 내라고, 신이 채 손대지 못한 작업으로서의 자연을 더 아름답게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라고, 사라지는 것은 아름답다고 크리스토 부부가 그렇게 작품으로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아내와 손을 잡고 수많은 인파를 헤치며 공원을 나왔다.
(뉴욕 한국일보/2005-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