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나 기
윤초시네가 양평읍으로 이사한다기에
그집안의 근래 소사가 안됏기도 했고
그래도 오래살던 동네를 떠난다는데
뭐 거들어 줄 일이 없을까 해서
식전에 급하게 다녀왔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것 처럼 이쁘던
증손녀가 몇일 시름시름 앓더니 죽고 나서
안그래도 꼬장꼬장하게 늙은 윤초시는 더 말라 보였고
눈동자 마저에도 허망한 기색이 완연했다.
허술히 망건을 쓰고 툭튀어나온 광대뼈로
담뱃대만 오지게 빨고 있었고
논실댁 아줌마도 연신 한숨을 쉬며 가끔 눈물을 훔치며
신세 한탄을 할 뿐이었다.
그런 경황에도
마을사람 몇이 그간의 정분을 생각해서
이런저런 가구며,
부억살림살이며,
소납들을 수레에 실어 주고있었다.
짐을 다 싣고
뒷골 박서방이 소에 멍에를 씌워 끌고갔고
옹색한짐들 뒤에
윤초시내외가 마을사람들에게 고맙다고 사례한후 올라앉아 갔다
...
윤초시네 집안이 이렇게 기울줄 그누가 알았겠는가...
마을사람 몇이와
한참 마음이 안되어서
떠나가는 이삿짐을 김씨네 삼포밭 모레이를 돌아 사라질때 까지 지켜보았다.
집으로 오려고 윤초시네집 담장을 돌무렵에
담장뒤에 숨어있는 소년을 보았다
소미 정씨네 막내아들이다
녀석도 숨어서 윤초시네 이사가는걸 지켜본 모양이다.
녀석은 무안해 하며 황급히
지경터쪽으로 달려갔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일전에 죽은 윤초시증손녀랑
소년이
소나기가 많이 내리던날
바리뜰 거친애 산에서 즐겁게 노는걸 본적이있다.
그날은 날이 무척맑았고
햇살도 따가웠는데
내가 거친애 더럭바우옆에서
소꼴을 베다가 땀을 닦으며 문득 논쪽을 바라보니
장씨네 논뚝을 지나
권씨네 수박밭 자리를 지나 나폴거리며 달려오는 아이들이 있길래
한참을 바라보다가
꼴을 한참 베고있는데
누가 매어둔 누렁이에게 장난을치는것 같아서 가보니
글쎄
윤초시네 증손녀딸은 들꽃을 한아름 들고있었고
정씨네 막내아들 연화가 송아지위에 타고 있지 않은가...
송아지는 발버둥을 치고 녀석은 떨어지지 않으려고
송아지를 꼭 안고 있었다.
안그래도 몇일간 물똥을 싸고 꼴도 잘 안먹어 신경이 쓰였는데
송아지 허리라도 다칠려면 어떻게 할라고...
그것보다도 그러다가 떨어지면 다칠것 같아서
"너희들 예서 뭣들하느냐?"
고 고함을 쳤다.
아이들이 무안해할것 같아서
더 머라치지는 않았는데
낮동안 무덥던 날씨가
뭐라도 한줄기 올것 같아서
"어서들
집으로 가거라. 소나기가 올라"
하고는
다시꼴을 베었다
아이들이 내려가는것 같아서
다시 꼴을 베고 있는데
먹장구름 한장이 머리 위에 와있었다
갑자기 사면이 소란스러워진 것 같다.
바람이 우수수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삽시간에 주위가 보랏빛으로 변했다.
얼른 누렁이를 풀어고
지게를 지고 내려오려는데
빗방울 듣는소리가 난다
굵은 빗방울이었다.
목덜미가 선뜻선뜻했다.
그러자 대번에 눈앞을 가로막는 빗줄기...
잠시
소나기를 피하려고 더럭바위 아래로 들어 가려는데
저아래
뽀오얀 빗줄기 속으로 아이들이 뛰어가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갑자기 안개가 피어올랐기때문에
아이들 모습은 뽀오얀 안개속에 실루엣만 보였다
권씨네 무우밭에 있는 원두막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거기는 올해 권씨네가 여름에
수박을 냇던밭이다.
그날 그아이들을 보고난후
몇일전
읍내장에 고무신 한켤레 하고 고등어 한손 사오는길에
개울가에서있던
녀석을 보았다
녀석이 훌쩍거리며 오른손으로 뭔가를 만지작 거리며
개울물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있길래
"뭐하노?"
했더니 녀석이 당황해하며
"비단조개잡을라고요"했다
녀석 누집추자를 오지게 따먹었는지
녀석의 양손은 온통 씨커먼데
작은 돌하나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방금 무신일로 울었는지
눈가가 뻘겋고
연신 왼손으로는
눈물을 훔치고있었다.
장을 다보고 십자거리 봉현 막걸리집에서
뒷골 박서방에게
윤초시네 이사간다는 소식과
그댁에
흉사가 났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그날...
아-
그일이 한 이십사오년전이니
가도 잘-컷으면
마흔줄에 들었겠네...
첫댓글 풍우회서 본 글이네....
ㅇ에이~~커닝 헸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