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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배의 - 웅혼한 4.3 서사극 -
현기영(소설)
미군정 경찰 - 단죄되어야 할 친일파들이 미군정에 의해 재기용되다. 일제의 순사복에 완장만 바꿔찬 미군정 경찰
내가 아는 과거의 강요배는 아직 '미완의 대가' 였다.
...우주를 상징하는 대형 화면에 블랙홀인듯 심연으로 휩쓸려들어가는 거대한 소용돌이<인멸도>, 태초의 카오스를 가로질러 붉은 빛 기류가 흐르는 가운데 불끈 솟은 산과 클로즈업된 최초 인간의 커다란 두상<탐라도> 등등.. 말하자면 우주적, 동양적, 토속적 신비주의의 모호한 안개에 싸인 분위기였는데, 나는 그 신비주의가 불만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돼지꼬리 잡고 순대 달라는 격으로 그때 내 생각이 너무 성급했나 보다. 갓 서른 나이인 그는 아직 모색단계에 있었던 것이다.
1992 / 동백꽃 지다 강요배의 - 제주 민중항쟁사 화집 -
...그의 이러한 반골적 미의식은 곧바로 인습적인 학교미술교육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졌다. 그는 그 무렵 서울의 창문여고 교사였다. 고급미술을 귄위주의적으로 학생에게 강요하는 기존의 미술교육에 반발하여 그는 전학생이 능동적으로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미술활동 프로그램을 만들어 실행에 옮겼다.
미술시간에 교과서를 제쳐놓고 운동장에서 주전자로 물 뿌려 그림 그리기, 만화 그리기, 시 소설을 읽고 독후감을 그림으로 그리기, 연 만들어 연 날리기, 탈 만들어 탈춤극 하기, 사진 찍고 슬라이드 제작하여 영상극만들기 등을 하는데 아이들이 여간 재미있어 하지 않는다고 했다.
시원(始原)
그와 나는 기질상 여러 모로 닮은 데가 있는 것 같다. 그와 술자리를 같이 하면, 꼭 내 자신과 마주앉은 듯한 느낌이 든다. 아마 우리가 갈 데 없는 제주 촌놈이어서 그럴 것이다. 술을 지독히 탐하는 것도, 평소에는 딱해보일 지경으로 말이 없다가도 술만 들어가면 화려하게 다변스러워지는 것도 닮았고 죽은 소 귀신 뒤집어 쓴 듯한 그 똥고집도 닮았다. 척박한 제주섬 땅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그 촌놈 근성은 무엇으로도 지울 수 없는 낙인인 셈이다.
이재수의 난 - 제국주의 프랑스 함대와 대치하고 있는 제주 민중(1901년). 개가죽 두루마기와 개꼬리 감투를 쓴 전사의 모습.
그러다가 내가 제주 해녀들의 반일투쟁 이야기를 다룬 장편 <바람타는 섬>을 한겨레신문에 연재하고 그가 삽화를 그리게 되는데, 이때부터 그는 오랫동안 미루어왔던 제주 테마에 본격적으로 도전하게 된다. 서로 의논이 잘 맞아 소설과 그림이 행복하게 결합되었고,
그의 그림들은 현행 신문 삽화의 수준을 뛰어넘는 역작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내가 어찌나 연재에 시달렸던지, 지병인 위장병이 악화되어 용두사미로 서둘러 연재를 끝내 버렸고, 평소 나보다 훨씬 중증의 위장병을 앓고 있던 그는 고된 직장일과 겹쳐 과로한 나머지 위 절개 수술을 받아야 했다.
피살
제주 4.3 유적지들을 찾아 제주 산야를 헤매다니기도 하고 마을 촌로들을 찾아가 증언을 청취하면서 뜨거운 눈물을 떨구기도 했다. 제주 온 산야를 적셨던 당시의 피와 눈물을 반 세기 가깝게 지난 오늘에 되살리는 일은 결코 용이한 것이 아니었다. 햇수로 3년 동안의 고투 끝에 강요배는 드디어 50편의 4.3 연작, 그 웅혼한 파노라마를 우리 앞에 펼쳐 보이게 되었다.
횃불 시위 - 계속되는 탄압에 한계상황까지 몰린 도민들이 저항의 횃불을 들기 시작하다. '왓싸부대'의 횃불시위.
한라산자락 백성 - 조국분단의 5.10 단독 선거를 거부하여 제주 민중은 당일 또는 며칠 전부터 무리지어 한라산자락으로 피신하다.
예술가의 속내를 잘 모르는 우리들로서는 솔직히 그의 더딘 제작 속도에 짜증이 나기도 했다. 과연 그가 게으름을 피웠던가? 아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4.3의 거대한 테마는 단순히 발빠른 순발력에 의존한 깜짝쇼로써 처리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4.3과 정서적 일체감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만큼 시간도 많이 걸리고 술도 많이 먹어야 했던 것이다.
토벌대의 포로 - '미군 철모, 미군복, 미군화, 미군 총, 비가 오면 그 위에 미군우장을 쓴 키 작은 이 나라의 병사들이 종족의 섬멸에 동원되어' '돌보는 이 없이 누렇게 우거진 보리밭이 한 줄기 비에도 썩어 가는데' '광대뼈 불거진 늙은 농민들' 을 끌어갔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실감으로 와 닿았다. 그것이 바로 4.3연작을 제작하는 강요배의 노림수인데, 그리고서 일년이 지난 요즘 그의 작업실에서 50편의 연작을 한데 모아놓고 보면서 나는 그의 예술적 전략이 적중되었음을 깨달았다.
각개 작품이 나름의 격조 높은 예술성과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지만, 그것들이 스크럼 짜듯 서로 어깨를 걸고 나타났을 때의 그 총체적 감동이라니!
부모들 - 젊은이를 둔 부모들은 도피 입산한 자식을 대신하여 추궁당한 끝에 죽임을 당하다.
문학의 영역에나 존재하는 서사극을 그는 미술에서 쟁취해낸 것이다. 이 연작은 흑백의 세필화나 목탄화가 주류를 이루는데, 장면마다 사건의 진행을 밀도 있게 그려내 관객의 긴장감을 점점 고조시키다가 클라이맥스에 가까와서는 갑자기 흑백이 컬러로 바뀌고 화면도 대형으로 커지면서 곧장 파국을 향해 치달아 간다. 극적 효과를 극대화시킨 놀라운 연출솜씨다.
천명(天鳴) ㅡ 군 소개작전 - 태워 없애고, 굶겨 없애고, 죽여 없애는 삼광(三光). 삼진(三盡)작전으로 중산간의 거의 모든 부락이 불에 타 잿더미로 변하고 숱한 인명이 살상되다. 공포에 쫓긴 민중은 산속 동굴로 또는 해안으로 피신하다.
눈 속의 연락병 - 민중과 유격대원의 목숨을 지키기 위하여 토벌대의 위치를 연락하는 산군.
건벽청야(建璧淸野) - 1948년 겨울과 이듬해 초봄에 걸쳐 해안을 따라 거대한 축성이 이루어지고 전략촌이 건설되다.
밭담은 성벽에 쓰여졌고 들판의 나무들은 모두 태워졌으며 성담을 따라 패인 호에는 가시덩굴로 채워졌다. 주민들은 순번을 정해 밤낮으로 초소막에서 입초를 서야 했다.
한 유격대원의 죽음 - '......우리의 죽음을 슬퍼 말아라......'
워낙 내가 미술에 문외한인지라 이 작품들에 대해서 더이상 말할 능력도 자격도 없다. 작품 평가는 전문가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하겠다. 그러나 한 가지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예술적 성취 외에도 이 작품이 쟁취한 사회적 의미가 매우 크다는 점이다.
너무도 억울한 죽음이기에 아직도 잠들지 못한 수많은 4.3원혼들, 반 세기가 가깝도록 그들을 금기의 영역에 묶어놓고 외면하고 있는 우리의 삶은 과연 도덕적인 삶인가. 죽은 자를 위령하는 것이 산 자의 피할 수 없는 의무이거늘!
강요배
52년 제주 출생 / 서울대 미대 회화과 (동 대학원)졸업 현실과 발언 동인, 삶의 미술전, 시대정신전, 해방 40년 역사전, 을축년 미술대동잔치전, JAALA전, 한반도는 미국을 본다전, 광주여 오월이여전, 우리시대의 표정전, 건강한 삶 씩씩한 그림전, 통일전...
" 자애로운 땅, 피땀으로 지켜온 선조들의 땅. 그리고 그것은 그러한 선조들을 받들고 기려 그 뜻을 따라 사는 그 후손들의 땅이어야 할 것이다. 역사의 맑은 바람을 쏘여 내 가슴속 응어리의 정체를 밝혀보고자 시도한 것이 제주민중항쟁사 연작 그림이다. 그러나 나의 일천한 인생 경험, 그 짧은 호흡으로는 역사의 심연 저 깊이로 잠수해 들어가기가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그 실체를 손상하지나 않았는지 심히 걱정스럽다. 제작과정에서 조언을 구하느라 여기저기 말을 퍼뜨린 것이 빈 수레가 요란한 격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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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창문여고를 기억한다. 원... 어쩌다 쌓인 먼지인지... 내가 학교에서 미술축제를 시작한 것은 84년부터였는데, 당시에 미술 수업을 가지고 이쿵저쿵하던 전국의 '화가교사' 들로는 홍선웅, 이기정, 박건, 조중현, 이종구, 박상대...들이 있었다. 그리고 또 키 크고 엉성한 듯 매력적인 화가교 사였던 강요배! 오랫만에 강요배의 <동백꽃 지다>를 꺼내 읽는데 '주전자와 운동 장수업' 이야기가 나와서 놀랐다. 종종 '주전자 퍼포먼스'를 들은 바 있었지만 원조가 강요배였는지는 몰랐다. 미술시간에 아이들을 운동장에 나오게 하여 공 대신 주전자를 들려주고 모둠별로 완성 되면 올라가 5층 망루 정도나 되는 데서 내려다보는 물대포 아닌 물그림 퍼포먼스였다! 당시만 해도 그의 '맥잡기' 같은 몇 몇 알만한 그림으로 지내던 사이 였는데 그는 비로소 고향 제주에 내려가 묵은 역사 그림의 과제를 끌어안고서 그의 '진짜' 를 만방에 선포하게 된 것이다. 평범하고 소탈한 데서 폭발하는 그의 미술의 내연은 마침 내 그의 '선조'가 내린 '부모 형제 친척으로서의 나'를 완강하게 체득한 데서 긁어올려졌 다 보았다. 내가 전에 일을 볼 때 광주의 오월과 제주의 4.3을 잇는<사월의 산 오월의 거 리(한라와 무등 - 역사의 脈)> 교환전을 열었는데, 그 때 제주에서 선배와 만났다. 역시 한잔 들어가니 만화방창.. 예의 내 입은 기가 죽었다. (그보다 거 동석했던 제주 대학 이라던가 하는 평론가선생 이름이 생각이 안난다. 난 그의 '진지한 역사적 분석'에 이끌려 무슨 약속도 한 것 같았는데 다 까먹었다.) 기억의 켜는 사람마다 달라서 공연히 창문여고는 떠올라도 한 시대 도원결의 같은 맹세들은 또 어디로 다 날 아가버렸는지 참으로 난감한 인생이다... 미술이든 마술이든 한 바다에 서면 뜨거운 불덩이가 솟구쳐야 한다. 사모치는 연모든 가슴치는 뱃고동소리든 수평선 끝까지 날아가는 저 기러기 떼 같은 한 세상을 그려야 한다. 내면에서 소리치는 약속을 오늘은 화가 강요배에게서 들으며 실없이 내가 웃는다. 2009. 2. 15. 김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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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앗................강요배 선생이시다. 동백꽃 지다 는 가지고 싶어서. 지금 책상머리에 제일 앞에 써놓은 책입니다.^^ 첫 제주 여행에 [김영갑 갤러리]를 갔듯이. 다시 제주에 간다면. [동백꽃 지다]란 책을 들고 가고 싶군요. 제가 말씀드렸던가요? 프리모 레비? 선생님 뵈면 술 쪼매 만 먹고. 프리모 레비의 시같은 산문이며. 강요배의 소설같은 그림얘기를 해야하는데요........... 잘 안되는 거 보면.-.-:
春問秋答인가? 전에 보긴했는데 프리모 레비를 못 읽어서 궁금 했어요. 문득 오늘 보니 대학살의 잔혹한 장면이 유태인의 학살과 오버랩되어 무섭게 다가오군요... 시같은 산문, 소설같은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