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그냥 편안하게 살고 싶었다. 바다 건너 일본에서 원전 사고 소식이 전해지기 전에는 말이다. 위험하지 않은 친환경 에너지를 고민했다. 그러다 자신보다 먼저 환경문제를 고민하던 단체의 문을 두드린다. 환경 동아리를 이끌며 지금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환경 지킴이가 된 신경준 교사 이야기다. 기술 교과서에서 원자력에 관한 오류를 지적해 수정을 이끌어내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항의 전화와 압력을 받기도 했다. '전혀 개의치 않는다' 는 그는 2013 환경재단이 뽑은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 중 한 명이다. |
삽을 들고 파종하러 가는 모습. 숭문중 환경반 학생들은 매년 봄 텃밭을 일군다. 텃밭에서 나온 채소 절반은 '마포치매지원센터'어르신들에게 전달된다. |
서울 숭문중 신경준(36) 교사의 매 학기 첫 수업 주제는 '우리 집 전기는 어디에서 올까'다. 2011년 3월 11일, 그날도 새 학년 첫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전기가 생성되는 경로는 석탄, 석유, 천연가스를 통한 화력발전도 있고 원자력발전, 태양 바람 물과 같은 신재생 에너지가 있다. 화력·원자력발전을 합하면 98%, 신재생 에너지는 2%에 불과하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는 성분을 분석하고 첨가물이 얼마나 들었는지 꼼꼼히 따져보면서 전기가 어디서 오는지는 아무 관심이 없다. 전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 환경, 인간에게 미치는 문제를 생각해보자. 30%에 달하는 원자력발전은 과연 안전할까. 한 번이라도 사고가 난다면 어떤 영향을 줄까…"
수업을 하는 동안 켜놓은 화면에 인터넷 속보가 올라왔다.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 소식. 그 순간 신 교사와 학생들은 멍하니 화면을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싸고 안전하고 실용적이라는 원자력발전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그 순간, 선생님의 말이 현실화되는 사고가 눈앞에서 터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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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사고, 원자력발전을 다시 생각하다 |
대학에 다닐 때까지 신 교사는 환경문제에 큰 관심이 없었다. 취업과 학점에 신경 쓰다 보니 다른 사람이나 사회문제에는 관심을 둘겨를이 없었다. 당시 대다수 대학생들이 그러했다. 건축학과 대학원에 다니는 건축학도로 '부족함 없이' 살고 있었다. 졸업을 앞두고 6개월 동안 취업을 위해 건축사 사무실에 다녔다. IMF 시절 비정규직이었다. 건축 일을 하며 88만 원 세대로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위해 사범대로 진로를 바꿨다. 태양광 건축을 공부했으니 당시 관심은 '자원과 에너지' 에 집중되었고, 자연스럽게 기술과 환경 과목을 선택했다. 건축학도에서 환경 교사로 변신한 과정이다.
교사가 된 후에는 학교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찾았다. 아이들과 수업하고 어울리며 교사로 안주했다. 그러던 중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신 교사의 삶에 큰 전환을 가져온다. "그날 후쿠시마 원전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느낀 공포가 지금도 생생해요. 아이들이 그러더군요.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저 역시 그런 사고를 상상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아무도 우리에게 그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찾기 시작했어요. 전기에 의존하는 삶을 바꿀 새로운 방법을 말이죠."
그때부터 신 교사는 학내에 환경 동아리를 만들어 실천 활동을 벌이는 한편, 자신은 비슷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환경 단체 활동을 시작했다. 연구하고 공부한 내용을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과 나눠야 사회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재 그는 2013년 제인 구달 박사와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가 공동으로 설립한 '생명다양성재단'의 운영 위원과 한국환경교사모임 공동대표로 활동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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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수업, 체험과 실천이 중요하다 |
건축학도 출신답게 신 교사가 직접 내부 설계와 실내 장식을 한ESD(지속 가능 발전 교육) 융합 교실 앞에는 자전거가 한 대 놓였다. 보통 자전거가 아니라 페달을 밟으면 전기가 생성되는 자전거 발전기다. 한여름에는 자전거 발전기로 전기를 만들어 팥빙수도 해 먹는다. 학생들은 휴대폰 배터리가 방전되었을 때 임시방편으로 충전을 하기도 한다. "충전하려면 엄청 힘들게 페달을 밟아야 하지만 그래도 꽤 요긴하다" 는 게 학생들의 귀띔.
신 교사의 환경 수업은 지식 전달 수업이 아니다. 자전거 발전기로 전기도 만들어보고, 태양열발전도 해보고, 급식실에서 나오는 쌀뜨물로 EM 배양액(유용 미생물)도 만들고, 친환경 비누도 만든다. 환경 수업을 체험 위주로 신나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제가 아이들과 텃밭 경작을 하는데, 아이들에게 삽을 주면 삽자루 두세 개는 부러뜨릴 만큼 힘이 넘쳐요. 이런 아이들을 교실 안에 가두는 거죠. 이 아이들이 교실에서 배우는 지식 영역과 밖에서 하는 체험, 실천 영역이 조화를 이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수업은 체험 위주로 해야 효과가 있습니다. 환경을 지식으로 가르칠 때 거부감을 보이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그런 거 모르고 살면 편한데, 왜 굳이 가르쳐서 불편하게 만드느냐는 거죠. '엄마가 그런 거 몰라도 된대요, 공부나 하래요' 하는 아이도 있고요. 안타깝죠."
신 교사는 수업이나 동아리 활동에서 말을 많이 하는 선생님은 아니다. 학생들이 확신하지 못하는 가치관이나 신념을 심어주기보다 자기 생각을 정립할 기회를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다. 학생들 스스로 주제를 정하고 탐구하고 실천할 방법을 찾는다. 교사는 가이드 역할만 한다. 생물에 관심 있는 아이들은 개미를 연구하거나, 학교 주변의 꽃나무와 식물을 모니터링해 QR 코드를 개발하는 등 연구 프로젝트를 제안하기도 한다. 기후변화에 관심 있는 학생들은 기상청의 기후변화 동아리를 통해 전문가들을 만나게 하고, 관심 주제에 대한 결론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그렇게 각자의 영역에서 환경을 생각하며 친환경적으로 사는 멘토를 만나 <그린 멘토-미래의 나를 만나다>라는 책을 펴냈다. 책에는 숭문중 환경반 학생들을 비롯해 전국에 있는 중·고등학생이 그린 멘토 50명을 인터뷰한 내용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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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절약, 작은 것부터 출발 |
신 교사는 학교에서 수업이나 동아리를 통해 13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대표적인 활동이 수업 시간에 진행하는 '우리 집 전기 사용량 점검' 이다. 1년 동안 집에서 쓰는 전기량을 모니터하면 에너지 사용 추이를 한눈에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절약할 방법도 찾을 수 있다. 전기 사용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여름에는 안 쓰는 플러그를 뽑고 절전 탭을 달고, 에어컨 적정 온도를 지켜주는 것만으로 전기를 아낄 수 있다. 빈 교실 전등이나 에어컨을 끄는 활동이 학교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에너지 절약 운동의 결과는 눈부셨다. 2012년 6.35%를 절약하더니 작년에는 전기 사용량을 13.5%줄였다. "여름철은 더워지고 방학 일수도 짧아지고 있습니다. 학교에 나오는 시간이 그만큼 늘어나죠. 냉난방기 사용량이 엄청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굉장히 절감한 겁니다. 하교 후, 주말이나 방학동안 플러그가 그대로 콘센트에 꽂혀 있는 학교가 대부분이에요. 학생들이 학교에 없는 시간에 대기전력이 잡히지 않도록 하는 것, 가장 쉬운 에너지 절약이죠. 에너지 절약을 이토록 강조하는 이유요? 원자력에서 벗어나려는 것입니다."
신 교사는 원자력발전에 30% 이상 의존하는 우리나라에서 전기를 아껴 원자력발전을 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15%는 절전, 15%는 자가발전이 목표다. 자가발전은 대형 빌딩에 구축된상태.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이 원전을 전혀 가동하지 않아도 정전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절전과 자가발전 시설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원전 없이 전력 수급이 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게 신 교사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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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신재생 에너지로 불리는 태양열 태양광 에너지, 풍력, 소수력발전은 우리나라 전체 에너지의 2%를 차지할 뿐이다. |
환경 수업 사라지는 학교 |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 시기는 환경 교육이 반드시 필요한 때. 환경과 자원, 나아가 지구를 대하는 가치관을 형성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환경 교과를 선택한 중학교는 2.5%에 지나지 않는다. 2000 ~2007년에 환경 교사를 뽑았지만, 2008년 이후에는 전국에서 한 명도 선발하지 않았고 서울·강원·전남등지에서는 지금까지 환경 교사를 한 명도 선발하지 않았다.
환경 교사들은 자의 반 타의 반 과학이나 생물 등 다른 과목으로 변경을 신청한다. 현재 남은 교사는 전국에 230여 명. 학교에서는 환경 교사가 없으니 환경 과목을 선택하기 힘들고, 개설해도 시간이 남는 다른 과목 교사들이 가르치는 실정이다. 고등학교에서 환경교과는 유명무실한 수업이 된 지 오래다. 수능에 나오지 않는 과목이니 주로 자습으로 때우고, 학생이나 교사에게 환경 수업은 편한시간이 되었다.
"환경 수업은 절대 뺄 수 없는 과목이라고 교장·교감선생님을 설득해서 저희 학교는 아직 있지만, 저보다 젊거나 나이가 많은 교사들이 목소리를 높이기는 힘듭니다. 우선 환경 과목이 수능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가 크죠. 제2외국어나 보건, 컴퓨터, 진로 교과등 수능에 나오지 않는 과목이 많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국·영·수·사·과만 잘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주요 과목에서 뒤떨어지는 아이들이 학교 폭력을 일으키는 빈도가 높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재능을 인정하는 교육이 되어야 하고, 주요과목을 못하는 학생들도 학교 다닐 이유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봅니다."
환경 수업을 통해 자연에 최대한 손대지 말고, 어른이 되어도 내가사는 마을의 환경을 지키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는 신 교사. 엄마들이 할 수 있는 환경 운동을 제안해달라는 요청에 콘센트에 절전 탭 설치하기, 에어컨 안 쓸 때는 플러그 빼놓기, 무분별한 소비를 줄이는 재래시장 이용하기 등 누구나 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했다. 환경 지키기, 생각보다 거창한 일이 아니었다
| 미즈내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