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일 (2014. 8. 13. 수요일) - 열차 안에서의 일상 1
잠결인지 꿈결인지 열차 속이란 것을 느끼면서 좁은 침상을 계속 지킨다. 조금이라도 더 자야한다는 평생의 습관 때문이다. 일행들 인기척에 눈을 비비면서도 누워있는데 기차가 멈추고 일행들이 내리잔다.
07시 00분(시차 변경됨, 한국시간 06:00). 시골마을의 간이역이다. 타고 내리는 손님도 드물다. 역마다 길고긴 러시아의 이름을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여기저기 빈 창고들이 많다. 인적 없는 반창고 뒤편은 간편하게 아침용무를 보기에 딱 맞춤이다. 아침운동에도 유용한 휴식시간이다. 20분을 쉬고는 또 달린다.
[ 아침의 간이 역 ]
아침식사로는 미역국밥이다. 광주에서 배급품으로 이것저것 많이 나누어 줄 때는 무겁다고 투덜거렸는데, 생전 먹어보지 못한 간편식들을 여기 와서 열차 안에서 요긴하게 먹어댄다.
조금을 더 가다가 열차가 또 멈춘다. 30분간 쉬는 곳이란다.
프랫트폼 맨홀에서 호스를 연결하여 열차에 급수한다. 건장한 여자 승무원은 그새 사람 몸체만한 쓰레기봉투를 수거차량에 던진다. 체격 값을 한다. 그 사이에 날쌘 우리 주최 팀은 노점상에서 부식을 조달한다.
( 열차에 급수하는 장면)
일행이 많다보니 열차여행이 별로 지루하지 않다. 옆방에서는 화투놀이가 시작됐는지 왁자지껄하다. 몇 장을 들고 몇 장을 깔아야 하는지 수학적으로 설명하는 김 교수님의 큰 목성이 내 방에까지 들린다.
열차 내부에 이동식 판매원이 가끔 지나간다. 김영술 위원장은 그새 러시아산 꿀(리파 꿀)을 구입했다고 방마다 몇 스푼씩 분양한다. 뜨거운 물에 탄 꿀맛은 아카시아 꿀과 유사하다. 열차 내에 뜨거운 물이 제공되니 수시로 차를 마실 수 있고, 아침저녁 비상식량으로 식사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다.
(사진 --- 열차 내에 있는 온수기)
14시 00분. 점심식사는 예정대로 식당 칸이다. 메뉴는 피자가 곁들인 러시아식 급식인데, 잡식성인 나로서는 식사에 전혀 불만이 없고 관심도 별로 없다.
오늘의 세미나 발표는 김동수 교수의 수학 올림피아 이야기, 김정희 변호사의 러시아 역사, 조기선 기자의 광주 비엔날레 작품 해설 등이 있었다. 식당 칸도 오늘은 예약이 밀린가 보다. 우리 세미나는 시간 단축하여 운영되었다.
오후에는 침실에서, 가져온 영화를 감상하다. 열차에서 지루함에 대비해서 아이들이 여러 편의 영화를 다운받아 주었는데 지금까지 영화 볼만큼 지루하지도 않았음이다. 공유 이어폰으로 갑영 형과 함께 본 영화는 이선균 주연의 "끝까지 간다"
17시 30분 경 영화가 끝나자마자 간이역에서 열차가 멈춘다. 30분 정차시간이라 모두가 내린다. 러시아 아줌마가 다가와 어깨를 올리며 함께 사진을 찍는다. 사람들이 순박하다. 그들에게 한국인은 이방인으로 흔치 않은가 보다.
[ 프랫트폼 내의 잡상인]
사진 촬영하면서 희희낙락 중인 우리 일행에게 제복 입은 남자가 다가와 뭐라고 설명해 대는데 알 수가 없다. 김영술 박사가 확인하자 열차 내로 데리고 가더니 복도에 수도 없이 꼽아놓은 휴대폰과 배터리 등을 가리키며 분실 염려를 경고한다. 전기 콘세트가 복도에 한 개씩 있어, 거기에 멀티캡을 꼽고 수많은 휴대폰과 배터리가 대추나무 열매 달리듯 걸려있음이다.
정작 걱정은 금세 발생한다. 열차 출발 경보음이 울렸는데 일행 중 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걱정이다. 창밖에 대고 합창, 아니 목메이게 외쳐댄다."경재야-" 위원장인 김영술 박사의 얼굴이 사색으로 되어가던 무렵, 민 박사와 조 기자가 앞 칸 복도 쪽에서 황급히 달려온다.
저녁식사 후에는 재롱둥이 민관홍 군이 노래와 춤으로 분위기를 돋운다. 아비의 실수를 만회하고도 남는다. 7세 꼬마가 늙은이 이상 의젓하다.
이경찬 PD의 둘째 딸 솔하(초등 5년생)는 초상화에 예사롭지 않은 재능을 보인다. 한 장을 그려 방실 문에 붙여 놓자 여기저기서 주문이 열화 같다.
[사진 - 이솔하 어린이가 그린 초상화 ]
9시경까지 해가 떠있더니만 10시가 되었는데도 아직 훤하다.
밤 11시경 간이역에서 17분을 정차한다. 낮에 놀란 때문에 김 박사가 5분 안에 모두 승차하라고 당부한다. 이번에는 승차지시에 모두가 참 잘 따른다.
열차 안에서 세 번째 밤이다. 오늘은 술 마시는 방도 없는지 조용하다. 우리 방도 심심하다. 갑영 형이 가져온 화투로 두 부부가 민화투를 친다. 네 사람이 할 수 있는 놀이가 민화투인데 별로 재미롭지 않다. 아직 지루함이 덜하기 때문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