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하교시킨 학교 혼자 풍향계를 돌린다 빨갛고 하얀 네개
의 숟가락이 바람을 퍼 먹으며 잘도 돈다 먹성으로 치면야 담장 너
머 까치들만 하리 감홍시 진즉 다 털어먹고서 양푼 만한 알전구에
들러붙어 퍼벅 입이 터지는 뜨거운 밥숟가락질의 새들, 너흰 알는
지 多産의 복 하나는 타고났던 너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굴뚝 아득
히 탯줄 묻어 지킨 고향 재 되어 풀풀 흩날릴 위기를
이곳은 채소 하나, 나무 한 그루 맘대로 캘 수 없는 택지개발시범
지구, 초겨울 볕을 등마다 지고 아, 모포처럼 비닐을 펴 유골을 줍던
사내들 어떻게 되었을까 풍향계 너머 기와집들 감나무들, 아직은 파
헤쳐지지 않는 들녘과 학교만이 유적이 되어 떠도는, 해체된 숲 속
에서 붉게 살갗이 패인 산들이 피를 쏟고 있다 잘가라 새여 나무여
낼 아침도 재재거리며 교문 들어설 삼천 아우들 위해 풍향계, 바람
한 하늘 남겨두는 것 잊지 않는다
[신춘문예-시] 시 심사평 - 맛깔스런 시어... 단단한 미덕 갖춰
「공단세탁소」·「삼월, 튀밥 같은」·「제비꽃」·「늦은 점심」·「풍
경」·「풍향계가 있는 오후」, 모두 여섯 분의 여섯 편이 뽑는 이들 손에
마지막으로 남았다. 어느 작품을 당선작으로 밀어도 될만했다. 시를 끌어올
리는 눈길이나 다듬어낸 솜씨에서 남다른 노력의 흔적이 역력하다.
「공단세탁소」는 도시 근교의 세탁소 풍경을 빌려 고단한 삶을 위한 긴
헌사를 마련했다. 시를 끌어가는 집중력은 볼 만했으나, 발상법에서는 새로
움이 덜했다. 게다가 시인의 의도가 너무 시의 앞쪽으로 드러나 버렸다.
「덕지덕지 파리똥처럼/배설된 꿈」이라는 첫머리부터 마무리까지 덕지덕
지 올라붙어 있는 군더더기를 가지치기 할 수 있는 한 단계 높은 통어력이
아쉬웠다.
「삼월, 튀밥 같은」은 「삼월의 속살이/소란스럽게 터지고」 있는 아파
트 담장 풍경에 대한 시인의 따뜻한 눈길이 잘 살아나고 있는 작품이다. 그
러나 그 발상의 즐거움을 오롯이 읽는이의 즐거움으로 되살려주는 집중된
힘이 모자랐다.
「제비꽃」도 아쉬움이 남기는 마찬가지다. 버려진 시골집 섬돌을 안고
핀 제비꽃에 대한 상상적 긴장이 시 뒤쪽으로 가면서 풀려버렸다. 「마음
은 기다림 짙은 잉크빛」과 같이 서툰 시줄들 탓이다.
이들에 견주어 「늦은 점심」·「풍경」·「풍향계가 있는 오후」는 소품
에 가까운 간결함을 미덕으로 지녔다. 군더더기가 적은 만큼 시에 손쉽게
다가서고 있다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것 없이 그 나름의
진지한 집중력이 돋보였다. 「풍경」이 맨 먼저 당선권에서 밀려났다. 시줄
을 더 가다듬어 거듭되고 있는 꾸밈말을 잘 펴 내렸더라면 아름다운 한 편
의 수작을 얻을 뻔했다.
「늦은 점심」과 「풍향계가 있는 오후」를 두고 마지막으로 고심했다.
「풍향계가 있는 오후」에 견주어 「늦은 점심」이 더 젊고 참신한 쪽이
다. 「늦은 점심을 둘러앉아 먹는」 가난한 이웃에 대한 눈길이 집요했다.
숟가락과 젓가락이라는 두 낱말의 변주로 한 편의 시를 끌고 나간 솜씨는
쉬 얻을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거적자리에 둘러앉은 늦은 점심은 둘러
앉은 사람들을 마구 퍼먹는다」라는 마지막 시줄의 언어 전도도 맛깔스럽
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말의 재미를 넘어서는 통찰력이 모자랐다. 감동이
덜할 수밖에 없다.
「풍향계가 있는 오후」는 「늦은 점심」에 견주어 낡은 옷을 입고 있는
듯 싶다. 그러나 그 속은 보다 구체적이고 단단한 미덕을 갖추었다. 「택지
개발시범지구」로 대표되는 삶에 대한 눈길이 섬세하다. 오랜 시력을 무리
없이 녹여냈다. 장차 좋은 시인이 될 재목임을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는 작
품인 셈이다. 따라서 「풍향계가 있는 오후」를 당선작으로 민다. 부디 겉
멋에 빠지지 말고 삶에 대한 구체적인 감각을 힘껏 키워나가기 바란다.
심사위원=박태일(시인·경남대 교수), 유재천(문학평론가·경상대 교수)
[신춘문예-시] 시 당선소감 - 눈감는 순간까지 시 경작
당선 소식을 접하고 가장 먼저 하나님께 기쁨을 올려드렸다. 한낱 옹동그
라지고 가시투성이 사막의 싯딤나무가 법궤가 되었듯, 그분은 파산된 내 영
혼만 보수시키시는 게 아니라 또 다른 내가 되어 사는 시들을 빗고 깎고 계
셨기에.
시(詩)라는 병을 앓은지 십수 년. 정말 육신에도 고치지 못할 병 하나 와
서 생을 넘어뜨렸지만 절망할 수 없었다. 시가 있었기에 살 수 있었다. 그
러고보니 병마저 고마웠던 지난 가을이었다. 할머니가, 고모가, 몸 같던 벗
이 한 계절 건너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갔지만 울 수 없었다. 뱃속 아득
히서 끄덕끄덕 몸 뒤채는 유리뱀, 산이고 강이고 유리뱀 따라 다만 걷고 있
으면 되었다.
사람을 넘어 돌밭, 나무, 풀, 벌레, 까마귀, 해, 구름...
시가 된 내 모든 벗들아, 고맙단다. 내 슬픔의 근원인 아버지, 당신이 흙
을 놓지 않듯 눈 감는 순간까지 저도 제 시들을 경작하고 있겠습니다. 이
른 아침 전봇대만큼 키가 큰 짐보퉁이를 이고 시장으로 향하는 어머니, 당
신이 바로 시(詩)입니다. 시와 삶의 경계에서 허덕일 때, 뜨거운 채찍 아끼
지 않으셨던 여러 선생님, 문우들 감사합니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참아주
고 견뎌준 남편과 딸, 피붙이들과 이 기쁨 함께 하며, 졸시 선해주신 심사
위원 선생님들과 경남신문에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남화정 울산광역시 중구 태화동 454-6 다운하이츠빌라 6-201)
[신춘문예-시조] 당근밭에서(이명자)
이 세상 정전 상태 언제까지 계속될까
아무리 둘러봐도 안팎 다 깜깜하다
불지펴 밝히고 싶은 어둠 저 한복판
흙에 묻힌 깊은 기억 꿈속에서 몸부림친다
마음을 갈아엎고 회심줄기 찾고있는
명멸의 흔들림 속에 머언 훗날 낯선 기척
눈튼 새순 입맞추고 샐샐 웃는 꽃샘바람
수줍어 뿌리까지 새빨갛게 젖었는가
지심(地心)을 딛은 발걸음 뽑아들면 횃불이다.
[신춘문예-시조] 시조 심사평 -남다르면서도 당당한 패기
시조로 쓴 자유시, 아니 자유시로 쓴 시조, 이런 느낌부터 주는 「당근
밭에서」를 두 심사위원은 당선작으로 밀었다. 응모된 많은 시조들 가운데
가장 남다른 성취의 실체였기 때문이다.
이 시조의 경우, 말을 놓는 처음 단계부터 “이 세상 정전 상태 언제까
지 계속될까”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 다음 “아무리 둘러봐도 안팎
다 깜깜하다”라고 스스로에게 답한다. 당근 밭에 선 작중 화자의 자문 자
답은 이처럼 특수어 아닌 일상어로 돼 있지만, 기실은 놀라운 발상이다. 당
근 밭은 이 세상이고, 정전상태는 이 시대여서 그러하다. 그 같은 자문 자
답의 한 결말은 “불지펴 밝히고 싶은 어둠의 저 한복판”이다. 이처럼 성
취된 제1수의 언어 능력만 봐도 명민한 자의 눈이 어떻게 밝은가를 곧바로
전달받게 된다. 시제인 「당근 밭에서」를 연상하고서 말이다.
그런데, 이 시조는 1편 전9장으로 수간(首間)없이 되어 있다. 얼핏 자유
시로 읽혀진다. 그리고, 시조 문장은 산문성이다. 말하자면, 수간(首間)없
는 산문성 일상어의 율격화이다. 전9장 1편을 단숨에 읽도록 하는 의도에
다 1천년 가까운 시조 흐름의 가락 특징인 유장함에 식상했다는 뜻이겠다.
3·4조 4·4조에만 얽매이지 않고, 2·4조와 4·5조도 거침없이 섞어서 최
소단위인 음보와 음보 연결을 거뜬히 해냈다. 따라서 율독 호흡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명실상부한 신인의 패기가 이러도록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뭔가 좀 께느른한 점은 이런 패기있는 신인일수록 신춘문예의 당
선 영광과 함께 상금만 챙기고는 다른 분야로 가거나 잠적한 나머지 시조작
단을 실망시켜 왔다는 점이다. 이 점을 우려하면서도 설마하니 이번에까지
그럴라고 하는 반신 반의에 모험 한번 걸기로 했다.
〈흙에 묻힌 깊은 기억 꿈속에서 몸부림친다/마음을 갈아엎고 회심줄기
찾고있는/명멸의 흔들림 속에 머언 훗날 낯선 기척//눈튼 새순 잎맞추고 샐
샐 웃는 꽃샘바람/수줍어 뿌리까지 새빨갛게 젖었는가/지심(地心)을 딛은
발걸음 뽑아들면 횃불이다〉 할 정도로 자기화한 대상의 인식 능력의 소유
자이고 보면 허튼 짓을 못할 것이다. “지심(地心)을 딛은 발걸음 뽑아들
면 횃불이다”라는 이 초심대로 정진하여 대성하길 바란다.
심사위원=서벌(한국시조시인협회장·시조시인) 김남환(한국문협 시조분과
회장·시조시인)
[신춘문예-시조] 시조 당선소감 - 청아한 가락으로 보답
긴 세월 쉼표 같은 책상 서랍 속에서도 아름다운 선율을 꿈꾸던 악보 한
장 한꺼번에 터뜨리는 연 분홍빛 환성을 듣습니다.
時調를 쓰는 일은 이규보(1168-1241)의 〈論時〉에서 이미 노래 했듯이
意本得於天 難可率爾致 (뜻이란 본래 하늘에서 얻기에 쉽게 이루어지기가
어렵다.). 빛나는 하늘호수 거기 몸 담그면 시간 밖으로 웃음처럼 번지는
파장의 동그라미에 시조 가락 실어내고 싶습니다.
문학의 밑거름이 되어준 인보성체수도회 식구들 큰언니 남동생 가족들 지
구 동네 한 분 한 분께 뜨거운 사랑을 드립니다.
유난히 깨끗한 장을 마련해 주신 경남신문, 턱없이 부족한 글에서 청아
한 가락 흐르도록 높이 들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내면 깊은 곳에서 울러 나
오는 감사를 드립니다.
함께 응모하셨던 분들께는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곧 농익은 작품으로 만나 뵙기를 기원합니다. 하늘의 파란 축복 가득 하
소서. (이명자 전주시 덕진구 팔복동 2가 220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