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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흥양이씨 현정공파(담양파) 원문보기 글쓴이: 익명회원 입니다
■ 附錄
贈生員衡(쪽두리풀형)
河西 金麟厚
兩美聯鞭剝啄來主人懷抱轉悠哉 一 技冷蘂凌霜菊醉後狂詩不自裁 (양미련편탁래주인회포전유재일기냉예능상국취후광시불자재)
생원(生員)인 형에게줌
두 좋은 벗 동반하여 찾아와 문 두들기니
주인의 회포 한량없이 즐거워지는 구려,
한 가지 저 국화가 찬 서리를 깔보는데 ,
취한뒤라 시 읊조리며 재단이 잘 안되는걸'
이 뒤편은 편이상 한글 번역본을 올립니다
취한뒤에 읊음
담밑에 늙은 국화 무엇보다 가련한데
해 저물고 술독 비고 날씨조차 차가워라
동쪽 이웃 달려가서 술독을 열어 제치니
옆사람 나를 보고 미치광이라 하겠구만
(하서 김인후 읊음)
3정여(三旌閭)를 추모하여 읊음
정여를 손질한 이때를 당하여.
불초(不肖)한 이내몸 옛 감회 깊어라.
친한 벗들 축하하고 어진 수령 글을 썻으니.
차갑고 가난하지만 우리 가문 싫지 않아.
(曾孫 馨久 읊음)
의열(義烈)정신 당당하여 목슴을 버렸으니,
규문(閨門)안 아낙내들 남자보다 대단했어.
어진 수령 또 다시 동악(東岳)의 뜻이었으니
정여 다시 빛냈으니 작은 일 아니었내
(正言 任 遠 읊음)
가문의 화려한 빛 하늘과 같으니 .
세분 열부 타오른 심정 뭇사람 몸과 바꿀손가.
일편단심 남기신 얼 지켜오고 있으니.
자손들 대대로 가난이 왠 말인가.
(進士 李運永 읊음)
한 가문에 세 정여는 옛날에도 있었어.
남편은 효자 아내는 현철 며느리는 살신성인.
흐르는 정기(正氣)가 그대 집에 모였으니.
천만년 좋은 명성 끝나지 않을 걸세.
(天嶺 朴景欽 읊음)
집안전통 효열정신은 각자 때를 따랐으니.
일월보다 더 빛나 절개를 남겼으니까.
세분 정여 바라볼때 큰 느낌 많았어.
가통 떨어질가 걱정했지 가난은 걱정하지 않았다오
(五世孫 翊賢 읊음)
곧은 여인 태어나 난리를 만나서.
서리발 같은 그 절개 결국은 살신성인,
효자 열여 정여를 또다시 바라보니.
가문에 바친 광영 참으로 적지않아.
(府使 李錫禧 읊음)
밝게 빛난 효자 열여 별빛과 같아.
효성을 다하기도 하고 살신성인도 하였어.
들으니 창양하는 시 풍축에 가득하다는데.
이내 몸 재주없어 금낭(錦囊)이 비었다오
(進士 梁學淵 읊음)
어버이 봉양할땐 효성이 온정하고.
정조를 우러르니 백옥(白玉)같은 그 몸이었어.
정여를 새로 단장한건 어진 후손 잇기 때문.
부러워라 그대의 집 가난해도 음덕(蔭德)은 가난하지 않아
(柳震星 읊음)
아름다운 효열(孝烈)을 포양한 이 좋은데.
지하에 계신 혼령에게 나라님 은혜 미쳤구려.
빛나는 그대의 가문 정려를 우러러보니.
명성과 절의 공경할뿐 가난은 흉 아니야,
(進士 權世熙 읊음)
원한스런 난리를 생전에 만났으니.
서리발 같은 칼날이요 백옥(白玉)같은 몸이셨네,
정려 세운 옛터에 자손이 남아 있어.
제사모신 해마다 가난이 부끄러워.
(종(從)6세손 永坤 읊음)
난리때에 남기신 의열(義烈)정신 살펴보니,
훌륭하다 어진부인 자신의 삶을 잊으셨네,
임금임 가엾게 여겨 정려를 새롭게하니,
여사(女史)님 꽃다운 명성 영원히 끝나지 않아,
(郡守 朴奎煥 읊음)
하늘이 절부(절부)를 난리속에 냈으니,
목슴을 끊고서 이 한몸 깨끗했어,
곧은 마음에 지금도 추월산 달 비치니,
자손들 받은 복록 영원히 작지 않아
(進士 金景復 읊음)
바른 기운 흘러흘러 모여 있는 한때에,
효자 효녀 깨끗이 자신의 삶을 잊었구려,
웅어(熊魚)가 갑자기 서로 계승하니,
세분 정려 세웠으니 왕의 은혜 작지 않아,
(天嶺 朴尙欽 읊음)
옛 마을에 정려 세운게 어느땐가 물어보세,
이제와서 다시 세우며 자손들 서글퍼해,
효자문에 열여각까지 한곳에 겸했으니,
집안 전통 깨끗한 덕망 빈곤할 일 없을거야
(晋陽 鄭晋德 읊음)
왜적 꾸짖은 우리 선조를 눈물흘리며 기억하니,
엣날 충신 왕정 이연(王貞李然)과 똑같은 몸이었네,
열려의 천년역사를 손질할거야,
자손들에게 당부하노니 가난일랑 말씀 말게,
(종(從)6세손 以坤 읊음)
현명하고 우매함을 태평할땐 분별이 어려워,
난리 만나야 바야흐로 효자 열려 안다오,
한 집안에 세분의 정려 아름답게 빛나니,
이시가문에 꽃다운 정개 대대로 가난 없을거야
(南原 盧命炯 읊음)
정려 소닐해 절개를 표시한지 이제 두번째,
나약한자 자립하고 완악한자 청렴해진 몇사람 될거야,
한 가문에 열려 효자 세분이나 배출했으니,
꽃다운 이름 천만년 응당 끝나지 않으리라,
(濟州 梁學點 읊음)
흥망 성쇠는 원래 때가 있는것,
세 정려가 다시 빛난건 그대가 해냈어,
인간들의 부자집이 이보다 낳을 수 없어,
태산처럼 우러러보며 일평생 가난 한탄 말게나
(權德美 읊음)
임진년 그때를 차마 설명할가,
팔뚝은 비록 끊겼지만 의열(의열)은 몸에 있었었다오,
추월산이 없어지고 백마강이 말라도,
천만년 꽃다운 이름 줄어들지 않으리라,
(李星采 읊음)
혼돈한 이세상 기강도 무너졌어,험난한 이때에 절의 세운 그 사람 드물다오,
한분 효자 두분 열려 확고한 그 마음,
난리에도 변하지 않고 가난해도 변치 않았네,
(沈柱岳 읊음)
태산같은 목슴을 잠깐 사이에 기러기 털처럼 버렸으니,
좋은 가문에 아름다운 열행(열행)에 뭇 사람 용기솟네,
한백년 버려졌다가 다시 손질 하였으니,
붉은 정려 빛나는데 초가집은 가난하누나,
(金德환 읊음)
효자 두분 열려 두분 배출은 세상에 흔한게 아니야,
천년의 역사속에 감히 잊지 않으리라,
옥설(玉雪)처럼 곧은 마음 설명하기 어렵고,
혼전신성 봉양하려고 곁을 떠나지 않았구려,
연꽃은 이미 늙었지만 원래의 빛 간직했고,
대나므는 추위 깔보며 서리를 두려워 안해,
다듬고 갈아 글씨 새긴지 이제 몇해인가,
석린(石麟)도 푸른 이끼에 가리지 말게 해야지
(後孫 李源弘 읊음)
삼강제(삼강제)시를 덧부침
삼강제 이름으로 궁벽한 산천 알려졌으니,
천만년 전할거야 운수 어찌 다할손가,
춘추(춘추)의 역사위에 곧은 충성 빛이 나고,
우주(우주)의 중간에서 절의와 효도 당당했어,
솔과 대 맑은 그늘은 푸르름 변한게 없고,
오동과 매화는 앞뜰에서 참으로 붉었네,
매봉산아래 맑게 솟아난 물은,
천만세 바람을 이 가문에 일으켰어,
萬松堂遺稿(만송당께서 남긴 시)
당송(堂松)을 읊음
내 나이도 이미 멈출때가 가까웠는데,솔 만그루를 심어 장차 무엇을 하리요,
이슬 젖은 푸른 잎이 오히려 사랑스럽고,바람부는 가지라야 역시나 굳세다네,
동군(東君)이 혜택을 골고루 주었기에,새로운 자태를 초목들과 함께 했어,
서리 내린뒤 뭇 꽃이 시드는데,늦게까지 푸른 절개를 누기 있어 알아주랴,
본고을 이부사와 함께 면앙정에 올라 읊은시
쉬는날 부사도와 이곳에 잠시 머무를제,긴 물가에 물 떨어지고 모래 언덕 들어나네,
화학(華鶴)의 발자취는예기둥에 남아 있는데,
흰 갈매기는 한가로히 초 가을 빛을 차지했네,
싯구를 쓰는데는 강산(江山)의 도움 얻어야 하고, 마음놓고 부질없이 노닌자리 만들었네,
곧바로 멀리 보니 가슴이 넓어진듯, 높고 가파른 큰 기상은 일곱 고을을 점거했누나,
別崔石之(최석지와 이별하면서)
서로 만난 이곳에서 다시 이별해야 해, 술잔 들고 이야기 할제 달빛 이미 비껴갔어,
태양이 밝아오면 그대와 이별한 뒤 구름과 나무들도 그리운 정 느낄거야,
次 宋先達韻
송선달 시를 보고 따라 읊음
철갑입은 군인으로 백사장에 누워,고향산천 생각하니 내 마음 아득해,
나라 일로 말 달린 신세 고향갈길 마혔으니, 고향정원에 노란 국화는 누구를 위해 향기로워,
담양부사가 보내준 세찬(歲饌)에 감사하는 시
문밖에서 기다리는 어린이가 웃는 얼굴로,
관가(官家)에서 술과 반찬을 보내왔다고 자랑하네,
맛 좋은 병혈9병혈)고기를 삶아 약한 위를 보호하고,
종사주(從事酒)에 기혈 맞으니 늙은 나이를 멈추게 할거야,
늙은이를 예우하니 부사님의 헤택이요,무능하여 버려진 몸 나 자신이 부끄럽소,
눈 녹고 바람 따뜻한 그날을 기다렸다가 동쪽 집에 모시고 매화꽃이나 구경할래요,
送別
송별시(두편)
보도를 들으니 서쪽은 걱정이 없다는데 누가 능히 북쪽문을 지키려나,
병든 내 그대를 따라가지 못하니,그대 돌아가면 임금임 은혜에 보답하게
또(又)
머나먼 만리길 달려가니,칼집속에 칼날이 밝게 빛나누나,
나라에 보답하려고 돌아오는날, 아날밤 못다한 정 또다시 의론하세
題萬松堂 靑霞 權克中
만송당에 씀 청하 권극중
관직생활 깨끗한 업적 서주(西州)에 나타났으니.
그 당시 충성과 용맹은 악무목(岳武穆)과 같았어.
백원(白猿)의 팔과 같아 버들잎 떨구었고,
월지(月支)나라 머리에서 포도주를 다 마셨네,
능연각(능연각)위에 그대 화상 오를 것이고,
주금당(주금당) 가운데 어찌 오래 머무를 것인가,
만그루 솔을 심고 늙음을 보내려 말게 ,요즈음 우리나라 변방에 수심이 있다오.
又(또) 만덕 김대기 씀
어려서부터 장군은 소꼽장난 하지 않아 ,큼직한 기상은 보통에서 솟아났어,
3년간 바닷길 따라 오랑케를 쫓았고,
7년간 오랑케를 방어하고 백발이되어 누웠구려,
나라위해 병들었기에 높은 녹봉 받았고,
사표하고 고향에 돌아와 잠깐동안 쉬는구려,
그대는 나라를 방위하면서 고락을 같이 했는데,
우엇이 괴로워 악무목처럼 시름을 하는가,
以定州牧使作朝
정주목사에 근무하다 중국길을 떠날때
서주(西州)를 지키라는 어명이 내렸으니 사나이가 포부를 펼 좋은 기회일세,
의병을 일으켜 적을 없앤건 어진자(仁者)의 일이었고,
어진분을 받들고 물에 빠진자를 건져준건 큰 사람의 할 일,
궁궐을 질려거든 뭇 산나무를 모두다 베는것,
음탕과 포학은 만백성을 못살게 해,
뭇 영웅을 보거든 이를 꼭 설명하게,
청렴과 덕화를 숭상하고 편벽은 버리라고.
其二
제2편
버들가지 휘날리는 꽃다운 풀 물가에 서로 붙들고 마주앉아 이별주를 들었어,
38세에 서쪽 고을로 가신다니 임금의 총애 최고야,
떠나갈제 하염없이 눈물 흘리지 말게.
西征時見贈
서쪽 적을 징벌할제 지어줌
장군의 충효정신은 하늘이 냈으니
기필코 잘하려고 모사한게 아니었어,
이제 옥계(玉階)를 향해 추곡(推穀)하여가니,
위엄의 함성이 변방까지 움직일rjdi,
원정서(原情書)를 올려 임금에게 용서를 받은 뒤지어줌(屛巖 崔聃녕 지음)
나라에 충성을 다해 난리를 방비하니
백성들은 덕에 감동해 백신(백신)과 바꾸려 했네
아득한 세상살이 어찌 꼭 설명하리요
만송당 주인으로 쉬는 것이 좋을거야
또(又) 권청하 읊음
사람들 온갖일에 별일이 다 있으니,
공신이 도리어 재앙받은 신세여어,
임금께서 특별히 고향에 돌아가라 하였으니,
만송당에 누웠는게 무엇이 아쉬워
애도하는 글(月峯 高傅川 지음)
도호부사(都護府使)의 명성이 우리나라에 진동했으니
하늘이 낸 한 시대 좋은 영웅이었네,
수백년 싸우고 싸워 국은(國恩)에 보답한 뒤
퇴직하고 삼년간 투병생활을 하였어
인아(姻아)간에 깊은 정분 어찌 다함이 있으리요
공사(公私)간에 애통이 맺혀 과연 끝이 없구나,
근자에 들으니 서쪽변방에 난리가 많다는데,
백발 늙은이 생각하며 바람결에 의지했네,
또(又) 창주 나무송 읊음
요즘시대 둘이 없는 선비요,
남쪽고을에 제일가는 인물이었지,
영웅의 마음이라 붓을 내던졌고
열사(烈士)의 뜻이 있어 군중으로 나가셨어,
제금(製錦)하는건 다음 일로 여겼기에 남긴명성 그 누구가 짝할고
노쇠한 이몸 두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친구라는 정분 때문만 아니라오
萬松堂記
만송당의 기문(睡隱 姜沆 지음)
위천(渭川)에 있는 천평되는 대나무밭과 안읍(安邑)에 있는 일천그루 되는 대추나무와 강릉(江陵)에 있는 일천그루되는 귤은 그 부유한 것이 천호(千戶)를 통솔하는 제후(諸侯)와 맞먹는다 하여 이익을 꾀하는 사람이 많이 심어서 후배들의 교육 자금으로 삼고 있다
성도(成都)땅은 해당화가 잘되고 낙양(洛陽)땅에는 모란(牡丹)이 잘되며 광릉(廣陵)땅은 작약이 잘 되어 땅일구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심어서 눈을 즐겁게 하는 자료로 삼고 있다
그런데 소나무는 그 열매가 후생(後生)들의 삶을 넉넉히 할 수도 없는 것이요,
그 꽃이 눈을 즐겁게 해주지도 못하는 것인데 이따금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니 거기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이다,
공자(孔子)가 말씀하시기를 (해가 추워진 뒤 소나무와 잣나무가 맨 늦게 말라짐을 안다)고 하셨고
장생(장生)은 말씀하시기를 (하늘에게 명을 받은 것들 가운데 오직 소나무와 잣나무만이 유독 바르다)
고 하였다
예컨데 공자가 지기(知己)가 되고 장생(장生)이 거주(擧主)가 되었다면 소나무가 다른 나무 가운데에서 으뜸이 된지 오래일것이다,
그리고 소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도 보통 사람이 아니란 것도 분명하다
추성(秋城)의 이후(李侯)는 구성부사(龜城府使)를 지냈는데 질병으로 고향에 돌아와 선조님 묘소와 수십보 떨어진 이곳은 그 아버지께서 살았던 산자락이다
이곳에 십여칸 집을 얽고 만년을 보낼 계획을 하고 또 별도로 집을 서쪽에 지어손님을 모시는 곳으로 삼았는데 집둘레에 소나무 만여그루를 심었다,
소나무 밭을 바라보면 울창하고 들어가 보면 파란 빛과 구부러진 것은 용과같고 웅크린 것은 범과 같으며 연달아 서있는 것은 관(冠)을 쓰고 칼 찬 대신(大臣)과 같고 곧게 올라간 것은 선비의모습 같으며 우거진 모습은 뭉친 구름과같고 뻗어있는 것은 태양을 가리는 양산과도 같다,
이후(李侯)께서 그 소나무 밑을 깨끗이 쓸고 날마다 그 사이에서 읊조리며 기꺼히 이곳에서 일생을 마칠 작정을 하였다,
그 집에 편액을 만송당(만송당)이라 걸고 나에게 편지를 보내어 기문(記文)을 요청하니 나는 설명하기를 다음과 같이 하였다
이후(李侯)를 초목에 비유한다면 소나무의 기상과 취미가 서로 맞은 분이니 이를 즐겨 우러러 사랑하며 한없이 즐기는 것이 당연하다,
왜냐면 겸손함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1592년 임진왜란에 임금의 수레가 피난길에 오르고 수령들이 막아낸 사람이 없음을 분하게 여겨 붓을 내던지고 나라를 구하는 일에 나서서 화살과 돌을 마다않고 씨워 수많은 죽음을 겪은 가운데 한목슴 살아남을 얻어 전공을 세웠고 서북쪽 진장(鎭將)이라는 중책을 지냈으니 적군이 감히 침략을 꾀하지 못했고 여러 장수들도 그 의로움에 감복하였으니 이는 이른바 해가 추워진 뒤에야 미른 소나무가 아니겠는가
불행이도 신병을 얻어 인(印)끈을 풀어놓고 향리에 돌아와서 약초를 심으며 스스로 수양을 하여 드디어 장상 포박(長桑 抱朴)의 묘법을 얻어 자기의 몸을 아끼는 마음으로 남을 생각하여 치료해 주었다
이리하여 팔 다리를 못쓰는 사람, 피부가 헐어진 병에 걸린 사람들이 날마다 그 문앞에 가득한데 혹 침을 주기도 하고 혹 탕약을 주거나 뜸질을 해주거나 하면서도 조금도 피로한 기색이 없었으니 염파(廉頗)이목(李牧)과 화타(和陀)진완(秦緩)의 재주를 한몸에 지닌 셈이다,
진실하고 겸손하여 마치 의복도 이기지 못한듯 하면서 그 속에 자신의 삶을 잊고 나라를 위하여 자신을 바치려는 마음을 살펴본다면 굳세어 흔들거리지 않은 바가 있었으니 이것이 이른바 하늘에게 명(命)을 받은 것중에 홀로 바른것이 아니겠는가
마땅히 소나무를 사랑하고 소나무를 심어서 자신의 뜻을 붙일만 하다
그러나 지금 보듯이 국경을 지킬만한 사람이 없어 장차 오랑케의 교활한 마음이 생길수도 있어 임금께서 볼기살을 만지며 바야흐로 훌륭한 장수를 생각하고 있다,
나는 생각켄데(李侯)는 마땅히 창칼을 잡고 국경땅을 지켜 임금임을 보살펴 임금임의 사랑에 보답을 해야지 만그루 소나무 사이에서 노닉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고 본다,
내 비록 이후(李侯)의 집에 올라가 이른바 만송이란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이후의 나라를 위한 일에 마음을 다 바침을 아름답게 여겨 이렇게 쓴다
목사공(牧使公)의 투구 갑옷 청용검은 공의 사당에 소장해 두었다,
임신(壬申)가을 보름달 밤 서리가 내릴제 칼이 우리 칼날에 낀 먼지가 죄다 벗어지고 광채가 있었다,
또 담장 아래서는 말이 우는 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들려오니 마을 사람들은 놀래어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뒤 몇달이 못되어 서쪽에 적병이 침입한 변란이 있었다,
사람들은 만송공(萬松公)의 충혼(忠魂)에 큰 영험이 있다고 하였다
興陽李氏三世忠孝烈遺墟碑
흥양이씨 三世 충효열을 배출한터에 세운 유허비문
부덕한 내가 이곳 부사로 부임하여 맨 먼저 충신 효자를 배출한 가문을 물으니 흥양이씨 집안뿐이라고 하엿다,
많은 책자에 기재된 그 행적을 설명하자면 성균생원(成均生員)이신 이형(李衡)님의 타고난 성품이 극히 효성스러워 어버이를 봉양하는데 그 뜻에 순종하였고 병상에 누워있는 어버이의 변을 맛보았으며 돌아가시자 시묘막에서 그 아내 경주이씨(慶州李氏)는 남편의 초상을 당하여 죽물도 마시지 않았고 3년복을 마친뒤에도 상인(喪人)때와 같이하여 몸이 수척하였다,
질병으로 장차 죽게되자 가족들이 고기를 먹을 것을 권고하니 이씨가 답변하기를 나는 이제 죽게 되었는데 고기를 먹은다 허\ㅏ여 무슨 보충이 되겠는가 하고 결국 일어나지 못하였다,
열부(烈婦)광산김씨(光山金氏)는 학생(學生)이순성님의 아내요 생원공(生員公)의 종자부(從子婦)이다
1597년 정유(丁酉)재란에 남편을 따라 산속에 숨어 피난하는데 많은 적병이 달려와 그 왼팔을 끊고 또 오른쪽 어께를 베었다,
김씨의 입에서 적을 꾸짖는 소리가 끊기지 않자 결국 그들의 칼날에 죽었으며 이 사실이 알려지자 조정에서는 정려(旌閭)를 내렸다,
원종공신(原從功臣)으로 아호가 만송당이신 이인경님은 지조와 충절이 확실하였고 용력이 보통에서 뛰어났다
1592년 임진(壬辰)에 섬나라 오랑케가 첨범해 오자 님께서 눈물을 머금고 매부인 충장공 김덕령에게 말씀하여 가뢰되 국가운명이 이처럼 위태로우니 그것을 차마 앉아서만 지켜볼 것인가 하시고 그 의검(義劒)을 제작하면서 (충성을 다해 나라님께 보답)한다는 (盡忠報國) 네 글자를 칼에 새겼으니 이는 중국 당나라 악무목이 등에 충(忠)자를 새긴 뜻을 의미한 것이다,
님께서는 호남과 영남을 오가면서 싸워 적의 진로를 차단하는 공을 남겼으며 혼돈에 빠진 광해(光海)때를 당하여서는 벼슬길에 나갈 뜻이 없었다,
1624년 갑자(甲子) 이괄의 난리에 해서방어사라는 임명을 받고 군사백기(百驥)를 인솔하고 달려가 힘껏 싸웠다,
1627년 정묘(丁卯)호란에는 군사를 소집해 참전하여 참살한 적이 매우 많았으며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왔다
임금이 누차 불렀으나 나가지 않고 끝까지 명예와 충절을 지켰다,
죽포공(竹圃公)이신 이원경님은 만송공의 아우인데 1592년 임진(壬辰)왜란에 만송공께서 의병을 일으키고 싶었지만 늙은 어버이꺼서 생존하시기 때문에 어버이 곁을 차마 떠나지 못하였다
그때 죽포공의나이 20인데 눈물을 머금고 형 만송공에게 말씀하기를 국가는 왜적이 침범하였고 백성은 도탄에 빠졌습니다
임금이 곤욕을 당한 이날 어찌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의리가 없겠습니까 때문에 형은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죽을 것을 다짐하고 아우는 어버이 봉양을 스스로 담당한다면 나라에 충성과 어버이께 효도가 서로 저버리는 일이 없게습니다 라고 하였다,
그 종질되는 매곡공(梅谷公)이용빈님은 태어나면서부터 특이한 기질이효성과 우애는 하늘이 낸 분이다,
1627년 정묘(丁卯)에 북쪽 오랑케가 우리 국경 침입하여 칼날을 휘두를제 님께서 분개한 마음으로 군중앞에 맹세하면서 3백년간 찬랑했던 문화유산이 하루 아침에 짐승같은 오랑케에게 곤욕을 치르다니 어찌 분통하지 않은가 충신 열사들이 적을 섬멸하여 나라에 보답할 날이 곧 이나이다 하고 항거할 의병을 일의겼으니 당시 나이 19세였으며 삼현사(三賢사)에 함께 배향되었다,
아~ 이씨들은 3세(三世)에 효자 열녀가 배출되었는가 하면 충신과 의사(義士)가 아울러 배출하였으니 가히 삼강(三鋼)이 한 가운데에 모였다고 하겠으니 아~ 아름답기만 하다
나도 이분들 충효열에 큰 느낌이 있어 존경하는 생각이 깊었다,
만송공의 5대손인이신 택곤(宅坤)씨가 선조의 얼을 잘 이어 그분들이 남기신 터에 유허비를 세우려다가 착수하지 못하고 삶을 마치셨다,
그 족제되는 화곤(華坤)씨가 찾아와 나에게 비문을 간청하기에 나는 감히 사양하지 못하고 드디어 기록하여 아들 지용(之容)으로 하여금 쓰게 라노라,
숭정기원(崇禎紀元)뒤 세번째 임술(壬戌)1802년 가을 9월에 완산 이동야는 삼가 기록하다,
삼강록(三綱錄) 편집후기
흥양이씨 삼강(三綱)에 대한 기록이 있었기에 엣날부터 이미 이장훈(長勳)군이 삼산재(三山齋)에 있는 나에게 보여주었다,
이씨 선조님들의 얼을 고찰하면 이렇다,
생원공(生元公)은 순수한 효성으로 병든 어버이의 변을 맛보았는가 하면어버이 상(상)을 당하여서는 시묘살이를 하였다
그 부인 이씨는 시어머니를 섬기는 효성이 지극하였고 남편상을 당하여서는 머리카락을 자르고 몸이 수척하도록 슬퍼하다가 생명을 마치었다,
그 질부 김씨는 왜적을 만나 굴복하지 않고 팔과 머리를 끊었으나 그 마음은 더욱 곧았으며 당시 십세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가슴을 의지하고 어머니와 함께 죽었다,
그 종손(從孫)이신 만송당공께서는 난리가 있을때마다 반드시 의병을 일으켜 기특한 전공을 세번이나 세웠다,
죽포공(竹圃公)께서는 효성으로 어버이를 섬겼고 6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다,
그 종증손(從曾孫)이신 오헌공께서는 청나라 오랑케와 화해하였다는 정보를 듣고 개탄하며 벼슬길을 나가지 않았다,
매곡공(梅谷公)께서는 어린아이 연령에 의병청에 달려가 죽음으로 나라에 보답할 것을 다짐하였다,
이와같은 사적이 삼강록(三綱錄)에 분명히 기재되어 마치 오늘에 있었던 일과 같았다,
아~
삼강(三綱)은 비록 용도가 다르나 결국은 같다,
열부(烈婦)가 아들이 되었을땐 효도를 하였을 것이고 효자가 다르나 신하되었을땐 충성을 하였을 것이다,
이는 풍속을 바로 세운 것이기에 조정에서는 반드시 동일하게 보고 아울러 천거하고 찬양하였다,
그렇다면 이 삼강록 책은 사회교육차원에서 관계가 소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어찌하여 오래도록 이씨집안에 소장되어 있었을까,
아~
오늘날 우리나라 상황이 어떤 처지에 처해있는가 역신(逆臣)들이 집권을 하고나라의 기강은 무너져 떳떳히 지켜야 할 충의정신이 간혹 없어져 가는데 자신의 안전과 자손을 보호하려는 생각인지 이들이 또 머리를 맞대고 시비를 하고 헐뜯어 주역박괘(周易剝卦)의 밑에 일양(一陽)처럼 미약한 오늘 충의정신을 끊어 없애버리고자 하니 이 무슨 심장인가,
삼간(三綱)의 얼을 크게 떨치지 않으면 그들의 재앙이 온 나라에 이르를 것이니 이렇게 되면 지하에 계신 충신들을 다시 모셔올수도 없고 답답한 이심정을 누구에게 호소할 것이가 나의 소원은 이씨들이 이책을 온 세상에 널리 배포한다면 나라를 등지고 선조를 망각한 무리들이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느낄수 있을 것이며 무너진 기강도 다시 높히 떨칠 것이다,
이것이 군음(군음)과 같은 역적들을 억누를 것이며 일양(一陽)과 같은 충효정신을 심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다고 할것이다,
병신(丙申)1896년 11월 초순에 행주 기우만 삼가 쓰다,
또(又)
제2편
주자(朱子)가 말씀하시기를 (세상에 존재한 도(道)가 일찌기 없어지지 않았다,
오직 그 도(道)가 사람에게 의탁하여 혹은 끊기기도 하고 이어지기도 하며 세상에 유행하면서 밝을 때도 있고 어두울때도 있다)하셧으니 이 말씀이 참으로 성언이다,
대체적으로 임금과 신하와 아버지와 아들과 남편과 아내는 인간에 있어 큰 차례인것으로 삼강(三鋼)이라는 것이 이것이다,
옛날 삼대(三代)때에도 상호간 이 도(道)가 좋은 세상이라고 하여 존재하고 혼란한 세상이라고 하여 없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 능히 이 도(道)를 극진히 지켜 세상에 밝힌자 백년 천년사이에 겨우 한 두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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