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놓아버린 인연의 끈조차도
낱장으로 하나 둘씩 분신으로 떨어지는
그들의 사는 법에는 지는 법도 있었다.
세상을 만나려는 얼굴 내민 저들 앞에
그 자리 내주신 더 환하고도 하얀 얼굴
손잡는 운명의 굴레 내 앞으로 내린다.
땅 위에 누워서도 꽃의 자태는 아름다워
내려 놓는 일이 때론 설레일 수 있다고
바닥에 엎드린 내게 속삭이고 있었다.
-김은정 <벚꽃 질 때> 전문-
'놓아버린 인연', '낱장으로 떨어지는', '지는 법', '땅 위에 눕다', 등 어두운 단어들이 작품 전편에 들어가 있으면서도 그녀의 작품은 전혀 어둡지 않다. 오히려 '더 환하고도 하얀 얼굴', '꽃의 자태는 아름다워', '설레일 수 있다' 등 어둠 속에 잉태되어 있는 밝음의 씨앗을 쏙쏙 뽑아내어 어둠은 분명 밝음의 씨앗임을 조용히 일러준다.
벚꽃 지는 일이 이렇게 아름답고, 설레이는 일이었던 것을... 머리속을 차지해버린 오염된 단어와 오염된 시선의 힘에 눌려 애당초 벚꽃지는 모습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표현해 낼 수 없었던 시선의 굴절을 작가는 곱게 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본능적으로 작가의 시선이 밝고 긍정적인 쪽으로 고정되어 있거나, 혹은 때묻지 않은 순수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뜻은 아닐까.
글을 쓰면서 잃어버린 나를 찾는다는 것은 맞는 것 같다는 시인은 벚꽃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을 선뜻 말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가슴에만 품고 있었다고 한다. 자꾸 머리속에서만 해석되는 벚꽃의 이미지를 글로 표현해내기는 너무 어려웠던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나 자신의 모습이 보이고, 그런 나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을 때쯤, 머리속에 굳어있던 이미지가 점점 가슴으로 내려오면서 어느 순간 손끝으로 표현되었던 것이 지금의 '벚꽃 질 때'라는 작품이다. 작품속에 작가의 정신세계, 혹은 작가의 심성을 그대로 녹아있지 않은가. 그리고 '시는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느낌이다'라는 작가의 주장에도 이 작품은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해야 할 것이다.
이 하나의 작품으로 벚꽃은 작가에게 특별한 대상이 되었다. 어디서건, 언제건 둘만의 교감이 있다. 그건 행복함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작가에게는 이런 특별한 대상들이 늘었다. 한꺼번에 상대방의 마음을 확 사로잡는 해바라기와도 비밀을 공유하기 시작했고,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놓지 않았던 강아지풀과도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여름 밤바다와는 차를 마시는 사이가 되었다. 좋은 시에서의 공감, 짧은 글에서의 힘은 곧 설레는 기분으로 그녀에게 돌아온다. 글을 쓰고, 읽는다는 건 얼마나 세상을 넓고 깊게 볼 수 있다는 것인가. 글을 쓴다는 건 또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스스로도 잊고 있었던 내 뺨의 솜털을 살랑살랑 흔들며 지나는 바람 한 조각, 손등에 잠시 머물다 간 햇살 한 조각, 눈 돌리면 거기 자기를 봐달라는 듯 얼굴을 빛내며 서 있는 꽃 한 송이, 그들과 눈을 맞추고 그들의 기쁨을 전해 받으며 생활 할 수 있다는 건 시인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지 않고 다른 무엇이겠는가.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자신처럼 행복해졌으면 한다는 작가의 말끝에 미소가 번진다.
시인은 모두 어린왕자와 같은 마음을 갖고 있지 않을까. ' 어린왕자, 장미꽃, 여우, 길들여진다는 것, 설레는 마음', 에 관한 어린왕자의 한 토막을 낭송해 주는 시인의 목소리는 애정이 가득하다. 눈을 감고 귀로만 들어봤으면 한다는 작가의 주문에 따라 모두들 눈을 감고 숨소리까지 아껴가며 귀를 기울이고 있는 회원들의 태도 또한 진지하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심성, 그게 바로 순수가 아닐까. 이 자리에 참석하기 전까지 온갖 세파에 힘들었던 상처들이 그녀의 낭랑한 목소리에 서서히 씻겨내려지고, 어깨에 잔뜩 들어가 있던 힘을 슬그머니 빼놓고, 결국엔 모두들 속내까지 다 드러내 보이며 앉아 편안한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듣는 다는 것의 귀함'을 역설하는 시인의 주장에 모두들 공감하면서 말이다.
시간, 장소, 공간을 알면 그 사람이 보인다는 말로 서두를 꺼낸 작가의 삶은 평범하면서도 조금은 특별한 삶을 살아왔다고 해야겠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부모님 아래 학교와 집, 교회를 오가던 어린 시절, 마을과는 좀 떨어진 곳에 집이 있어서 외로운 느낌이었다는 것 뿐, 특별할 건 없었다. 그러나 교통사고로 하늘의
별이 된 여동생의 죽음은 그녀를 충격으로 몰아넣었고, 착한 사람이 죽어 올라가는 영혼이 별이 되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에 별은 작가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었다. 여동생과, 외할머니와 그외 별이 된 많은 사람들... 밤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버릇처럼 맑고 순수한 것을 쫒아가는 심성은 자연스레 책과 친하게 되었고, 목사님의 아내가 된 지금도 도서관 독서모임을 하고, 사서로서 봉사활동을 하고, 아이들에게 책읽어주기를 좋아하고, 정해진 순서처럼 스스로 글을 쓰기에 이르렀다.
'시인 김은정' 혹은 '김은정 작가'라고 읊조리다 스스로 어색해져버렸지만 그렇게 불려지기를 기대하며, 가끔 그렇게 불러줄 때마다 고마운 생각이 든단다.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은 두시간 정도. 많다고도 짧다고도 할 수 있는 시간동안 그녀는 참 많은 것을 준비해왔었다. 자신의 이야기와 작품, 어린왕자의 한구절, '대지'를 읽고 난 후의 감상문을 들고와 다시 눈감으라 해 놓고 읽어준다. 단정하고 차분하게 쓰여진 독후감은 곧 그녀의 생각, 생활습관, 심성이리라. 내용만큼 더 단정하게 읽어 내려가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회원들은 다시 한번 그녀의 필력에 놀라고 있었다. 만만치 않은 산문실력이 이제 곧 운문으로 펼쳐질 것임은 누군든 예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회원들에게 약장수처럼 쪽지를 돌린다. 행운권추첨이라면서 말이다. 하나씩 쪽지가 돌아가고 난 뒤 그 쪽지를 마음에 드는 사람과 바꾸라 해 놓고는 자신에게 돌아온 쪽지를 펼쳐 읽으란다. '행운', '성실' 등과 같은 단어가 나오고 긴 문장이 적혀 있는 쪽지를 든 회원에게 당첨되었다면서 상품을 안긴다. 편지지와 책갈피, 영양제, 가방, 선물도 다양하게 준비를 했다. 공부방 안은 순식간에 찔레꽃 피듯 화르르, 화르르 웃음이 피어나고 있었다. 7,8년간 독서회 모임을 가지면서 쌓아진 노하우라지만 스스로 성실하지 않고서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오월의 일요일 저녁이 붉은 만조에 들어 있었다.
첫댓글 며칠 전 <김은정의 방>에 올려진 시조 다섯 편을 단숨에 감상하며 오랜만에 제 마음이 깊어지고 느려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서정의 그림이 잘 그려진 그릇을 그저 눈으로만 바라보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5월 <시조갤러리>에 실린 작품을 보며 무게감을 느꼈었는데 역시 삶에도 그런것이 느껴지네요. 한라산님의 말씀처럼 산문이 운문으로 펼쳐져 시인, 시조시인으로 거듭 나실 날이 머지 않았음을 저도 직감합니다. 좋은 글 많이 쓰셔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시는 날 기다리겠습니다~ 밝은 아침입니다.
이렇게 또 한사람에게 길들여지고, 길들어 갑니다. 그 날 저녁이 향기롭게 떠오르는 아침입니다.
조금 늦게 도착했더니 이미 그녀의 고운 목소리는 커피 잔 속에 묻혀버리고, 다른 회원님들의 손에는 선물이 가득 들려져 있더이다. 하나을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된다는 진리를 또 새기며 한라산님께서 정리해 놓은 그날의 그 시간속으로 조용히 빠져들어 봅니다. 부회장님께서 건네주신 '당신은 명품입니다'를 건네받으며 부러운 미소 흘려봅니다*^^*
어느 누군가를 알아가고 알게 해주는 주위에 고마움을 갖습니다. 그 분의 목소리는 참 다정하고 진정이 느껴졌습니다. 아 ! 그랬구나... 조신하게 감겨오던 어린왕자의 보리밭이 떠오릅니다.
안개 낀 바다를 보듯 아련했는데 선명한 모습이 보입니다. 손을 잡고 툭툭 치면서 고개도 끄덕이면서 나누는 자리가 거듭될 수록 한 가족임을 느낍니다. 행복했던 자리 마련해주어서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