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서울 암사동 선사유적지를 자주 찾는다.
"약 6000년 전쯤 우리 조상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까? "
처음에는 신기하고 호기심에서 나선 발길이었다.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역사적 상식과 역사적 상상력이 모두 필요하였다.
경쟁과 능률 그리고 속도감있는 <발전>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는,
이 서울에서 머나먼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자취와 생활 단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아주 흥미만점이었다.
이제 그 곳 신비의 선사 세계로 끌려간다.
아니 <자연의 공간>으로 깊숙히 빨려간다.
끝내는 그 곳에서 아주 새로운 문명과 문화를 경험한다.
6천년전의 선사인들은 21세기 문명인임을 내세운 오늘날 우리들보다
참으로 더 지혜로웠음을 곳곳에서 실감한다.
집이란 사람을 안아 주고, 주변의 지형과 지세는 집을 감싸주어야 한다.
산을 등지고 뒷산이 집 좌우를 감싸고 내려온 곳이면
겨울철 삭풍을 막을 수 있고 여름에는 집 뒤에서 불어오는 산바람으로 시원하게 지낼 수 있다.
혹독한 빙하기를 경험한 구석기 시대이후 등장한 신석기인들이다.
그 신석기인들이 이런 지형조건을 갖춘 곳에 마련한 바로 암사동 선사주거지이다.
이 곳의 움집은 동굴 속에서 살던 경험을 토대로 만든 땅속 집이었다.
원형움집은 네귀퉁이에 기둥을 세우고 통나무를 이단으로 묶어 벽체를 만들었다.
지붕은 근처 한강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풀로 덮었다.
지붕이나 출입문 같은 곳을 묶을 때에는 칡널쿨이나 가죽을 이용했다.
벽은 땅을 팠기에 그대로 흙벽인 채로 두기도 했다.때로는 짐승가죽을 덮기도 했다.
벽에는 황토칠을 하였다고 한다. 방바닥에도 대부분 황토를 깔았다.
황토를 바닥에 깔고 나서 굳게 다지고 불에 달구어 단단하게 만들었다.
화덕은 서쪽에 두었다. 화덕 주변은 휴식의 중심 공간이면서 일터였다.
화덕주변에는 불이 번지지 않도록 바닥을 약간 파서 자갈을 깔기도 하고
돌을 돌려놓기도 하였다. 화덕의 우등불은 추운 몸을 녹여주기도 하고
어둠을 밝히는 횃불도 되었다. 불씨를 전해주는 쏘시개 구실도 하였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 혼자 서기엔 불안하다.
그 선사인들이 자연에 순응해 생존하기 위한 애쓴 흔적이 곳곳에서 보인다.
전시관의 각종 유물은 인간이 홀로 서기에 불안전한 존재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배우는 우리의 머나먼 조상이다.
독창적이고 독특한 토기 자연스러운 무늬 정확한 모양새 등이 그랬다.
암사선사유적지 담장 밖은 아주 딴판이다.
겁나게 질주하는 차량과 거대한 세멘트로 상징되는 현대문명이
현란하게 춤추고 유적지 안으로 곧 거세게 파고들 기세이다.
그 현대에 사는 자칭 문명인들은 친환경 웰빙을 주문처럼 외친다.
실제의 삶은 그렇지 않다. 반 웰빙적인 삶이다.
상생(相生)과 공존공영을 최고의 가치로 종종 내건다.
우리네 삶은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그와는 영 거꾸로 가고 있다.
현대는 철저히 반환경적인 문명에 찌들고 찌들었다.
아주 숨이 막힐 듯 통 여유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
그게 바로 21세기 문명시대 우리네의 삶이다.
오래전에 읽은 두권의 책을 다시 꺼내들었다.
늘 쫒기고 마음의 여유도 없이 서로 살벌하게 경쟁하며
치열하게 살고 있는 현대문명을 거부하고
자칭 문명의 현대인들에게 경고메시지를 준 책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Beyond the sky and the earth : a journey into Bhutan.
20대 초반의 캐나다 출신인 제이미 제파의 책이다.
제이미 제파는 대학원을 마치고 우연히 해외파견교사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자원을 해서 부탄이라는 나라에 가게된다.
히말라야 동쪽의 순수한 나라, 부탄 왕국이다.
7세기에 불교를 받아들이고, 현재 인도와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이제껏 외세의 식민지가 된 적이 없다.
유서 깊은 사원과 유물, 깨끗한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다.
부탄은 아직 개발이 안된 나라로 관광객도 년 1만명으로 제한하는 폐쇄적인 나라이다.
1인당 GDP도 500달라에 불과한 빈국이다.
부자나라 캐나다에서 살아온 그에게는 모든 것이 충격이었다.
카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문명세계의 온갖 혜택을 맛보며 살아온 그였기 때문이다.
벽은 낡아 떨어지고 벼룩과 이가 득실거리는 집에서 수돗물도 나오지 않고
등잔불을 밝혀야 하는 비문명의 생활을 견디며 시골 아이들을 가르쳤다.
제이미는 비문명의 그 땅과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내가 이곳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모든 것에 이음매가 없다는 것이다.
숲을 지나서 마을로 걸어나왔다.
거기에는 어떤 차이나 구별도 없었다.
한 순간 자연 속에 있고, 다음 순간 문명 속에 있었다."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서양과 달리 부탄에서는 할머니와 손녀는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일을 하고, 같은 노래를 알고 있었다.
부탄 동부의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한
제이미는 원시적인 생활 환경,
안과 밖의 구분 없이 드나드는 벌레들, 칠판은 있지만 분필은 없는 교실,
열의는 있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 앞에서 그만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했다.
히말라야 대자연과 부탄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마술로
그녀의 영혼을 바꿔놓기 시작했다.
여전히 쥐들이 부엌을 공격하고, 빗줄기가 구멍 뚫린 지붕을 습격했지만,
크리스마스에 집으로 가려는 계획을 취소하고 계약 기간의 연장을 요청했다.
제이미가 초등학교에서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인 체왕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사생활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부탄의 마을에서 그들은 비밀리에 사랑을 나누었다.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사랑은 결실을 맺어 두 사람은 아들을 낳고 결혼식까지 올렸다.
“침실 창문 앞에 서면 페마 가첼 골짜기의 초록으로 뒤덮인 원시 세계가 내다보였다.
초록색의 가파른 벼랑을 내려다보고, 텅 빈 하늘을 올려다보면 머리가 어지러웠다.
내가 어디 있는지조차 기억할 수 없었다”.
부탄 산골마을의 자연과 아이들의 세계에 점차 빠져들기 시작한 제이미는
마침내 ‘삶의 진실’을 하나하나 깨닫게 된다.
그 진실은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에서, 쓰레기 더미에서,
이 산골마을에서 쓰이는 방언인 ‘사숍’어에서 순간순간 다가온다.
‘문명인’인 자신에겐 쓰레기였지만 부탄 아이들에게는
얼마든지 더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었으며, ‘버리다’와 ‘잃어버리다’가
사숍어에선 한가지 말로 쓰였다.
어떤 것을 버린다면 그것은 더이상 ‘사용할 기회’를 잃어버린다는 것.
아이들은 제이미에게 가르쳐 준다.
너무나 혐오스럽다는 듯 얼굴까지 찌푸려가며
“거만한 것은 마약처럼 너무너무 나쁘다”는 것을….
게으르고 가난한 것은 용납되지만 거만한 것만은 용서될수 없다는 말은,
아시아의 이 조그만 불교왕국에선 일상생활에서 실현되는 진실이었다.
<빠빠라기(Paparagi)>.
남태평양 사모아 제도 작은 섬의 추장 투이아비가 현대 문명의 탐욕을
경고하기 위해 쓴 글을 수록한 책의 이름이다.
'빠빠라기'란 사모아어로 '하늘을 깨고 나타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 옛날, 돛단배를 탄 백인 선교사가 유럽인으로는 처음으로 사모아에 들어왔다.
사모아인은 멀리서 그 흰 돛을 보고 하늘의 뚫린 구멍이라고 생각했고,
그 구멍을 통해 유럽인이 사모아 섬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믿었다.
젊은 시절 선교사에게 교육을 받으며 서양 문물에 눈뜬 추장 투이비아이다.
그는 성인이 되자 문화 사찰단 일원으로서 유럽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자신이 목격한 문명 세계를 폴리네시아의 형제들과 원주민들에게
문명 발달의 폐해를 경고하기 위해 연설문 형식으로 기록했다.
이 책은 잘난 척 하는 문명사회에 대한 조용한 신의 경고 메시지,
문명의 함정에 빠져드는 인간에 대한 계몽 메시지,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사는 사모아인에 대한 칭송 메시지를 담고 있다.
투이아비 추장은 선입관에 구애받지 않는 냉정한 관찰력으로
현대 사회의 문화와 생활을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문명으로 일그러진 인간의 마음을 원형으로 되찾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너는 태어날 때에도 돈을 치러야 했으며,
네가 죽을 때에도 단지 죽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너의 아이가(가족)는 돈을 치르지 않으면 안 된다.
몸뚱이를 대지에 묻는 데에도,
추억을 위해서 네 무덤 위에 큰 돌을 굴려다 놓는 데에도 돈이 든다."
"시간이란 젖은 손으로 쥐고 있는 뱀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단히 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미끄러져 빠져나가 버린다.
정작 자기 자신이 시간을 내몰고 있다.
빠빠라기는 언제나 손을 뻗어 시간을 붙잡으려 뒤쫓아 간다.
시간에게 양지에서 햇볕 쬘 틈조차도 주지 않는다.
시간은 언제라도 빠빠라기에게 달라붙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
"빠빠라기는 언제나 빨리 도착하는 일만을 생각하고 있다.
그들이 만들어 낸 기계의 대부분은 목적에 빨리 도달하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다.
빨리 도착하면 또 다시 새 목적이 빠빠라기를 부른다.
이리하여 빠빠라기는 한평생 쉬지 않고 계속해서 달린다.
어슬렁어슬렁 걸으면서 헤매는 즐거움을,
또 예기치 않았던 목표와 맞닥뜨리게 되는 기쁨을 그들은 완전히 잊고 말았다. "
추장 투이아비의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오늘날 문명인들은 너무나 욕심이 많아서
얻는 것 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사실 추장 투이아비와 캐나다 출신 젊은 이 제이미의 이야기는
서울의 최초 강남이요 혈연동체인 암사동 주거지를 곱씹게 한다.
서울을 찾는 국내외 답방객과 함께 각별한 의미있는 유적지로 찾게 한다.
"21세기 유럽문명은 몹쓸 오만과 편견이 온통 자연스러움을 덮고 있어
참으로 숨막힐 지경이다. 암사동 주거지에는 저만 잘 난 것처럼 행동하는
현대인의 그 옹졸함과 조급함이 없어 너무 좋다."
서울 암사동 선사주거지에서 미국 청년 캐빈이 그 유적지를
구석구석 꼼꼼히 살피고서 진지하게 던진 한마디였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한 20대 후반의 캐빈이다.
캐빈은 동양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다. 앞으로 외교관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어색하게 보이지만 <참 그대로>, <있는 그대로>의 선사문명을
잘 지켜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대문명의 <욕심>이나 <편견>으로 그 유적지가 다치게 하지 않았으면 했다.
"자연스럽고 친환경적인 삶을 이곳 암사동에서 하나의 교훈으로 얻고 싶다"
동양의 <인간과 자연과의 조화)를 이 21세기를 살아가는 가치로
여기고 싶다고 캐빈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