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길 답사2
1. 일시: 2015년 12월 20일(일요일)
2. 구간: 가평-강촌-의암댐
3. 예상 소요 시간 및 거리: 15키로, 4~5시간.
4. 답사 방법
4-1. 집결장소: 남춘천역
4-2: 집결시간: 10:00
4-3. 남춘천역서 전철을 타고 가평까지 간 후, 가평에서 춘천으로 도보답사
5. 참석하실 분 댓글을 달아주세요.
<답사 참고자료>
○ 두보의 시 십이 수를 화답하다[和杜詩十二首] 중 「초연각에서 두보의 비선각시에 화답하다[超然閣和飛仙閣] 」
언덕 곁으로 긴 바람 불어 오니 / 側岸吹長風
보리 모개들 모조리 드러누워라 / 麥芒偃衆毫
사람과 범이 서로 가까이 살기에 / 人虎相與居
울타리를 견고하게 얽어매었네 / 籬柵締縛牢
높은 잔도는 무너진 비탈길을 잇고 / 飛棧接崩磴
푸른 못은 하얀 파도를 튕겨 내는데 / 黝潭蹴素濤
마소가 다니는 건 보이지 않고 / 不見牛馬行
노루들의 우는 소리만 들리어라 / 唯聞麏麚號
첩첩의 산이 이렇게 단단히 막혀 / 關鎖此重疊
예맥 나라가 하늘 위에 높았는데 / 貊國天上高
팽오는 황제의 명을 받들고 와서 / 彭吳攀帝命
길 뚫느라 어이 그리 수고했던고 / 鑿通何太勞
가파른 데서 돌덩이가 떨어진다면 / 危峭下礌石
이 목숨을 어떻게 보전하리오 / 性命將焉逃
고기잡이 배는 중류에 떠 있어라 / 罾船泛中流
이틀 밤을 묵는 너희들이 부럽구려 / 信宿羨汝曹
○ 두보의 시 십이 수를 화답하다[和杜詩十二首] 중 「삼악에서 두보의 오반시에 화답하다[三嶽和五盤] 」
높고도 큰 저 석파령은 / 崔崔席破嶺
대체로 삼악산의 줄기인데 / 是蓋三嶽餘
비록 아름다운 봉우리는 없지만 / 雖無娟妙峯
국경의 방비는 꽤 튼튼하겠네 / 捍禦頗不疎
왕조란 자와 최리란 자가 / 王調與崔理
공연히 솥 안의 고기가 됨으로써 / 浪作釜中魚
한 나라 관리가 바다를 건너오니 / 漢吏空越海
답답하여라 어떻게 살 수 있으랴 / 鬱鬱安能居
아득한 저 청류관에는 / 漠漠淸流關
초목의 새싹이 막 어우러졌고 / 草木嫩初舒
역참 또한 아득히 바라보이는데 / 亭郵杳相望
우거진 잡초를 누가 제거할거나 / 榛莽誰能除
옛 성은 끊어진 가퀴만 남았고 / 古城餘斷堞
부서진 절은 빈터에 부쳐 있어라 / 破寺寄空墟
이것을 인하여 인간 세상살이가 / 因知人世間
곳곳마다 여관에 붙여짐을 알겠네 / 處處委蘧廬
왕조와 최리는 모두 한 광무제(漢光武帝) 때 낙랑(樂浪)의 토추(土酋)인데, 왕조는 태수(太守) 왕준(王遵)에게 죽임을 당하였고, 최리는 고구려로부터 침살(侵殺)되었으며 여자들은 나가서 항복하였다. ○ 삼악산(三嶽山)의 동쪽 봉우리 밑에 옛 성(城)의 유지(遺址)가 있고, 그 성 아래에는 옛 절이 있으나, 낙랑의 고적(古跡)은 지금 상고할 수가 없다.
○ 두보의 시 십이 수를 화답하다[和杜詩十二首] 중 「현등협에서 두보의 용문각시에 화답하다[懸燈峽和龍門閣] 현등은 곧 등달(燈達)이다. 방언에 현(懸)을 달다[達]라고 한다. 등달은 곧 배달(背達)이다. 방언에 배(背)를 등(燈)이라 한다 」
현등산은 바로 옛 난산인데 / 懸燈古蘭山
절벽이 검은 흙을 이고 있고 / 絶壁戴焦土
양쪽 절벽이 서로 맞닿을 듯하여 / 兩厓欲相撞
좁은 골짝이 사시장철 어두워라 / 束峽昏萬古
사람 어깨 부딪칠까 걱정스럽고 / 直愁礙人肩
강물은 한 실오라기처럼 통하누나 / 江流通一縷
높은 나뭇잎은 하늘 바람에 흔들리고 / 高葉搖天風
거센 여울은 땅 기둥을 흔드는데 / 崩湍掀地柱
뭇 산봉우리가 태양을 삼키어 / 攢峯蝕太陽
맑은 낮에도 흙비가 날리누나 / 淸晝騰霾雨
도깨비 구덕에 빠질 것만 같은데 / 決知陷鬼門
돌아갈 길을 어디서 찾을거나 / 歸路將焉取
산등성이는 약간 활처럼 동그랗고 / 山脊稍彎環
물 형세는 협유를 열어 논 듯하여라 《고공기(考工記)》의 주석에 이르기를 “협유(夾庾)의 활은 다섯이 합하여 규격을 이룬다.” 하였다. / 水勢開夾庾
점차 닭 울고 개 짖는 소리 들리고 / 漸聞鷄犬聲
멀리 인가의 울타리가 보이누나 / 籬落遠可數
○ 천우기행(穿牛紀行) 중에서
검은 돌이 바둑처럼 펼쳐진 정족탄에서 / 䃜石棋鋪鼎足灘
북만한 작은 배가 푸른 물결 뚫고 나가라 / 一梭穿出綠漪瀾
황효의 어부와 가다가 서로 만나서는 / 黃驍漁子行相遇
또 물고기 사 가지고 저녁 반찬 만들었네 / 又買銀鱗付夕餐
○ 천우기행(穿牛紀行) 중에서
난산의 한 면은 아직도 개척 안 된 곳이라 / 蘭山一面尙天荒
높은 허공에 잔도가 십 리나 건너질렀네 / 閣道飛空十里長
작라의 동쪽으로 거듭 머리 돌리니 / 鵲瀨東頭重回首
경기 지역의 산빛은 이미 아득하구려 / 京畿山色已迷茫
《여지승람(輿地勝覽)》에 이르기를 “난산은 본디 고구려(高句麗)의 배달현(背達縣)인데,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이 난산으로 고치어 우두주(牛頭州)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하였다. ○ 지금 상고하건대, 춘추의 남쪽 20리 문암(門巖) 밖에 등달협(燈達峽)이라는 곳이 있는데, 방언(方言)에 배(背=등)를 ‘등’이라 하는 것이고 보면 배달이 곧 등달인 것이다. 그렇다면 난산의 옛 현(縣)은 의당 지금 삼악(三嶽)의 남쪽에 있었을 것이다.
○ 천우기행(穿牛紀行) 중에서
한 겹의 산 지나가니 또 한 겹의 산인데 / 一重山過一重山
수류만과 와류만이 서로 연하였어라 / 垂柳灣連臥柳灣
등달협 앞에서 서둘러 배에 닻을 올리니 / 燈達峽前催挂席
양쪽 절벽 푸르고 험준함 서로 마주하였네 / 兩厓相拍碧孱顔
○ 천우기행(穿牛紀行) 중에서
이 길이 대체로 관통이라 이름할 만하여라 / 此行大抵可名穿
연구멍 같은 산하가 돈처럼 꿰어졌구려 / 藕孔山河貫似錢
이십오 현 거문고에 줄마다 한 곡씩 올려 / 二十五絃絃一曲
뱃노래를 새로이 예주편에 이어야겠네 / 櫂歌新續蕊州篇
두보(杜甫)의 시에 “즉시 파협으로부터 무탄을 관통하였네[卽從巴峽穿巫炭]” 하였다. 예주는 지금의 충주(忠州)이다.
○ 산행일기, 곡갈탄을 내려가면서 지은 시는 다음과 같다.
사공이 재촉하여 뱃머리를 돌리니 / 篙師催轉尾
여울물은 재촉하여 뱃머리를 흔들어대네 / 湍水戰風檣
돌 위의 달리는 물 따르기 어려운데 / 奔石狂難趁
나는 봉우리 아득히 숨네 / 飛峯杳已藏
익숙한 사공 솜씨 경탄을 하고 / 斡旋驚手熟
안전하게 떠가는 몸 기뻐하네 / 平泛喜身康
내리뻗은 저 지산빛 / 迤邐芝山色
석양빛 띠어 고웁네 / 娟娟帶夕陽
첫댓글 함께 가시죠^^
예 함께 걸으시죠.
@두릉산인 10시까지 남춘천역으로 가겠습니다.
@신대수 예, 내일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