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텍스 떠나보내기
첫 해외여행을 북경으로 갔었다. 벌써 10년이 되었다. 그때 만든 여권이 올해 만료가 된다. 그때 라텍스 매트리스를 사 왔다. 오랫동안 침대에서 함께 지내왔는데 하나둘 세월이 흐르니까 헤어지는 것 같다. 선물로 받은 것이라서 애착이 많이 갔다. 매트리스 커버를 벗기니까 녹아서 먼지가 대단했다. 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낀 채로 거실에 내놓았다. 관리사무실에 문의하니 폐기물 신고하고 아파트 앞에 내놓으라고 했다. 섭섭하지만 수명을 다했으니 어쩔 수가 없다. 낡아서 녹아내린 매트리스를 처리했더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매트리스 커버를 세탁기에 넣고 세탁을 하면서 신선한 무엇이 나에게 다가옴을 느낀다. 우리네 삶은 가고 오는 것이다.
호텔 베개 냄새를 나는 좋아한다. 이부자리에서 느껴지는 풀 먹인 듯한 까슬한 감촉과 선선한 풀냄새를 좋아한다. 침대 커버와 이부자리를 흰색으로 바꿨는데 호텔에서 나는 그 느낌은 아니다. 면으로 된 이부자리인데 뻣뻣함이나 호텔 방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는 없다. 첫날 밤 같은 하얀 이불에 대한 환상을 대리만족하며 지낸다. 포근하고 따사로운 이불의 촉감이 좋아서 잠잘 때 행복하다. 서재에 마련된 싱글 침대다. 글을 쓰다가 휴식을 취하고 엎드려서 책도 보고 음악도 듣는다. 가끔 큰아들이 엄마 냄새가 좋다고 내 침대에서 누워 있을 때가 있다. 먼 훗날 엄마 생각이 나면 하얀 이불과 작은 침대를 떠올리겠지. 그때 엄마의 서재는 여자 향기가 가득했다고. 어떤 향수보다 매력적인 향기였다고.
잠자기 전에 베란다에 나가서 늘 인사를 한다. 하늘과 바람에게, 별들에게. 차가운 하늘에는 별빛이 영롱하다. 추울수록 별은 빛난다. 머리 바로 위에 반달이 시리게 떠 있다.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히고 하루 잘 보냈다고 인사를 했다. 아직도 초롱초롱한 별들과 하품하는 동자못, 쌀쌀해진 바람, 묵언 수행 중인 나무와 인사를 한다. 아들 방에 들어가서 게임에 열중인 아들 등을 안아본다. ‘고시원의 청춘’이라고 부른다. 오늘도 함께 식사하고 차도 마시고 이야기 나누고 했으니 감사한 일이다. 내일 또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