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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5월 12일 7시 ~ 2002년 5월 13일 0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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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가본곳 (* 밑줄 친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장소로 바로 이동합니다.)
1. 서울역
2. 대전역
3. 옥천읍내
4. 누교리
5. 삼단폭포,영국사계곡
6. 영국사(영국사의 역사,은행나무,원각국사비)
7. 영국사 부도
8. 흔들바위(동탑봉3층석탑)
9. 진주폭포
10. 양산면
가곡리
11. 양산8경(송호리관광지)
12. 여의정
13. 강선대
14. 영동역
15. 조치원역
16. 서울역
1.
5월 12일 일요일..
그날은 날씨가 아주 따뜻했다. 나들이하기에는 아주 좋은 날씨였다.
그날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7시에 집을 나섰다.
우리집앞
정류장에서
한성여객소속 서울시내버스 15번(하계동-신설동) BS106L냉방개조차를 타고
도봉동,
방학동,쌍문동,수유리,미아3거리를 지나
미아리고개에서 내렸다.
서울시내버스 15번의 자세한 노선은 ------> (서울 15번 노선안내)
미아리고개에서 내린 이유는 서울역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
미아리고개에서 서울역가는 버스는
20,23,25,32,84,710,725번등이 있다.
3분정도 기다리니 서울역가는 710번이 오는군..
이번에 타는 버스는
대진여객소속 서울시내버스 710번(정릉동-고속터미널-개포동)이다.
차종은 BS106L ROYAL CITY이다.
서울 710번의 자세한 노선은 ------>
(서울 710번 노선안내)
버스는
돈암동,삼선교,창경궁,원남동,청계천,미도파,남대문을 지나 8시에
서울역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서 서울역사(驛舍)로 들어갔다.
(처음 화면으로)
역사안으로 들어가니 수백명의 여행객,귀성객들로 매우 혼잡하다.
표사는 곳으로 가서 열차표를 구입하고 개표를 받은 다음 열차타는 곳으로 나간다.
2.
열차 타는 곳으로 나가니 왼쪽에 내가 탈 열차가 묵묵히 승객들을
태우고 있었다.
이번에 타는 열차는
서울역을 8:15분에 출발하여 부산으로 가는 무궁화호 제209열차이다.
나의 목적지인 대전역에는 10:13분에 도착한다. 운임은 5800원이며,
좌석은 음......
'입석'이다. -.-;; 입석(立席)은 말그대로
서서 가는 것이다.
열차표를 미리 예약을 안한 관계로 입석으로 가는 것이다.
☻
서울 → 대전 무궁화호 승차권 (* 차호와 좌석부분에 '입석'이라고
쓰여 있다.)
열차에 탑승하여 5호차에 있는
식당칸으로 들어갔다. 왜 그 곳으로 갔는가? 당연히 앉아갈려고..
식당칸에는 입석승객 10여명이 진을 치고 앉아있었다.
그리고 식당칸 중앙에는 식당칸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웨이터들이 사람들이 부지런히 영업준비를 하고 있었다.
8:15분이 되자 열차는 서울역을 출발하고...
열차는 용산을 지나 한강을 건너
영등포역에 이른다. 여기서 엄청난 수의 승객들이 열차에
올랐다.
영등포역을 출발하여 수원으로 가고 있을 무렵, 식당칸 웨이터가 자리에 앉아있는 승객들에게 메뉴판을
들이밀더니 주문할것을 요청한다.
이렇게 되자 몇몇 입석들은 다른 칸으로 가버리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할 수 없이 음료수나 차, 안주거리등을
주문한다. 그때 내 맞은편에는 50대로 보이는 아저씨가 앉아있었는데, 웨이터가 나와 그 아저씨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와서 메뉴판을 주더니만 주문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메뉴판을 보는데. 허걱 더럽게 비싸다. 음료수,차,커피가 무려 2000~4000원씩이나.
안주거리는 5000~20000원, 그리고 식사종류는 최하가 9000원이다. 허걱~~
별 내용도 없으면서 가격은 더럽게 비싸다.
내가 메뉴판을 보면서 "나중에 주문하면 안되겠습니까?"
그러자 웨이터(체격은 약간 뚱뚱.. 복장은 요리사복장
비슷)가 "여기 앉아 있을려면 뭐 하나 시키세요"
라고 말하면서 식당칸 중앙으로 갔다.
여기서 별로 먹을 것도 없는데 구태여 주문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기 앉아 있을 명분이
없으므로 할 수 없이 식당칸에서 철수했다.
3. 식당칸을 나와서 6호차로 갔다.
마침 비어있는 자리가 있어서 거기에 앉았다.
열차는 8:50분경
수원역에 정차한다. 여기서도 엄청난 승객들이 탑승했다. 나는
자리주인이 언제 올지 몰라서
경계태세?를 하면서 앉아있으니 잠시 뒤 사관생도로 보이는 남자 4명이 내옆에 오더니만.. 결국 나는 자리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자리에서 밀려난 뒤, 6호차 앞부분으로 가니까 비어있는 자리가 하나 있다.
그 비어있는 자리의 좌석번호는 6호차 14석이였다.
그래서 그 자리에 앉았다. 앉아서 갈 수 있는데 까지는
가보자는 것이다.
자리에 앉고 얼마뒤 오산역에
정차한다. 다행히 오산역에서는 승객이 거의 안탔다.
오산역을 출발하여 서정리역을 지나 평택역에
이른다. 평택역도 승객들이 많이 타는 역중에 하나이다.
이 곳에서 많은 승객들이 열차에 탑승했으나, 다행히 자리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안도의 안숨을 쉬었다.
열차는 평택을 지나 안성천을 건너 충남땅에 진입. 10여분뒤 충남최대의 도시인 천안시의 관문
천안역에
이른다. 천안역도 승객들이 졀라 많이 타는 역중 하나이다.
천안역에 정차하자 수십명의 승객들이 열차안에 몰려들어온다.
자리주인이 언제 나타날지 몰라서 경계태세?를 하고 있는데, 다행히 자리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휴우~~
열차는 천안역을 출발하여 조치원역을
통과, 10시쯤에 금강을
건너 대전광역시에
진입한다.
신탄진역을 지나 고속전철공사현장을 서행으로 통과하여 정시보다 10분이상 늦은 10:23분에
대전역에
도착한다.
4.
대전역에 도착하자 열차에서 내려서 대전역사(大田驛舍)로
나온다.
(처음화면으로)
열차표는 그냥 가져오고... 역사내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한 다음 약속장소인 대전역 부근 롯데리아로 갔다.
대전에서 만나기로 한 분이 지금 롯데리아 2층에 있다고 문자를 보내서 그곳에 올라갔다.
2층으로 올라가니 아무도 없군.. 그런데 창가에 여인 1명이 창밖을 바라보며 핸드폰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나 뒷모습으로는 알 수 가 없어서 뒤에서 전화를 하니 그 여인이 전화를 받으면서 나를 바라본다.
그 여인은 권희수(히메)님이다.
(10:35)
1달여만에 만난 희수님과 인사를 하고 롯데리아를 나왔다.
마침 배가 고픈지라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대전역지역은 대전광역시의 중심지역으로 대전역부근에는 많은 식당들이 들어서 있다.
대한통운앞 건널목에서 길을 건너서 골목쪽으로 들어갔다.
마땅히 먹을데가 없어서 망설이고 있다가 부근 한식집에 들어갔다.
한식집에서 돼지고기와 백반을 배부르게 먹고 커피한잔 마신다음 밖으로 나왔다.
나와 희수님 모두 배가 고파서 그런지 정신없이 먹은 것 같다.
식당을 나와 부근 제과점에서 간식으로 먹을 빵을 몇개 구입하고 대전역버스정류장으로 갔다.
이번에 우리가 갈 곳은 어디인가?
우선 옥천으로 가야된다. 옥천을 통하여 양산방면으로 가기로 했다.
5. 버스정류장에서 옥천가는 대전640번버스를 기다리니 5분여만에 버스가 왔다.
이번에 타는 버스는 동진교통소속 대전시내버스 640번(옥천역-세천-고속,동부터미널)이다.
차종은 Super aero city이다.
그런데 이 버스는 뒷문으로 타야된다. 앞문은 버스에서 내릴 때
사용하고.. 그리고 버스비는 하차할 때 내야된다.
그 이유는 대전640번이 시외로 나가는 관계로 시외요금을 철저히 징수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다.
대전시내에서 옥천까지
요금은 무려 1200원이다.
뒷문을 통해 버스에 탑승하여 맨뒷자리에 앉았다.
버스는 대전역을 출발하여 원동,인동,판암동,동신고를 지나 대전외곽부분(변두리)에 이른다.
세천을 지나서 산으로 둘러싸인 4번국도를 졀라게 달리니 어느덧 '충청북도
옥천군 군북면'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제부터는 충북 옥천땅이다.
증약을 지나서 경부선,경부고속도로와 나란히 달리니 어느덧 이백(군북)에 이르고 삼양리를 지나서
옥천읍내로 진입. 옥천터미널,옥천군청,농협을 지나
옥천군내버스종점앞에서 내린다.
(처음화면으로)
버스에서 내릴 때는 앞문으로 내리면서 요금을 내야된다. 대전-옥천간
요금인 1200원을 내고
버스에서 내린다. (12:30)
6.
옥천(沃川)은 충청북도 남단에 위치한 고을로 대전광역시의
동쪽에 위치해 있다.
옥천의 주요생활권은 당연히 대전광역시이다.
옥천군지역의 대표적인 관광지는 용암사,우암송시열유적,청석교,금강유원지,중봉조헌묘,대청호반등이
있다.
버스에서 내려서 옥천버스종점으로 갔다.
이곳은 옥천군내버스를 운행하는 버스회사인 '옥천버스'의
전용 차고지로 옥천군내버스노선은 여기서 출발한다.
종점으로 가니 옥천버스소속 군내버스 5대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우리는 매표소에 들어가서 양산행 버스시간을 확인했다.
옥천에서 이원,누교리 경유 양산(양산8경,영국사)으로 가는 옥천군내버스는 1일 6회 운행하며,
버스시간은
6:50,9:00.11:00.13:00.15:00,17:00 모두
6회 운행.
옥천군내버스 노선과 시간표에 관심이 많다면 ------>
(옥천군내버스 정보)
버스시간을 확인하고 누교리까지 버스표를 구입하니 무려 1680원.. 허걱~~
(* 버스요금은 틀릴 수 있음. 정확히 기억이 안나서..)
버스표를 구입하고 종점옆에 있는 매점에 들어가서 음료수를 구입하고 매표소앞 의자에 잠깐 앉아있다가
12:45분에 종점에 짱박고 있는 양산행 버스에 탑승했다.
이번에 타는 버스는 옥천버스소속 옥천군내버스 21번(옥천읍-이원-양산면)이다.
차종은 BF105이다.
(* 단 버스번호는 틀릴 수 있음.)
BF105라 참 오랜만에 타는 차량이다.
버스는 약 10명의 승객을 태우고 13:00에 옥천읍종점을 출발..
옥천역을 지나 4번국도를 힘겹게 달린다.
서대리,세산리,건진리를 지나 이원면에
진입... 약간의 승객을 승하차 시킨다음
4번국도를 버리고 양산방면 지방도로 빠진다.
윤정리,의평리를 지나니 왼편에 넓은 저수지가 우리를 맞이한다. 이 저수지(貯水池)에 이름은
개심저수지라고
한다.
저수지를 왼편에 끼고 달리다가 평계리를 지나 고개를 하나 넘으니 이제부터 '영동군
양산면'이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제부터는 영동군(永同郡)이다.
고개를 넘어서 2km정도 가니 오른편에 영국사를 알리는 이정표가 나온다.
우리는 영국사입구(누교리)에서 내렸는데, 이 버스도 아까전 대전시내버스 640번과 같이 탈 때는
뒷문으로, 내릴 때는 앞문으로 요금을 내면서 하차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버스표를 내고 하차한다. (1:40)
7.
우리가 내린 곳은 누교리로
영국사입구(寧國寺入口)이다.
(처음화면으로)
여기서 영국사까지 2.7km 걸어가야 된다. 허걱~~
영국사주차장까지 약 1.7km구간은 차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2차선도로로 포장이 되어있다.
우리는 영국사를 향해 부지런히 걸어갔다.
날씨는 졀라 덥고, 땀은 부지런히 쏟아져 내린다.
왼편에는 넓은 밭이 펼쳐져있고, 오른편에는 산이 자리잡고 있다.
올라가는 길목에는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식당들이 지나가는 나그네를 유혹하고 있다.
좀 걸어가니 왼편에는 밭대신에 산이 우리 옆에 다가왔다.
도로옆으로는 계곡이 흐르고 있다.
이런 길을 약 1.7km정도 올라가니 어느덧 영국사주차장에 이른다.
이 곳은 말그대로 주차장(駐車場)이다. 영국사,천태산에 놀러온 관광객,등산객들이 여기다 차를 주차시키고
영국사,천태산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주차장에는 대형버스 여러대와 승용차 수십대가 주차되어있다.
이 것들은 모두 관광객,등산객들이 끌고 온 차량들이다.
이 곳 영국사,천태산도 영동지역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크게 알려진 곳이다.
주차장오른편구석에는 식당들이 자리잡고 있다.
주차장을 지나니 길 오른편에 매표소가 나온다.
영국사,천태산 입장료가 500원이군...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 천태산 입장권
8. 표를 구입하고 매표소를 지나니 영국사까지 1km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제부터 영국사로 가는 길은 포장도로가 아닌 비포장 산길이다.
길 오른편으로는 맑고 깨끗한 계곡이 흐르고 있고 계곡건너에는 바위,암벽들이 운치있게 자리잡고 있다.
계곡을 옆에 끼고 계속 올라가니 3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왼쪽길로 가면 진주폭포, 오른쪽길로 가면
영국사가 나온다. 물론 왼쪽길로 가도 영국사가 나온다.
영국사계곡에는 관광객,등산객들이 자리를 깔고 앉아 낮잠을 자거나, 밥이나 간식을 먹거나, 이야기를 하거나.
물에 발을 담구며 휴일을 보내고 있었다.
오른편에 계곡을 끼고 계속 올라가니 길 왼편에 폭포가 하나
나온다.
그 폭포는
삼단폭포이다.
(처음화면으로)
* 영국사계곡에 있는 삼단폭포의 모습
(*
스캔상태가 좀 안좋음..)
삼단폭포의 모습은 위의 사진과 같다.
물이 정말 시원스럽게 쏟아져 내린다.
삼단폭포를 둘러보고 바위와 계곡 숲으로 이루어진 산길을 따라 부지런히 올라가니
아이스크림을 파는 행상이 있고, 그 행상을 지나니 3거리가 나온다.
거기서 왼편으로 가면 진주폭포와 흔들바위가 나오며, 앞쪽길로 가면 영국사가 나온다.
앞쪽길로 계속 가니 약수터가 나오는군, 그래서 약수터에서 물을 마시고..
올라가는 길 왼편에는 넓은 밭이 펼쳐져 있다. 밭에는 일꾼들이 소를 이용하여 경작(耕作)을 하고 있었다.
이 곳에 이렇게 넓은 밭이 있었다니 (그렇게 넓지는 않지만,) 놀라울 뿐이다.
이 밭은 영국사 소유의 밭인것 같다.
약수터를 지나 다리를 하나 건너니 큰 은행나무가 우리를 맞이하는데..
9.
그 은행나무는 영국사앞에 세워진 거대한 나무이다.
(처음화면으로)
(영국사의 역사)
(흔들바위)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영국사에 있는 이 은행나무의 수령(樹齡)은 약 500여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35m, 가슴 둘레 10.8m 정도로 영국사
정문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 있다. 가지는 사방으로 퍼졌으며, 서쪽으로 뻗은 가지 가운데 한 개는 땅에 닿아
뿌리를 내리고 독립된 나무처럼 자라고 있다. 이 나무는 각 부분의 상처가 커져 작은 구멍이 생겼으므로, 1979년에
외과수술을 받음과 동시에 약해진 가지를 보호하기 위해 받침대를 세웠다.
영동 영국사의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큰 나무로 문화적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 223호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 영국사 은행나무의 아름다운 모습
은행나무의 모습은 위의 사진과 같다. 단 다른게 있다면 현재
나뭇잎의 색깔은 녹색이다.
이 나무는 진짜 크다. 실재로 보면 그 엄청난 규모의 압도를 당할 정도..
은행나무앞에는 관광객들이 나무를 바라보거나 또는 나무 부근 그늘에 앉아서 놀고 있었다.
나무왼쪽에는 계곡이 흐르고 있는데, 우리는 거기에 걸터앉아 대전,옥천에서 구입한 음료수,간식거리를
먹었다.
은행나무에서 사방 약 100m까지 그늘지대이다. 그만큼 나무의 규모가 크다는 이야기다.
은행나무옆 계곡에서 간식을 먹으면서 더위를 식히고 20분정도 쉬었다가, 다시 일어나서 영국사 경내로
들어간다.
은행나무를 지나니 절경내로 들어가는 2층누각이 나온다. 그 누각을 통해서 경내로 진입한다.
10.
영국사는 충북 영동군 양산면 천태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처음화면으로)
(은행나무)
(흔들바위)
영국사(寧國寺)는 양산8경(陽山8景)중 제 1경으로 천태산에 자리잡고 있어서
(원각국사비)
(영국사부도)
휴일마다 많은 관광객,등산객들이
이 곳을 찾는다.
이 사찰은 본래 만월사(滿月寺)로 화랑의 세속5계(世俗五戒)를 만든 원광법사(圓光法師)가 608년(신라진평왕30년)
창건하였다. 그후 고려때에는 천태종(天台宗) 중흥의 시조인 대각국사(大覺國師)가 머물면서 사찰 이름을
국청사(國淸寺)로 고쳤으며, 그런 연유로 산 이름도 천태산(天台山)으로 불렸다 한다.
1361년(고려 공민왕 10년)에는 홍건적의 난으로 그 당시 고려국왕인 공민왕이 이 곳 근처에 있는 마니산성
(摩尼山城)으로 피신했는데, 왕은 이 절에 와서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빌었다. 그때 공민왕이 절(영국사)에 다니기
편리하도록 인근 주민들이 칡덩굴로 바를 꼬아 개천에 구름다리(樓橋)를 매어 놓으니, 그로 인해 마을 이름도
누교리(樓橋里)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홍건적(紅巾賊:원나라 말기 머리에 붉은 수건을 두르며 중원대륙을 설치고 다닌 도둑패거리들)의 난이 끝나자
공민왕은 송도(개성)로 환도(還都)하여 나라의 안녕을 되찾은 기념으로 절 이름을 영국사(寧國寺)로 고쳐 부르도록
했다.
이런 역사를 지닌 영국사는 보물 4점, 천연기념물 1점, 지방문화재 3점을
보유하고 있다.
지금부터 영국사 경내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11. 2층누각을 통해 영국사 경내로 들어서니 정면에는 3층석탑이 서 있고 왼편에는 요사채로
보이는 건물,
그리고 3층석탑 뒤에는 대웅전(大雄殿)이 자리잡고 있다.
대웅전앞에 서 있는 이 3층석탑(三層石塔)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갖춘
완전한 형태이다. 위·아래층 기단의 네 면에는 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특히 위층 기단의 무늬는 모서리까지
침범할 만큼 크고 넓다. 기단 맨윗돌에는 네 모서리 끝부분에서 약간의 치켜올림이 있어 주목된다. 탑신부는 각
몸돌의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겨 놓았으며, 1층 몸돌 정면에는 자물쇠와 문고리까지 있는 문짝 모양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윗면의 경사가 완만하고 네 귀퉁이는 바짝 치켜올려진 상태이며,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각 4단씩이다. 화강암으로 조성한 이 탑의 높이는 3.15m에 이른다.
이 탑은 기단과 탑신부가 간결하여, 조형 미술품의 규모가 작아지고 양식도 간략화되던
후기신라(676~935)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석탑은 보물 533호이다.
* 영국사 3층석탑의 모습 (보물 533호)
대웅전앞 3층석탑의 모습은 위의 사진과 같다.
3층석탑을 보고 대웅전(大雄殿)으로 갔다.
이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상을 모시는 법당으로,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놓인 다포양식의
건물이다. 조선말기에 세워진 건물로 충북지방유형문화재 61호로
지정되어 있다.
* 영국사 대웅전과 3층석탑의 모습..
대웅전안에는 불단(佛壇)이 설치되어있고 불단위에는 석가모니3존불이
온화한 미소를 지우며 앉아있다.
불상앞에는 신도 몇명이 예불(禮佛)을 드리고 있다.
대웅전을 보고 뒷쪽으로 가니 산신각(山神閣)이 나온다.
산신각은 말그대로 산신을 모신 건물이다.
사찰(寺刹)은 비록 석가를 모신 곳이지만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기존의 토착신앙(산신,칠성..)과
융합되면서 절 경내에 산신(山神),칠성(七星)등을 모시는 건물이 세워진 것이다.
우리나라 어느 절이나 산신각,칠성각은 반드시 있다. (2개 모두 있는 절도 있고, 1개만 있는 절도 있음)
산신각에는 산신의 모습을 그린 산신도(山神圖)가 걸려있고 그앞에는 수박,사탕,바나나등의 제물이
놓여져 있다. 그래서 사탕,바나나를 몇개 가져갈려고 안에 들어가려고 하니까 희수님이 안된다고 몸으로
막는 바람에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12. 산신각을 보고 대웅전앞으로 나와서 오른편 길로 갔다.
대웅전옆에 있는 요사채에는(건물이름이 틀릴 수 있음) 승려,신도들이 석가탄신일(5월 18일)에 있을 행사 준비를
부지런히 하고 있었다.
요사채를 나오니 왼편에 약수터가 있다.
그래서 물을 몇 모금 마시고, 천태산쪽으로 올라갔다.
물론 산쪽에 볼 것이 있기 때문에..
밭으로 펼쳐진 산길을 따라 200m정도 올라가니 부도2기와 비각이 보인다.
배열된 순서는 앞에서부터 비각(비),부도,부도 의 순으로 되어있다.
제일 앞에 서 있는 비석은 무엇인가..?
그 비석은 원각국사비(圓覺國師碑)이다.
(처음화면으로)
(은행나무)
(흔들바위)
(영국사부도)
영국사 경내에서 약 200m 떨어진 언덕에 있는 비로, 고려시대 중기의 승려 원각국사(圓覺國師)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원각국사는 어려서 출가하여 선사·대선사가 되었던 명승으로, 명종 4년(1174)에 입적하자 왕(명종)은
그의 유해를 영국사에 안치하였다.
비의 형태는 거북 모양의 비받침인 귀부(龜趺) 위에 비몸을 세우고, 비머릿돌을 얹은 일반적인
모습이다. 귀부는
전형적인 고려시대 양식을 보인다. 용의 머리를 형상화한 거북 머리는 퇴화되었고, 거북등의 6각형 무늬와 비를
끼워두는 곳의 덩굴무늬는 생략되었다. 비몸은 아랫부분이 결실되어 있으며 훼손이 심하다. 비머릿돌에는 구름과
용이 형식적으로 새겨져 있고, 앞면 중앙에는 ‘원각국사비명(圓覺國師碑銘)’이라는 비의 명칭이 새겨져 있다.
전체적으로 둔중한 느낌을 주는데 이는 시대적 특징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몸에 비하여 비받침이 커서
안정감을 주는 반면, 비머릿돌(이수)이 지나치게 커서 중압감을 주고 있다.『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에 의하면
비문을 지은 이는 한문준이고, 건립연대는 고려 명종 10년(1180)이다.
비의 꼭대기부분에 있는 이수는 비에서 떨어져 나가서 비의 왼편에 누워있으며, 현재는 비석의 보호를
위해 보호각(保護閣)을 만들어서 그 안에 모시고 있다.
이 비석은 보물 534호이다.
* 원각국사비의 모습 (비신이 많이 손상되었다)
* 이수의 모습 (원각국사비에서 떨어져
나갔다.)
원각국사비의 모습과 이수는 위에 사진과 같다.
비석은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많이 손상되었다.
비의 왼편에 누워있는 이수는 원래 비석의 꼭대기 부분에 있었으나 비가 크게 손상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떨어진 것이다.
13. 원각국사비를 보고 뒤로 가니 부도(浮屠)가 2기 서 있다.
그중에서 제일 앞에 있는 것은 원구형부도 (圓球形浮屠)이다.
부도는 승려들의 사리를 봉안한 쉽게 말하면 승려들의 무덤이다.
이 사리탑에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탑의 기단부(基壇部)는 네모난 바닥돌 위로 8각의 아래받침돌을 세우고, 역시 8각의 윗받침돌을 올려놓은
구조이다. 아래받침돌은 각 면마다 안상(眼象)을 얕게 새겼고, 위가 반듯한 윗받침돌은 밑으로 한겹씩의
연꽃무늬를 둘렀다. 탑신(塔身)의 몸돌은 둥근 공모양이며, 지붕돌은 8각으로 여러 조각들이 생략되어 밋밋하고
투박하다. 지붕돌 위로는 꽃봉오리모양을 한 머리장식을 올려 놓았다.
각 부분의 조각들이 생략되거나 간략화되고, 연꽃잎이 한겹으로 되어 있어 여말선초(고려말 조선초)시대 작품으로
보인다. 원각국사비 뒷편에 있는 것으로 보아 원각국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원구형부도는 충북지방유형문화재 185호로 지정되어 있다.
* 원구형부도의 모습 (* 뒤에 석종형 부도가 보인다.)
원구형부도를 보고 뒤에 있는 부도로 발길을 옮겼다.
뒤에 있는 부도는 석종형부도(石鐘形浮屠)이다. 말그대로 종처럼 생긴
석조물이다.
이 사리탑도 앞에서 언급한 원구형부도와 같이 부도의 주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네모난 바닥돌 위에 마련된 기단(基壇)은 세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두 8각이다. 기단의 가운데받침돌을
제외한 아래·윗받침돌에는 각기 연꽃을 조각하여 둘렀는데 꽃잎은 모두 한겹씩이다. 그 위로는 종모양의
탑신(塔身)이 올려져 있는데, 그 위의 머리장식조차 종을 매달 때 쓰이는 고리를 떠올리게 하여 실제의 종과
거의 비슷하다.
바닥돌에서부터 머리장식까지 모두 6매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석종형 부도이면서도 다른 탑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이다. 연꽃잎도 모두 한겹으로 표현되어 있어 고려말·조선초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뒷편으로는
원각국사비가 서 있어서, 원각국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석종형부도는 충북지방유형문화재 184호이다.
* 석종형부도(石鐘形浮屠)의
모습
14. 석종형부도를 감상하고 나머지 하나를 보기 위해 산쪽으로 올라갔다.
나머지 하나는 보물로 지정된 부도(浮屠)이다. 산쪽으로 50m정도 올라가니 등산객이 우리쪽으로 내려온다
그래서 그들에게 "이쪽으로 올라가면 부도같은 것이 있습니까?"
그러자 그들의 답변은 "그런거 없어요"
라고 그런다. 그래서 이쪽이 아닌 것 같아서 올라왔던 길로 100m정도 내려오니 오른편에 길이 하나 있다.
그 길로 쭉 가니 언덕이
하나 나오고, 그 언덕을 오르니 우리가 찾던 그 부도가 우리를
맞이한다.
(처음화면으로)
(영국사의 역사)
(은행나무)
(흔들바위)
(원각국사비)
이 부도는 영국사 경내에서 남쪽으로 약 200m 떨어진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다. 기단부·탑신부·머리장식부로
나뉘어지며 전체적으로 8각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기단의 아래받침돌은 바닥돌과 한 돌이고 가운데받침돌은 8각의 면마다 무늬를 조각하여 넣었다. 윗받침돌 옆면에는 한 겹의 연꽃잎을 위아래로
장식하였다. 탑신에는 한 면에 직사각형의 문짝을 새기고 그 안에 자물쇠 모양을
돋을새김하였다. 지붕돌의 각 면에는 기왓골을 본떠 새겼는데 처마의 곡선과 잘 어울려서 경쾌한 인상을 준다.
머리장식으로는 복발(覆鉢)과 보주(寶珠)가 남아있다.
전체 높이가 1.76m에 이르는 이 부도는 다른 부도에 비해 손색이 없는 걸작품이다.
이 부도가 세워진 연도는 근처에 있는 원각국사비와 연관지어볼 때 고려 명종 10년(1180)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부도는 보물 532호이다.
*
영국사 부도(浮屠)의 모습 (* 실제로 보면 대개 작다.)
부도의 모습을 위의 사진과 같다.
이 부도를 실재로 보면 대개 작다. 규모는 비록 작지만 작품성이 아주 뛰어난 부도이다.
우리는 부도앞에서 잠깐 쉬었다가 다시 영국사 경내로 내려왔다.
15.
영국사 경내로 내려와서 아까전 약수터에서 물을 마신다음 은행나무쪽으로 내려왔다.
은행나무부근에는 많은 사람들이 더위를 피하기 위해 여기저기 앉아서 밥을 먹거나 낮잠을 자고 있었다.
이 거대한 은행나무 부근에 천태산관광안내도가 세워져있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 다시 왔던길로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목에 약수터가 있어서 물을 마시고 아이스크림 파는 행상이 있는 쪽으로 갔다.
내려가는 길 오른편 아래에는 넓은 논,밭이 펼쳐져 있는데 그 곳에는 10여명의 인부들이 소를 이용하여
경작을 하거나 또는 모내기를 하고 있었다.
농사에 필요한 경운기같은 것은 아예 없었다. 그냥 수작업으로 하는 것이다.
행상이 있는 곳으로 오니 길이 2갈래로 갈라진다. 여기서 직진하면 3단폭포가 나오며(아까전에 올라온 길)
오른쪽으로 가면 동탑봉(망탑봉)이 나온다. 그래서 우리는 동탑봉쪽으로 간다.
오른쪽길로 들어서니 그 논,밭이 바로 앞에서 보인다. 인부들은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있었고, 일부는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인부들과 함께 소들도 열심히 일하고 있군..
그 길로 200m정도 들어가니 계곡이 나오면서 계곡 위에 흔들다리가 걸려있다.
흔들다리를 건너면서 앞쪽아래를 보니 그 3단폭포가 있다. 여기가 3단폭포의
윗부분이다.
3단폭포아래로는 아까전에 올라왔던 등산로가 보인다.
3단폭포쪽은 출입이 금지되어있다. (이유는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서..)
흔들다리를 건너니 언덕하나가 나온다.
올라가는 등산로는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등산로를 약 3분정도 올라가니 언덕의 정상이 나온다. 바로 동탑봉(망탑봉)의
정상이다.
정상에 오르니 오른쪽에는 이상하게 생긴 바위가 있고 정면에 있는 바위 위에는 3층석탑이 세워져있다.
16.
오른쪽부분에 있는 그 이상하게 생긴 바위는 바로 흔들바위이다.
(처음화면으로)
(영국사의 역사)
흔들바위는 말그대로 흔들리는 바위로 사람들이 밀면 약간 흔들리는 바위이다.
(은행나무)
(영국사부도)
우리나라에 흔들바위가 여러군데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설악산에 있는 흔들바위와
여수 돌산 향일암뒤에
있는 흔들바위, 그리고 바로 이곳이다. 설악산 흔들바위는 92년에 가봤으며 향일암의 흔들바위는 2000년에
가봤다.
* 흔들바위의 모습 (*
왼편에 있는 남자가 열심히 바위를 밀고 있다)
여기에 있는
흔들바위는 물개 비슷하게 생겼다.
바위에 머리부분에는 입처럼 생긴 부분도 보인다.
우리는 이 바위를 한번 밀어보았다.
그러나 바위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희수님이 직접 밀었는데도 불구하고 바위는 제자리에 그냥 있었다.
희수님의 계획은 그 바위를 아래로 떨어뜨리는 것인데 그것이 뜻대로 안되자 약간 실망한 듯한 표정을..
흔들바위에서 앞쪽을 바라보니 영국사와 천태산, 그리고 넓게 펼쳐진 논,밭이 한눈에 보인다.
영국사는 바로 앞에 있는 은행나무 때문에 일부분만 보였다.
흔들바위를 지나 봉우리 정상 바위에 있는
망탑봉3층석탑으로 갔다.
이 석탑은 영국사에서 동쪽으로 약 500m 떨어진 망탑봉(望塔峰)이라는 작은 봉우리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커다란 화강암을 기단(基壇)으로 삼고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기단은 암석 윗면을 평평하게 다듬고 그 중앙에 돌출된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기단은 기둥모양과 안상(眼象)을 조각하여 형태를 완성하였다. 그 위에 아무런 받침없이 그대로 탑신이 놓여있다. 탑신은
윗부분이 아래부분보다 좁아지는 몸돌을 쌓아올렸다.
1층 몸돌에는 네 면에 무늬없는 문짝모양을 돋을새김하였는데 위·아래가 돌출된 액자형이다. 지붕돌은 낙수면의
경사가 완만하며, 추녀는 수평의 직선을 이루다가 끝에서 가볍게 들려있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1층이 5단이고
2·3층은 3단이며. 이 탑의 높이는
2.43m에 이른다.
탑은 전체적으로 체감률이 일정하지 않지만, 몸돌의 상부를 좁게함으로써 비교적 안정감이 있다. 기단을 한 층으로
하고 기단의 맨윗돌을 생략하는 등 부분적으로 간략화된 고려석탑의 유형을 보여준다. 각 부 양식과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 중기인 12세기경에 건립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 석탑은
보물 535호이다.
* 망탑봉(동탑봉)정상에 세워진 3층석탑의 모습
17. 망탑봉 3층석탑은 봉우리 정상 바위에 세워져있다.
탑의 모습은 위의 사진과 같다.
탑 자체는 그냥 평범한 3층석탑이다. 그러나 산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어서 전망이 좋으며 아래에서 내려다 보면
대개 웅장하게 보인다. (* 경주 남산에 있는 용장사터 3층석탑과
비슷하다)
석탑을 보고 그늘진 구석에 앉아 산 아래를 바라보면서 20분정도 쉬었다.
여기서 아까전에 먹다 넘은 빵과 음료수를 먹고, 내가 집에서 가져온 수집품을 희수님한테 보여줬는데
희수님이 그것을 보더니만 거의 눈독을 들이다 싶이 했다는..
망탑봉 봉우리에서 20여분정도 쉬고 다시 길을 떠났다.
망탑봉에서 내려가는 길은 2가지인데
하나는 영국사쪽으로 가는 길,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진주폭포로 내려가는
길이다. 우리는 진주폭포로 내려가기로 했다.
망탑봉3층석탑과 흔들바위를 뒤로 하고 진주폭포쪽으로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은 그렇게 험하지는 않은데 좀 내려가니 줄타기 코스가 나온다.
여기서는 줄을 타고 내려가거나, 올라가거나 해야된다.
줄타기 코스를 지나서 10여분정도 내려가니 바위가 나오고 그 바위를 내려가니 계곡이 나온다.
계곡물은 졀라 깨끗했다. 계곡암반에 앉아서 손을 씻고 세수를 했다.
기분같아서는 여기서 발도 담구고 놀고 싶었으나, 시간도 그렇구 해서 그냥 내려갔다.
계곡을 따라 계속 내려가니 절벽 비슷한데가 나온다.
여기는 어딜까? 절벽쪽에는 폭포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진주폭포이다.
(처음화면으로)
진주폭포는 망탑봉 아래 계곡에 있는 폭포이다.
폭포는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으나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멀리서도 들릴 정도이다.
절벽을 지나서 진주폭포를 뒤로 한 채 계속 걸어가니 3거리가 나온다.
여기는 영국사에 진입하기 전에 언급했던 그 3거리이다.
여기서 왼편길로 가면 영국사가 나오며, 앞길로 쭉 가면 영국사주차장이 나온다.
18. 영국사계곡을 왼편에 끼고 주차장쪽으로 계속 걸어갔다.
계곡주변에는 바위와 암반들이 운치있게 들어서 있으며 곳곳에 관광객들이 진을 치고 앉아 쉬고 있었다.
주차장쪽으로 10여분정도 걸어가니 어느덧 매표소가 나오고 영국사(천태산)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에는 관광객,등산객들이 끌고 온 차량 수십대가 세워져있다.
이번에 우리가 갈 곳은 어디인가?
바로 양산8경이 있는 송호리지역이다. 여기서 양산을 갈려면 참 어정쩡하다.
영국사입구까지 걸어가서 양산가는 버스를 타야되는데 버스운행시간을 모르는지라.. (*
1일 11회정도 운행)
지나가는 차를 잡아 타기로 했다.
누교리로 천천히 내려가면서 내려가는 차를 잡는데, 마침 차 1대가 우리앞에 멈춰섰다.
그래서 우리는 그 차에 탑승하면서 내가 "어느쪽으로 가세요?"
라고 물으니 운전사아저씨가
"대전쪽으로 가요"라고
응답을 했다. 그래서 내가 "양산쪽으로는 안가시나요?"라고
물으니
아저씨왈 "그쪽으로는 안가요"라고
대답한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영국사입구까지만 신세를 지기로 했다.
그 차에는 운전사아저씨와 그 부인 그리고 그들의 아들이 타고 있었다. 영국사에서 놀다가 대전으로 가는
중이였다.
차를 얻어 타고 2km를 달려서 어느덧
영국사입구에 도착.. 운전사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차에서 내렸다.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이번에도 지나가는 차를 잡아야 된다.
양산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면서 차를 잡는데 마침 영국사입구에 세워져있던 차가
우리쪽으로 온다.
그래서 우리는 손을 흔들며 세워줄 것을 요청했다. 처음에는 그 차는 그냥 지나갈려고 했는데, 희수님의
빼어난 외모에 넋을 잃었는지 좀 가다가 멈춰섰다.
그래서 우리는 그 차에 탑승했다. 그 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40~50대로 보이는 아저씨이다. 물론 혼자..
우리는 그 차를 얻어타고 양산쪽으로 갔다. 호탄리를 지나니 강이 하나 나오는데 그 것은 바로
금강(錦江)이다.
이 지역이 바로 금강상류지역(錦江上流地域)중 한 곳이다.
우리를 태워준 운전사는 원래 다리 못미쳐(호탄리)까지 가는데 우리들때문에 금강을 건너서 다리남단3거리까지
오게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운전사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차에서 내렸다. 그 운전사는 우리가 내리자 곧바로
금강을 건너 호탄리쪽으로 가버렸다.
19. 우리는 양산(송호리)쪽으로 걸어가면서 지나가는 차를 잡았으나 모두 그냥 지나가버린다.
양산쪽으로 약 1km정도 걸었을까. 승용차 1대가 우리의 요청에 따라 우리앞에 멈춰섰다. (아마 희수님의
향기때문이 아닐까 ^^*) 그래서 우리는 그 차에 탑승했다.
그 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40대로 보이는 아저씨였다. 물론 혼자..
우리는 그 차를
얻어타고 영동쪽으로 2km정도 가니 마을이 하나 나온다. 마을에는 우체국도 있고 농협도 있다.
여기가 바로
영동군 양산면에 중심마을인 가곡리이다.
(처음화면으로)
이 곳 양산면 가곡리를 운행하는 버스노선은
옥천읍에서 옥천군내버스가 1일 6회 운행하며,
영동역에서 영동군내버스가 1일 18회정도 운행한다.
자세한 버스시간표는 ------>
(영동역↔양산면
버스시간표)
우리는 운전사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차에서 내렸다.
여기(가곡리)에서 송호리관광지까지는 1km 거리이다.
우리는 송호리관광지를 향해 부지런히 걸어갔다.
도로 양쪽에는 논,밭이 넓게 펼쳐져있고, 군데군데 집들이 들어서 있다.
1km정도 걸어가니 송림(松林)으로 우거진 곳이 나온다.
그 곳이 바로 송호리(양산8경)관광지이다.
송림지대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매표소가 있고 매표소앞에는 주차장과 숙박시설,식당등이 자리잡고 있다.
매표소에 가서 입장료를 알아보니 무려 1000원이다.
허걱~~
그러나 할 수 없다.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 송호리 국민관광지 입장권의 앞면 (사진에 나온 정자는 강선대)
* 송호리 국민관광지 입장권의 뒷면
20.
송호리 국민관광지는
금강상류에 위치해 있다.
(처음화면으로)
(여의정)
(강선대)
우리 국문학상 신라가요에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양산가(陽山歌)의 고장
송호국민관광지는 양산을 꿰뚫고 남에서
동북으로 흐르는 금강 상류 연안에 위치한 명승지로 자연경관이 매우 아름다울 뿐만아니라, 백제와 신라의 끊임없는
맞짱의 역사 속에 신라 김흠운 장군의 애환과 양산가의 유래가 깃든 곳으로 유명하다.
86,000평의 부지위에 조성된 송호국민관광지는 관리사무소를 비롯하여 주차장, 샤워장, 취사장, 체력단련장,
어린이 놀이터, 산책로, 방갈로 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관광지내에 있는 송호 물놀이장은 유아풀, 성인풀,
유수풀, 높이 2m 길이 13m의 어린이 슬라이드풀, 높이 6m 길이 43m의 청소년 및 성인용 슬라이드풀, 모래 찜질장 등의 시설을 갖추어
놓고 있으며 분수대, 장미꽃 터널, 살구꽃 동산, 특산물을 형상화한 조각공원 등 송호국민관광지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많은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금강 상류의 맑은 물과 100년 이상된 송림이 어우러져 산림욕과 더불어 가족단위 및 청소년 심신수련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주변에는 하늘의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였다는 강선대(降仙臺)와 승천하려던 용이 선녀가 목욕하는
것에 반하여 승천하지 못하고 떨어졌다는 용바위(龍岩), 만취당(晩翠堂) 박응종(朴應宗)이 말년에 후학을 가르쳤다는 녹음방초의 여의정(如意亭)이
있다.
여기서 강선대와 용바위, 여의정은 양산8경에 속해 있다.
여기서 양산8경(陽山8景)이란?
충북 영동군 양산면의 양강(楊江: 금강상류지역)일대에 있는
경승지로 영국사(寧國寺),
강선대(降仙臺),
비봉산
(飛鳳山),
봉황대(鳳凰臺),
함벽정(涵碧亭),
여의정(如意亭),
자풍당(資風堂),
용암(龍岩)을 일컫는다.
지금부터 송호리관광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21. 매표소를 지나 송림지대로 들어갔다.
관광지내에는 수백명의 행락객들이 여기저기서 진을 치고 앉아 놀고 있었다.
일부 단체행락객들은 배구,축구등을 하면서 휴일을 보내고 있다.
이곳 송림은 수령이 100년이 넘는 나무들로 키가 졀라 크다. 나무도 울창하고. 여기저기서 청솔모, 다람쥐등이
뛰어 놀고 있았다.
송림지대를 가로지르며 200m정도 가니 금강(錦江)이 나온다.
강가에는 각도 45도정도 되는 둑이 설치되어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둑아래 산책로가 있었는데 최근에
비가 많이 내린 관계로 그 산책로는 물에 약간 잠겨있었다.
우리는 강가에 앉으면서 잠깐 쉬었다. 강바람도 쐴겸해서..
그런데 강 가운데에 돌로 된 섬이 2개가 떠 있다.
그중에서 오른편에 있는 것이 바로 용바위(龍岩)이다.
용바위는 양산8경의 제8경으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 아주 먼 옛날에 하늘에
있는 선녀들이 강선대(강 건너에 있음)의 뺴어난 경치와 맑은 물에 넋을 잃어
이곳으로 내려와서 아름다운 자태로 목욕을 했는데, 이 모습을 지켜보던 용이 격정을 누르지 못하고
살며시 다가서자 선녀(仙女)는 깜짝 놀라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이에 용은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뭐가 안따까울까?)
그 자리에서 굳어져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 여기서 추론하자면 그 용은 남자이다. 자세한 내용은 생략..
* 용바위(용암)의 모습 (* 강
가운데에 떠 있다)
22.
강가에서 용바위를 바라보면서 잠깐 앉아있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가를 거닐면서 강바람도 쐬고 울창한 송림도 바라보고..
그런데 송림사이로 정자가 하나 보인다. 그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그 정자(亭子)쪽으로 올라 갔다.
정자는 작은
언덕위에 세워져 있고 정자 왼편에는 이름 모를 석불(石佛)과 다층석탑(多層石塔)이 세워져 있다.
이 석불과 석탑은 언제 세워졌는지는 모른다. 안내판이 없는 관계로. 대충 보아하니 조선시대때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석불옆에 서 있는 다층석탑은 좀 부실하게 보였다.
석탑을 만져보고 그 정자로 갔다. 그 정자의 이름은 여의정(如意亭)이다.
(처음화면으로)
(송호리관광지)
이 정자는 송호리 관광지안에 있는 바위 위에 세운 정자로 만취당 박응종선생이
만년에 관직을 (강선대)
사직하고 고향에
내려와서 만취당이란 학문을 가르치는 집을 짓고 마을의 자제들에게 예의범절과 경사와 사기를
가르쳐 학자들을
가르치니 사림을 본받고 동경하는 고장이 되었다. 그 이후 1935년 가을에 그의 후손들이 만취당
옛터인 지금에
자리에 정자를 세웠다. 이 여의정은 양산8경의 제6경이다.
이 정자(여의정)는 현재 영동군지정 향토유적 23호로 지정되어
있다.
여기서 향토유적(鄕土遺蹟)이란 기초단체(시,군)에서 지정하는
문화재로 문화재등급중 제일 최하위이다.
물론 비지정문화재(非指定文化財)보다는 상위이다.
여의정은 앞에 송림들이 진을 치고 있는 관계로 전망은 별로이다. 물론 금강은 보이기는 한다.
* 양산8경의 제6경인 여의정의 모습
23. 여의정에서 잠깐 앉아있다가 강가로 나왔다.
그런데 강 건너에 있는 절벽위에 정자(亭子)가 하나 눈에 띄는군..
그래서 우리는 그 정자쪽으로 가기로 했다.
그 정자로 갈려면 금강을 건너야 되는데 용바위 아랫쪽에 다리가 하나 있다.
그래서 그 다리쪽으로 걸어갔다.
좀 걸어가니 담장이 나온다. 담장이라지만 그냥 철로 만든 야트막한 담이다. 유원지경내와 밖을 구분짓기 위해
만든 것이다.
우리는 담장을 훌쩍 뛰어 넘어서 (희수님의 그 환상적인 월담실력..) 밭을 지나 다리를 건넜다.
그 다리의 이름은 양산교인가? 송호교인가? 잘은 모르겠다. 어쨌든 2차선으로 되어 있는 다리이다.
이 다리는 양산에서 이원,심천방면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다리를 건너서 왼편 언덕에 있는 정자로 올라갔다.
정자로 가는 길목에는 곳곳에 웅덩이가 있고 주변에는 나무와 꽃들이 피어 있다.
언덕을 올라가니 안내판이 하나 나온다.
여기는 바로 강선대(降仙臺)이다.
24. 이
강선대는 양강 기슭에 있는 언덕위에 세워진 정자이다.
(처음화면으로)
(여의정)
(송호리관광지)
1956년에 지금의 6각 정자가 세워졌다. 1996년 5월에는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었다. 기슭의 기암절벽과 노송이 울창한
곳으로 대밑을 감돌아 흐르는 맑은 강물이며 멀리 퍼진 넓은 들의 경관은 사람의 마음을
상쾌하게 만들어주는 곳이다. 전설에 의하면 신선이 하강하여 놀던 곳이라 하여 강선대라 하였으며 동악 이안눌과 백호 임제의 훌륭한 시가 있다.
이 곳은 양산8경의 제2경,
이 강선대는 영동군지정 향토유적 1호이다.
* 양산8경의 제2경인 강선대의 모습 (*
강건너에 송호리관광지가 보인다.)
강선대 안내판을 보고 강선대로 올라간다.
강선대는 송림으로 우거진 절벽위에 자리잡고 있다.
강선대에 올라가니 앞에는 푸른 금강이 흐르고 있고 강건너에는 송림으로 우거진 송호리관광지가
보인다.
아래는 깍아지른 듯한 절벽이다.
정자(강선대)에 앉아서 주변 경관을 바라보았다.
경관 하나 좋군..
정자에서 10여분 정도 머물다가 다시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아카시아꽃을 한송이 뜯어서 희수님한테 줬다.
꽃을 주니까 대개 좋아한다.
강선대를 내려와서 강가쪽으로 갔다. (5:40)
강가에는 몇몇 행락객들이 진을 치고 놀고 있었다.
우리는 강가에서 강을 향해 돌을 던졌다. 왜 던졌을까? --> 그냥..^^*
25. 이제 우리가 갈 곳은 어디인가? --> 바로 옥천 또는 영동이다.
그런데 버스시간을 모른다. 그래서 지나가는 이들에게 물어볼려고 했으나. 지나가는 사람이 없다.
마침 이원쪽에서 오토바이가 1대 온다. 그래서 그 오토바이운전사에게 버스시간과 타는 곳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아저씨는 "버스탈려면 저쪽(다리의 북단, 강선대쪽)에서 타야 됩니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내가
"그것은 어디로 가는 버스입니까?"라고 물으니 아저씨가 "영동쪽으로
가는 버스요, 옥천으로 갈려면 양산으로
가야 되요"라고 대답한다. 그런 다음 시계를 보더니 "버스가 곧 올것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버스를 탈까 했는데, 그 때 이원쪽에서 승용차가 한대 온다. 그러자 희수님이 그 차를 향해
손짓을 하니 그 차는 다리북단쪽에 멈춰섰다. 음 우리를 태워주려는 것인가?
우리는 그쪽으로 가서 태워줄것인지를 물으니 운전사가 타라고 손짓을 한다.
그래서 그 승용차에 탑승했다. 승용차안에는 운전사(30대의 남자)와 뒷좌석에는 그의 어린 딸이 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그 운전사에게 어느쪽으로 가냐고 물으니 "양강으로 갑니다"라고 그런다. 양강은 영동 못미쳐에 있는
동네이다. 그래서 우리는 양강까지 가기로 했다.
송호리관광지를 지나서 원당리를 지나 영동-무주간 19번국도로 진입하여 10여분 정도 달리니 어느덧
양강에 이른다.
운전사는 양강버스정류장부근에서 우리를 내려주고.. 우리는 고마움의 뜻을 표하고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양강(괴목리)은 영동읍에서 5km정도 떨어진 곳이다.
버스정류장에 이르니 마침 영동으로 가는 군내버스가 온다.
이번에 타는 버스는 동일버스소속 영동군내버스로 영동역으로 가는 버스이다.
요금은 650원, 기본요금이군..
버스는 양강을 지나서 10분정도 가니 어느덧 영동읍내로 진입. 영동시외버스터미널을 지나서
18:10분에 영동역에 도착하여 내린다.
26.
영동역은 영동군(永同郡)의 중심역이다.
(처음화면으로)
영동군은 충청북도 제일 남단에 위치해 있는 고을로 동쪽으로는 경북 김천시, 남쪽으로는 전북 무주군,
북쪽으로는 경북 상주시와 접해있다.
영동군의 대표적인 관광지는 양산8경,송호리관광지,영국사,물한리계곡,추풍령,난계사,민주지산,황학산등이
있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린다음 영동역사(驛舍)로 갔다.
이번에는 어디로 가야 되는가? --> 조치원으로 가야 된다.
조치원으로 가는 이유는 희수님집과 가깝기 때문에. 거기서 저녁을 먹고 헤어지기 위해서이다.
물론 대전도 있고 천안도 있고 서울도 있으나, 희수님의 편의를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표사는 곳으로 가서 열차표를 구입하고 열차를 기다린다.
다행히 조치원역까지는 좌석이 있다.
열차표를 구입하고 역사내에서 잠깐 대기하고 있다가 18:20분에 개표를 받구 열차 타는 곳으로 나갔다.
타는 곳에는 수십명의 승객들이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영동역 열차 시간표는 ------>
(영동역 열차안내)
18:30분이 되자 우리가 탈 열차가 영동역에 들어왔다.
이번에 타는 열차는 부산역을 출발하여 서울역으로 가는 무궁화호 제 240열차이다.
운임은 5200원이며, 좌석은 8호차 11,12석이다.
* 영동
→ 조치원 무궁화호 승차권
27. 우리는 열차에 올라서 지정된 자리에 앉았다. 마침 그 자리에는 남녀2명이
앉아있었는데 그들을
내보내고 자리에 앉았다.
열차는 영동역을 출발하여 서울을 향해 졀라게 달린다.
이원,옥천을
지나 어느덧 대전광역시에
진입.. 대전역에
정차하여 많은 승객들을 타고 내리고 한 다음,
대전역을 출발하여 신탄진을 지나 금강을 건너 19:24분에 조치원역에 도착하여 내린다.
28.
조치원역(鳥致院驛)은 충남 연기군 조치원읍의 중심역이다.
(처음 화면으로)
역사를 나와서 부근 분식집으로 들어갔다. 마침 그때가 저녁시간인지라 저녁을 먹기 위해서
분식집에서 쫄면과 라면,김밥을 먹은 다음, 후식으로 옆에 있는 31~~에 들어가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역전앞 광장 의자에 앉아서 먹었다. (20:00)
어느덧 헤어질 시간이 온 듯하다.
아이스크림을 다먹고 역전에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여기서 희수님은 버스표를 구입하고 앞에 대기하고 있던 청주좌석버스747번에 탑승하면서 작별인사를 했다.
나는 희수님의 가는 모습을 보고 조치원역으로
들어가서 열차표를 구입했다.
물론 좌석은 없다. 모두 입석분이다.
그리고 그날은 휴일인지라 사람들이 졀라 많았다. (조치원역은 평일에도 사람들이 많다.)
열차표를 구입하고 2층 대합실로 올라가서 잠깐 앉아있다가 개표를 받구 열차 타는 곳으로 내려갔다.
내가 타는 열차는 20:47분 열차인데, 20:53분에 열차가 조치원역에 들어왔다.
무려 6분씩이나 지연을 한 것이다.
이번에 타는 열차는 여수역을 출발하여 서울역으로 가는 무궁화호 제
478열차이다.
운임은 입석이기 때문에 4600원이다. 좌석은... 입석(立席)이다.
* 조치원
→ 서울역 무궁화호 승차권
29. 열차는 엄청난 승객을 태우고 조치원역을 출발한다.
객차내에도 엄청난 입석승객들 때문에 매우 혼잡하다.
열차는 전의,전동을 지나 천안역에
정차한다. 여기서도 역시 많은 승객들이 탑승했다.
천안역을 출발하여 안성천을 건너 평택역에
이른다.
여기서 자리가 하나 생겼는데, 나는 그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곧바로 잠이 들기 시작...
잠에서 깨보니 어느덧 서울역...
열차에서 내려서 서울역사(驛舍)로 나왔다.
(처음화면으로)
세수를 한 다음 부근 시내버스정류장으로 가서 우리집가는 서울20번버스를 기다리는데 졀라 안온다.
버스를 기다린지 30분만에 20번버스가 왔다.
이번에 타는 버스는
한성여객소속 서울시내버스 20번(상계동-서울역)이다.
자세한 운행노선은 -----> (20번노선안내)
버스를 타고 남대문시장,명동,혜화동,돈암동,길음동,미아동,수유리,신창동,방학동,도봉동을 지나
중랑천을 건너 상계1동에 도착, 버스에서 내린다음 집으로 들어가니 새벽 0시..
--> 이로써 대전,옥천,영동,조치원지역에 대장정은
이렇게 막을 내리게 된다.......!!
30. 마무리
이번여행은 대전,옥천,영국사,양산8경,송호리,영동,조치원지역 갔으며..
--- 집으로 가져온것들 ---
1. 서울->대전 무궁화호 승차권
2. 영국사,천태산 입장권
3. 송호리국민관광지 입장권
3. 영동->조치원 무궁화호 승차권
4. 조치원->서울 무궁화호 승차권
* 이 여행후기는 2002년
5월 17일 새벽 3시에 완성했습니다...
운행회사 :
한성여객(주)
운행거리 : 33.5 km
배차간격 : 3~5분
운행시간 : 새벽 0:50분까지
운행노선 :
' 하계동
↔ 도봉동 ↔
신설동 ↔
전농동 '
(下溪洞, Ha gye dong) (道峰洞,
Do bong dong)
(新設洞,Sin seol dong) (典農洞,
Jeon nong dong)
자세한
운행경로 :
하계동-중계도서관-대진여고-백병원-상계1~6단지-노원역(미도파)-도봉면허시험장-상계7~15단지-수락산역-
두산주공아파트-노원교-도봉역-성황당-도봉동-방학동-창동-쌍문역-북부한전-쌍문동-강북구청-수유리-신일고-
성북시장-대지극장-미아3거리-길음동-미아리고개-돈암동-삼선교-성북구청-보문역-보문동-신설동-제기동-마장동-
동대문구청-신답역-동대문여중-전농동-시조사-휘경동-위생병원-중랑교-중화동-중화역-묵동3거리-태릉입구역-
공릉역-산업대입구-한신코아-하계동
운행회사 :
대진여객(주)
운행거리 : 38.6 km
배차간격 : 3~5분
운행시간 : 새벽 1시까지
운행노선 :
' 정릉동
↔ 창경궁 ↔
압구정동 ↔
개포동 '
(貞陵洞, Jeong neung dong) (昌慶宮,
Chang gyeong gung)
(狎鷗亭洞,Ap gu jeong dong) (開浦洞,
Gae po dong)
자세한
운행경로 :
정릉동(청수장)-산장아파트-경국사-정릉시장-정릉입구-숭덕초교-길음시장-(정릉방향:
길음역 경유)
-미아리고개-돈암동-삼선교-혜화동-성대입구-창경궁-원남동-(개포동방향:
광장시장-청계천
/정릉방향:
종로2~4가)-
미도파-(개포동방향:
북창동-서울역-신세계
/정릉방향: 중앙우체국)-3호터널-해방촌-크라운호텔-한강중교-고속터미널
(센트럴시티)-뉴코아-잠원동-한신APT-신동중교-대림APT-설악APT-광림교회-압구정동-현대APT-한양APT-갤러리아-
청담동-리베라호텔-경기고-무역센터(코엑스몰)-삼성역-휘문고-현대APT-은마APT-미도,선경APT-경기여고-
개포3,4단지-개포도서관-개포중교-개포1,2단지-
운행회사 :
한성여객(주)
운행거리 : 32.1 km
배차간격 : 10~15분
운행시간 : 새벽 0:50분까지
운행노선 :
' 상계동
↔
신창동 ↔
돈암동 ↔
서울역 '
(上溪洞, Sang gye dong) (新倉洞,
Sin chang dong)
(敦岩洞, Don am dong) (서울驛,
Seoul Sta.)
자세한
운행경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