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안산을 걷다
초록 숲, 시원한 전망, 우리가 몰랐던 안산!
초록 숲이 다 내 것이다. 숨쉴 때마다 가슴이 상쾌하다. 시야가 탁 터진
전망에 마음이 통쾌하다. 그 길에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비탈이 심한 곳에는 경사를 줄이는 방법으로 목재 데크길을 냈다. 유모
차를 끌고 가는 부부도, 몸이 불편한 이들도 저마다의 속도로 천천히
걷는다. 안산이 아름답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출발
초록 숲에 난 안산자락길을 걷고 봉수대에 올라 서울을 한눈에 바라보며
시원한 전망을 즐기는 이른바 '안산 제대로 즐기기'의 출발점은 서대문
형무소역사관이다. 지금의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1907년 일제가 우리
나라 애국지사들을 투옥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처음 이름은 경성감옥
이었으며 이후 서대문감옥, 서대문형무소, 서울구치소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88년부터 주변에 공원을 만들기 시작해서 1992년에
서대문독립공원으로 이름 지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아래에 있는 한옥은 독립관이다. 독립관은 원래 조선
시대 중국 사신들을 영접하고 전송하기 위해 지은 건물인 모화관이었다.
1894년 이후 독립협회에서 주도하여 개보수한 뒤 독립관으로 이름을 바꾸
었다. 독립관 앞에 있는 독립문과 함께 독립사상을 표현하였으나 일제가
철거했다. 원래는 지금의 자리에서 35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1996년 고증을 거쳐 복원했다.
독립관 뒤쪽으로 올라가면 순국선열추념탑이 나온다. 이 탑은 조국의 광복을
위해 일제에 항거하다 순국하신 선열들의 얼을 되새기며 추모하기 위해
1992년에 건립했다. 탑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포장된 오르막길이
끝나고 데크길로 올라가는 계단을 만난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안산자락길이 시작된다.
걷고 또 걷고 싶은 안산자락길
안산자락길은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7km 구간의 원점 회귀 코스다. 노란색
화살표나 파란색 화살표 중 한 방향을 선택해서 걸으면 된다. 길을 걷는 내내
같은 색 화살표만 따라가면 된다.
파란색 화살표를 따라가니 처음부터 데크길이다. 경사가 심하거나 길이 없는 곳에 만들어 완만하다. 푸른 숲에 덮인 길도 지나고 하늘이 열린 길도 지난다.
그렇게 걷다가 처음 만난 곳이 숲속에서 책을 볼 수 있는 '북카페'다. 책을 보관
하는 곳 옆에 정자와 테이블이 있다. 그 다음에 만나는 곳은 인왕산과 북한산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지다. 전망지를 지나 천천히 걷는다. 메타세쿼이아 숲이
여행자를 반긴다.
숲이 햇살을 가린다. 싱그러운 공기가 살갗을 감싸는 느낌이다.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지나면 숲속무대가 나온다. 의자와 테이블이 놓인 쉼터다. 숲속무대를
뒤로하고 다시 걷는다. 하늘을 가린 숲에 햇살이 비치면 푸른 나뭇잎이 빛난다.
나뭇잎을 통과한 햇살이 형광 초록색으로 변해 숲에 은은하게 퍼진다. 하늘이
열리는 구간에서는 바람이 공중에서 수직으로 내려오는 기분이다. 그렇게 걸
어서 능안정에 이른다. 여기서 한 번 더 쉬어도 되고, 능안정을 지나 이 코스의
마지막 전망지에서 쉬어도 된다.
전망지를 지나서 조금만 더 가면 출발점이 나온다. 이제 안산봉수대로 올라가서
서울을 한눈에 내려다볼 차례다.
푸른 숲과 빌딩숲이 어우러진 서울이 한눈에
안산자락길을 걷다 보면 안산 정상(봉수대)으로 올라가는 길을 만날 수 있다. 다시
파란색 화살표를 따라 걷는다. 얼마 걷지 않아 안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을 만난다
. 정상으로 가는 길은 데크길이 아니라 일반 등산로다. 흙길
, 바윗길이 섞여 있다. 오르막길에 계단도 있다.
안산 봉수대에 올라서면 시야가 훤하게 열린다. 안산은 무악산이라고도 한다. 현재
봉수대가 있는 곳이 '무악산동봉수대터'다. 조선시대에는 동쪽과
서쪽 두 곳에 봉수대가 있었다.
봉수대에 오르면 서울시를 한눈에 담기가 벅차다. 남쪽으로 한강이 보이고 용산,
여의도, 목동 등 서울 남부 지역의 빌딩숲이 펼쳐진다. 멀리 관악산 줄기도 한눈에
들어온다. 동쪽으로 남산이 보이고, 명동과 종로의 빌딩숲 사이로 시원하게 뚫린
종로에는 차들이 쉴 새 없이 오간다.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바로 앞에 서울성곽이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인왕산이 보인다
. 멀리 뒤쪽에는 북한산 줄기가 흐른다. 눈을 아래로 돌리면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장난감처럼 작다.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을 추스르고 산을 내려간다
. 하산 코스는 봉원사 방향으로 잡는다.
봉원사의 역사는 신라 진성여왕 시대에 도선국사가 현재 연세대 터에 창건하고 반야
사라고 이름을 지으면서 시작됐다. 조선시대 영조 24년(1748)에 찬즙, 중암 스님이
지금의 자리로 옮겼고, 영조는 친필로 봉원사라고 쓴 현판을 내렸다.
한국전쟁 때 영조의 친필 현판이 소실됐다.
안산 자락 신촌 일대는 조선을 개국하고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궁궐이 들어설 후보지
중 한 곳이었다. 당시 정도전, 무학대사, 하륜 등이 궁궐터를 물색했는데 하륜이 안산을
주산으로 하고 현재 연세대를 비롯한 신촌 일대에 궁궐이 들어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결국 정도전의 주장대로 지금의 경복궁 자리에 궁궐이 들어섰다.
봉원사 경내에 있는 명부전 편액은 조선의 기틀을 세우고 문을 연 삼봉 정도전의
글씨다. 또 이곳은 1908년 국어연구학회(한글학회)가 창립된 곳이기도 하다. 조선말
흥선대원군이 머물렀던 공덕동 별장 건물 부재를 그대로 옮겨와서 지은 건물도 보인다.
절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내려가려니 입구에 서 있는 400년 묵은
느티나무가 다시 한 번 찾아오라고 배웅한다.
(대한민국구석구석 여행이야기, 한국관광공사)
봉원사(奉元寺)
한국불교 태고종의 총본산으로 1392년 이색이 지은 보우의 비문을 본 태조 이성계가 그의
문도가 되기를 자청했다는 고사가 전하며 태조의 어진을 모시는 진전이 있어 조선시대 불교
억압정책 아래에서도 번성했다. 1788년에는 승려의 기강을 진작시키고 승풍을 규찰하는 8도
승풍규정소가 설치되었다. 개화승 이동인이 머물면서 1884년 갑신정변의 주요인물이었던
김옥균·서광범·박영효 등과 교류를 하여 봉원사는 개화사상의 전개와 보급에 일익을 담당
했다. 1970년 태고종이 조계종으로부터 분리되어 한국불교 태고종의 종찰이 되었다.
스님이자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인 범패 기능보유자 박송암과 제48호인 단청 기능보유자
이만봉이 주석하여한국불교의 전통의식인 범패와 영산재가 전승·보존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영산재"
영산재(靈山齋)란 지금으로부터 불기(佛紀) 약 2600년전 인도 영취산(靈鷲山)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여러 중생(衆生)이 모인 가운데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하실
때의 그 모습을 재현화한 불교의식입니다.
영산재(靈山齋)는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이 다함께 부처님의 참 진리를 깨달아
이고득락 경지에 이르게 하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산재(靈山齋)는 공연
이 아닌 장엄한 실재의 불교의식임을 알고 삶과 죽음으로 갈라진 우리 모두가 불법
가운데 하나가 되어 다시 만날 것을 기원하고 이로써 세계평화와 남북통일이성취
되기를 염원하며 부처님전에 행하는 최대 최고의 장엄한 불교의식입니다.
영산재는 나무대성인로왕보살 인도 아래 금일 도량에서 재를 베풀어 망자로
하여금 해탈과 극락왕생을, 살아있는 대중에게는 불법의 가르침과 신앙심을
고취시키는 한편 부처님 당시의 영산회상을 금일 도량에 다시금 꾸며,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불법 인연을 짓고 업장소멸과 깨침을 주는데에 영산재의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또한 이 영산재(靈山齋)는 의식의 절차가 각종 전통
문화의 요소를 내포한 음악적, 무용적 요소와 더불어 연극적 요소의 효과를
나타나게 하고 있다는데 또한 주목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여기 음악적, 무용적 요소란 의식 진행중에 범음(梵音)과 화청(和唱)등이
음악적 효과를 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불교 음악에 맞추어 바라춤,
나비춤, 법고춤을 춥니다. 여기에는 삼현육각(三鉉六角), 호적, 취타 등의
각종 악기가 동원되어 같이 연주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상의 불교음악 범패(梵唄), 화청(和唱) 등은 한국의
전통적 민속음악인 가곡(歌曲), 회심곡(回心曲)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
으며, 바라춤, 나비춤, 법고춤은 민속무용인 승무, 바라춤 등의 근원을 이루고
있다는데서 영산재(靈山齋)의 전통문화적 의미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영산재의 가치와 우수성을 인정받아 지난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어 더욱 전승 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한국
에도 수많은 종교단체가 있지마는 이런 장엄한 불교의식인 영산재(靈山齋)를
거행하고 있는 종교는 찾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오직 대한민국중요무형문화재
제 50호(大韓民國重要無形文化財 第 50號)봉원사(奉元寺) 영산재보존회
(靈山齋保存會)만이 봉행하고 있음을 부언합니다
산사의 아침
-남수련-
산사의 쇠북소리 여명속에 가득히
낭랑한 새벽예불 아제아제바라아제
대웅전 처마밑에 풍경소리 은은히
바람결 가로질러 청아한 목탁소리
나무석가모니불 시아본사석가모니불
산사의 아침이 밝아온다
나무석가모니불 시아본사석가모니불
산사의 아침이 펼처진다 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시아본사석가모니불
산사의 아침이 펼처진다 석가모니불
2017-05-04 작성자 상산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