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을 떠나는 파월장병들
의의(意義)와 평가(評價)
한국군의 남베트남 파병은 조약상의 의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으며, ‘자유우방에 대한 신의’라는 명분에서
시작되었다. 또한 당시의 시각에서 볼 때 베트남전쟁은
한반도의 안보와도 직결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한국군의
파병은 당시의 한국정부가 국내외적으로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에서 결정한 국가의 생존 및 발전 전략으로써
역사의 큰 획을 긋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결론적으로 한국군의 남베트남 파병과 관련하여 미국
으로부터 국가안보를 위한 군사원조와 함께 장병들에게
일정액의 전투수당이 지급된 것은 사실이지만 처음부터
이 같은 군사원조나 전투수당을 목적으로 파병을 협의
하였거나 파병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한국군의 파병은
처음부터 파병목적이 명확하였고, 한국군의 독자적인
지휘권 하에서 작전에 임하였기 때문에 ‘용병’이라는
말은 일부 인사들의 잘못된 표현이다.
부산항의 파월 수송선
환송식을 마치고 월남 으로 떠나는 파월장병들..
월남파병 환송 국민대회 환송사 (1965년2월9일)
출정장병 여러분!
여러분들 양 어깨에는 조국의 명예와 2천7백만
민족의 한결같은 기대가 걸려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국군 중에서
선발된 가장 정예라는 긍지를 가지십시오.
여러분에게 부하된 임무를 훌륭하게 성공적
으로 완수하고, 군기엄정하고 용감무쌍한 국군의
전통을 더욱 빛나게 해 주실 것을 당부합니다.
여러분을 떠나보낸 우리 국민들은 여러분의
노고를 결코 헛되이 하지 않도록 더욱 분발해서
경제건설에 총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하느님은
자유의 십자군인 여러분의 장도에 반드시 가호가
있을 것이며, 영광을 베풀어 주 실 것입니다.
끝으로 여러분의 건투와 무운장구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대통령 박정희
베트남전 파병 장병들의 오음리 훈련소가 있었던 이 일대에 조성된
만남의 광장엔 기념전시관 과 기념탑, 이 전시되있다.
해발 880여m쯤 되는 이 고개는
초창기 훈련소에서 탈영자가 생길때면 꼭 수색순위 제1위였다는 고개 ㅡ
각개전투 훈련이나 수색,독도법, 분대작전훈련 중 군기가
빠졌다 하면 느닷없이 구보를 시켜 오르던 악명높던 고개ㅡ
파월장병 특급열차 청량리역 에 잠시정차 그리고 부산 3부두로.
당시 900 여명의 백마부대를 태운 군용열차는 춘천역을 출발
청량리역, 대전역 그리고 부산 해운대역 까지 논 스톱 으로 달렸다.
1965년부터 1973년까지 그 사이에 군대생활을
한 우리들은 월남전 파병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갖게된다군대가 없으면 국가의 존재도 힘들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국방의 의무를 마쳐야만 한다.
그것은 군대에 입대하면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국가의 명령이라면 까라면 까야되는것이다.
먼 이국의 전쟁터로 떠나는 우리들은 치솟는
눈물속에서도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어야
하는 군인으로서, 이 나라 안보와 경제성장이라는
국가적 사명을 위해 한목숨 바치고저 참전했다.
건국이래 최초의 월남파병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는 동시에 또 다른 희생과 아픔을 주었다.
인간의 선과 악이 치열하게 싸우는 그 비극의
현장에 우리의 젊은 병사들이 피흘리며 싸운
그 월남전 의 비극이 망각속에 잊혀져 가는 지금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껏인가 생각해본다.
1966년 8월 백마부대 월남파병 환송식 장면
시가행진에서 환송의 꽃다발을 걸어주는 여고생들
풋풋한 여고생 였던 그들 지금쯤은 어떻게 변했을까?
48 여년이 지났으니 우리 랑 같이 늙어 가겠지...
지금 생각해 보면 이국 의 전쟁처 로 향한
지난날이 지나고보니 그것이 아련한 추억이 되었지만,
그 당시 파월하는 개개인 마음은 처음으로겪는 전쟁에 대한 공포는
체념에 가까웠을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는 하늘에 맡기고 전우와 전우가 서로 의지하며
그것이 자의였든 타의 였든 명령 이라면 까라면 까야 된다는
심정으로 함께 배에 타게되는 것이다.
이기고 돌아오라~~경남여고 학생들
경남여고 학생들의 염원은 이기고 돌아오라.
오빠예~ 잘다녀 옵세예~ !
살아서 옵세예 ! 지금도 귀에 쟁쟁 한데.....
오빠 살어 돌아오세요~한마디에 목이 메인다
그날 부산 제 3 부두항의 선창하늘은 찌푸리고.
만국기가 어지럽게 펄럭이고
군악대의 나팔에선 아리랑 노래 구슬프게 울려 퍼지는데
떠나는 자와 보내 는 자의 이별 부두에
하얀 갈매기떼 만 끼륵끼륵 ~슬피우는데.....
ㅡ 이별의 제 3 부두항 ㅡ
환송 나온 부모형제 사랑하는 그녀들의 모습은 점점 멀어져가고, ...
떠난다는 것은 슬픈 일 이다.
정든 가족, 정든 애인, 정든 친구, 정든 고향,
정든 물건과 영원일지도 모를 아픔을 안고
떠난다는 것은 참으로 괴롭고 슬픈 일이다.
이제 떠나면 다시 돌아올까?
막연한 생각이지만 기다림이 있기에
삶은 견딜만 한 것 일껏이다.
그러게 또 한무리의 대한의 아들들은 어머니와 누이들의 눈물을
뒤로 한 채 그렇게 떠나갔다.......
미 해군 수송함 배럿(Varrot)호 에 몸을실고 월남전으로
떠나는 백마부대 용사들 보병 9사단 백마부대는 선발대에
이어 9사단장 이소동 소장 지휘하에 1966년 9월16일
부산항 제3부두를 통해 출진 1966년 9월 22일 월남나트랑
에 상륙하여 인근지역에 주둔하게된다.
참, 많은 우리전우들이 이 항구을 떠나갔다가.
다시돌아왔고 혹은 뼈가루로 돌아왔다.
남 십자성 아래 머나먼 이국의 전쟁터에서 죽어가고
또는 영문도 모르는 햐얀 가루를 마시다가,
자식이 알지도 못하는 유전병에 걸리는 고엽제를 심장에
가득히 모르게 담아서 돌아오기도한다.
떠남, 이별, 그리움, 만남....
기록되지 않는 수많은 떠남과 돌아옴은
다시 만남을 기약하며 오늘도 슬피울어대는 갈매기 와
무심히 흐르는 저조각구름은 말이없는데...
이별의 아픔 만이 부산항에 가득하다.
베트남으로 가는 수송함에서...
조난대피 훈련 및 소양교육을 갑판에서 진행했다.
미해군 수송함 배럿(Varrot)호 의 사병 식당 에서....
백마부대 선발대 월남 나트랑 상륙(66.8.9)
1967년 8월 월남늪지대에서 작전중에 맹호부대 전우들
베트남에서 작전을 벌이고 있는 해병 2여단 청룡부대 해병대원들
왜 우리가 싸워야 하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그렇게 시작한 싸움은 오직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단 한가지 이유가 이 싸움을 지속해야 하는 목적이 된다
백마독수리 30연대 작전 중에서
왜 싸우는지는 생각하고 싶지않다.
이순간 중요한것은 그저 이전투에서 살아남는것이
솔직한 심정 이었으랴......
이한장의 사진 플리쳐 대상감이다..
짜빈동 전투중 에서 청룡부대원들
대부분 의 파월장병들은 1년 파월근무후에는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다시 교체병력이 오는것이다.
그렇고 그러케 돌고 도는 물레방아처럼 ....전쟁의시간과
평화의 시간은 교체되고.....
해병 청룡부대 먼저간 전우를 보내면서
아~ 타국에 뭍힌 혼백(魂魄)들이여~ 지..못..미...지켜 주지
못해 미안하다. 타국의 구천땅 에 머물지말고 내 이제 고국의
자리로 옮겨 편안히 잠들게 하리라~왜 이렇게 목이 메이는가...
눈물이 빗물되어 쏟아지는데...이 무심한 하늘아~ 이
애통한 마음 씻어내리는 소나기 라도 한바탕 내려주시지..
먼저 산화한 전우들을 가슴에 품고 월남 전선을 떠나며.....
체념한 듯 내렸던 그 해변에서
귀국하는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잇었던가?
회자정리(會者定離)요,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
만난 것은 헤어지고, 난 것은 반드시 사라진다는
섭리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의 정이 그렇지 아니하니 그립고
또 보고 싶음이 어찌 말로서 다 할 수가 있겠는가?
잘있거라~ 월남땅이여 언제가 또 다시 돌아 오련다~
인생은 어차피 너와 나와 만남인 동시에 너와 나와의 헤어짐 이다
이별 없는 인생이 없고 이별이 없는 만남은 어디 있겟는가?
살아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죽음이 오고
만나는 자는 반드시 헤어져야 한다 .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남은 전우들....그리고 영원히 돌아오지못한 전우들을 가슴에 품고
돌아서는데 왠지 모를 슬픔 에 목이 메인다....
.
귀국환영식 (1973)
고국땅에 도착한 환희를 느낄 수 있는 순간.
나를 환영하는 이름표도 있을까?
저기~ 당신 이름표 도 보이네.....
고엽제 로 인한 피해 나무가지만 앙상하다
그리고........후유증
비행기로 뿌린 고엽제를 맞은 야자수...나무 젓가락이 되었다.
이런 고엽제을 아무것도 모른채 맞고 다녔으니......
심지어 어떤 전우는 미군이 뿌려대는 것을 모기약인줄 알고
일부러 몸에 접하기도 했단다..
밤에 모기가 오지 못하게 하려구........
가슴 아프고 슬픈전설같은 이야기 다~
이렇케 미군이 살포한 고엽제(枯葉劑)는 아직도 수많은 참전
용사들에게 아직도 고통과 회한의 상처로 남아 있는것이다 .
월남전 참전 장병 덕분에 조국은 근대화를
이룩했고 자주국방의 토대를 닦았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그리고 번영의 터전'
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불한 댓가는 너무나
많은 피와 희생이 필요한 것 이였다 .
남은건 빛바랜 월남참전 기장증 달랑 하나...
대한민국의 국익과 동아시아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월남파병 장병 5099 명이
이역만리 땅에서 목숨을 잃었고
1만 7천여 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현재 7만
2천여 명이 고엽제로 인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이것이 작금의 현실인바 위정자 들은 이제라도
경제발전에 밑거름이 되어 청춘을 나라에바친
어렵게 살아가는 희생당한 파월 장병 들에게
진정 국가유공자로써의 위상에 맞는 합당한
대우 을 해 주어야 만 한다.
월남(越南)의 달밤
반야월 작사
김성근 작곡
윤일로 노래
남남쪽 섬의 나라 월남의 달밤
십자성 저 별빛은 어머님 얼굴
그 누가 불어 주는 하모니카냐
아리랑 멜로디가 향수에 젖네
가슴에 젖네
열대어 꼬리치는 사이공 항구
산호들 아롱다롱 물에 어리면
카누에 실어 보는 그 님의 노래
떠나온 수륙만리 아득한 고향
그리운 산천
2016-01-29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