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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아지른 절벽에 청정한 측백숲
필자가 이에 대해 꼬치꼬치 적은 이유는 앞으로 천연기념물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므로(知則爲眞看), 미리 아는 것은 힘이다.
이제 달성 측백수림을 살펴볼까 한다. 이 숲은 동대구역에서 대구공항을 지나 경부고속도로와 익산포항고속도로가 만나는 도동 분기점 부근에 있다. 숲이 있는 산 이름은 향산(香山)이다. 측백나무에 향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향산은 측백숲 쪽에서 보면 영락없는 코끼리 형상이다. 바위가 움푹 꺼진 눈 형상도 있다. 숲 앞에는 동쪽 환성산에서 흘러내리는 불로천이 금호강으로 흘러들어간다. 불로천을 따라 길이 나 있는데 측백나무 길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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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가 1933년에 발간한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 일람>.
- 이 군락지는 2008년 5월 ‘대구 도동 측백나무숲’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과거 달성군이었던 이 지역이 행정구역 개편으로 오래 전에 대구시로 편입되었고, 대구시가 끊임없이 명칭 변경을 요구하여 이루어진 일이다. 또한 대구시 도동은 2008년 하반기 행정구역 통합으로 도동과 평광동을 합쳐 도평동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이제는 ‘대구 도평동 측백나무숲’으로 불러야 한다.
측백나무 숲의 형성에 대해서는 달성 서(徐)씨의 무덤에 심은 측백이 기후 조건이 맞아 번식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중국에서는 측백을 흔히 볼 수 있다. 주나라 때부터 천자의 능에는 소나무를, 제후의 능에는 측백을 심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왕의 능에는 소나무를 심어서 최고의 대접을 한다. 그 다음이 측백이다. 사가에서도 무덤에 측백을 널리 심었다. 이는 측백나무를 묘지 옆에 심으면 시신에 벌레가 생기지 않는 효능 때문이다.
이 숲은 1934년 처음 지정될 당시에는 둘레 20m, 높이 40m의 100여 년 묵은 측백나무 수천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한다. 지금은 10여m의 측백 1,000그루가 자라고 있다. 수령은 대개 100여 년이다. 문화해설사이자 측백숲 맞은편에 자리한 백림정 사장인 김지훈씨에 따르면 500여 년 된 것도 있다 한다. 그는 산악인으로 측백나무숲 보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측백숲은 본래 향산 등성이까지 널리 분포되어 있었으나 사람들이 제사용 분향 재료로, 공예품을 만들기 위해 많이 베어가 규모가 줄어들었다.
향산의 측백은 절벽에서 자라기 때문에 성장이 무척 더디다. 바위 틈에 뿌리를 박고 수평으로 자라는 나무가 많다. 가까이 가서 보면 옹이진 뿌리들이 바위를 억세게 붙잡거나 바위 틈에 파고들고 있다. 절벽에 있는 측백들은 사람의 손을 피할 수 있어 보존이 되었다. 거친 환경이 오히려 종을 보존하게 한 셈이다. 측백 숲에는 쇠물푸레나무, 회화나무, 골람초, 난티나무 등이 함께 자라고 있지만 측백이 절대 우세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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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실 좋게 어우러진 회화나무(왼쪽)와 느티나무(오른쪽).
- 측백숲 절벽에는 여러 개의 굴이 있는데 이는 일제강점기에 파놓은 방공호라 한다. 절벽 중턱에는 19세기 초엽 인근 아홉 노인이 시를 짓고 놀았던 구로정(九老亭)이 자리하고 있지만 지금은 보호구역이어서 올라갈 수 없다.
우측 사면에는 동화사의 말사인 관음사(觀音寺)가 있다. 신라 신무왕(670년)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이 조그만 절에는 아주 소박하게 생긴 관음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달성 서씨인 조선시대 거유 서거정이 이곳을 대구10경 중 제6경으로 꼽을 정도로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었다.
먹으면 선인이 되는 생명의 나무
측백은 측백나무과에 속하는 상록 바늘잎나무로서 떨기나무, 큰키나무다. 우리나라와 중국을 원산지로 한다. 측백은 잎이 옆(側)으로 납작하기 때문에 측백(側柏)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납작하게 마디진 잎이 산호처럼 뻗어 있다. 전체적으로는 부채꼴이다.
꽃은 암수가 한 그루에 달리며 4월에 핀다. 열매는 둥근 알꼴의 구과(毬果·cone : 소나무·삼나무 등 열매 둘레에 목질의 비늘조각이 뭉쳐 있다가 성숙하면 벌어지는 열매를 말한다. 솔방울을 떠올리면 된다)이며 크기는 15~20㎜ 가량이다. 종자는 한 개의 구과 편린 속에 2개씩 들어 있다. 껍질은 다갈색이며 작은 비늘처럼 뚝뚝 떨어진다. 측백의 목질은 매우 단단하며, 방향성 정유(精油)를 품고 있어 특유의 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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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2기가 모여 있는 불로동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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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백나무는 동서양에서 약재로 쓰였다. 측백 잎을 아홉 번 쪄서 말리고 가루를 만들어 먹으면 몸에서 나쁜 냄새가 없어지고 향내가 나며 머리칼이 희어지지 않고 이와 뼈가 튼튼해진다. 여자들의 하혈이나 피오줌, 대장이나 직장의 출혈에도 효과가 있다. 간암이나 간경화 등으로 복수가 찰 때 구증구포(九蒸九曝·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리는 것)한 측백 잎을 달여 오소리 쓸개와 함께 복용하면 복수가 빠진다. 고혈압, 중풍, 불면증, 신경쇠약 등에도 효과가 있다.
측백나무 씨앗은 백자인(柏子仁)이라 하여 자양강장제로 이름이 높다. 측백나무 씨앗으로 만든 술인 백자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과실주의 하나로 고려 명종 때에 만들어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 문헌에는 측백나무 잎이나 열매를 먹고 선인이 되었다거나 몇 백 년을 살았다는 얘기가 많이 전한다. 16세기 초 프랑스의 탐험가는 북아메리카의 세인트 로렌스 강을 발견했을 때 인디언이 측백나무를 달여 만들어 준 약을 마시고 괴혈병을 치료했다 한다. 그래서 ‘생명의 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측백과 비슷한 나무로는 편백을 들 수 있다. 편백나무는 일본이 자생지인 측백나무과의 식물이다. 온천 등에서 볼 수 있는 히노끼탕의 ‘히노끼’가 바로 편백이다. 편백은 피톤치드 분사량이 많기 때문에 삼림욕과 아토피 치료에 효과가 크다.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측백의 자생지는 충북 단양군 냉천리(제62호), 경북 영양군 감천동(제114호), 안동군 남후면 구리(제250호), 경북 울진 성류굴(제155호) 등이다. 이곳의 측백수림은 모두 깎아지른 낭떠러지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가장 오래된 측백나무는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에 있는 수령 약 340년의 측백나무다. 조선 현종9년(1668)에 임천군수 여효증이 이임기념으로 만연당 뜰에 유목을 이식한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에도 수령 300살로 추정되는 측백나무(천연기념물 제255호)가 있다.
도평동 측백숲 앞에는 회화나무와 느티나무가 사이좋게 어우러져 있다. 금실 좋은 나무로 알려져 있어 아이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한다.
212기의 불로동 고분군
도평동 측백나무숲을 보고 난 후, 불로동 고분군을 못 보고 지나치면 섭섭하다. 불로동에는 5~6세기경 토착세력이 조성한 것으로 조사된 212기의 고분이 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단일 고분군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겨울철인지라 좋은 사진을 찍지 못해 다른 분들의 협조를 받았다. 김지훈 문화해설사와 야생화 전문가 이명호 선생께 감사를 드린다.
/ 김규| 중앙대에서 문학과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으며, 문화일보 신춘문예(시)에 당선하였다. 중앙대와 한서대에서 강의하며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첫댓글 단일 고분군으로 국내 최대라는데.......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