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문화가 있고 술과 정이 넘치는 창녕의 영산 땅은 3월 만세의 함성이 울려 퍼진 곳이다. 사람에 부딪히고 술과 정에 휘청거리는 3.1민속 문화축제의 현장인 영산은 길손의 눈과 마음을 막 끌어당긴다.
영산향교의 작은 표지 석은 영축산 산행의 들머리임을 알려준다. 왼쪽으로는 태자봉의 순한 봉우리가 마중한다.
경남 유형문화재 213호 영산향교와 경남 문화재자료 109호로 지정된 신씨(靈山辛氏) 고가를 비롯하여, 200여 년 자리를 지켜온 조선 사대부의 고옥들이 이 땅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등산로를 정신없이 올라서서 다리쉼을 하노라면 지나온 발치 아래 허물어진 석축이 보인다. 허물어지긴 했어도 뚜렷한 성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 석축이 바로 영축산(영축산성)이다.
영축산성은 신라의 침범을 막기 위하여 가야가 축성한 것으로, 그 후 임진왜란 때 수축하여 접전하였다고 전한다. 이등변삼각형 모양의 이 산성은 산이 가지고 있는 자연적인 조건을 최대한 이용하였으며 면적은 37,500여 평에 달한다. 영축산성에는 성문이 유일하게 하나 라고 한다.
날씨가 좋으면 이곳은(632봉) 조망을 즐기기에 아주 좋은 봉우리다. 남쪽으로는 낙남정간의 불모산, 천주산, 무학산, 여항산의 줄기가 펼쳐지고, 서쪽에는 자굴산 넘어 하늘금으로 지리산이 보인다. 북쪽으로는 황매산과 가야산, 비슬산이 다가오고, 동쪽에는 낙동정맥의 연봉이 지척에 보인다.
국립지리원 발행 5만분의 1 지형도는 이곳이 오직 632m봉일뿐, 영축산의 상봉은 북동쪽 봉우리며 이름 또 한 영취산(靈鷲山)으로 달리하고 있다. 영축산의 본래 이름은 수리 뫼라 하였는데 불교의 전파와 함께 영축산으로 바뀌게 되었다. "한자로 영취산(靈鷲山)이라 표기하나 부를 때는 영축산이라 해도 천축(天竺)의 축산(竺山)이란 뜻을 가지니 영축산이라 부름이 타당하다"고 창녕군 지명 사는 적고 있다.
첫댓글 안녕하신지요 영축산 산행 동행하고 십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