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 어른이 어떻게 되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분과 함께
16p
가끔은 껍데기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슴이 정말 아플 때도 있다. 공과금도 내야 하고 어른도 되어야 하는데 어른이 되는 법을 몰라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실패할 확률이 지독히 높은 일이라서 겁에 질릴 때도 있다.
145p
"돈은 어떤 데 쓰세요?"
"다른 사람들과의 거리를 사는 데 쓰죠."
심리 상담사로서는 처음 듣는 대답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비싼 음식점은 테이블 간 간격이 넓어요. 비행기 1등석은 가운데 자리가 없고요. 특급 호텔에는 스위트룸 고객들이 드나드는 출입문이 따로 있죠. 지구상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곳에서는 가장 비싸게 팔리는 것이 남들과의 거리예요."
292p
중독자들이 약물에 중독됐다면 그들의 가족은 희망에 중독됐다.
473p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구하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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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는 이쁜 말들이 참 많은데 다 옮기지는 못한다.
읽으면 된다.
이 이야기는 작가의 말을 빌자면,
은행강도 이야기이다가 다리 이야기이다가
덜 자란 어른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고
피자도 불꽃놀이도 토끼도 와인도 아파트도 다 중요한 이야기이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오베라는 남자'에서처럼
모두가 한통속이 되고
모두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이야기의 연장이다.
악당 하나 정도는 나와야 이야기가 제맛이라고 생각이 드는 사람들에게는 권하지 않는다.
살다보면 이렇게 모두 기분좋은 한통속이 되어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싶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는 악당은 나오지 않지만 계속해서 연결고리를 찾아가는 즐거움이 있으니 절대 실망할 필요는 없다.
추리적 기지를 충분히 발휘해가며 읽을 수 있다.
그러면서 어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이 작가의 전반적인 고민은 여기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다.
어떻게 어른이 되어가는 건지.
아이일때는 많은 사람들이 물어주기라도 하지 않는가.
넌 커서 뭐가 될거니... 뭐가 되고 싶니... 뭘 계획하니... 어쩌고 저쩌고...
귀찮을 정도로 아이들의 미래를 궁금해 하지 않은가.
그리고 어떻게 어른이 되어야 하는지 가이드북도 많고 수업도 많다.
그런데 정작 어른들은...
조용히 고달프고 조용히 고민한다.
들키면 안 될거 같다.
내가 아직 나은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어디가서 보충수업을 받을 수 있는지 기웃거리게 된다.
그럴때, 프레드릭 배크만을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어른을 위한 보충수업.
나도 그러하고 너도 그러하고 다 그렇다고.
모자란 어른들의 고백.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다시 연대하기.
나도 여전히 보충수업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