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4월에는 당시 운용되고 있던 B-52D의 기지를 괌의 앤더슨 기지에서 태국 우타파오로 이전해 신속한 출격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1968년 2월 1일에 감행된 테트 공세에 대한 답변으로 B-52 폭격기는 2월 15일까지 불과 2주 동안 1,800회의 출격을 기록하며 북베트남을 폭탄의 비로 샤워시키는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B-52 폭격기의 날벼락이 지나간 후 기어나왔던 북베트남군과 베트콩들에게는 AC-47에서 난사하는 발칸포의 세례가 이어졌으니 비록 고전을 거듭했지만 화력지원에서는 북베트남과 베트콩을 능가하는 미군의 위력을 보여준 셈이라 하겠습니다.
베트남 전 기간 중 운용된 B-52들은 개량을 받았는데 특히 B-52D형은 폭탄 탑재량을 늘리기 위해 일명 "빅 밸리"라 불리우는 대규모 개장 공사를 거쳐 227kg 폭탄을 탑재할 시 84발, 384kg 폭탄을 탑재할 시 42발을 적재할 수 있도록 개량되었고 얼마 후에는 주익 내부에 증설한 파일런에 227kg 폭탄 24발을 적재할 수 있게 됨으로써 총 108발의 폭탄을 탑재하는 괴물로 거듭났습니다.
보통 사람의 시력으로는 판별이 불가능한 고고도에서 갑자기 수백~수천발의 폭탄이 투하된다고 생각했을 때 이것이 얼마나 참혹하고도 악몽과도 같은 일인지 상상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이러한 B-52의 활약으로 인해 미군은 케산과 같은 위기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고 하노이와 하이퐁에 대한 융단폭격을 통해 타협이라는 것을 모르는 북베트남 지도부를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B-52의 생산대수는 A, B, C형을 합쳐 88대, D형 170대, E형 100대, F형 89대가 생산되었지만 현재 G형과 엔진을 터보팬으로 교체한 B-52H를 제외하고는 전량 퇴역한 상태입니다.
B-52G형은 193대, B-52H형은 102대가 생산되어 현재도 미 공군에서 활약 중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은 산악지대라는 제약이 있었지만 케산 폭격의 경험 덕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영국군, 북부동맹의 든든한 폭격 지원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첨단 병기와 정밀 유도 폭탄 등이 개발되어 배치되고 있지만 여전히 재래식 폭격기의 비중은 무시할 수 없는 실정이고 B-1과 B-2가 배치되었지만 아직까지 그 효율이 입증된 B-52는 한동안 미 공군의 주요 전력으로 살아남을 것입니다.
사진의 기체들은 모두 B-52H형입니다.
승무원들과의 비교를 통해 이 기체가 얼마나 거대한 놈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