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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교육
유아기는 다시 세분하여 출생에서 10일 정도까지의 신생아기, 출생 10일 정도에서 만 1세까지의 영아기, 만 1세부터 6세까지의 유아기로 나누어질 수 있으나, 넓은 의미로는 이 시기를 모두 포함한다.
유아기가 인간의 발달단계 중 지적·정서적·신체적인 모든 분야의 형성에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학설이 일반화됨에 따라 유아교육에 대한 관심이 점차 고조되어 근래에 와서는 국가정책으로 이를 뒷받침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유아들이 어떤 형태로든 형식적인 교육을 받고 있다.
그러나 어느 단계의 교육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유아기에는 의도적으로 가르치고 교육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생활 자체가 유아에게 인지되고 영향을 끼치는 것이므로, 무엇보다 심신이 건강하게 발달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
유아교육은 크게 나누어 가정교육·사회교육 등의 비형식적 교육과 유아원·유치원 등의 형식적 교육으로 구분할 수 있다. 종전에는 유아교육이라 하면 취학전 교육(preschool education)으로 유치원과 같은 제도적 교육만을 주로 일컬어왔으나, 근래에 와서는 비형식적 교육인 가정교육·사회교육에 있어서의 유아교육에 관한 중요성이 대두되어 유아교육의 중요한 범주로 포함하고 있다.
(1) 유아교육의 목적
교육의 정의를 “바람직한 행동의 변화”라고 한다면 유아교육은 유아기의 바람직한 인간의 기본적 행동형성이라고 할 것이다. 유아교육의 목적은 유아교육의 기본방향과 지침을 제시하는 과제로 유치원은 그 목적이 법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1997년 12월 13일 법률 제5437호 제35조에는 유치원의 목적이 다음과 같이 제시되어 있다. “유치원은 유아를 교육하고 유아기에 알맞은 교육환경을 제공하여 심신의 조화로운 발달을 조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와 같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내용으로써 다음과 같은 것을 규정하고 있다.
① 건강하고 안전하고 즐거운 생활을 하기에 필요한 일상의 습관을 기르고, 신체의 모든 기능의 조화적 발전을 도모한다.
② 집단생활을 경험시켜 즐겁게 이에 참가하는 태도를 기르며, 협동과 자율의 정신을 싹트게 한다.
③ 신변의 사회생활과 환경에 대한 바른 이해와 태도를 싹트게 한다.
④ 말을 바르게 쓰도록 인도하고, 동화, 그림책 등에 대한 흥미를 기른다.
⑤ 음악, 유희, 회화, 수기, 기타 방법에 의하여 창작적 표현에 대한 흥미를 기른다.
이상의 각 영역을 통하여 전인으로서의 유아(Child as a Whole)와 조화적 발달을 조성해 주는 유아교육이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유아교육목적 설정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첫째, 개인주의적 목적관과 둘째, 키브츠(Kibbutz)의 공동체 이상실현의 공동체 의식 고취적인 것과 셋째, 과거 공산사회에서 여성인력을 효율화하기 위한 유아집단 수용으로 기계적 획일적인 것 등이 있으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민주적인 유아교육관에 입각한 민주적 생활태도를 길러서 민주사회에 효과적으로 적응할 수 있게 하는 교육목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즉 민주시민의 자질로서 강조하고 있는 인권존중, 책임완수, 준법정신, 봉사와 협동의 정신배양을 유아교육의 목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유아교육의 목적설정은 다음과 같은 타당성을 가져야 된다.
① 유아교육 목적은 유아에게 타당성이 있어야 된다.
② 유아교육 목적은 유아의 심신발달 정도에 알맞는 것이어야 한다.
③ 유아교육 목적은 유아가 생활하는 문화형태에 타당성을 가져야 된다.
④ 유아교육 목적은 환경조건에 효과적으로 적응하는 내용이어야 한다.
⑤ 유아교육 목적은 민주사회의 사상과 철학에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
1982년 12월 <유아교육진흥법>(법률 제3635호)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유아에게 좋은 교육환경을 마련하여 심신발달의 충실을 기함과 무한한 잠재력을 신장하게 함으로써 장차 건전한 인격을 가진 국민으로 성장하여 개인으로 행복을 누리고 나아가 그들의 역량을 국가발전에 기여하게 하기 위하여 유아교육과 보육을 진흥함을 목적으로 한다.”
(2) 유아교육의 중요성
“세살버릇 여든 간다.”는 옛말이 있음과 같이 유아교육에 대해서는 우리 선조들도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교육하면 형식교육기관인 서당이나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글을 읽고 쓰는 등의 지식위주의 학교교육을 생각하였기 때문에 과거 유아교육은 보육, 육아, 훈육, 아이돌보기 등의 범주에서 다루어 그저 가정교육이라는 테두리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근래의 교육학, 심리학, 생물학 등의 연구결과 인간의 기본적 행동은 유아기에 대부분 형성되어 일생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확인되고 입증됨으로써 유아교육은 부모들에게 많은 관심을 끌게 되었다. 그래서 선진국일수록 더욱 유아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예를 들어 옛동독이 소수 인구로 스포츠 강국으로 등장하고, 이스라엘이 수백배의 아랍인을 상대로 싸워 이기는 것도 유아교육을 통하여 이룩한 결과라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도 제5공화국 출범과 동시에 교육계의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어 1982년 정기국회에서 유아교육진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유아교육의 중요성의 근거를 요약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교육관의 변화 : 전통적 교육에서는 문자를 통한 지식을 주로 교육하였으나 듀이(Dewey, J.)의 “교육은 생활이다.”라는 주장과 피아제(Piaget, J.)의 인지적 학습이론 등은 학교 이외의 유아의 환경적 자극으로 행동변화를 주어 학습이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교육관이 달라지게 되었다.
② 사회의 급변 : 현대의 고도산업화로 인한 도시화 경향은 부모들의 사회진출을 높게하여 유아를 돌볼 시간을 적어지게 하고, 핵가정화는 인생경험이 풍부한 조부모와 따로 살게 하여 더욱 유아교육을 필요하게 하고 촉진하게 되었다.
③ 지능개발 : 심리학과 교육학의 연구결과는 지능개발 촉진이 유아기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을 터만(Terman, L.M.), 에릭슨(Erikson, C.F.), 부룸(Bloom, B.S.) 등의 연구로 입증하였다. 또한 일본의 오토모시게루(大伴茂)는 임신 중 어머니의 식생활이 아이의 I.Q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확인한 바 있다. 미국에서 1965년 지능개발 프로그램(Head Start Program)으로 위대한 국가 건설에 효과를 거둔 것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④ 행동의 결정시기 : 지능은 물론 기타의 모든 행동은 유아기에 발달가능성이 가장 풍부하여 도야성(陶冶性) 또는 가소성(可塑性) 등이 가장 좋아진다. “나무는 어려서 바로 잡아야 한다.”는 옛말 처럼 유아교육의 중요성을 우리 선조들은 일찍이 주장한 바 있다. 프로이드(Freud, S.)는 인성의 바탕이 되는 성격은 3세 전에 대부분 형성된다고 실험적으로 입증하여 주장하였다. 한편 유아기가 행동의 결정적 시기인 것은 “영아는 우리의 최대의 기업이다.”란 말에서도 알 수 있고 인간의 사업 중 인간기업이 가장 으뜸인 것을 잘 표현한 말이라고 할 것이다.
⑤ 문화발달과 지식의 폭발 : 현대는 정보화시대로 지식의 폭발적 증가는 문화발달을 가속화시키어 유아가 환경적 영향에서 문화실조가 되면 가역성(Reversibility)이 있어서 회복하기가 어렵다. 베스터(Vester, F.)는 환경의 자극조건이 뇌세포 발달에 결정적 영향을 주어 행동발달의 척도가 된다고 입증한 바도 있다. 그래서 유아초기에 조직적인 유아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⑥ 유아교육의 재평가 : 유아의 발달이 촉진되고 있고, 유아의 가능성과 능력(Capacity)이 재인식되고 있으며, 지식의 폭발적 증가로 인하여 인간능력개발에 관심이 높아졌다. 새로운 개발방법의 발견과 조성만 잘해주면 무한한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래학자 토플러(Alvin Toffler)는 ≪미래의 투사≫에서 문화가 더욱 급속하게 변해가서 신기성·참신성과 다양성이 더 회오리치면 어머니도 유아교육 능력을 상실하게 되어 생부모를 대신하여 전문부모, 즉 유아교육 전문가가 어머니를 대신하여 어머니는 구경꾼으로 전락할 날이 오게 될 거라고 전망하였다.
(3) 유아교육의 특수성
유아교육은 발단단계에 따른 교육이 각기 특성이 있고 개별적으로 부모교육과 조직적인 탁아소·유아원·유치원 등의 교육 프로그램이 달라야 되며 그 내용도 고정적으로 되어서는 안되며, 같을 수가 없기 때문에 특성이 있고 문제가 제기된다. 그 특성과 문제점을 항목으로 구분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① 태아교육과 같은 간접영향의 교육 : 교육하면 개체에 직접 자극이나 영향을 주는 것을 생각하나 간접으로 임신모가 심신의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심각한 영향을 준다는 것이 학자들의 연구로 입증되고, 근자에는 투시기술로 인한 태아의 두뇌발달은 곧 그것이 유아의 교육과 관련된다는 것을 입증해 주고 있다. 태아교육은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소홀하기 쉬워서 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가 있다. 태아 때 인간 형성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미리 조정 통제하는 것이 유아교육의 첫걸음인 것을 알아서 그에 적절한 대응이 필요할 것이다. 유아교육은 보육적, 육아적 특성이 있다. 주제의 여러 논급에서 보육적, 육아적인 것이 유아교육이라는 것을 언급해 왔다. 그 보육적, 육아적인 것은 단순히 아이를 생리적으로 보호한다는 측면에서가 아니라 그 행위가 곧 교육적 영향과 효과가 있음을 감안하여 돌보아야 할 것이다. 보육과 육아의 행위가 아이의 행동양식을 고착화시키어 문제적 행동을 유발할 수 있음을 고려하여 다루는 것이 유아교육인 것이다. 안아서 재우면 계속 안아서 재워야 되는데 그것은 결국 의타심을 조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한 육아나 보육이 아니라 보살핌이 교육으로 어떤 특성을 야기시킬 것인가를 생각하고 통제하는 것이 유아교육이 될 것이다.
② 유아교육의 양면성 : 현 유아교육은 보육적이고 육아적인 가정교육적 형식과 일정한 교육 프로그램이 있는 집단적인 유아교육의 양면이 있다. 이 두 양면을 조화한 것이 이스라엘의 키브츠이며 옛 소련의 집단체제(Collective System)의 유아교육기관에서 이중성의 유아교육의 특수성을 고려한 제도일 것이다. 하지만 현 실정은 따로 따로 별개의 형태로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쪽도 효과적인 유아교육을 할 수 없는 실정이며 이것이 문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가정에서의 부모교육과 유아기관에서의 교육이 상치되어 아이가 이중적 갈등으로 문제적 특성을 가지게 될 수 있는 문제성을 내재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부모들은 이런 면을 고려하여 양면을 적절히 조화할 수 있는 배려를 해야 할 것이다.
③ 보수적 유아관의 문제 : 우리나라 가정교육의 유아교육은 유교적 특성이나 부모들의 생각대로 금기(禁忌) 사항이 많고 꾸중하거나 이쁜 자식 매하나 더 주라는 생각을 가지고 엄격주의적이거나 권위적으로 유아교육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익애(溺愛)적으로 아이들이 하고 싶은대로 거의 방임적일 경우가 많다. 이 극단적 양면을 적절이 조절하는 방식이 민주적 목적의식으로 교육적 배려의 유아교육이 될 것이다.
④ 유아의 특수교육의 문제 : 요즈음 유아기에 특수교육을 시키는 경우가 많다. 유아기에 특수교육을 실시하여 효과를 보는 경우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소질이나 적성을 잘 모르고 특수교육을 하다 문제를 야기시키는 경우가 더욱 많음을 알아야 한다. 옛 공산국가에서 유아때 특수교육의 효과를 얻기도 했으나 그만큼 연구와 적성을 고려했음을 이해하여 신중히 특수교육을 실시하여야 할 것이다. 유아교육에서 유아의 다양한 경험을 통하여 그들의 재능을 개발해 주는 조성적 도움을 주는 정도의 교육이 효과적일 것이다.
(4) 유아교육의 의의
유아교육 신생아기, 영아기, 유아기를 포함하며, 그 기간에 영향을 주는 태아교육(Pre-natal Education)도 포함한다. 원래 교육이란 간단하게 “바람직한 행동의 변화”인 것으로 볼 때 유아의 행동변화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지도 하느냐의 문제가 될 것이다.
행동의 내용은 인지적인 지식과 정의적인 태도, 인성, 성격, 정서 등과 신체적인 기능의 면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발달과 변화를 바람직하게 조성해 주는 작용이 유아교육일 것이다. 종래 유아교육적인 것은 육아, 보육, 양육, 가정교육, 부모교육, 자녀교육, 애 돌보기 등의 형태이고 현대적으로는 사회교육 범주로 포함하기도 한다. 이러한 형태는 비형식적 교육형태이다. 한편 집단적인 유치원, 유아원, 보육원 등은 형식적 교육이나 유치원 이외에는 어느면에서는 사회교육적인 분류에 해당된다 할 것이다. 일제하에서는 유치원을 보육으로 보아 유치원 선생은 보모라 하였다.
새로운 교육관에 의하여 유아들이 생활에 필요한 심리적 공간의 사실의 지식을 스스로 얻고 지각하여 생활의 지혜를 깨달은 것이 유아교육의 내용으로 변하게 되었다. 유아는 인지적 학습과 감각, 지각을 통하여 경험을 얻고 그것이 쌓여 인지적 학습이 이루어져 유능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유아는 자기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잠자는 이외에는 감각기관을 통하여 자극반응형태로 새로운 외계의 정보를 얻고 접하게 되어 학습이 이루어져 행동변화를 가져오게 되어 유아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유아는 스스로 학습력이 있어서 그가 접하는 모든 환경적 자극과 영향으로 교육되어지는 까닭으로 조직적인 학교의 교육과정에서 보다 중요하다 보며, 그 교적 배려가 필요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유아는 살아있는 생명체(living matter)이고 자발적 행동으로 학습되므로 의도적으로 가르치지 않아도 처음 접하는 모든 자극이 행동발달의 시발적 역할을 한다. 갓 낳은 신생아의 움직임은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라 목적성이 있는 행동발달의 시발적 기초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단순한 행동의 움직임을 임의조정(任意調整)하고 통제하여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 유아교육이 되는 것이다. 일찍이 몬테소리(Montessori, M.)는 유아는 스스로 자발자전 할 수 있는 힘이 있어 그것을 돕고 보조해 주는 것이 유아교육이라 말했다.
결국 유아교육은 유아 스스로 활동하고 찾아내고 표현하는 것과 놀이 같은 실습적 행동을 통하여 스스로 찾고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유치원 같은 교육기관에서는 유아 성장발달에 알맞은 프로그램을 통한 학습을 통하여 유아교육을 해야 할 것이다.
(1) 영아기의 교육
영아기는 출생에서 만 1세까지의 젖먹이는 시기를 말한다. 특히 전통시대에는 영아기의 사망률이 높았으므로 삼칠일·백일·첫돌을 차례차례 무사히 넘기는 것이 최상의 과제로 생각되었다. 따라서 아기와 산모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가지 의학적·위생적인 처리가 전통적인 영아교육의 기본지침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이가 출산되면 대문에 금줄을 치고 남아이면 고추와 숯, 여아이면 솔잎과 숯을 달아놓았다. 이는 전염병이나 세균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하여 갓난아기가 있으니 외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표지일 뿐만 아니라 숯을 달아놓음으로써 제독(除毒)의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당시 영아를 기르는 데 주로 참고한 서적은 ≪동의보감≫과 ≪규합총서 閨閤叢書≫ 등이었는데 ≪동의보감≫에 나타난 양아십요(養兒十要)를 보면 다음과 같다.
① 등을 따뜻하게 하고, ② 배를 따뜻하게 하고, ③ 발을 덥게 하고, ④ 머리를 차게 하고, ⑤ 가슴을 서늘하게 하고, ⑥ 괴이한 것을 보이지 않고, ⑦ 비위(脾胃)를 따뜻하게 하고, ⑧ 울음을 갓 그쳐 젖먹이지 말고, ⑨ 경분(輕粉)과 미사(米砂)를 먹이지 말고, ⑩ 세욕(洗浴)을 적게 할 것 등으로 되어 있다.
미각에 관한 교육을 보면 삼칠일이 된 아이에게 미역국물을 맛보여 미각훈련과 편식예방을 하게 하였으며 백일이 되면 미역국물과 밥알을 먹였고 돌에는 보다 다양한 음식으로 미각을 개발하였다.
한편 신체기능의 발달을 위하여 놀이를 통한 여러 가지 동작교육을 실시하기도 하였으며, 이와 함께 동작이나 동기유발에 적절한 의태어나 의성어를 음률·장단에 맞추어 들려주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도리도리’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목운동과 온몸운동을 하게 한다.
② ‘짝자꿍’은 손바닥을 마주치게 하여 눈과 손의 협응작용을 발달시킨다.
③ ‘잼잼’은 두 손을 일시에 폈다 오므렸다를 반복하여 손의 근육운동을 발달시킨다.
④ ‘곤지곤지’는 한쪽 손바닥에 다른 손의 검지를 부딪치게 하여 손과 눈의 미세한 협응작용을 발달시킨다.
⑤ ‘도리도리 짝자꿍’은 두 가지를 합하여 연합적 운동신경을 발달시킨다.
⑥ ‘고네고네’는 어른의 손바닥 위에 아기가 서 있게 하는 것으로 6개월 정도가 지났을 때 서기 전 다리의 힘을 길러주는 운동이다.
⑦ ‘음마음마’는 엎드려서 몸을 당기거나 기는 동작의 초보로,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하는 운동이다.
⑧ ‘질라래비훨훨’은 8개월경에 두 손을 흔들어 몸 전체를 조정, 통제하는 동작이다.
⑨ ‘둥개둥개’는 어른의 손을 아기의 한쪽 겨드랑이에 끼고 다른 한 손으로 아기의 등을 받쳐 공중에서 흔드는 운동이다.
⑩ ‘불무불무’는 아기의 양겨드랑이에 두 손을 넣어 붙잡고 아기 몸을 흔드는 운동으로 온몸운동과 몸을 가눌 수 있는 운동기능을 발달시킨다.
⑪ ‘달강달강’은 아기가 앉아 있거나 서 있을 때 어른이 손목·발목·양손·양어깨 등을 마주잡고 앞뒤로 흔드는 운동이다.
⑫ ‘섬마섬마’는 11개월경 아기가 서기 시작할 때 ‘섬마섬마’를 불러주어 서는 연습을 촉진시킨다.
⑬ ‘걸음마’는 첫돌을 전후하여 아기가 혼자의 힘으로 걸을 수 있을 때, 이를 촉진하기 위하여 불러주는 것이다.
⑭ ‘내 손이 약손이다’는 아기의 배 등이 아플 때 어머니나 할머니가 아픈 부위를 쓰다듬어 주면서 안심을 주어 아픔을 잊게 하는 심리적인 음악요법이다.
⑮ ‘까르르 까꿍’은 영아의 사회적 발달을 촉진하는 것으로, 웃음으로 자기의 행동과 외부의 자극에 대한 인과관계를 인지시키는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⑯ ‘호랑이 온다’는 아이의 울음이나 투정을 그치게 하기 위하여 호랑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영아나 유아에게 전국적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⑰ ‘자장자장’은 아기를 잠재우기 위하여 어머니의 무릎이나 잠자리에 누인 뒤 편안하고 평화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역할을 한다.
(2) 유아기의 교육
유아기는 만 1세에서 6세 정도까지의 시기이다. 유아기에도 영아기의 지도방법이 그대로 적용되었으나 연령에 따른 특징적인 교수·학습방법이 있었다. 이때에는 특히 성격교육에 관심을 많이 가져,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에서 볼 수 있듯이 유아기 교육의 중요성을 전통적으로 인식하여 왔다.
만 1년이 지나면 혼자 힘으로 걸을 수 있게 되고, 차츰 이유식을 하게 되는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가장 변화가 많은 시기이다. 우리 나라의 전통가정에서는 아이들의 터울이 2∼4세 정도가 일반적이므로, 유아는 동생이 생길 때까지 어머니의 가슴을 향유할 수 있었다. 또한 수유하는 시간을 엄격히 정해 놓지 않고 유아가 원할 때 수유하여 비교적 너그러운 수유태도가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심리적 이유(離乳)가 늦어져 자라서도 독립심보다는 부모에 의지하고 부모의 뜻을 존중하는 습성이 생활화된 반면 오늘날까지 조상숭배나 효도의 기반을 이루어오고 있다. 동생이 생기게 되면 유아는 어머니의 품에서 할머니에게 인계되어 할머니가 유아교육의 교사와 같은 구실을 했으며 대가족제도의 장점으로 자연스러운 유아교육의 교량역할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유 때에도 할머니는 빈젖을 대신 빨게 하여 충격없이 자연스러운 이유에 적응을 시켰으며, 음식·생활태도·교육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유아를 보살폈다. 대개 3, 4세가 되면 숟가락을 사용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이것이 익숙하여지면 젓가락까지 단계적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배변훈련도 주의깊게 시켰으나 어머니의 수유태도가 관용적이었던 것처럼 할머니의 대소변가리기도 그다지 엄격하지는 않았다.
점차 자라 6, 7세가 되어도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면 키를 씌워 이웃집에서 소금을 받아오게 하는 등 충격요법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또한 할머니는 유아를 돌보면서 여러 가지 노래와 이야기 등을 들려주어 정서발달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여러 아들로부터 얻은 손자를 함께 돌보면서 형제간의 우애와 사회적인 행동 등을 은연중에 일깨워주었다.
대개 6, 7세 이상이 되면 아버지의 역할이 시작되어 학문교육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집에서 아버지로부터 ≪천자문≫ 등 기초한자교육과 인간의 기본도리에 관한 교육을 받기도 하고 서당에 나가 본격적인 교육을 받기도 하였다. 아버지와 서당의 교육은 엄격하여 공부가 부실하거나 행실이 올바르지 못하면 회초리로 다스렸다.
또한 여아들은 어머니나 할머니 등과 함께 가사에 참여하여 어릴 때부터 눈으로 익히고 귀로 들으면서 전통적 여성역할에 자연스럽게 접근하여 갔다. 따라서 전통시대의 유아교육은 출생에서부터 2, 3세까지는 매우 너그럽고 관용적이었다가 점차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엄격한 역할교육을 부과하여 일찍부터 성인의 몫을 담당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서구문물의 유입과 산업화에 따른 사회구조의 변화는 유아교육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먼저 핵가족화와 여성의 사회진출로 인하여 전통적 유아교육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가정에서의 유아교육기능이 점차 약화되어 유아원·유치원 등의 교육기관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같은 또래집단의 생활로 유아의 사회성이 일찍 발달되는 장점도 있으나 문제점이 더 많이 지적되고 있다. 인공수유 및 어머니와의 교류부족으로 정서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산아제한 및 교육열증가로 인한 지나친 관심과 과보호로 자칫 이기적이고 의존적인 아동이 될 우려를 낳고 있다.
전통시대의 유아교육은 가정교육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유아를 위한 별도의 제도적 기관은 없었다. 유일하게 사설 초등교육기관인 서당이 있었으나 대부분 7, 8세 이상의 아동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가정에 따라 일찍부터 독선생(獨先生)을 모셔 공부를 가르치기도 하였고, 총명한 5, 6세의 유아들이 서당에서 ≪천자문≫ 등을 배운 예도 적지 않았다.
그 뒤 신교육 실시와 함께 점차 유아교육기관도 설치되기에 이르렀다. 광복 이전까지의 유아교육은 주로 5, 6세를 대상으로 한 유치원이 유일한 기관이었으며, 4세 이하는 교육적 차원이 아닌 보호위탁기관으로서만 존재하였다. 근래에 와서는 유아교육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었으며 1983년부터 유아교육기관이 유치원과 유아원으로 정비되었다.
우리 나라 최초의 유치원은 1909년 함경북도 나진에 설립된 나남유치원(羅南幼稚園)으로, 정토종포교자원(淨土宗布敎資園)에 의하여 설립되었다. 그 뒤 1913년에 경성유치원, 1914년에 이화유치원과 용산유치원·혜화유치원 등이 설립되었다. 1921년까지 전국에 47개의 유치원이 있었는데, 이 중 32개가 우리 나라 어린이를 위한 것이었다. 당시의 유치원은 총독부로부터 사립학교 감독만 받았을 뿐 법적 근거나 규제는 없었다.
1922년에 반포된 <소학교령>에 유치원 규정이 포함되어 처음으로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광복 당시 남한에 있던 유치원은 39개였는데 1955년에 173개로 늘었으며, 1952년 <교육법시행령>이 공포되어 유치원에 관한 각종 기준이 마련되었다. 1963년 이후는 유치원의 수적 증가와 함께 시설기준 및 교육과정령 등의 공포로 실질적 향상이 이루어졌다.
1979년에는 문교부에서 국가발전에 필요한 유아교육확충계획안을 발표하였다. 그것은 ① 유아교육기관의 확대, ② 교사양성과정의 확충, ③ 유아교육의 연구기능 강화, ④ 유아교육의 지원체제 강화 등으로, 1991년까지 3단계 확충계획을 구체적으로 계획, 추진하였다.
한편 4세 이하의 유아를 위한 교육기관으로는 유아원이 있다. 이는 1920년대에 취업여성의 자녀를 일정시간 동안 맡아 돌보는 탁아소의 형태로 시작되었다가 1968년 어린이집으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 이와 함께 유치원의 교육과정을 도입하여 종전의 탁아기능에서 교육적 기능까지 맡게 되어 조기교육의 일환으로 제도화되었다.
그뒤 1982년 12월 <유아교육진흥법>이 공포되어 보건사회부가 관장하고 있던 706개의 어린이집과 1981년에 내무부가 설립, 운영하여온 새마을협동유아원 263개, 1966년부터 농촌진흥청이 운영하여온 농번기유아원 382개를 모두 합병하여 새마을유아원으로 일원화하였다.
1998년 현재 유치원과 아동복지시설 현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유치원의 정책적 방향은 유치원 교육의 공교육 체제확립 추진과 유치원 교육의 질 고양 체제확립을 들어 다음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유치원 교육의 공교육 체제확립 추진, 취원율 제고(1998년 50%), 유치원 교육 내실화의 내용으로는 공립유치원 학급보조 자원봉사자 훈련, 사립유치원 원장 결원 해소, 시범 실험유치원 확대운영(15개원), 교육환경개선 및 안전지도에서는 학교시설 설비 기준령 미달 유치원에 대한 보완조치 등이다. 한편 유치원 종일반 시범운영을 실시하여 유아원과 보육원 등의 성격을 일원화시키고 있다. 1998년 4월 현재 종일반 운영 유치원이 전체 유치원인 8,976개원에서 4,643(51.7%)개원이고 원아수는 12만9359명이다. 새마을 유아원을 대통령 지시사항(1988. 3. 14)에 따라 1991년 1월 1일 내무부로부터 교육부로 이관하여 3년차 계획으로 설립자는 희망에 따라 유치원 또는 탁아소로 전환하여 1991년 1월에 내무부 소관 1,962개소에서 1,647개소가 이관된 실정이다. 한편 1998년 4월 현재 유치원 현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원수는 8,976개소이고, 학급수는 2만107개 학급, 원아수 5세 30만5306명에 원아수 전체는 53만4061명이고, 취원율(5세)은 42.7%이다. 아동복지시설에는 1998년 5월 시설수가 1만5375개소, 보육아 52만959명이다. 시설별로 보면 국·공립에는 시설수 1,158개소에 보육아가 8만9002명, 민간에는 시설수가 8,172개소에 보육아가 35만8245명이고, 직장 보육시설에는 158개소에 보육아가 5,245명이며, 가정 보육시설에는 5,887개소에 보육아 6만8467명이다.
이들 제도적 유아교육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점을 몇 가지 검토하면 다음과 같다.
① 유아교육의 기회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고 있는 점이다. 1970년대의 취원율 2∼5%에 비하면 1998년에는 취원률 50%라는 급속한 증가를 보인 것이라 할 수 있으나 적령기 아동의 70% 이상이 유아교육의 혜택을 받고 있는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도 요원한 실정이다. 이와 함께 지역적인 격차를 좁혀 교육기회가 적은 농촌 및 도서지방이나 빈민층의 아동에 대한 교육기회의 확대가 시급하다.
② 기관의 유형에 따라 교육내용·방법·시설 및 교사의 자질 등에 심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특히 공립유치원은 초등학교에 병설되어 있는데, 유아교육을 전공하지 않은 교사가 겸임하거나 보모도 없는 실정이다. ③ 교육여건에 있어서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프로그램 개발의 부족과 교육자료의 질적·양적인 미흡, 전문적인 교사의 자질을 계발할 교사재교육의 부족 등을 들 수 있다.
④ 그밖에 행정적·재정적인 지원의 부족, 소극적인 부모의 유아교육 참여, 유아교육에 관한 일반적인 인식 부족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점차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유아교육의 중요성을 재인식하여 질적·양적인 확충을 꾀한다는 대전제 아래 관련 정부기관과 일선의 담당자들, 그리고 학부모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자세로 임하여야 할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와 유아원뿐만 아니라 다른 유아교육 기관도 급증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교육적인 면에서도 많은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다. 즉, 유아교육에 있어서도 새로운 과학에 대하여 흥미를 나타내게 되었고, 그 결과 심리학 ·의학 ·정신의학 ·교육학 등 각 분야에까지 적용하게 되었다. 또한 유아의 지도와 부모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였고, 개인과 여러 기관의 노력으로 직업여성의 자녀를 돌보기 위한 전일탁아의 교육 프로그램도 개선하였다. 심리학적 이론으로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이 유아교육과 관련되었으며, 미국의 심리학자 에릭슨은 유아기를 위기에 당면하게 되는 발달단계의 연속으로 보았고, 이 위기의 성공적인 극복을 위하여는 유아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 환경도 문제가 된다고 하였다.
심리학의 발달에 공헌한 학자로는 특히 J.피아제를 빼놓을 수 없다. 피아제는 유아는 일정한 지적 발달의 단계를 거쳐 진보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 이론은 유아기에 있어서의 인지학습 과정과 개념형성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기반이 되었다. 또한, 유아가 성인의 축소판이 아니며 유아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성인과 다르다는 점을 인지론으로 설명할 수 있도록 그 근거(이론)를 제시해 주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유치원이나 유아원의 교육에서 갖는 중요한 관심사의 하나는 언어발달에 관한 것이다.
많은 학자들은 유아가 사용하는 단어를 의미 있게 연결시키기 시작할 때 실제의 말이 시작된다는 것에 의견을 모으고 있다(즉, 한 유아가 ‘엄마’라는 말을 의미는 모른 채 모방했다면 그것은 실질적인 말에 속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2∼6세의 유아에게는 이해와 표현을 모두 포함한 말하기 능력이 주요과업이다. 4세 정도까지는 모국어의 조직적인 문법의 기초를 터득하게 되며, 6세까지는 보통 2,500단어 정도로 어휘가 증가한다고 본다. 이 증가의 정도는 물론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환경과 유아에게 거는 성인의 기대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 최근의 새로운 문제는 충분한 영양과 영양실조에 관한 것인데, 이것은 유아의 발달과 중요한 관계가 있다고 밝혀졌다. 영양실조(특히 단백질과 철분의 결핍)는 유아의 신체발달 및 지능발달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데, 특히 생후 1년 동안의 영양실조는 정신지체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유아교육의 중요한 목표는 보통 주어진 사회, 그리고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계승되는 철학 ·정치 ·종교적 추세를 보급시키는 데 있다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목적과 방법은 각 사회마다 다양한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일치되는 점은 유치원 이라는 곳이 유아교육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첫번째 단계라는 점이다. 왜냐 하면, 유치원 교육을 받을 때가 유아에게 영속된 사회상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때이고, 유치원은 유아가 후에 학교생활을 성공적으로 성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자녀 교육을 위한 고전 강의
머리말
여는 글
욕심을 버리고 아이들을 가르쳐라
공부, 왜 해야 하는가
1. 강남으로 이사할 필요 없다
2. 아이들이 암기하는 로봇인가
3. 조기교육, 이것은 알고 시켜라
4. 부모부터 성적에서 해방되자
5. 명문대가 명문인생의 보증수표는 아니다
경쟁력,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6. 독서, 다독보다 숙독이 중요하다
7. 논술학원 보내지 말자
8. 공부는 아이의 것
9. 성격부터 바로잡고 공부시키자
10. 아이의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다
리더십, 자신을 다스리는 힘
11. 기본에 충실한 아이로 키우자
12. 지나친 칭찬이 아이를 망친다
13.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 되게 하자
14. 'Care'는 이제 그만
15. 필요할 때 말하게 하자
비전, 더 넓은 세상을 보게 하라
16. 공부 잘하는 친구만 밝히지 말자
17. 여행으로 아이의 견문을 넓혀 주자
18. 예절바른 아이가 인정받는다
19. 리더에 집착하지 말자
머리말
부모들은 우리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다른 집의 아이들보다 뛰어나기를 바란다. 명문대에 입학하여 이후 사회의 중심에서 리더로 성장해 주기를 기대한다. 이런 기대로 인해 현재 우리 아이들은 밤늦은 시간까지 학원을 몇 군데씩 다닌다. 부모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인생의 낙오자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누가 무슨 이유로 이런 현실을 만들어 냈느냐는 차후의 문제이며, 우선 공부부터 시키고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금의 부모들인 것 같다. 아이를 놀게 놔두는 부모는 자식에게 관심 없는 부모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을 키우고 있는 아빠로서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희망사항일 뿐 공부는 아이가 하는 것이고,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되느냐 하는 문제도 아이에게 달려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 왔다. 부모는 자녀가 제대로 자랄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나는 현재 부모의 사고방식과 행동은 자녀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의 이런 생각은 이 책에서 공통적으로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옛 선비들의 말로 표현되었다. 공부로 유명해진 이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고 싶으면 욕심을 버리라고 한다. 자녀에게 지나친 관심을 두지 말라고 한다. 1등은 열심히 공부하다 보니 얻어진 결과물이지 그것만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얻어진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리더가 되고 싶으면 한 걸음 뒤로 물러나라고 가르친다. 이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 책에 소개된 옛 선비들의 글을 읽다 보면 현대의 학자들 이상으로 교육 문제에 대해 탁월한 견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체계적인 이론으로 정리해 놓지는 않았지만, 그 이상의 장점을 발견해 낼 수 있다.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 기대 이상으로 구체적인 제시를 하기도 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지금의 현실에서 강남으로 이사 가지 않고도, 무리하게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를 훌륭하게 키우는 방법을 찾아내실 것이라 믿는다.
원문 번역은 되도록 현대의 어투에 가깝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부분에서는 원문에 나타나지 않은 단어가 번역문에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원문과 그 출처를 수록해 놓았으니 참고하시기를 바란다.
원고를 작성하면서 틈틈이 원문과 번역을 놓고 교정을 했지만, 잘못 들어간 글자가 있을 수 있고, 아직 실력이 부족하다 보니 오역이 발견될 수도 있겠다. 이것은 출판사와 관계없이 전적으로 나의 잘못이며 책임이기에 한문에 조예가 있으신 여러 독자분과 선생님, 동학들의 따끔하고 애정 어린 질정을 부탁드린다. 크건 작건 반드시 고쳐서 실수를 줄여나갈 것을 약속드린다.
나는 한문을 전공하고 있지만, 이제 겨우 어(魚)와 로(魯)를 구별할 정도이며, 자녀 교육에 있어서는 경험이 일천하다. 나의 부족한 경험은 옛 선비들이 충분히 메워 주리라 믿는다. 한문으로 된 옛 사람들의 글을 번역하고 소개하는 일은 전공자로서 공부 이외에 또 다른 의무라고 여긴다. 이런 까닭으로 부끄럽지만, 배우는 자세를 지니고 부족한 글을 내놓는다.
배우는 사람으로서 스승의 은혜를 잊고 살 수는 없다. 경박한 제자에게 "선비가 되라."고 자상하게 일러주시는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배상현 선생님. 학위 논문을 미루면서 책을 먼저 내는 성급한 제자에게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하시며 격려해 주시고, 글을 쓸 수 있는 용기를 주신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박성규 선생님. 편찮으신 중에도 늘 제자의 공부를 염려하시는 동국대학교 한문학과 김종진 선생님. 이 세 분의 은혜는 공부하며 글을 쓸 때뿐만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늘 잊지 않으며 산다.
원고 작업 도중 소재와 자료 빈곤에 허덕이는 나에게 여러모로 조언을 아끼지 않은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송혁기 교수, 서정화 도형(道兄)의 가르침에도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서울과 멀리 떨어진 땅 끝에서 제자의 건강을 염려하시며 나에게 혜묵(慧默)이라는 이름을 주신 완도 신흥사 주지 법일(法日) 은사께도 감사의 삼배(三拜)를 올린다. 나를 믿고 사랑하시는 부모님의 은혜는 머리말을 쓰는 내내 마음에 두고 있었다.
모든 원고를 꼼꼼히 읽고 의견을 개진하며 문제점을 지적해 준 아내가 없었더라면 원고를 마무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글을 쓴다는 핑계로 집안일에 전혀 무관심한 남편에게 불편한 내색 하나 없이 작업을 함께 해 준 아내에게도 이 지면을 통해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엉성한 글을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다듬어 주시고 성의를 다해 대화를 나누어 주신 포럼 출판사의 유현종 사장님과 김재원 편집장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외에도 여러 선생님들과 동학 분들이 계시지만, 일일이 인사드리지 못하는 점 넓은 마음으로 양해해 주시기를 바란다.
끝으로 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부모님들께 한 가지라도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동시에 여러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갖추지 못한 글을 맺는다.
2007년 가을, 아이의 공부방 에서
김재욱
[네이버 발췌]
머리말
(자녀 교육을 위한 강의, 2007.11.20, 포럼)
한국전문자격교육원
내용 자료 는 일부만 기제 합니다
여는 글.
욕심을 버리고 아이들을 가르쳐라
모든 부모들은 자식이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경제적으로 넉넉하기를 바라고, 사회 속에서 리더로 성장해 주기를 기대한다. 그러려면 1등을 해야 하고, 남들이 인정하는 명문대를 졸업해야 한다. 부모들의 현실적인 목표이다. 자연히 자녀의 교육에 많은 신경을 기울이게 된다.
授小兒書, 切忌多行. 聰敏者少讀善誦, 不是好品, 使鈍者多行, 猶弱馬負重, 豈有致遠之理乎?
貴少行熟讀知義.
어린아이에게 글을 가르쳐 줄 때에 많이 가르쳐 주는 것은 절대 금기다. 총명하고 재빠른 아이가 조금만 읽어서 잘 외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지만, 둔한 아이에게 많은 분량을 익히도록 하는 것은 약한 말에 무거운 짐을 실은 것과 같은데 어찌 멀리 갈 이치가 있겠는가? 글은 분량을 적게 해서 꾸준히 읽어 뜻을 아는 것이 귀중하다.
이덕무(李德懋),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권 27∼29,「사소절(士小節)」
어렸을 때 배운 내용은 기억에 많이 남는다. 어린 시절부터 제대로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앞의 말처럼 아이들에게 많은 분량을 공부시켜선 안 된다. 우리 아이는 아직 초등학생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총명한 아이라도 동시에 많은 것을 배우게 되면 정말 공부해야 할 나이가 되었을 때 몸과 마음이 지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어린 시절에는 되도록 공부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 우리 아이는 아직 '약한 말'이다.
天之降才, 初無南北貴賤之異, 其所以有成不成者, 何也? 凡人兒時多慧, 栽識書名, 父師迷之以傳注帖括, 不得見古人縱橫浩渺之書, 一食其塵, 不復可鮮, 一也.
하늘이 인재를 내릴 때 애당초 남북(南北)이나 귀천(貴賤)의 차이가 없는데 누구는 이루고 누구는 이루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사람은 아이 적에는 대부분 지혜로운데 겨우 제 이름을 기록할 줄 알 만하면 아버지와 스승이 전주(傳注, 자잘한 주석)와 첩괄(帖括, 과거시험에 출제되는 난해한 단어나 문장)로 혼란을 주어 종횡무진하고 끝없이 광대한 고인들의 글을 보지 못하고, 한번 혼탁한 먼지를 먹음으로써 다시는 그 머리가 깨끗해질 수 없게 되는 것이 그 첫째이다.
김정희(金正喜), 『완당집(阮堂集)』, 권 1,「인재설(人才說)」
어린아이에게는 쉬운 것을 꾸준히 하게 해서 공부에 흥미를 붙여 주어야 한다. 아이가 제아무리 똑똑하다 해도 아이일 뿐이다. 어린 시절에 특별한 재능을 발견해서 키워 주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요즘처럼 1등과 명문대만을 목표로 아이의 수준과 마음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상위 단계를 가르치려 해선 곤란하다. 아이가 공부에 흥미를 잃게 됨은 물론 머릿속마저 혼탁해지기 때문이다.
父兄之勸學子弟, 在幼穉應對進退, 愛親敬長, 文字講習, 朝夕敎誨, 毋致失學. 及其成立多少, 在子弟而不在父兄矣.
부형이 자제에게 배움을 권하는 내용이란 어렸을 때는 손님을 응대하는 것과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 부모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것, 문자의 강습에 있으니 아침저녁으로 가르쳐 배운 내용을 잃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 성취의 많고 적음은 자제에게 달려 있지 부형에게 있지는 않다.
최한기(崔漢綺), 『인정(人政)』, 권 11, 「부형권면(父兄勸勉)」
공부를 권하는 사람은 부모지만, 실제적인 공부는 아이가 한다. 공부에 어느 정도 성취가 있느냐는 전적으로 아이만의 문제이다. 공부를 전혀 시키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공부에 대해 과도한 욕심은 버려 달라는 말이다. 1등을 하는 것이 좋다고 말해 주어도 무방하지만, 1등만 좋은 것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1등은 한 명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1등은 부모가 하게 해 줄 수도 없다. 모든 부모들이 1등을 위해 가르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진짜 현실이다.
如我旣有見知之實, 而人乃不知, 則不知者在人. 而我所自有之實, 不以不知而有喪焉, 人之不知, 何與於我哉.
만약 나에게 이미 인정받을 만한 내용물이 있는데도 사람들이 몰라준다면 그것은 남에게 달려 있는 문제이다. 내 스스로 간직하고 있는 내용은 남이 모른다고 해서 잃게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몰라주는 것이 내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장현광(張顯光), 『여헌선생문집(旅軒先生文集)』, 권 9, 「부지암정사기(不知巖精舍記)」
요즘 아이들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은 '엄마 친구의 아들'이라고 한다. 요즘 부모들은 끊임없이 내 아이와 남의 아이를 비교한다. 남들보다 조금만 부족한 면을 발견하면 그 모든 것을 다 잘하라고 강요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이들은 서서히 부모에 대한 반항심을 키워간다. 공부에 흥미를 잃어간다. 자신감도 떨어진다. 남들과 비교하는 시간에 아이의 장점을 찾아서 북돋아 주어야 한다.
자식 자랑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옛 어른들은 "자식은 귀할수록 감춰 놓고 키운다."고 했다. 남들이 똑똑한 내 아이를 몰라준다고 섭섭해 하면서 드러내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남들에게 비웃음만 사게 된다. 중요한 것은 남의 평가가 아니라 아이의 내면이다.
友之疎狂者, 足啓庸俗, 通達者, 足破拘攣, 博學者, 足開孤陋, 高曠者, 足振頹墮, 鎭靜者, 足制躁妄, 恬淡者, 足消濃艶.
소탈하여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친구는 나의 평범하고 고상하지 못한 면을 열어 줄 만하고, 사리에 통달한 친구는 사물에 얽매이는 습관을 깨뜨려 줄 만하며, 널리 배운 친구는 견문이 좁고 아는 것이 얕은 면을 열어 줄 만하고, 고상하고 활달한 친구는 무기력하고 쇠약함을 떨치게 해 줄 만하며, 침착하고 차분한 친구는 조급하고 망령됨을 제어해 줄 만하고, 조용하고 담박한 벗은 호사스러움을 없애 줄 만하다.
신흠(申欽), 『상촌고(象村稿)』, 권 48, 「야언(野言)」
친구는 비교와 경쟁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나의 부족한 면을 메워 주는 소중한 존재이다.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나를 믿어 주는 친구가 있고, 그의 힘을 빌어야 내 아이는 자라서 성공할 수 있다. 친구는 삶의 동반자이다.
아이에게 공부 잘하는 친구만 만나라고 강요해선 안 된다. 아이는 평생 공부만 하다 죽지 않는다. 사회의 이런저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가운데 좌절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면서 살아갈 사람들이다. 운동을 잘하는 친구와 함께 달리기를 하게 하고, 그림에 소질이 있는 친구와는 함께 그림을 그리게 하면 된다.
諺云: "驕子罵母.", 夫家人之子, 不預防撿, 則必至於驕, 驕而不止, 或至於罵, 是子雖不子, 使子至此, 亦父母之過也.
속담에 "버릇없는 자식은 제 어미를 욕한다."고 했습니다. 집안의 자식을 미리 단속하지 않으면 반드시 버릇없는 데에 이르고, 버릇이 없는데도 막지 않으면 욕설을 하는 데에 이를 것입니다. 자식이 자식답지 못함은 말할 것도 없으나 자식을 이 지경에 이르도록 한 것은 바로 부모의 잘못입니다.
이황(李晃), 『퇴계집(退溪集)』, 권 6,「갑진걸물절왜사소(甲辰乞勿絶倭使疏)」
능력 있는 사람은 남들에게 대접받는다. 그러나 예절이 없는 사람은 능력이 있어도 알아주지 않는다. 남을 배려하는 사람은 당장 손해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에는 존경받는 삶을 살게 된다. 당장의 학업 성적에 집착해서 진정 소중한 것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어린 시절에 예절을 가르치지 않으면 아이의 미래는 없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사회라지만, 자기만 아낄 줄 아는 사람은 결국 실패하게 되어 있다.
萬物, 不問美惡, 皆有要用處. 以天地大化, 觀之, 則少一箇不得. 如治病養生, 非蔘朮, 不能補元, 非黃硝, 不能去疾. 天地功用, 亦如此, 至毒之物, 其用, 甚緊, 劣下之物, 其用, 亦不歇.
만물은 아름답건 추하건 모두 다 긴요하게 쓰이는 곳이 있다. 천지조화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하나라도 모자라서는 안 된다. 가령 질병을 다스리고 생명력을 기르려면 인삼과 삽주(엉겅퀴과에 속하는 약초)가 아니고서는 원기를 보충 할 수 없고, 유황이 아니고서는 병을 없앨 수 없다. 천지간 만물의 유용성도 마찬가지다. 독성이 강한 물건도 그 쓰임새가 대단히 긴요하고, 하찮은 물건이라도 그 쓰임새가 또한 요긴하다.
이항로(李恒老), 『화서집(華西集)』
『명심보감(明心寶鑑)』에 "천불생무록지인, 지부장무명지초(天不生無祿之人, 地不長無名之草)."라는 말이 있다. "하늘은 녹(봉급)이 없는 사람을 낳지 않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기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 아이들은 자라서 무언가 보람 있는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다. 저마다 개성과 소질을 갖고 이를 마음껏 펼치면서 살아갈 소중한 인재들이다. 1등을 하기 위해, 공부만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 아니다.
교육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욕심을 버리고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업 성적 1등이 인생의 1등까지 보장해 주지 않는다. 명문대가 그들의 삶까지 명문으로 만들어 줄 수는 없다. 옛 선비들은 그렇게 말했다. 이 책을 읽으며 이들의 진심어린 충고에 귀 기울여 주기를 기대한다.
5. 명문대가 명문인생의 보증수표는 아니다
명문대가 명문인생의 보증수표는 아니다
아이들은 성적에, 부모는 자녀의 명문대 입학에 모든 것을 건다. 명문대는 들어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결과일 뿐이다. 명문대를 들어가야 살 수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니다. 명문대 때문에 아이들이 희생되고 있는 것이 진짜 현실이다. 결과보다는 과정에 충실하면서 아이의 인생 전반을 배려하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부모의 생각이 바뀌는 순간 아이는 행복해지고 나중에 자라서 살게 될 이 사회도 행복해질 것이다. 명문대를 보기 전에 아이부터 보자.
지금 천하의 총명하고 슬기로운 인재를 모아 한결같이 모두 과거(科擧)라는 절구통에 집어넣고는 마구 빻고 때려서 이들이 부스러지거나 문드러지지는 않을까 걱정해야 할 지경인데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정약용(丁若鏞),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대한민국에서 초등학생으로 산다는 것
언젠가 인터넷에서 '2007, 대한민국에서 초딩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초등학생 10명 중 9명이 과외. 과외종목 평균 3.13개. 과외 하루 평균 2시간 37분. 그중 38.6%는 5시간 이상. 친구들과 노는 시간 거의 없다 30%. 가출 충동을 느껴본 적이 있다 53.3%. 자살 욕구를 경험해 본 적이 있다 27%. …….
나는 딸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명예교사를 하고 있다. 한 달에 두 번 학교에 나가서 한자를 가르치고 있다. 학교 선생님들이나 그 학생들의 부모님이 들으면 펄쩍 뛰시겠지만 '가서 가르치면 내 시간만큼은 아이들이 쉴 수 있겠구나.'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학교에 가게 되었다. 어차피 배우게 될 거 아이들 공부하는 데 토대만 만들어 주자는 생각을 갖고 한번 해 보기로 했다. 딸아이가 2학년이니 올해로 2년째 된다.
가끔씩 가는 학교이다 보니 아이들을 자세히 볼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장난꾸러기 학생이 있다. 수업시간에 딴 짓을 자주해서 야단을 맞을 때도 있지만 하는 짓이 귀엽고, 가끔씩 선생을 뜨끔하게 만드는 질문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다 그럴테지만, 이 아이 역시 심성이 곱다. 어느 날 이 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여느 때와 같이 해맑게 웃고 있었는데 눈빛이 흐릿해 보였다.
"너 피곤하냐?" "아뇨." "너 학원 몇 군데 다녀?" "영어, 태권도, 전 과목이요." "엥? 전 과목? 학교에서 배우는데 그걸 또 하냐?" "네." "그럼 집에는 몇 시에 들어가는데?" "10시에요." "그러니깐 피곤하잖아? 근데 왜 아니라고 해?" "피곤한데 버릇돼서 괜찮아요." 피곤한 게 버릇이란다. 동영상을 보면서 그렇겠거니 했는데 이 아이 말을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흐릿한 눈빛, 다 이유가 있었다.
"공교육을 강화하자.", "사교육비 부담을 줄여 달라.", "입시정책 일관적으로 시행해라." 다 맞는 말이다. 적극 찬성한다. 그런데 한 가지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부모들 생각이 '일류, 일등'만 지향한다면 나라에서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고 실행을 해 봐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성적에, 부모들은 명문대에 목을 매달고 산다. 얼마 전 어떤 아이는 태권도복 끈에 진짜로 목을 매달았다. "나도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날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왜 명문대인가
명문대를 들어가야 나중에 좋은 곳에 취직해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으니까 그렇다. 이게 부모들의 생각이다. 잘 먹고 잘 사는 거 좋은 일이다. 그런데 피곤함을 일상으로 만들어 놓을 만큼 명문대가 소중한가? 명문대건 무엇이건 아이들의 삶보다 중요한 가치는 없다. 이들의 삶에서 명문대는 일부분에 불과하다. 게다가 잘 먹고 잘 사는 건 아이의 능력과 주변의 상황에 달려 있지 명문대라는 간판에 있는 것이 아니다. 부모들의 생각부터 변해야 정책이 바뀌어도 바뀐다.
有求而讀書者, 雖讀無得. 故擧子業者, 至脣腐齒爛, 讀止, 則茫然. 如瞽師言白黑, 而無以知白黑. 其言之也, 不過入耳出口. 如飽食而嘔, 不惟肌膚無益, 而志亦戾矣.
무언가를 바라고 책을 읽는 사람은 읽는다 하더라도 얻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과거 공부를 하는 사람은 입술이 썩고 치아가 문드러질 지경에 이르러도 읽기를 멈추기만 하면 캄캄해진다. 이것은 마치 장님이 희고 검은 것을 말하면서 흑백을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말은 귀로 들어와서 입으로 나오는 것에 불과하다. 배가 터지도록 먹고 도로 토해내면 신체에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정신까지 무너지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익(李瀷)1), 『성호사설(聖湖僿說)』, 권 13, 「유구독서(有求讀書)」
요즘 아이들은 옛날보다 분명 똑똑하다. 배우는 과목도 많으니 아는 것도 많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그 이상 절대로 발전하지 못한다. 은연중 "일등 해야지." "나중에 좋은 대학 가려고 공부하는 거야."라는 부모의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 목적만 이루면 배운 내용을 다 까먹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배가 터지도록 먹고 도로 토해내는 일을 날마다 반복하는 사람이 우리 아이들이다. 과거급제, 명문대 진학이라는 목적만 갖고 공부를 시켜 봐야 아이한테 남는 건 하나도 없다. 이익의 말처럼 몸과 마음 모두 다친다.
명문대에 들어갈 확률은 수백 대 일이다.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다. 사실이 이런데 만약 소중한 내 자식이 명문대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건 그때 일이니 현재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당당해 할 건가? 그때 가서 자식에게 뭐라고 말해 줄 것인가? "그래도 네가 최고야." 가소롭기 짝이 없다. 이미 내 아이는 패배감에 지쳐 있고, 인생 꼬였다는 생각이 머리에 깊이 박힌 상태일 것이다. 열 명 중 아홉 명의 아이들이 이렇게 된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그 아홉 명의 부모가 될 확률이 높다. 이게 진짜 현실이다.
명문대를 나와야 잘 산다는 증거가 도대체 어디에 있어서 이런 비상식적인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국에는 명문대 출신보다 '기타 대학' 출신자가 훨씬 더 많다. 그렇게 따지면 기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은 못 살아야 할 텐데 정말 눈앞의 현실이 그러한지를 묻고 싶다. 명문대 출신만 잘 먹고 잘 산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명문대가 그의 삶까지 명문으로 만들어 줄 수는 없다.
실력을 드러내려 애쓰지 마라
명문대에 들어가려면 우선 공부를 잘해야 한다. 거기에 각종 경시대회 수상경력까지 더해진다면 금상첨화다. 긍정적인 관점에서만 보면 경시대회는 무척 좋은 것이다. 아이들의 학업 의욕을 높이고 선의의 경쟁의식을 다지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하기 때문이다. 성적에 반영되지도 않으니 더더욱 좋다.
이 부분에서 교육부와 대학교 당국자들의 태도를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의 입시정책이 일방적이고 무계획적이라는 것은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아이들 교육을 위한다면서 아침에 명령하고 저녁에 고친다. 한편 입시의 변별력이 떨어져서 수상 경력까지 봐야겠다는 대학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것이 아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부담으로 작용한다. 좋은 의도로 시작된 경시대회가 입시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데에는 교육부와 대학의 잘못이 크다. 본질적으로 제도를 개선하거나 무언가를 건의할 생각은 않으면서 서로 미룬다. 이 와중에 아이들만 고역을 치른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교육부에서 대학에서 그렇게 한다고 아이들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영어·수학·과학을 마구 시킨다. 일부 부모들은 입상을 못할까봐 조바심을 내서 심사위원에게 뇌물까지 쓴다. 그렇게 해서 아이가 입상하게 되면 자랑하지 못해서 안달이다. 그러면서 '아이들 자신감을 높여 주기 위해' 대회에 나간다고 핑계를 댄다. 수상을 하는 몇 명이야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 그럼 나머지는? 그 아이들 부모가 알아서 자신감 회복시켜 주면 그만인가? 아이의 마음을 걸고 노름을 한다. 삼위일체가 되어 아이에게 상처를 못 줘서 안달들이다.
至於處世之道, 要於見知者, 終於不知, 晦於不知者, 終於必知. 蓋要於見知, 則纔有片善, 求以聞於人, 僅能一藝, 求以衒於世, 唯其求聞求衒之私心, 便梏其天理之正. 而所有之片善, 所能之一藝, 亦止爲悅人售世之資焉. 其復有長進之望乎? 此市才著善, 要名干譽者, 的然而日亡也.
세상을 살아가는 도리에 대해 말해 보면 알려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끝내 알려지지 못하고, 남이 알아주지 않는 것에 무관심한 사람은 끝내 반드시 알려지고 만다. 일반적으로 알려지기를 바랄 경우 조금이라도 작은 선(善)이 있으면 알려지기를 바라고, 겨우 한 가지 재주에 능할 뿐이면서 세상에 자랑한다. 알려지기를 바라고 자랑하려 하는 사사로운 마음이 바른 도(천리(天理), 절대법칙)를 해친다. 결국 자신의 작은 선과 한 가지의 재주는 남을 기쁘게 하고 세상에 팔아먹는 자료가 될 뿐이니, 어찌 다시 길게 전진할 희망이 있겠는가? 이것이 재주를 자랑하고 선을 드러내며, 명예를 바라는 사람들이 반짝했다가도 나날이 없어지는 이유이다.
장현광(張顯光), 『여헌선생문집(旅軒先生文集)』, 권 9, 「부지암정사기(不知巖精舍記)」
아이들의 실력은 이제 자라고 있을 뿐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경시대회 수상 경력이 당장은 유리할지 모르겠지만, 아이가 삶을 살아가는 데 결정적인 영향은 주지 못한다. 앞의 글처럼 '반짝했다가 사라지는' 것일 뿐이다.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의 송곳)'라고 했다. 주머니 속에 송곳을 넣어 놓아도 뾰족한 모습은 보이는 법이다. 마찬가지다. 진정으로 실력이 뛰어나다면 굳이 대회에 내보내거나 자랑하지 않아도 저절로 드러난다.
先生曰: "君子之學, 爲己而已. 所謂爲己者, 卽張敬夫所謂: '無所爲而然也.' 如深山茂林之中, 有一蘭草, 終日薰香, 而不自知其爲香. 正合於君子爲己之義. 宜深體之."
퇴계선생(退溪先生, 이황(李滉), 1501~1570)이 말씀하셨다. "군자의 학문은 자아 완성을 위할 따름이다. '자아 완성'이란 장경부(張敬夫, 1130~1180, 송나라 학자)가 말한 '인위적인 노력 없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마치 깊은 산 무성한 숲속에 한 떨기 난초가 꽃을 피워 종일 그윽한 향기를 풍기고 있지만, 난초 스스로는 향기를 내고 있는 줄 모르는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군자가 자아 완성을 위해 공부하는 뜻과 꼭 들어맞는다. 깊이 체득하라."
이덕홍(李德弘)2), 『간재집(艮齋集)』, 권 5, 「계산기선록(溪山記善錄)」
아이에게 두발 자전거를 가르친다고 생각해 보자. 아이가 아무것도 모르고 겁을 집어먹고 있을 테니 처음에는 잡아 준다. 차츰 손을 놓아 본다. 이때 아이가 눈치를 채면 안 된다. 숙달되지 않았으므로 잘 가다가도 손을 놓은 걸 보게 되면 그대로 넘어지기 때문이다. 넘어지지 않게 부모가 뒤에서 잡고 있다는 것을 때때로 보여 주고 계속 용기를 북돋아 준다. 완전히 손을 놓고 밀면서 가 보게 한다. 마음이 놓인 아이는 손을 놓은 줄도 모르고 달린다. 한참을 가서야 뒤를 돌아보고 넘어진다. 이걸로 끝이다. 아이는 여전히 불안하다고 하겠지만, 웃으며 한 마디 해 준다. "사실은 네가 처음 탈 때부터 손을 놓고 있었어. 네 힘으로 한 거야."
아이는 자전거도 잘 타게 되고, 덤으로 자신감도 얻는다. 자전거를 타게 할 목적이면 자전거만 보지 말고 아이부터 봐야 한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저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공부를 시킬 때 부모가 자녀의 공부 과정에 일일이 개입하면 안 된다. 이런 개입 속에서 자란 아이는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어도 부모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최근 어른이 되어도 부모에게 의존하는 사람들이 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부모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힘을 얻어서 궁극적으로는 혼자서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스스로 실력이 늘었다는 것을 몰라야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아야 실력이 는다. 난초가 향기를 내면서도 스스로 향기를 내는 줄 모르듯 공부는 이렇게 완성된다. 이런 경험은 고스란히 자신감으로 연결된다. 부모가 공부의 과정에 끼어들거나 각종 경시대회에서 입상을 한다고 해서 자신감이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명문대를 보지 말고 아이부터 봐야 한다.
결과보다는 과정에 충실하길 바라며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중계하는 배구 경기를 본 적이 있다. △△화재와 ○○캐피탈의 프로배구 챔피언 결정전이었다. 박빙의 승부가 연출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화재의 한 선수가 계속 실수를 하기 시작했다. 작전 시간을 요청했다. 당연히 그 선수에게 질책이 쏟아질 줄 알았는데 감독의 말은 뜻밖이었다. 그 급박한 상황에서 아주 자상하게 "지금, 네가 연습 때 했던 플레이가 안 되고 있어.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네가 하던 대로만 해라. 시합에 이기고 지고는 그 다음 문제 아니겠나?"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배구 규칙을 모르는 딸아이는 멍하니 화면만 보고 있다. 딸아이의 눈을 보면서 잠깐 부끄러웠다.
今也括天下聰慧之才, 壹皆投之於科擧之臼, 而舂之撞之, 唯恐其不破碎靡爛, 豈不悲哉!
지금 천하의 총명하고 지혜로운 인재를 모아 한결같이 모두 과거(科擧)라는 절구통에 집어넣고는 마구 빻고 때려서 이들이 부스러지거나 문드러지지는 않을까 걱정해야 할 지경인데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정약용(丁若鏞)3),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권 11, 「오학론4(五學論四)」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안타깝고 슬프다. 그러나 당장 현실을 바꿀만한 힘이 없다고 해서 이런 상황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순 없다. 남 탓이나 하면서 끌려가선 더더욱 안 된다. 끊임없이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그전에 부모들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결과보다는 과정에 충실해야 할 때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부모가 변하면 아이도 행복해지고 그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도 따라서 행복해질 것이라 믿는다.
위 글에서 보듯이 우리 선조님의 아이들 훈육 (訓育)
[명사] 품성 이나 도덕 따위 를 가르쳐 기름
방식을 엿볼수 있다
한국전문자격교육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