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분 마리아의 영원한 안식을 위하여
2016. 6. 8
가평 연세 장례식장; 이기우 신부
먼저 이 세상을 떠나시는 고 홍순분 마리아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커다란 슬픔에 잠겨계실 유가족 여러분에게 위로를 전합니다. 지금 유가족들께서는 아들로서나 딸로서 생전에 그분께서 남기신 많은 추억의 상념에 사로잡혀 계실 것입니다. 그 상념들은 그분이 여러분에게 남겨주신 사랑의 흔적입니다. 비록 고인의 몸은 이 자리에 누워계시지만 그분의 삶은 그 기억을 통해서 남아 있습니다. 그냥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죽음 때문에 평소보다 더욱 선명히 살아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분의 삶을 기억하는 한, 그분은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가톨릭 교회가 고백하는 육신의 부활 신앙입니다.
향년 85세가 되시기까지 고인께서는 30년 전에 돌아가신 남편 남궁 경 할아버지와 혼인하시고 슬하에 1남 5녀를 두셨습니다. 자녀들이 회고하는 고인은 착하고 남들에 대한 배려를 잘 하시던 분이셨고 성실하게 일생을 살아가셨습니다. 요즘 요양원들이 그렇게 많은데도 고인께서는 그 흔한 요양원 신세를 한번도 지지 않으시고 댁에서 손주 손녀들과 함께 농사일로 소일하시며 지내시다가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 맏따님이신 남궁 영은 안젤라가 제에게 삼십 년 전에 명동 성당에서 성경과 교리를 삼년 동안 배웠고 제가 일하던 빈민사목에서 십년 넘게 직원으로서 성실하게 봉사해 준 것만 보더라도 고인은 따님에게는 물론 다른 자녀들에게도 좋은 어머니이셨습니다. 딸은 어머니를 보면 알듯이, 그 역으로 딸을 보면 그 어머니를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당신 자녀로 삼으시는 방법을 세례라 합니다. 대표적인 세례는 물로 죄를 씻는 수세입니다. 그리고 미처 수세를 받을 수 없었지만 치명하여 신앙을 증거한 사람은 혈세를 받습니다. 피의 세례입니다. 수세도 혈세도 받을 수 없던 경우에 올바른 삶으로 하느님의 존재를 증거한 사람은 화세를 받습니다. 불의 세례입니다. 사랑의 세례를 뜻합니다. 고 홍순분 할머니의 삶은 화세를 받기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톨릭 교회의 사제로서 홍순분 할머니에게 마리아라는 세례명으로 화세를 드립니다.
그분이 화세를 받으시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계신 증거를 하나 더 들겠습니다. 홍 마리아 할머니께서는 51세에 혼자 되셔서 6남매를 키우느라 고생하셨습니다만, 먼저 간 남편 남궁 할아버지를 그리워한 나머지 그분이 돌아가신 날 하루 전날에 남편 곁으로 가셨습니다. 아마 천국에 가서라도 남편의 제사상을 직접 차려 드리고 싶으셨나 봅니다. 게다가 자식들이 두 분의 제사상을 따로 차리는 수고와 번거로움을 덜어주시려는 뜻도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이제 하느님께 직접 가시게 된 고인을 그분께 맡겨드리며 가톨릭 교회의 장례 예식에 따라 함께 기도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불교나 유교의 장례 예식도 가톨릭 교회 못지 않게 정성스럽고 거룩합니다. 49재를 지내기도 하고 3년상을 치르기도 합니다. 불교의 부처님이나 유교의 공자님이 성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은 우리가 감히 흉내 내기도 힘들 정도로 훌륭하신 분들입니다. 하지만 그분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입니다. 사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선의로 상상해서 만든 관념으로 내세관을 가르쳤을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릅니다. 그분은 하느님이십니다. 반열이 다른 겁니다. 가톨릭 교회의 장례 예식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거행합니다.
우리와 함께 이 세상에서 사랑과 친교를 낳아 나누었던 고인과의 헤어짐이 아름다운 이별이 되려면 세 가지 요소가 꼭 필요합니다. 세례성사와 병자성사와 성체성사입니다. 하느님께로 돌아가려면 먼저 하느님을 알고 믿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돌아갈 데가 없습니다. 그저 착하게 살아가 죽으면 다 좋은 데로 갈 것이다, 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하는 기대는 접으시는 게 좋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영적 현실이 그렇게 녹록치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좁은 문이기 때문입니다.
세례성사는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성사입니다. 이 미사를 시작할 때 고인에게 뿌려드린 성수는 이분이 가톨릭 신자이며 따라서 하느님의 자녀임을 하느님께 신고하는 의식이었습니다. 병자성사는 부모님께서 죽음을 잘 준비하시도록 배려해 드리는 성사입니다. 웰빙 바람에 이어 웰다잉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만 잘 죽은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생을 부귀영화 다 누리며 살았다고 해도 죽는 순간에 마귀가 마구 공격을 해대면 신자 아닌 사람들은 다 쓰러집니다. 임종할 때의 얼굴 표정을 보시면 아십니다. 그러나 병자성사를 받은 신자들은 얼굴표정이 편안해 지십니다. 왜냐하면 온교회가 그분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마귀와 하느님 앞에서 약속하는 성사이기 때문입니다. 성체성사는 장례미사 때 이루어집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장례미사 때 축성되는 성체를 노자성체라고 부릅니다. 고인이 천국에 가는 동안 필요한 노자돈이라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 요소를 다 갖추시면 고인은 백 퍼센트 천당에 가십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가톨릭 교회에 직접 위임하신 권한으로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 이웃 교파인 개신교에서는 세례도 줄 수 있고 병자를 위한 기도도 할 수 있지만 고인에게 천당가는 노자돈을 드리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성체성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홍순분 마리아 할머니는 분명히 천당에 가십니다. 믿으십시오.
본시 하느님에게서 온 인간은 태어나 살다가 하느님께로 돌아갑니다. 태어남이 축복이듯이 죽음도 분명히 하느님의 섭리입니다. 인생은 꽃과 같아서 그 열매는 죽음으로 맺어집니다. 홍순분 마리아 할머니께서 고생스런 삶을 통해서 보여준 성실함과 인내로움은 이제부터 앞으로 남은 사람들을 통해서 자라고 피어날 것입니다. 이러한 섭리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홍순분 마리아를 자비로이 받아들이실 것이고, 당신 곁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예수님께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으로 홍순분 마리아를 하느님 품으로 돌려보냅니다. 천사들의 인도를 받아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시도록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남은 우리는 고인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천상 교회와 지상 교회는 통공을 이룹니다. 이 통공을 통하여 우리도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이 삶을 귀하게 살다가 언젠가는 홍순분 마리아를 따라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다시 한번 유가족들께서 고 홍순분 마리아 할머니를 고이 모셔주시기를 바라며,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첫댓글 남궁영은 안젤라자매님의 어머님께서 주님곁에서 평화의 안식을 누리시기를 저도 기도합니다..신부님 덕분에 반가운 안젤라 자매님의 모습이 떠오르네요..1988년도인가 함께 명례방을 다녔던거 같은데 그 얼굴과 목소리가 또렷이 이 아침에 떠오르는 것이 신기합니다..
기억하는군요. 전화 한 번해서 조문하시지요?